2024년 10월 6일
제목 교회를 향한 격려와 권면
본문 빌4:10-13
지난 주일 교회 일군을 선택했습니다. 뽑힌 일군들도 귀하지만 교우들께서 뽑으신 것도 잘하셨습니다. 담임목사 은퇴에 관한 결정도 참 잘하셨습니다. 저는 크게 감사하면서도 과연 시골교회 성도들의 정서에 부합할 수 있을지 제 아내와 함께 걱정했습니다. 성도들 모두가 이에 공감하고 균형 잡힌 생각을 갖도록 도와드리고 싶어서 바울의 편지를 보면서 말씀을 나누고 싶었습니다. 너그럽게 그리고 은혜롭게 받으시기를 바랍니다.
생각해 줌에 대해 격려했다
빌립보교회는 바울을 많이 생각해 주던 교회였습니다. 잠시 생각해 주던 마음이 식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다시 생각하는 마음이 싹이 났다고 했습니다. 빌립보교회는 바울을 생각하는 마음이 계속되었습니다. 15~16절 빌립보교회는 바울의 첫 번째 후원자였고, 데살로니가에 있을 때도 한 번만 아니라 두 번이나 쓸 것을 공급해 주었습니다. 바울을 늘 생각해 주는 마음과 실천이 멈추지 않았습니다. 18절 바울은 모든 것이 풍부해졌습니다. 빌립보교회가 에바브로 디도 편에 보내준 것을 받으므로 더욱 풍족해졌습니다. 쓸 것이 많아 기쁜 것이 아니라 성도들의 믿음의 열매여서 기뻤고,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향기로운 제물이 될 것이기 때문에 기뻤습니다. 바울에게 함이 곧 하나님께 함이었습니다.
우리 교회 교우들도 빌립보교회처럼 목사를 생각해 주시고 최선을 다하여 섬겨주셨습니다. 이번 장로님들께서 힘껏 섬겨주시는 모습에서 큰 감동이 되었습니다. 공동의회에서 교우들의 마음을 재확인할 수 있어서 감사했습니다. 인간적으로 미안한 마음이 들지만, 17절 성도들의 건강한 믿음을 가졌음에 감사하고, 18절 하나님께서 기쁘게 받으실 것으로 믿고 감사했습니다.
개운치 않은 모습으로 사역을 마치는 주변 목사님들의 뒷모습을 보며 저는 교인들의 축복 속에서 마무리하기를 소원하였고, 또 그렇게 되었습니다. 이제 우리 교회가 총회와 노회 안에 좋은 선례가 될 것으로 확신합니다. 앞으로도 목회자를 생각해 주는 마음이 풍성한 교회가 되기를 바랍니다.
궁핍에 처할 줄 알아야 함을 격려했다
이어 궁핍한 삶에 대한 격려가 주어집니다. 바울은 궁핍한 삶을 살기도 했습니다. 고린도에서 사역할 때 천막을 만들며 살았습니다. 고후11:27 “여러 번 자지 못하고 주리며 목마르고 여러 번 굶고 춥고 헐벗었노라.”고 했습니다. 그는 궁핍하다고 해서 불평하지 않고 자족하는 삶을 살았습니다.
저는 첫 목회부터 개척교회였으니 가난한 삶이었습니다. 개척하면서도 누구의 도움을 받지 못했고, 도와달라는 말을 할 줄 몰랐습니다. 그런데 뜬금없이 제가 청년 때 다니던 교회에서 상당한 헌금을 보내주셔서 개척 2년 만에 예배당을 건축하는 복을 누렸지만, 가정 경제는 밑바닥이었습니다. 부목사로 2년 일할 땐 숨을 돌릴 수 있었습니다. 이어 우리 교회에 담임으로 부임했지만, 부목사로 있던 교회보다 생활비가 적었습니다. 그리고 부임 10년 되던 해 1998년 IMF 당시 3억 정도의 예산으로 예배당 건축을 했습니다. 교우들께서 힘껏 헌금했고, 저는 10분의 1을 감당하기로 했습니다. 당시 3천만 원이면 아파트 한 채를 살 수 있었습니다. 그간 조금 모아두었던 것과 동생이 보내준 용돈까지 드렸고, 네 아이들의 돌 반지는 약정된 것과 무관하게 드렸습니다. 저희 부부가 건축할 때 몸으로 봉사한 것은 계산할 수 없습니다. 건축 이후에도 건축헌금을 드리느라 가정 경제는 힘이 들었습니다.
예배당 건축 기간 권사님 댁에서 1년간 더부살이를 했고, 교회 지하 공간에서 2년을 살았습니다. 사실 지하는 생활공간으로는 정말 위험한 곳입니다. 그래도 아무런 불평 없이 60평 아파트에서 산다며 만족했습니다. 이를 불쌍히 여기신 하나님께서 뜻밖에 사택을 지을 수 있는 헌금을 해주신 분이 계셨습니다. 저는 지금 사택을 최고급 별장으로 여기며 감사하면서 자족하며 살고 있습니다.
여러분이 경험한 자족의 삶에 대해서 말해줄 수 있겠습니까? 옛날 분들은 가난한 집에 시집와서 고생하면서 열심히 사시며 집안을 일으키셨습니다. 요즘 많은 것을 가졌으면서도 불만의 경험이 더 많습니다. 비록 힘들고 모자람이 있더라도 불평 대신 자족하는 삶 살아가시기를 바랍니다.
풍부에 처할 줄도 알아야 함을 권면했다
바울도 풍부할 때가 있었습니다. 풍족한 삶을 사는 것도 나쁘지 않습니다. 하지만 풍부할 때 하나님을 멀리하고 교만해지고 무절제한 삶을 살게 될 위험이 따릅니다. 갑자기 땅 부자가 되거나 복권 당첨이 되면 불행해질 확률이 높습니다. 풍부할 때 겸손해지고 절제의 미덕을 가져야 합니다.
우리 교회도 예배당을 건축한 이후부터 헌금 액수가 많아졌습니다. 믿음의 역량 커진 것이지요. 그래도 넉넉지 않던 시절과 다르지 않게 절제하므로 헌금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우리 교회 회계 집사님들은 교회 재정이 얼마나 건전하고 투명하게 관리되고 있는지를 잘 압니다. 신축한 교회들치고 빚이 없는 교회들이 없습니다. 예배당 지은 지 10년 20년이 넘었는데도 소중한 헌금이 이자 갚는데 날아가고 맙니다. 우리와 같은 시기에 지은 어떤 교회는 빚 감당을 못해 수 년을 버티다가 이단 교회에 팔렸습니다.
우리 교회는 빚을 내지 않는 원칙을 정한 것도 아닌데 그렇게 경영해 왔습니다. 우리 스스로에게는 절제하며 검소하게 살아온 덕에 선한 일들을 넉넉하게 할 수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교회가 헌금을 잘 사용하는 것을 귀하게 보시고 IMF 기간에 예배당을 건축하면서도 무사히 마쳤고, 코로나 3년 동안 한국교회 헌금이 반토막이 났지만 우리 교회는 더 많아졌습니다.
넉넉지 않은 중에도 헌금 생활을 성실하게 해주신 교우들이 계셔서입니다. 새가족이 되신 이장규 집사님, 장재원 장로님, 김미석 집사님의 헌신도 큰 힘이 되었습니다. 저의 자녀들도 힘을 보탰습니다. 네 명 자녀들도 직장생활 시작부터 지금까지 십일조를 보내주고 있습니다.
재정의 축복만 아니라 땅의 복도 주셨습니다. 제가 이사 올 때 지게로 짐을 날랐습니다. 길도 없고 부지도 좁았으나 지금은 최고의 전망을 가진 큰 땅을 얻게 되었습니다. 동네 중심에 330평 땅이 더 있습니다. 투기 목적은 산 것은 아니지만 10만 원을 주고 산 땅들의 가치도 작지 않습니다. 열두 번 땅을 매입할 때 김진두 장로님의 역할이 매우 컸습니다. 꽃 복을 주셔서 해마다 3-4차례씩 풍성한 꽃 잔치를 벌입니다.
도서관도 우리 교회 소중한 재산입니다. 초라한 마을문고로 시작했지만, 현재는 순천시 작은 도서관이 되어 책값만 해도 1억이 넘습니다. 프로그램비 운영비와 운영자 급료까지 18년 동안 매년 지원을 받고 있습니다. 아동센터도 2005년부터 지원을 받는데 지금은 1년 예산이 2억 정도 됩니다. 우리 마을과 교회 어린이들에게 혜택이 돌아가고 있습니다. 10여 년간 노인대학을 하면서 마을 어르신들을 위한 정부지원금도 적지 않습니다. 수련원과 게스트 하우스를 경영하면서 얻은 수익으로 반찬 나눔 사업을 했고, 작년 말까지 수련관 전기세를 감당했습니다. 교회에서 시작했던 노인복지센터도 권사님이 잘 경영하여 교회에까지 재정적 축복이 흘러들어오고 있습니다.
처음부터 지원을 바라보고 시작한 일들이 아니었습니다. 당연한 일로 여기고 했던 일인데, 우리 교회 하는 일마다 정부에서 법령을 만들어 지원해 주었습니다. 결과적으로 마을과 세상에 끼친 선한 영향력, 교회에 대한 이미지 개선은 계산할 수 없는 큰 가치를 발휘하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데살로니가교회에 편지할 때 탐심을 부린다는 오해에 대하여 하나님께서 아시겠지 하며 침묵하지 않고 적극적으로 변명합니다. 이는 복음 전파에 장애가 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 때문입니다. 저도 그런 마음에서 교회 말씀을 드리는 것입니다. 은퇴비에 대한 교회의 결정에 대하여 균형 있는 이해를 하는 데 도움이 되었으면 합니다.
결론
우리 교회는 재정적 축복을 넘치게 받았습니다. 주신 복을 절제하고 검소함을 놓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한국교회는 차츰 고령화되고 있고, 따라서 헌금도 줄어들 것입니다. 그때를 위해 절약하고 저축해 두는 지혜를 발휘해야 합니다. 사람의 뜻과 결심으로 안 됩니다. 바울도 자기 힘으로 하지 않고, 내게 능력 주시는 예수님 안에서 자족함과 절제의 비결을 배웠습니다. 우리도 예수님이 주시는 능력으로 목회자를 생각해 주며, 궁핍할 때 자족하고, 풍부할 때 절제할 줄 아는 그런 삶을 살아갈 수 있기를 바랍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