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백두대간 조침령~갈전곡봉~구룡령구간
남상오(바다)
진동삼거리~조침령(back)770m~쇠나드리~바람불이삼거리~1080봉~956봉~연가리샘터~1020봉~왕승골사거리~1107봉~갈전곡봉정상1204m~안부~121봉~구룡령1041m
(트랭글기준) 마루금 20.5km 08:22:25(휴식20:00) + 접속 1.9km 00:54:44(휴식09:35)
32.4km 09:17:19
2026년 3월1일
산과사람들산악회
3월1일, 산악회는 새벽 2시쯤 인제군 조침령터널앞 진동삼거리 마을에 도착하여 축문과 소지를 생략하고 약식 제사를 올렸다. 산행안전과 <산과 사람들산악회> 공동체의 단결 그리고 화합을 기원했다. 산신제 제관 역할을 한 현술이님이 절을 세번 시킨다. 산신을 신(神)으로 보고 삼배(三拜)로 예의를 갖추기 위한 것이다.
오늘 산행은 북에서 남으로 진행한다. 오른쪽은 인제군 기린면이, 왼쪽은 양양군 서면을 경계로 이어지는 조침령에서 홍천군 내면의 구룡령까지 간다. (점봉산1424m~)조침령~갈전곡봉1204m~구룡령1041m으로 이어지면서 영동과 영서를 가르는 분수령이 이 구간이다. 원시림이 잘 보존된 방태산, 삼봉산, 미천골 자연휴양림과 방동약수터, 삼봉약수터(천연기념물 530호)가 있는 그야말로 청정 오지 지역이다. 등산 측면에서도 조침-구룡구간은 중간에 탈출로가 없기 때문에 시작할 바에는 반드시 끝을 봐야하는 '퇴로없는' 길이다. 나는 이를 상기하며 본격적인 산행을 시작한다.
조침령 표지석은 두 개다. 하나는 2007년에 제작됐고, 백두대간의 위상에 어울릴 만큼 크고 웅장하다.(무게20톤, 높이 4m) 다른 하나는 200여미터 내려오면 3군단 공병여단이 1983년에 도로를 개설하고 그 해 설치한 것이다. 비록 작고 색이 바래보였지만 당대 변화를 가장 앞서 대표했던 백두대간 표지석의 이름으로 만들어졌고 2000년대 걷기 열풍을 이끌어낸 표지석이다. 무엇보다 징집된 국군장병들이 땀흘려 길을 내고 세운 고마운 비석이다. 우리 후대에도 잘 보존되어지길 기대해 본다.
아프리카 돼지열병 차단을 위해 설치된 철조망 문 안으로 들어가 대간길을 잇는다. 칠흑같은 밤길을 헤드랜턴에 의지해 앞으로~ 앞으로~~ 간다. 하늘은 먹구름이 가득하다. 공기는 영하 3~5도 정도로 차다. 예보와 달리 작은 눈발이 계속 흩날려서 우리를 긴장시킨다. 그래도 바람이 없는게 다행한 일이다. 날씨가 화나지 않기를 산신께 빌었다.
낮은 오르막과 내리막이 반복되는 과정에서 까만 화강암으로 산을 좋아하는 먼저 간 지인의 흔적을 기억하기 위한, 그리 크지않은 표석이 발길에 스쳐 잠시 멈춰 섰다 이동한다. 백두대간 길을 '억수로 좋아하는' 회원이 불의의 사고로 먼저 갔지만 안타까운 심정에 고귀한 애정을 이 돌에 적어 죽은이에 대한 산자들의 기억하고 싶은 연대감과 동질감을 담고 있었다.
산길은 물길 속의 '세상고요'처럼 적막하기만 하다. 오직 !! 적막강산. 조침령은 산세가 높고 험하여 새가 하루에 넘지 못하고 잠을 자고 넘었다는 지명유래에서 이름을 얻었다고 한다. 나르는 것 뿐만 아니라 네 발 달린 짐승과 땅속 미물도, 나무도 잠든 새와 함께 구름을 이불삼아 곤한 잠에 든다. 오직 세상고요를 깨는 것은 발걸음소리와 인공불빛을 앞뒤로 흔들어대는 인간들 뿐이다. 혼을 내지 않는 새와 만물의 아량이 넓고도 크다.
등산을 시작하고 소와 관련된 지명 두 개가 있다는 것을 확인했다. 출발하여 3.3km 지점이 쇠나드리삼거리고개이다. 옛날부터 인제군 기린면 평지(平地)는 소 키우기가 좋고, 여름 한 철 방목(放牧)이 활발해 쇠나드리라고 불렸다가 지명이 됐다는 것이다. 사람이 여가를 즐기는 것이 나드리인데, 사람이 아니라 소가 산과 들로 장소를 자유롭게 돌아다니게 하는걸 '소의 나드리'로 부른 것은 대단히 신선하고 인간미가 느껴지는 표현이다. 또한 일하는 소를 인격대우하여 불려 준 것은 소를 사람과 동일체로 바라본 것과 같다. 가축의 의미보다는 한걸음 더나아가 한울타리 안의 식구개념으로 이해했기 때문에 만들어진 것이 아닐까 짐작하게 된다. 또 하나는 출발 5키로 지점에 바람부리삼거리가 있다. 바람부리(바람불이)는 바람이 심하게 불어 소가 다 날아갔다 해서 부르는 지명이다.
700m대 고지에서 900~1000고지로 올라치는게 1080봉과 경진봉(956m)이고 연가리골 샘터 표지판에서 한숨 돌리게 된다. 샘터는 여기서 100여미터 떨어져 있다. 물을 보충할 수 있어서 좋고, 젊은 백백커들이 많이 찾아 인기가 높은 곳이다. 연가리골은 정감록에 나오는 피장처(避場處)이자 백두대간과 연결된 등산계곡이 바로 이곳이다. 가리는 계곡안에 자리잡은 작은 땅을 말한다. 소 한마리가 하루에 갈 수 있는 단위인 '갈이'에서 붙여진 이름이다.
비지땀 소금땀 흘리며 샘터부터 1020봉까지 묵직하게 치고올랐다. 전체거리의 절반을 넘은 약13km 정도 오니 배도 고프고 힘도 들었다. 지금까지 선두와 후미의 간격조절을 위해 잠시잠시 두세 번 멈춘 것 빼고는 쉬지않고 걸었다. 나는 점점 에너지가 말라가고 있었다. 오늘의 일출은 07:00(네이버날씨), 아직도 해가 뜨려면 1시간 30분이나 남았다. 여러 사람 심정을 담아 하00님이 브레이크를 요청했다. "간지대장, 아침식사하고 가요~"
나는 미리 잼을 바르고 8개로 소분한 식빵 1개와 양배추, 당근, 계란으로 부쳐 온 작은 동그랑땡 3개, 조각 낸 사과반개와 작은 양의 땅콩버터를 일행과 같이 먹었고, 동료가 준 것을 받아 먹기도 했다. 물은 두 종류, 하나는 레몬과 양배추, 당근과 소금을 소량 넣은 전해질 500ml, 다른 하나는 분말포카리스웨트 봉지 절반을 넣어 만든 물 500ml이다. 종일 먹은 물은 1.2L 정도였다.
계절마다 산이 내어주는 등산의 맛을 저마다 정의하곤 한다. 가령 ‘봄산은 안아주고 싶어 간다. 여름산은 울창한 숲의 바람과 그늘이 선량해서 가고, 가을산은 중년의 아름다움을 축복함으로써 머지않은 나의 중연을 위로하러 간다. 겨울산은 눈길에 막 들어선 자에게 여긴 왜 왔냐고 무서운 할배처럼 흰 수염 날리며 호통치신다. 아무래도 겨울산은 저 시퍼런 호통에 개기는 맛이다’.(한상우)
한겨울 눈길과 맞짱뜨는 26명의 대간꾼들은 등산 중후반부터 마지막까지 눈과 눈덮힌 빙판길을 내달렸다. 이럴 때는 맨 앞에서 길을 내는 사람이 가장 힘들다. 러셀(russel)-눈 헤쳐나가기, 눈길 뚫기를 혼자가 버거우면 조(組)를 짜서 서로 교대하며 개척해 나간다. 나는 이날도 앞사람의 발자국을 신으며 올랐다. 길이 안보이면 발자국을 찾았고 길을 벗어날 때 제자리로 돌아오게 해주는 것도 앞사람이 놓고 간 흰 발자국이었다. 내 뒤를 걸어오는 사람에게도 그럴 것이라고 생각해 보면 이래저래 고마운 존재가 앞사람의 발자국인 셈이다.
오늘의 난코스는 연가리샘터에서 올라온 1020봉부터 왕승골사거리 지나 1107봉과 갈전곡봉 1204m 정상까지 약 5~6km대, 3시간짜리 구간이었다. 길은 가도가도 끝이 없고, 깊은 겨울의 능선은 눈과 얼음으로 덮혀 있어 곳곳이 위험천만하다. 구름과 하늘과 공기는 영하로 무장하여 인간의 피부와 숨통을 압박했다. 하지만 출발부터 전체거리 23km의 중간을 이미 지나면서부터 어둠은 서서히 걷히고 시야가 열리면서 몸도 풀리고 발이 길에 붙기 시작했다. 몸을 길에 갈아서 산을 오르니 겨울 산맥은 한발한발 낮게 파고드는 인간의 몸을 허락해 주었다. 몸은 발과 호흡으로 나아가자 이윽고 몸속으로 흘러들어오는 웅장한 1천미터대 산맥의 은빛 풍경이 스며들기 시작한다. 정상에 가까울수록 느끼는 감정도 크고 강렬했다.
온 힘을 쏟아 당도한 갈전곡봉1024m은 차가운 바람과 자욱한 안개가 이미 와있었다. 바람은 칼날같은 능선 몇 개를 거치는 동안 오르면서 비축해 온 파워와 내려오는 속도에 가속이 붙어 그 강도가 한층 강했다. 밤새 지표면적이 차가워지면서 출발지점부터 도상거리로 약 15~16키로미터 거리를 달려온 공기중 일부 수증기가 응결해 만들어진 짙은 안개도 숲과 봉우리 전체를 꽉 채웠다. 일행은 바람과 안개 밀도가 팽창한 정상 한복판의 금속표지판을 배경으로 인증샷을 찍는다. 나도 이번 백두대간 산행을 결심하며 나름 의미를 담고 싶어서 손으로 들고 찍을 수 있는 작은 현수막을 3만원을 주고 제작했다.
"누우면 죽고 걸어야 산다“
"공부는 하는 척 할 수 있어도 등산은 타는 척 할 수 없다“
앞의 것은 시중에 떠다니는 글을 옮겼고, 뒤의 것은 내가 만들었다. 부끄러운 일이지만 옛날을 돌아봐도 공부는 하는 척이 절반쯤은 된다고 본다. 그런데 산은 그렇지 않다. 가끔 산에서 부모따라 오는 청소년들을 본다. "공부가 쉽니, 등산이 쉽니?" 물으면 십중팔구는 "등산이 힘들다"고 말한다. 왜냐하면 등산은 하는 척 할 수 없어서 그렇다고 한다. 나는 이번 등산의 목적을 조금 높게 잡았다. 북한을 제외한 백두대간 종주거리 733km 완주 횟수를 보통 50번 전후로 끊어 잡는데 이걸 <산과 사람들산악회>는 31번에 '제대루' 마친단다. 하는척 할 수 없는 등산 본연의 모습이 어떻게 바뀌는지 내가 나를 증명해야 하는 숙제를 안게 됐다. 지금부터 하나씩 풀어가려고 한다.
못다한 이야기 (P.S)
하나, 갈전곡봉~구룡령
정상인 갈전곡봉에서 치밭골령을 지나 구룡령옛길 정상, 구룡령 정상석이 있는 날머리까지 5키로미터 정도 걸어야 하고, 1100미터대 고봉 4개를 지나는 험지다. 끝까지 안심할 수 없는 구간이다.
둘, 중요한 것은 꺽이지 않는 마음
이번 산악회와 처음으로 23km 완주를 앞두고 등산 후반에 오는 거친 호흡과 풀린 다리가 발생하면 어쩌나, B팀 운영도 없는데... 하며 걱정을 했다. 이전에는 힘들면 잠시 쉬면서 회복후 올라가거나 쉬윔쉬엄하는게 보통이었다. 이번 대간종주를 앞두고 이 문제를 점검하기 위해 혼산으로 인천종주길 33키로를 걷는동안 호흡이 거칠은 상태에서도 계속 올라갈 수 있는 나만의 호흡이 우연하게 만들어지고, 다리가 안풀리도록 약간씩 쉬면서 걷는 뻗치기 방법으로 예상시간도 앞당기고 완주까지 했다. 이 때의 경험을 살려서 이번 대간길 완주를 할 수 있었다. 이번 조침~구룡령 등산은 지금까지 걷다 힘들면 쉬었다 걷는게 아니라 걸어서 목적지까지 제시간에 완주하는 등산태도로 전환해야 하는 숙제를 받아 안았다. 실전적인 방법을 조금씩 익혀가고 있으니 그에 필요한 배낭관리, 음식물간소화, 운동과학 접목 등 하나씩 배워나가야겠다. 중요한 것은 꺽기지 않는 마음가짐이라고 하지 않는가 !
셋, 산행마다 배워가기-발자국으로 도움주는 사람이 되자
앞사람이 남긴 눈발자국은 고마운 발자국이다. 오늘 내가 이탈하지 않고 잘 가도록 도움을 받았다. 나도 정신차려서 내 발자국을 밟고 오는 뒷사람에게 도움이 되는 사람이 되어야겠다.
넷, 삼재불입지처
조선 비결서 정감록에 나오는 피장처(避場處), 삼재불입지처(三災不入之處)로 전쟁, 가뭄, 홍수같은 재난이 들어오지 않는 장소로 3둔4가리라 하여 일곱곳을 꼽았는데, 3둔은 홍천군 내면에 월둔 귀둔 살둔이 있다. 4가리는 인제군 기린면에 아침가리 적가리 명지가리 그리고 연가리가 있다. 이중 연가리가 백두대간과 연결된 등산계곡이다. 둔은 농사짓기 좋은 펑퍼짐한 산기슭이란 의미이다.
다섯, 정상만이 목표가 아니다. 작은 성취에도 스스로를 칭찬하고 즐겼는가? 무슨 얘기인지는 알겠지만...
산을 오를 수 있어서 감사해야 한다고 말한다. 걸을 수 있다는 것은 그 자체로 축복받은 것이기 때문이다. 바람부리에서 3km정도 급상승해서 올라섰을 때나 연가리샘터에서 시작하여 4~5개 고봉을 지나 갈전곡봉 정상에 올랐을 때 그리고 수시로 발생하는 힘든 구간을 통과할 때 나 자신에게 칭찬을 하였는가, 스스로 대견하다고? 솔직히 이론으로만 알고있지 등산 실행과정에서는 해 본 적이 없다. 힘들다고 낙담하거나 체력을 탓한다. 나를 칭찬하는 것은 최근들어서 진정없이 시늉을 내는 정도다. 앞으로는 어려운 구간을 지나서도 전망대에 도착해서도 스스로를 축하주고 자신의 용기에 박수를 보내주자.
|
|

첫댓글 대단한 바다님~큰일하셨네요.
백두대간 산행하고싶네요.
원정산악 잘다녀온걸 축하해
그리고 충주산행 내명단이 빠졌다 다시올려~
@바다(남상오) 좌석배정했습니다.
대단합니다.. 좋은글도 잘 봤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