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리허에
노래는 곡도 좋아야 하겠지만, 그에 앞서 가사가 좋아야 한다.
동양의 가장 오래된 시집인 시경의 서문에, “말로써 그 느낌을 다 담을 수 없어서 감탄하는 시[歌詞]를 읊고, 감탄해도 다할 수 없어서 노래가 생겼고, 노래를 불러도 부족하여 춤이 생겨났다.”고 한 것은, 가사가 노래에서 얼마나 큰 무게를 가지는지를 강하게 말해 주고 있다.
그러므로 노래의 맛을 옳게 맛보기 위해서는 가사를 잘 이해할 필요가 있다. <메기의 추억>에 나오는 메기를, 물고기 메기로 잘못 알고 쓴 글을 읽은 적이 있다. <낙양성 십리허에>라는 구절의 십리허가, 십리하十里下의 잘못이라고 우기는 사람도 있다. <번지 없는 주막>의 한 구절, ‘능수버들 태질하는 창가에 기대어’의 태질이 체질이라 말하는 이도 있다.
십리허의 허는 한자 허許로서, ‘~쯤’을 뜻하는 글자이다. 그러므로 십리허는 십리쯤이란 뜻이다. 태질은 농작물에 날아드는 새 등을 쫓기 위해서 짚으로 길게 땋은 끈을 빙빙 돌려서 내리치는 것을 가리키는데, 이때 나는 소리에 놀라서 새들이 날아가게 된다. 능수버들이 바람에 휘날리면서 유리창을 때리는 것을 태질에 비유한 것이다.
그러므로 노랫말을 쓰는 이도 좋은 말을 잘 가려서 써야겠고, 듣는 이도 옳게 이해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하겠다.
방방곡곡
방방곡곡을 방방곡곡方方谷谷으로 쓰기 쉽다. 방방곡곡坊坊曲曲으로 써야 한다. 방坊도 곡曲도 전부 마을이라는 뜻이다. ‘마을이면 마을마다, 곳곳이 전부 다’의 뜻이다.
방방곡곡 보다는 좀 작지만 그와 비슷한 뜻을 가진 말에 골목골목, 고샅고샅이 있다. 골목은 골짜기의 준말인 ‘골’과 중요한 통로를 뜻하는 ‘목’이 합해진 말이다. 목은 길목, 아랫목, 윗목 등에서도 볼 수 있다. 고샅은 ‘골’과 ‘샅’이 합해진 말인데 ㄹ이 탈락되었다. 샅은 두 허벅다리가 모아진 어름을 가리키는데, 낮춤말은 사타구니다. 그래서 고샅은 골목 사이의 좁은 길이다.
그런데 골목골목, 고샅고샅을 떠들썩하게 하던 어린이들이 언제부터인가 그곳에서 사라졌다. 아이들이 쉴 틈 없이 학원으로 내몰리기 때문이다. 골목과 고샅은 이제 주인을 잃었다. 꿈 많은 어린 시절을 상징하던 골목대장이란 말도 점차 사라지고 있다.
지새다
‘지새다’는 ‘달이 지면서 밤이 새다’라는 뜻을 지닌 자동사이고, ‘지새우다’는 ‘고스란히 밤을 새우다’라는 뜻을 지닌 타동사이다.
‘지새우다’는, “뜬눈으로 밤을 지새운다.”와 같이 쓴다. 반면에 ‘지새다’는 ‘달이 지면서 밤이 새다’의 뜻이기 때문에, 밤샘과는 아무런 관련이 없다. 덧붙이면, ‘지새다’는 밤이 주체이고, ‘지새우다’는 사람이 주체이다.
그러므로 ‘결전의 기대감으로 지새는 밤’, ‘칠흑 같은 밤을 나 혼자 지새는 밤’, ‘온 밤을 자지 않고 지새는 열의’, ‘하룻밤을 온통 하얗게 지새면서’와 같은 표현은 잘못된 것이다. ‘지새다’를 ‘지새우다’란 말과 혼동하여 그런 표현을 한 것이다. 달이 지면서 밤이 새는 것이 지새는 것인데, 달도 없는 칠흑 같은 밤을 어떻게 혼자서 지샐 수 있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