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눅
6:46-49
설교: 그리스도를 뒤따름이란?
날이갈수록 현대인들에게 많은 문제점들이 있다고 하는군요 .
첫째는, 현대인들이 공부를 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정보를 찾아내는 기술은 발달했지만,
자신의 공부를 위한 탐구력은 저하되었다고 합니다. 둘째는, 현대인들에게는 그들이 알고 있는 바를 행동으로 옮기는 실천력이
현저하게 떨어진다고 합니다. 원리는 분명히 알고 있지만 생각만 하지 실천으로 옮기지 않는다는 것이지요.
마지막으로 현대인들에게 옳고 그름을 가르쳐 주는 교육이 전무하다는 것입니다. 학교에서
선과 악을 구분할 수 있는 지침을 가르치는 교육자를 찾아보기 힘들다는 군요.
설교자는 이러한 결과를 접해보면서 이것은 오늘날 그리스도인들이 가지고 있는 문제점들과 상당히 유사하다는 생각을 해 보았습니다.
첫째, 오늘날 그리스도인들은 성경을 알고자하는, 성경의 진리를 파악하고하는 노력을
하지 않습니다. 성경의 진리에 배고파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둘째, 현대 그리스도인들에게는 (성경말씀을 통해) 알고 있는 바를 행동으로 옮기는 실천력이 현저히 떨어집니다. 셋째, 오늘날 교회도 마찬가지 입니다. 틀린 길에 대해 교인들을 지적해주는 교회, 목회자를 찾아보기 힘듭니다. 그 대신, 달콤한 이야기를
전해주어야 하고, 달래 주고, 칭찬해 주고, 잘못에 대해 알고도 모른척 해주어야 하고 그래야 교인들이 교회에 머문다고 하지 않습니까?
이러한 내용들을 종합해서 여러분들에게 다음과 같은 문제제기를 해보고 싶습니다. (일반적인 삶이나
신앙에 관련해서) 여러분들의 실천력은 어느정도라고 생각하십니까? 이른바
성경이 요구하는 바를 행동으로 옮길 수 있는 실천력이 얼마나 되십니까?
실천에 따른 결단력과 그 실천을 유지시키는 지속력은 또한 어느 정도라고 생각하십니까? 이러한 배경속에서 오늘 본문말씀을 함께 묵상해 봅시다.
오늘 본문의 내용은 (신학적으로) 예수님의 평지설교로
정의됩니다. 6장 초반부에서 부터 예수님의 설교를 듣는 여러 대상들에 대해 설명이 되어있습니다.
사도들, 제자들 그리고 예수님의 기적을 경험한 자들 등등, 여하튼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예수의 평지설교를 듣기 위해 예수님 주변에 모여있었습니다. 이들의
공통점은 모두가 계속해서 그리스도를 따르려하는 사람들이라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의 말씀을 통해 우리는 예수를
따르려 하는 사람들에게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를 배울 수 있게 됩니다.
1. 언제나 예수를 내 눈 앞에, 예수가 있는 곳을 향해 찾아 나아가라.
그리고 그 노력을 지속해 나아가라!
그렇다면 현실적으로 우리가 예수를 찾는, 예수가 있는 곳을 찾는 노력이란 무엇을 뜻하겠습니까?
설교자는 아주 분명하게 말할 수 있습니다. 첫째는, 성경을 가까이 하라는 것입니다. 성경을 가까이하고, 정기적으로
읽어야 합니다. 둘째는, 정기적으로 예배당에 나아가라는 것입니다.
이것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습니다. 사회학자들의 연구에 의하면, 그리스도인이 교회에 나아가는 것을 3개월 이상 멈추게 되면 자신이 예수에 속하는 사람이라는 그리스도인으로서의 정체성이 흐려지게 되고 결국은 불신자들과 별 다르지 않게
된다고 합니다. 교회생활 또한 지속력을 지녀야 하는 것입니다.
2. (이러한 바탕위에서) 예수의 말을 경청해서 들으라! (따라서) 교회는 예수에 관해 듣게하는 공동체가 되어야만 한다.
오늘 본문 6장 27절에서 예수는 „너희 듣는 자에게....“ 라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즉
<너희 듣는 자>라는 표현은 <너희들에게 가장 필요한 전제조건은 먼저, (예수의 말씀을) 들으라!> 라는 것을 의미합니다. 흔히 우리는 예배를
보러간다고 말하기 쉬운데, 사실은 우리는 예배에 그리스도를 들으러 간다고 말해야 옳을 것입니다.
복음서에서 예수님이 자주 하신 코멘타가 „너희 귀있는 자들은 들을 지어다“ 입니다. 예수님께서 인간인 내가 두 개의 귀를 가지고 있는 것을 몰라서 그런 말씀을 하셨을까요?
그 귀는 단지 육체적인 귀만을 뜻하는 것일까요?
예수께서 말씀하시는 귀는 바로 <영혼의 귀>로서 이해해야 합니다. 설교자는 자주 이것을 <제3의 귀>로 불렀습니다. 그렇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우리의 내면의 귀가 열려서 주님의 말씀을 마음에 담고 영혼판에
새기는 사람들이 되어야만 합니다.
사도바울은 <믿음은 들음에서 난다>고 말했습니다. (로마서 10:17) 믿음이란 영혼의
열린 귀로 예수님의 말씀을 들어야 자리잡고 자라게 되어있습니다.
다시 사도바울은 질문합니다. <무엇을 듣는가?>
그 답은 <예수그리스도의 말씀>입니다.
로마서 10장 17절에서 사도바울은 „전파하는 자 없이 어찌 듣겠는가?“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여러분! 말씀을 전파하는 사람이 없는데 어떻게 예수에 관해서 들을 수 있겠습니까? 제가 여러분에 간절히 바라는 것은, 교회에 나오는 첫번째 이유를 <나를 향해 말씀해 오시는 예수를 듣기 위해서> 라고 자신있게 말할 수 있는 여러분들이
되는 것입니다. 아무리 바빠도 정기적으로 교회에 나아가야 합니다. 그리고
진지하게 말씀을 듣고 가슴에 새겨야 합니다. 한 여름 오랜 목마름의 끝에 시원한 생수를 정신없이 들이키는
사람처럼 그렇게 주의 말씀을 들었다고 전해지는 어거스틴의 어머니처럼, 마리아와 마르다의 집을 방문하신 예수님 발 앞에서 자리를 뜰
줄 모르고 그 말씀을 들었던 마르다처럼 우리는 그렇게 말씀을 받아들여야 하지 않겠습니까?
3. 들은 것을 실천하라! (행동력과 실천력을 잃지 말아라!)
오늘 본문에서 주님께서 „말씀을 듣고 행하는 자가 되어라!“라고 말씀하시지 않습니까? 우리는 내일이 아닌 지금 바로 오늘, 들은 것을 행동하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그리고 그것을 내일로 계속 이어가야 합니다.
„행동하라!“ 예수께서 오늘 여러분에게 강력하게 말씀하고 계십니다.
성도여러분! 단 한구절의 말씀이라도 그것을 주님의 말씀으로 들었다면,
지금 행동으로 옮기세요. 듣고도 행하지 않는 타입의 그리스도인이 되어서는 않됩니다.
이는 집이되 곧 부서질 집이고, 나무처럼 보이나 자세히 들여다보면 열매 없는 나무와 같습니다. 충실히 열매를 맺는 나무처럼,
견고하게 서있는 집 처럼, 듣고 행동하는 그리스도인이 되어야 겠지요.
우리가 DM Markt 같은 곳에서 치약을 하나 사려고 할 때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는 상표가 <콜게이트>입니다. 언젠가 콜게이트 치약의 성공담을
읽은 적이 있습니다. 콜게이트라는 젊은이가 배를 타고 뉴욕 맨하튼을 향해 가고 있었습니다. 배에서 만난 한 노인이 젊은 콜게이트에게 맨하튼에 가는 이유를 물었습니다. 이에 콜게이트는
자신의 미래와 꿈을 위해 그곳에 간다고 대답했습니다. 이후 그 노인은 다음과 같이 말했다고 합니다.
„젊은이, 그곳에 가서 무엇을 하든지 간에 다음 세가지는 꼭 잊지말고 지키도록 하게.
첫째는 주일을 꼭 지키도록 하게. 그리고 그곳 (예배당)에 가거든 목사님 말씀중에 자네에게 향하는 말씀을 꼭 가슴에 담도록 하게.
마지막으로 어떠한 상황이든지 십일조를 하도록 하게“
이 이야기를 통해 여러분에게 말씀드리고 싶은 것은, 결국은 어떤 길이든지 그것이 하나님이 내게 주신 길이라 생각되면
(믿으면) 그것을 꾸준히 실천으로 옮기는 사람이 되라는 것입니다. 그런 자에게 우리 하나님은 언제나 대답 주시는 분임을 믿습니다.
오늘 전해드린 <예수의 뒤를 따르는 사람이 되기 위한 3가지>를 모두 잊지마시고 그리고 이것이 여러분 삶을 비추는 큰 등불이 되기를 바랍니다.
첫댓글 감사합니다...집사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