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러 웹사이트에 강소성 양주 고민사에 대한 역사적 해설을 보면 고려라는 문구에 집중한 나머지 고구려와 수나라 양제 양광의 릉(실제 가짜릉)이 있다는 사실만으로 마치 이 절사가 고구려가 수나라 영역을 차지하고 세운 절이 아닌가 해석을 해놓습니다.고구려가 강소성 숙천과 고우에서 당태종 이세민을 사지로 몰았다는 전설이 현지 주민사이에서 내려오고 있음은 사실일것 입니다.중국의 설명을 보면 실제 수양제의 릉도 이미 없어진 상황인 청조시기에 이지역에서 릉을 발굴해서 다시 축조했다는 이야기는 억지스럽습니다.
중국문물해설국의 설명인데 출처에서 인용한후 고민사를 설명한 사이트는 이미 폐쇄되었으니 이는 무엇을 말함인가?
【高旻寺】
國家重点保護寺院。位于楊州市南郊古運河與儀揚交淮處的三儀河口。
楊州八大古刹之一。始建于隋代,相傳廟僧多精通醫道,治愈高麗太子之病,
高麗國王贈以金銀擴建寺院。寺建成時,取高麗國的高字和多的字,定名爲高寺。
寺內原有大殿、御碑亭、金佛殿、天中塔、御碑寺、藏經樓諸建筑。
고민사(高旻寺)는 국가 중점 보호 사찰이다. 양주시 남쪽 옛 운하와 의양이 서로 돌아
드는 3개의 하천이 교차하는 하구에 있다. 양주의 8대 고찰중의 하나이다.
수나라 시기에 처음 건축이 되었는데, 전하는 바에 의하면 이 곳에 의술(醫術)에 정통한
승려의 사당이 있었는데 고구려의 태자가 병을 치유하기 위하여 고구려의 왕이 금과은 등
재물을 기증해 사원을 확장하여 세웠다. 절을 건립할 때에는 고구려국의 높을 고(高)자와
많은 글자들을 취하여 고민사(高旻寺)라 이름을 지었다.
절 내에는 대전이 있고 (대웅보전), 어비정(御碑亭), 금불전(金佛殿), 천중탑(天中塔),
어비사(御碑寺), 장경루(藏經樓) 등의 여러 건축물이 있다. (이하 후략)
출처 http://blog.naver.com/PostView.nhn?blogId=lsb8666&logNo=10019582946
중국의 문물국의 해설이 이런 오해를 낳게 하는데 隋나라 연원이라는 문구에 그만 수나라와 고구려와의 전쟁지역으로 고구려가 세운절이라고 생각하게 된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이절은 양주에 분명히 고려의 南京이 있었으며 고려의 왕이 거둥했던 기록이 고려사에 온전히 남아있으니 삼국시기에 하북에 살았던 고구려 태자가 수나라 지역에 여행을 하다가 병을 얻을리도 없는 시대적 정황으로 보면 고려시대로 보아야함이 옳고 고민사의 소개글에 "고려의 태자가 병을 얻어 고치려 이절에 묵었기에 고려국왕이 금과은을 하사하여 절을 확장시켰다".따라서 고려왕조 중심부와 이지역은 서로 통교가 되는 지역으로 보아야하며 고려국의 고자을 따서 高寺라고 하였다로 해설되어야 할것이다.
운영자가 온라인에서 찾은 현재의 高旻寺와 그 풍경이다.
고민사 대웅전.
고민사 경내 9층 목조탑.
고민사 주변 운하.
사진출처 : by Zhangminli PANORAMIO (Google).
심제 글.
첫댓글 ㅎㅎㅎ 양주 고민사에 대한 최초의 글을 올린 사람은 바로 접니다
위에 해석한 것도 제가 10년 전에 한 것이구요
수고하셨습니다^^
별말씀을요 근데 최초의 글을 올린 출처는 전부 지워져 있으니...고려시대라고 보아야 할겁니다.
재미있는 것은 양주에는 최치원기념사료관도 있습니다
주변에는 청자의 주 생산지역도 있습니다
암튼 양주는 묘한 지역입니다^^
최치원이 양주에서 당나라 관리노릇을 한것이 당나라에서가 아니라 신라에서 한것으로 보아야하겟지요. 바로 신라땅에서...
잘 보고 모셔도 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