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광은 이번주 내내 비가 내리고 있었습니다.
윗지방은 눈이 온다고 난리인데, 여긴 비가 너무 많이와서 논에 물이 안빠진다고 걱정들이십니다.
이제는 그칠법도 한데.. 언제쯤 그칠지.. 내일은 그치겠지요?
이번주는 정월대보름을 맞이하는 주입니다.
마을에서는 정월대보름을 시작으로 한 해의 농사 풍요를 기원하는 기원제를 지내기도 합니다.
제가 살고 있는 운암마을에서도 이번주 토요일엔 정월대보름 기원제를 준비하고 있습니다.
오늘 이동장터는 정월대보름을 맞이한 판매를 기대하며 준비해봅니다.
9시 20분,
오늘도 일자리 참여하는 어르신들이 쉼터에 앉아계십니다. 마주한 어르신들 필요한 물건 사주시고 집에 갖다놔달라 부탁하십니다.
"토방에 암대나 놔둬"
한 어르신은 자신의 딸이 갖고 왔다며 신상 쫀디기를 보여주십니다.
"기존에 갖고 다니던건 한 번 뜯으면 다 먹었어야하는데, 이건 안에 낱개 포장되어있어서 좋아~"
어르신들이 좋아하시는 간식 정보, 다음주 장볼 때 있나 살펴봐야겠습니다.
9시 30분,
어르신 두분이 멀리서 오십니다.
"비피더스 줘~"
두 어르신 모두 다 달라하시길래 혹시나 싶었더니 변비로 고생을 하신다고 합니다. 병원가기는 그렇고, 유산균을 먹어서 해결해보려고 하신다고 합니다.
"앞으로 좀 갖고 다녀줘~ 자주 살께~"
10시,
"저기 언니 두부 산다더니 왜 안내려온대~"
어르신께서 화장지, 계란, 콩나물을 사시며 이웃집 어르신을 향해 소리칩니다
"어이!!!!!!"
멀리서 주춤 하며 나오시는 어르신. 덕분에 두부 샀다고 고맙다고 하십니다.
집에서 커피 한 잔 하고 가자고 하십니다. 아마도.. 자식 자랑 하고 싶나보다 싶습니다.
10시 45분,
이젠 이곳에 있는 마을은 대부분 주간보호센터를 가신 어르신들이라, 어르신들 만나기가 쉽지 않습니다.
그럼에도 누군가는 사실 일이 있으시다는 생각으로 기다려보니 뒤에서 어르신 한 분이 오십니다.
처음보는 어르신인데, 성함을 여쭈니 어머님 성함으로 이야기를 하시는 것 같았습니다. 보름 맞아 집에 내려왔나 싶습니다.
11시 10분,
"내가 말이여, 그 전에는 사람이 오는게 좋아서 신청했건만, 그 사람이 와서 아무것도 안하더라고, 그러더니 그 사람이 나더라 하는 말이 자기네 센터에 가자고 하네. 나는 돈내면서 그런 일은 받을 수 없다고 했네."
노인 맞춤 돌봄서비스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어딜 가나 노인맞춤돌봄활동사가 있는데, 이 사업은 어르신의 잔존능력을 유지 강화하는 사업이다보니 집을 온다해도 다른 서비스를 제공하지 않습니다. 그러다보니 어르신들은 되려 이분들을 손님맞이 한다 생각을 하시게 되곤 합니다.
"동네에 사람이 없어 나도 가긴 해야하는데, 내가 아직 밥도 할 수 있고 청소년도 할 수 있기 때문에 돈내고선 그런 서비스를 받지는 못하겠네." 하십니다. 충분히 고민하시고 진행하시라고 말씀드렸습니다.
11시 20분,
늘 사람이 없던 마을에 오늘은 한 어르신이 우산을 쓰고 걷고 계십니다.
무슨일인가 싶었는데,
"내가 인공관절 수술을 해서 운동을 해야해갖고 이래 걷고 있네" 하십니다.
일전에 윗 집 조합원 어르신께 여기 어르신 안부를 여쭸을 때 수술하러 서울 올라갔다 하셨는데, 그 수술이 인공관절 수술이었나봅니다.
"좀 더 젊었을 때 양쪽 다 했었어야했어. 지금은 아주 죽겠네 죽겠어." 하십니다.
그러곤 어르신은 콩나물과 계란을 사시더니
"이것도 양이 많은데... 혼자 있어서 이것도 다 먹기 힘들어. 그래도 어쩌겠어.. 약먹으려면 남아도 먹긴 해야지.." 하십니다.
홀로 있는 집에서 홀로 먹는 식사를 오랫동안 한 어르신의 마음은 어떠실지...
11시 35분,
한 곳에서 한참 기다리고 있다 사람이 오지 않아 움직이니 어르신께서 멀리서 오고 계셨습니다.
점빵차가 오시는 것보고는 바로 다시 돌아가십니다. 점빵차 생각해서 점점 빨리 걷는 어르신. 혹여나 넘어지실까 거리 두며 조심히 갑니다.
어르신께선 집 앞 골목에서 필요한 물건 사시곤 들어가시려다가 한 번 더 여쭤보십니다.
"가스는 있는교?"
한 줄 드리려고 하였지만, 어르신께서는 가진돈이 부족하셨는지 낱개로 파는지 여쭤보셨습니다.
고민하던 찰나,
"후참에 삽시다. 지금 돈도 없는교." 하며 빈웃음을 하시며 가십니다.
11시 50분
어르신 댁을 방문하니 집안에서 혈압 재고 계시는 두 어르신.
집안에 갈 때마다 늘 반갑게 맞아주십니다.
"커피 한 잔 해요" 하시는 어르신,
하지만, 오늘은 벌써 믹스커피를 6잔이나 마셨기에, 더 이상 마시기가 어려웠습니다.
어르신은 내심 아쉬워하지만, 그래도 들어와줘서 고맙다고 하십니다.
감기 조심하라는 말씀을 드리며 나오려던 찰나,
옆에 어르신께서 그러십니다.
"나는 요? 감기 걸리뿌까?" 하십니다.
웃으라고 하시는 말씀이셨다며, 어르신께서 주문하신 콩나물 하나 드리며,
"어르신은 콩나물 국 끓여드시고, 감기 예방 하시길 바랄께요~" 하고 나섰습니다.
13시 20분,
보통 회관에서 마주할 어르신인데, 소리 듣고 오셨다고 합니다.
"지난번에 산 박스라면 하나 주쇼. 하나 갖곤 먹을 것도 없더만, 두개 주쇼" 하십니다.
육개장 컵라면을 말씀하신것이었습니다. 어르신께 컵라면이 하나 밖에 없다 말씀드리니, 그럼 봉지라면 두개 주쇼! 하십니다.
조금 더 넉넉하게 갖고 다녀야겠습니다.
13시 40분,
이름에 '공' 이라는 글씨가 들어가신 어르신이 계셨습니다. 이곳에서도, 다른 마을에서도 계셔서 여쭤보니 두분이 자매라고 하셨습니다.
그러면서 하나 더 가르쳐주십니다.
"옛날에 윤달에 자녀가 태어나면 이름에 '공' 이라는것을 넣었어. 그래서 공 이라는 이름이 종종 있어." 하십니다.
옛날 어르신들의 이름 짓기는 의미가 있으면서도 단순하게 지었음을 알게 됩니다.
14시 20분,
비가 그치지 않습니다. 배달갔다가 나가는길, 산수유 꽃이 보입니다. 정말 봄인가봅니다.
한창을 찍고 떠날 무렵 뒤에서 '어이~!' 하십니다.
어르신께서는 "콩나물 하나 주쇼" 하십니다.
천원을 쥐어주신 어르신.
"500원은 후참에 줄께. 주쇼." 하십니다. 조합원도 아니지만... 그럼에도 이번 돌아오는 정월 대보름에 드실 것이니 드리고 옵니다.
14시 30분,
"요즘 공병 갖고 가는게 통 늦어~ 언제 갖고가~?"
공병 수거가 최근 일이 좀 있다보니 변칙적으로 있기도 하지만, 좀 늦어지고 있습니다.
어르신들은 쌓여있는 빈병들이 늘 골치입니다. 갖고 가는 사람도 없고, 버리기도 힘드니 말입니다. 그래서 저희는 조합원 중심으로 공병을 수거 해드립니다. 가능하면 최소 월 1회 이상 무조건.
14시 45분,
두유 드시는 어르신, 두유 갖다 드리며 지난번 드신 만두는 어떠셨는지 여쭤보았습니다.
"다 맛없대, 근데 난 맛나게 먹었어~" 하십니다.
고기 비린내가 나지 않는 만두고 비비고 김치 만두를 추천해드렸는데, 함께 드신 분들이 별로 셨나봅니다.
"맛나게 생각하고 먹으면 맛난것이지, 뭐 그리 말들이 많은지 모르겟어~" 하십니다.
어르신께선 "다음에 올땐 청양고추랑 식빵 갖고와~" 하십니다.
어르신의 말씀에 모든 음식은 그러하겠다 싶었습니다.
15시 10분,
"온누리 상품권 받어?"
최근에 아들이 주고 가셨다며 여쭤보십니다. 안탑깝게도 저희 동락점빵은 영광사랑상품원은 가능하지만 온누리는 되지 않음을 말씀드립니다.
15시 50분,
마을을 돌고 떠날무렵, 다리건너 어르신이 손짓하십니다.
"이번주 사우가 오는데 반찬이라도 해줘야지~" 하십니다.
알고보니, 사위되시는분 집이 17층인데, 엘리베이터 공사를 한다며, 공가 기간이 1달이라고 합니다. 해당 기간동안 어르신댁에서 머무린다고 합니다. 백년손님인데, 이렇게 편안하게 지내는 관계를 보니 부럽기도 합니다. 저도 언젠간 장모님과 편안한 사이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물건 드리고 가려던찰나 발가락을 보니, 발가락이 휘었습니다.
"내가 말이여.. 남일도 내일처럼하는데, 내가 너무 고생했어. 이제는 마취하면 깨어나지 못할 것 같아 수술도 못한대. 신발 신기 참 어려워." 하십니다.
"내가 주간보호를 가야하는데... 등급이 나오지 않아 비용이 비싸대. 근데도 울 막둥이는 일단 가라한단께. 내가 집에 있으면 일을 계속 할 걸 아니깐 그런가벼~ 울 동네 사람들도 많이 가는데, 나도 가고 잡네. "
홀로 사는 삶이 많이 힘드셨으리라 생각합니다. 조만간 저희 센터로 와서 함께 하는 모습을 뵙길 바래봅니다.
16시 30분,
마을 회관에 운영자가 바뀌었습니다. 총무가 바뀌고, 회장님이 바뀌었습니다. 모두 여성입니다. 여성시대가 열렸습니다.
정월 대보름 맞춰서 음식하신다고 이것저것 주문하십니다. 전임 어르신께서 뒤에 오셔서 영수증 챙기는 일 알려드립니다.
회관에 들어오는 식비와 보조금은 총무가 챙깁니다. 총무는 이를 토대로 장을 보고 음식을 할 수 있도록 돕는 역할을 합니다.
꼼꼼하게 챙기시는 총무 어르신, 앞으로의 경로당 운영이 기대됩니다.
17시 10분,
평소보다 30분 늦었습니다. 정월 대보름 때문에 많은 어르신들을 만났습니다. 평소 30명 만나는데, 오늘은 50명 가까운 손님을 맞이했습니다.
마치고 장터들어오던 찰나, 일본에서 온 연구진들이 이동장터를 마주하시곤 감탄을 하십니다.
"스바라시~!"
일본도 인구 축소와 지방 축소 현상이 두드러지게 일어나고 있습니다. 그러다보니 아시아문화권 내 중 참고할만한 사례를 찾아 방문하셨습니다. 많은 설명은 거의 못했지만, 보는 일만으로도 큰 설명이 되시겠다 싶습니다.
아침부터 저녁까지 매우 바빴던 오늘,
내일은 조금 더 바빠질 것 대비해서 더 많이 준비하고 챙겨나가야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