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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집 네 번째 늙은이 와병기(臥病記)
“‘갸’ 고쳤다. 서비스 왔다 갔다. 3만원 줬다.”
핸드폰으로 들리는 어머니의 목소리는 맑았습니다. ‘갸’는 어머니가 우리 집 세탁기를 부르는 이름인데 가족처럼 아끼던 ‘갸’가 갑자기 멈췄다고 걱정을 하셔서 서비스센터의 왕진을 청했더니 다녀갔다는 전언이셨습니다.
“‘갸’가 고쳐졌어요? 늙은이라 어려울 줄 알았더니 다행이네요.”
우리 집으로 시집 온 지 스물두 해, 세탁기로서는 환갑 진갑을 다 넘긴 ‘갸’는 단 한 차례도 아픈 적이 없었습니다. 단칸 월세 방에서 가겟집을 거쳐 열여섯 평 연립주택인 지금의 집에 이사 올 때까지 함께 해 온‘갸’의 고장인지라 어머니는 독감에 걸린 가족을 염려하는 만큼이나 걱정을 하셨고, 무사히 수리가 끝난 게 기뻐서 일터에 있는 아들에게 전화를 하신 것이었습니다.
“어쩐다냐? ‘갸’가 불이 안 들어온다?”
어제 저녁 퇴근해 들어온 아들에게 어머니는 대뜸 그렇게 말씀하셨습니다. 평소의 ‘잘 다녀왔냐?’가 생략된 어머니의 목소리는 가족의 병을 걱정하는 애절함 그대로였습니다. 일찍 치매가 오신 아버지의 속옷을 손빨래하시는 게 안타까워 난생 처음 사드린 가전제품이었던지라 나 역시 ‘일 났네!’ 싶었고, 인터넷을 열어 서비스센터에 응원을 청했더니 기사가 방문해서 치료해 주었던 것입니다.
“일찍 와라. 찰밥 해 놀 테니.”
어머니는 가족에게 경사가 있을 때면 팥을 약간 둔 찹쌀밥을 하십니다. 오늘의 경사를 맞은 주인공은 어머니의 ‘갸’, 세탁기인 셈입니다.
“일찍 갈게요. 막걸리 있죠? 없으면 사갈게요.”
고소한 팥알을 씹을 생각을 하면서 어머니의 ‘갸’인 세탁기가 집에 들어오던 22년 전을 돌이켜보았습니다. 당시로서는 거금인 42만원을 주고 사들인 세탁기가 부엌 한 구석에 자리를 잡을 때 어머니는 눈물을 글썽이시며 몇 번이고 닦아주고 계셨습니다.
전자동 리듬세탁기 5.5kg. 모델 넘버 WF-1230z.
어머니가 ‘갸’로 부르는 세탁기의 정체입니다. 1993년부터 22년을 함께 살아온 세탁기를 어머니는 언제부터인가 ‘갸’로 부르고 계셨습니다.
“영감 속옷 빨래가 힘들었는데, ‘갸’가 들어와서 잘 됐다.”
22년 전 그렇게 시작한 세탁기와의 인연을 어머니는 하루처럼 이어오셨습니다. 상황에 따라 ‘갸’와 ‘쟈’, ‘야’가 번갈아 쓰이던 세탁기의 이름은 어느새 ‘갸’ 한 가지로 굳어지고, 놓인 장소도 월세방 부엌 연탄보일러 옆자리에서 김밥가게 주방 구석자리를 거쳐 연립주택 베란다로 변신을 하였습니다.
“영감이 아무래도 노망이 났나보다. 속옷을 버렸어야.”
‘갸’가 들어온 지 6년 후, 오랜 셋방살이를 마감하고 지금의 연립주택을 구해 이사를 온 기쁨도 잠시 아버지는 치매가 심해지셨고, ‘갸’는 어머니를 도와 궂은 빨래를 처리해 주었습니다.
“세탁기 큰 걸로 바꿔 드릴까요?”
어머니가 기르신 일곱 남매가 모이는 명절이면 반드시 나오는 덕담입니다. 시집 간 딸들과 며느리들이 경쟁적으로 효도를 해보겠다고 ‘갸’를 표적으로 삼는 것입니다.
“‘갸’, 아직 쓸 만하다. 주고 싶음 돈으로 도고.”
단칼에 거절을 하고 보란 듯이 ‘갸’를 돌려 증명을 해 보이십니다. 탈탈탈탈! 소리가 요란하기는 하지만 세탁물들을 탈수까지 실수 없이 해내는 ‘갸’인지라 별 수 없는 현금 상납이 됩니다.
“요즘 이런 구식 세탁기 쓰는 집이 어디 있어요. 고집 피우지 마시고 드럼 세탁기 하나 사드릴 테니 들여 놓으세요.”
가장 어머니를 위하는 막내 여동생이 하는 말입니다. 45년 전, 올망졸망한 일곱 남매를 남겨 두고 생모가 떠난 후 우리는 새 어머니를 맞았고, 당시 네 살이었던 막내 여동생은 어머니의 품속에서 가장 긴 세월을 살았던 터라 마음 쓰는 게 언니들과 달랐습니다.
“일 없다. ‘갸’, 잘만 돌아가는데 왜 자꾸 타박이냐?”
가난을 숙명처럼 등에 지고 살아온 달동네의 윗집과 아랫집에는 아들 하나를 둔 홀어머니와 자식 생산에만 유능한 가난뱅이 부부가 살았는데, 아직 마흔도 되지 않은 아랫집 칠남매의 어머니가 오랜 가난치레 끝에 지병으로 쓰러진 후 윗집의 어머니는 아랫집으로 내려오셨습니다. 초상을 치르고 1년여, 네 살부터 열여섯까지의 올망졸망 아랫집 칠남매는 졸지에 홀로 된 아버지 밑에서 갖은 궁상을 떨며 생계를 이었고, 그 광경을 안쓰럽게 본 윗집의 어머니가 아랫집의 자식들을 떠맡겠다고 나섰던 것입니다.
윗집 두 식구와 아랫집 여덟 식구는 그런 소설 같은 이야기를 만들며 한 식구가 되었습니다. 윗집의 어머니는 한 해 동안 어미 없이 사는 아랫집 일곱 남매를 눈여겨보셨고, 자기들끼리 밥을 해먹는 모습을 외면할 수 없었다고 하셨습니다.
“네 아버지, 돈 벌어다 준 적 없다. 양복 빼입고 나가면서 차비 달라고 손 벌리던 양반이다.”
‘신은 모든 곳에 계실 수 없어서 어머니를 만들었다’던가요. 말단 체신 공무원이셨다가 연좌제에 걸려 강제 퇴직 당하신 후 내내 무직이셨던 아버지는 돈벌이에 서투르셨고, 당연히 매력 있는 재혼 상대가 못되었을 것입니다. 그런데도 어머니가 아랫집의 일곱 남매를 맡아 기르실 결심을 하신 건 분명 신의 은혜로운 조화인 모성애의 발로였습니다.
“고생 됐지? 내가 왔으니 살림은 걱정 마라.”
맏이였던 나와 셋째인 큰 여동생을 불러 그렇게 선언을 하신 후 45년을 하루같이 살아오신 어머니는 22년 전 ‘갸’를 사드렸을 때 딱 한 번 눈물을 보이셨습니다.
“어미 아직 힘 있는데, 왜 돈 쓸라고 하냐?”
사양하시는 어머니를 억지로 끌고 찾아간 전자제품 대리점에서 우리는 ‘갸’를 만났습니다. 월세로 살던 집이 단칸방에 부엌 한 칸뿐인 달동네 집이어서 가장 작은 모델을 찾았더니 대리점의 젊은 기사가 권해 주었던 것입니다.
“이거 소형 중에서 제일 잘 팔리는 모델입니다. 잔고장이 없어요.”
연탄보일러 옆에 세탁기를 놓은 후 시운전을 하는데 방금 전에 배운 걸 까먹어서 “고장 난 걸 팔았다”고 기사를 다시 불러 잔소리를 해댔었습니다.
“물높이를 먼저 맞추시라니까요. 나머지는 전자동이니 그냥 돌리면 알아서 다 빨아주고 탈수까지 해줍니다.”
그렇게 사용법을 배워 시운전에 성공한 지 22년, 세탁기 ‘갸’는 우리 집 가족의 하나로서 이사 가는 곳마다 따라오곤 하였습니다. 단칸방 부엌 연탄보일러 옆자리에서 곁방살이로 2년을 보내고, 어머니가 하시던 김밥집 주방 구석자리에서 4년을, 어렵게 장만한 16평 연립주택의 베란다 겸 세탁실인 지금의 자리에 놓여 16년을 보내는 동안, 불평 한 번 하지 않고 우리 세 식구의 입을 것과 덮을 것을 깨끗이 빨아 탈수까지 해주었습니다.
“어때요, 엄마. 세탁기 바꿀 때 아직 안 됐어요?”
윗집 형과 아랫집 동생들이 저마다 짝을 만나 떠난 후 단 하나 남아 부모님을 모시게 된 아랫집 맏이는 사람 구실에 실패하여 예순을 훌쩍 넘은 나이로 어머니가 끓여 주는 밥을 먹고 사는데, 올해로 스물세 살이 되는 ‘갸’는 여든여덟이 되시는 어머니와 함께 덜떨어진 식구를 가족의 하나로 받들어 주고 있습니다. 동갑내기이신 아버지가 스무 해 전에 이미 치매가 와서 속옷을 적시고 계셨고, 예순을 몇 해 넘긴 맏아들이 또 비슷한 병을 앓아 병원 출입이 잦았는데도, 어머니는‘갸’와 더불어 흐린 얼굴 한번 보이지 않으셨습니다.
“그런 소리 마라. 죄 받는다. ‘갸’, 영감 속곳 빨아대느라고 고생한 것 잊었냐?”
짝을 만나 분가했던 윗집 형과 아랫집 동생들이 조카들을 낳아주어 우리 집 명절은 항상 분주합니다. 다음 명절에도 형제들은 물론 조카들이 낳은 손주 명색의 꼬마들까지 몰려올 테니 열여섯 평 연립주택은 터질 듯이 만원일 것입니다. ‘사람 사는 집안에 사람이 안 오면 끝난 것’이라는 어머니의 지론으로 자식들은 위아래 가리지 않고 명절마다 모여 들고, 이번에도 어김없이 세탁기를 두고 타박을 해댈 것입니다.
“요새는 앉아서 빨래를 할 수 있고 삶아주기까지 하는 세탁기가 많아요. 이제 고집 그만 피우시고 편한 걸로 바꿔요.”
반듯한 걸 하나 사드리겠다는 뜻이니 효도인 셈이지만, 어머니의 ‘갸’인 세탁기가 들으면 서운할 말들입니다. 어머니는 22년 동안 함께 해온 ‘갸’를 편들어 열심히 변호를 하실 텐데, 손에 익은 물건들은 무엇이든지 가족의 하나로 여기는 분이니 당연한 처사이실 것입니다.
“멀쩡한 걸 왜 버리냐? ‘갸’는 아직 잘 돌아간다.”
‘갸’가 멀쩡하지 못해 의사를 불렀었다는 사실을 알면 여동생들이 무어라고 할까 싶었습니다. 돈 들여서 고쳤다고 잔소릴 해대겠지요. 장성하여 증손자를 안겨 준 손녀딸들도 ‘갸’를 성토하는데 한몫을 할 터이니, ‘갸’로서는 근래 들어 최대의 위기를 맞는 셈입니다.
“다 늙은 세탁기가 뭐가 소중해서…… 하여튼 할머니 아니랄까봐서……”
스물두 살짜리 세탁기란 눈을 씻고 봐도 주위에 없습니다. 우리나라 가전제품은 7년을 주기로 바꾸도록 설계가 되었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는데, 22년이면 그 세 곱절을 산 셈이니 ‘갸’의 장수도 어지간하기는 합니다. 하지만 어머니의 말씀처럼 아직 멀쩡한데 버릴 수가 있을까요. 더욱이 어머니는 소중한 가족으로 여기시는데…….
“영감하고 내가 죽으면 새 세탁기 들여놔라. 나는 ‘갸’가 쓸 만하다.”
여자들은 집안에 근심이 있으면 세탁물을 들고 물가로 간다고 합니다. 어머니는 어려운 시절‘갸’와 함께 가정을 끌어오셨던 인연을 놓지 못하시는 것입니다.
“애들에게서 전화 오면 ‘갸’가 아팠다고 얘기 마라. 괜히 걱정할라.”
손때 묻은 물건은 귀 떨어진 바늘 한 개도 버리지 않으시는 어머니, 물건마다에 이름을 붙여 가족으로 삼으신 어머니는 여든여덟 해 동안 살아오시며 일곱 남매를 키우신 정을 이제 ‘갸’와 함께 하고 계십니다. 이제는 모두 50대가 넘은 여동생들이 어머니만큼 매사에 고마워하며 살게 되려면 어느 정도의 마음고생을 더해야 할까요.
“명절이 지나면 너도 한 살을 더 먹을 텐데, 우리 집 같은 어려운 집에 와서 용케도 스물두 해를 견디어 주었구나.
힘들면 또 아프거라. 몇 번이고 고쳐 주마. 대신에 어머니가 계시는 동안은 함께 해주어야 한다? 날랑 널랑 같이 어머니 손길 아래에서 늙었는데, 끝도 함께 보아야 하지 않겠니?”
지금은 남아 있는 게 거의 없는 골동품 모델이라는데, 아직 씽씽 잘 돌아가는 우리 집 네 번째 가족 ‘갸’, 스물두 해 동안의 인연을 되새겨 고마운 인사를 해봅니다.
(동생들이 부모님을 모시고 남쪽 바다 구경을 갔습니다. 어버이날이 가까운 탓의 효도관광 명색이지만, 연세가 높으신 두 분과 추억을 하나라도 더 쌓아놓기 위한 여행일 것입니다.
가게 핑계로 따라가지 않고 혼자 밤을 새웠습니다. 밤 11시, 퇴근을 하고 보니 16평 오두막이 휑! 비어 있네요. 모처럼 편히 자려고 했는데, 두 노인네 치다꺼리가 없는 밤이니 해방이다 싶었는데, 아니더군요.
부모님과 함께 잠들지 못한 밤, 두 분의 크기가 얼마나 큰 지 확인을 했습니다. 곁에 계셔 주는 것만도 고마운 부모님, 치매가 심하시고 병치레가 끊이지 않으시지만, 부모님은 자식의 방을 채워주는 지주이셨습니다.
그간 썼던 글들을 찾아 퇴고 비슷한 걸 하며 밤을 샜습니다. 그 중 부모님을 중심으로 한 가족 이야기 한편이 가장 눈에 띄어 옮겨 봅니다. 지난 명절 임시에 충동적으로 썼던 가족사 이야기라서 부끄럽습니다만, 건너다보니 세탁기 ‘갸’가 보여 그나마 가족의 응원이라 생각하고 여기에 옮기니, 역시 가족인 우리 회원님들, 보시고 많이들 웃어 주세요.)
‘신은 모든 곳에 계실 수 없어서 어머니를 만들었다.’ 고약하신 신...
삶의 애틋한 부분을 보여주신 님께 감사드립니다.
어머님도 위트가 있고 소설같은 이야기속에 이런 멋진 글을 쓰는 아드님도 진짜 멋지십니다.
진한 감동입니다.^^
건필하십시요.
감흥이 있네요!
감사합니다 좋은글잘읽고갑니다 ~~
좋은글 감사히 잘 읽었습니다!!
감사합니다 잘읽었습니다^^
잘읽고 갑니다
좋은글잘읽고갑니다 감사합니다 ~~
좋은글입니다
좋은글 감사합니다
마음이 찡하는 글입니다
좋은 글 감사합니다
감동입니다.
잘 읽엇습니다. 좋은 수필 쓰셨습니다.
좋은글 쌩유 입니다~
아름다운 세상....
잘봅니다
따뜻한 마음이 느껴집니다
어머니의 사랑이 짠~하게 느껴집니다 !!!
어머님께서 훌륭하신 분이시군요.배웠습니다.사람으로 살아가는것을
감사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