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근버스가 여간 혼잡한 게 아닙니다. 시민들이 대중교통수단을 많이 이용하기 때문입니다. 저는 일부러 맨 뒤쪽으로 갑니다. 그래야만 자리를 기대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오늘은 자리가 잘 나오지 않습니다. 내리는 사람이 없습니다.
그런데 이게 웬 행운입니까. 바로 옆에 앉아 있던 사람이 자리에서 일어납니다. 저는 재빨리 주위를 둘러봅니다. 노약자는 없습니다. 이 또한 행운입니다. 오늘은 뭔가 좋은 일이 있을 것 같습니다. 그때 휴대폰이 울립니다. 저는 휴대폰을 받습니다. 아내입니다. 목소리가 낭랑합니다.
"여보, 어디예요?" "석전 사거리를 막 지나고 있습니다."
"집까지 오는데 얼마나 걸리겠어요?" "30분 남짓 걸릴 것 같아요. 집에 무슨 일 있어요?"
"당신이 좋아하는 생선 있잖아요? '호래기'요? 그것 좀 샀어요." "그래요? 침 넘어 가는데. 내 빨리 가리다."
이게 바로 행운 아니고 무엇이겠습니까. 제가 '호래기'를 무척 좋아하거든요. 그런데 있지요. 저는 '호래기'를 볼 때마다 머리를 갸우뚱하거든요. 도대체 '호래기'의 정확한 이름이 무엇인지를 몰라서요. 국어사전에도 이름이 나오질 않습니다. '호래기'가 표준어가 아닌 것만은 분명합니다. 여러분, 정말 궁금하시지요? 하하, '호래기'는 바로 꼴뚜기의 사투리랍니다.
집에 오니 아내가 '호래기'를 잘 씻어 놨습니다. 크기가 손가락만 합니다. 마치 오징어 새끼를 닮았습니다. 그래서인지 아이들은 아예 '호래기'를 오징어 새끼라고 부릅니다. 저는 한 마리를 냉큼 입에 집어넣었습니다. 호로록. 잘도 빨려 들어갑니다. 맛이 그만입니다. 아내가 "초장이라도 찍어 드시지요"라고 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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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초장에 '호래기'를 찍어먹으면 맛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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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 박희우 | "괜찮소. 그냥 먹어도 맛이 아주 좋아요. 그런데 여보, 왜 '호래기'라고 한 줄 아시오?" "모르겠는데요." "내가 방금 먹는 것 보았지요. 한입에 '호로록' 집어넣었잖아요. 그래서 '호래기'라고 했답니다. 어시장에서 '호래기'를 파는 할머니가 그렇더군요, 하하."
아내도 따라 웃습니다. 저는 접시에 '호래기'를 담았습니다. 뽀얀 게 보기에 참 좋습니다. 가족들이 식탁에 둘러앉았습니다. 초장에 '호래기'를 찍어먹었습니다. 저는 소주도 곁들였습니다. 아이들도 잘 먹었습니다. 한 접시가 금방 없어집니다. 아내가 자리에서 일어납니다. 무로 채를 썹니다. '채나물'을 만들 모양입니다.
"당신도 이제 바닷가 사람 다 되었소?" "제가요?"
"'호래기' 채나물도 다 만들고 말이요." "호호, 고마워요."
'호래기 채나물' 만들기는 아주 간단합니다. 채나물에다 '호래기'를 집어넣기만 하면 됩니다. 그냥 반찬으로 먹어도 좋고 비벼먹어도 좋습니다. 비벼먹을 때는 청국장을 곁들이면 더욱 좋습니다. 물론 참기름도 몇 방울 떨어뜨리면 더욱 좋겠지요. '채나물'에만 '호래기'를 넣는 건 아닙니다. 깍두기에 넣어도 맛이 그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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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호래기 채나물'입니다. 비벼 드셔도 좋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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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 박희우 | 어머니께서도 종종 '호래기 채나물'을 만드셨습니다. '호래기 깍두기'도 만드셨지요. 저는 아무리 밥맛이 없을 때도 '호래기 채나물'만 있으면 밥 한 그릇을 가뿐히 비웠습니다. 그러고 보니 어머니 뵙지 못한 지가 조금 되는 것 같습니다.
이번 주말에는 어머니를 뵈러가야겠습니다. 어시장에서 가장 싱싱하고 먹기 좋은 '호래기'를 사가야겠습니다. 호로록. 어머니의 '호래기' 잡수시는 모습이 눈에 선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