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3월 22-27일 안중근서거 101주년을 맞이해 안중근추모 중국 동북3성(하얼빈 창춘 다롄 뤼순) 평화기행을 다녀왔다. 원래는 한중일 시민공동으로 추진했으나 일본측이 참가하지 못해 한중시민 평화기행이 되었다. 한일100년평화시민네트워크과 동북아평화연대 주최 여행자조합과 동북아평화연대 중국사무국에서 공동주관하였다. 간략히 스케치해 소개드린다.
3월 22일 아침 10시 인천공항에서 출발차 15명이 합류했다. 12시 20분 비행기로 출발해 오후 1시반 하얼빈 공항에서 도착하니 안금송사장과 노세극팀장이 함께 마중을 나와 주었다. 곧바로 시내에 있는 헤이룽장(黑龍江)성 조선민족예술관에 도착하니 안중근 기념관이 따로 마련되어 있었다. 커다란 동상이 전시실 정 중앙에 자리잡고 있어 함께 기념촬영을 할 수 있었다. 전시실을 돌아보니 각종 전시물과 실물 크기의 조각상들이 잘 전시되어 있었고 한국어 안내자가 있어 수월했다. 관장실과 붙어 있는 회의실에서 강월화관장과 왕홍빈 전하얼빈시예술문화국장과 함께 대화의 시간을 가졌다. 관장으로부터 설명을 듣고 국장으로부터도 이런 저런 질문이 이어졌다. 헤이룽장성 교육학원의 나정일 전경희 민족교육 연구위원 헤이룽장성 신문기자 출신의 이대무 헤이룽장성 예술연구소 연구원이 참석한 가운데 샤브샤브요리집 천순원(天順源)에서 저녁식사와 함께 즐거운 교류시간을 가졌다. 원래는 동북임업대학교 이종걸교수로부터 강의를 듣기로 했지만 며칠전 돌아가시는 바람에 만나지 못했던 점을 아쉬워 했다. 하얼빈역을 방문해 플랫폼을 방문해 보려고 했지만 사전 승인이 되지 않아 포기하고 역사 안팎만 돌아보는 것으로 만족해야 했다. 중앙대가에 있는 베이베이호텔에 도착하니 좋은 위치라 모두들 짐을 풀고 나와 송화강까지 쭉 뚤린 러시아 풍의 중앙다제(大街)를 걸었다. 쑹화(松河)강을 돌아보고 낭만에 취해 보는데 순찰중인 경찰은 기념촬영 요청에도 친절하게 응해 준다.
3월 23일 아침에 일어나 다시 중앙다제를 걸어 쑹화강을 산책했다. 각종 건축물과 조각상들이 도시의 품격을 보여주고 있었다. 이어서 작곡가이자 혁명운동가 였던 정율성기념관을 방문했다. 어제 나와 주었던 교육학원 관계자들이 동행해 주었다. 중국인민해방군가를 작곡하고 북조선(븍측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남한은 남측 대한민국이라는 뜻으로 사용)의 인민군가를 작사할 정도의 인물이었는데 전남 광주 출신의 전주 신흥중학교 졸업생이라 관심가지고 방문하게 되었다. 몇년 전부터 광주에서는 국제정율성음악회가 열려왔다는 사실을 확인하게 되었다. 시내에 자리잡고 있는 소피아성당을 둘러 보았는데 러시아 정교회 건축물임을 한눈에 알아볼 수 있었다. 헤이룽장성 박물관을 방문했다. 시내에 일반 건축물처럼 자리잡고 있었는데 한 쪽에는 고대 역사 유물들이 시기별로 전시되어 있고 또 다른 쪽에는 자연박물관이 지리정보와 함께 각종 생물 표본으로 전시되어 있었다. 그리고 동북열사기념관을 방문했다. 열사 기념관에는 만주에서의 일제 식민지배의 실상과 그에 맞서 전개되었던 항일투쟁의 유적들 그리고 항일열사들의 조형물과 각종 자료들이 잘 정리되어 있었다. 만두 전문집이라 푸짐한 만두들이 연이어 나와 남길 지경이었다. 식사를 마치고 안내해 주었던 나정일 전경희 연구원에게 가져간 책을 전달하고 작별 인사를 했다. 하얼빈의 731부대를 방문했다. 2층 건물을 그대로 남겨둔채 박물관으로 사용하고 있었다. 세균 및 화학전을 준비하고 실행하기 위해 3천명의 마루타를 사용했던 각종 실험과 세균 및 화학무기등이 전시되어 있었고 중심인물 사진도 전시되어 있었다. 마지막 전시실에는 일본과 중국에서 발행된 각종 관련 책자들이 전시되어 있었다. 다행히 한글 안내 이어폰을 통해 자세한 설명을 들을 수 있었다. 기념촬영을 마치고 장춘으로 출발했다. 4시간 가량을 달려 시내에 도착해 天下曉식당에서 푸짐한 저녁식사를 마치고 숙소인 장백산 호텔로 향했다. 장세화교수께서 이기철 선생과 함께 나와 주었고 내일 다시 만날 것을 약속하고 돌아가셨다.
3월 24일 아침 6시 잠을 깨 남호공원을 찾았다. 입구에는 1948년 10월 창춘시인민정부에서 세운 창춘해방기념비가 높다랗게 자리잡고 있었다. 겨울이라 얼어 붙었지만 아주 넓은 호수공원이었고 제기차기와 테니스 등 아침운동을 하는 시민들 그리고 시민들이 출퇴근하는 통로가 되기도 하였다. 호텔이라 그런지 아침 식사가 거창했다. 위만황궁을 찾았는데 65세 이상은 반값 70세 이상은 무료 혜택을 받았다. 2003년 방문했던 당시와는 비교되지 않을 정도로 확장 정비되어 있었다. 중국 안내자가 자세히 설명을 해 주었고 안금송사장이 잘 통역해 주어서 많은 도움이 되었다. 오전을 돌아보고 만두전문집에서 점심을 먹고 다시 녹원구 조선족소학교를 방문했다. 독립운동가 집안 출신의 백옥자 교장선생이 반겨 주셨다. 운동장과 복도에서 귀여운 아이들을 만나면서 학교 소개와 안내를 받고 오후 3시부터 장세화교수의 강의를 들었다. 동아시아 평화와 한중일 우호의 길 이라는 예고된 주제원고를 출력해서 한부 받았다. 약 2시간에 걸친 강의와 질문이 있었다. 경제학자였지만 역사연구에서도 해박하셨다. 강의를 마치고 장교수와 한국화간사가 동석하고 부교장선생께서 안내해 주신 한국식당에서 저녁식사를 겸한 친교시간을 가졌다. 백교장께서 선물해 주신 술로 건배를 하면서 즐거운 시간을 가졌고 장교수의 호방한 인품과 모습에 모두 함께 즐거움을 느끼고 준비해간 책 2권도 전해 드렸다. 다시 버스를 타고 장춘역으로 향하는데 눈이 내리고 장춘역에서 기차 정차역이 변경되어서 다시 근처로 이동하는 등 약간의 곡절을 겪고 역사에 들어가니 수많은 사람들이 기차를 기다리고 있어 마치 명절이라도 만난 느낌이었다.
3층 침대칸의 1,2층 침대를 예약했기에 자리를 정돈하고 늦은 시간까지 대화하는 시간을 가졌다. 가져간 간이 후래쉬로 등을 만들어 분위기를 느끼면서 늦도록 술자리와 대화를 계속했다. 새벽 1시 심양을 거쳐 계속 달리는 열차에는 3층 침대칸이 전부 였는데 내복차림으로 사람들이 오르내리는 모습이 인상적이다. 열차가 정차된 상태에서는 화장실도 사용할 수 없었고 석탄으로 난방을 했다.
3월 25일 아침 7시 경 다롄역에 도착했는데 중국의 역 광장답게 널찍했고 번잡스럽다. 마중나온 버스를 타고 숙소로 향했다. 도심 가까운 곳인데 깔끔했다. 1층 식당에서 간단히 점심을 먹고 쉬는 시간을 가진 후 10시를 조금 넘어 성해(星海)광장을 방문했다. 커다란 해변공원에 이런 저런 조형물이 설치되어 있는데 친수공간은 별로 확보되어 있지 않은 것 같았다. 어린이들의 유료 놀이시설이 유원지 같은 느낌을 준다. 다시 버스를 타고 시내를 돌아 러시아거리를 방문했다. 러시아가 조차하여 지배하던 시절의 건축물들이 그대로 자리잡고 있는데 낮이라 그런지 썰렁한 느낌이다. 러시아 망원경과 각종 조각품 가게들이 즐비했다. 식사를 위해 한식당을 방문했다. 부두 가까운 곳으로 예전에는 많이 붐볐는데 지금은 축소된 상태라고 한다. 며칠만에 한식을 먹으니 다들 즐거워한다. 다시 호텔로 돌아와 근처 시장으로 향했다. 지하상가라고 해야 할 것 같은데 중저가 물건들이 무척 많다. 한국에서 워낙 좋은 제품들이 많기 때문에 별로 구매욕구는 없었고 나는 배율이 좋은 쌍안경을 저렴하게 구입했다. 시간여유가 있어 택시를 타고 여객터미널로 갔다. 택시의 기본요금은 8위안이었다. 여객터미널에는 국제선과 국내선이 함께 있었다. 국제선은 주 3회 인천항을 오가는 훼리가 전부였고 나머지는 인근 섬이나 유람선이었다. 다시 호텔로 돌아와 저녁식사를 하고 아쉬움을 느끼는 몇 사람이 뒷풀이 삼아 밤 거리를 돌다 맥주한잔을 하고 돌아왔다.
26일 아침 일찍 일어나 식사를 하고 8시를 조금 지나 안금송사장과 김종헌사무국장은 경기도 교육청방문단을 맞이하기 위해 흑룡강성으로 출발하면서 아쉬운 작별을 했다. 1시간여를 달려 뤼순(旅順)감옥에 도착했다. 붉은 벽돌 담장을 돌아 입구를 들어서니 감옥임을 실감하게 된다. 안중근의사가 수감되었던 독방 그리고 감옥의 일반적인 여러 시설, 신채호선생, 이회영선생이 수감되었던 감방과 교수대 묘지 등을 거쳐 국제항일열사전시관에서 안중근 신채호 이희영선생의 흉상과 사진 등이 전시되어 있었다. 그리고 안중근 기념전시실에는 유묵 복사본이 전시되어있을 뿐 아니라 실제로 교수형을 당한 당시의 모습도 재현되어 있었다. 함께 추모시간을 가졌다. 다시 차를 타고 관동지방법원으로 향했다. 그곳에서 다롄안중근연구회 박룡근회장을 만나 인사를 나눴다. 당시 법원의 법정에는 안중근의사 재판과 관련한 여러 사진과 사진기사 재판과정의 자료 등의 전시물이 있었다. 그리고 검찰이 함께 있었기 때문에 고문실도 볼 수 있었다. 극악한 형태의 고문도구들이 당시를 상상하게 만들었는데 난로에 사람을 묶어 고문하는 방법, 가죽을 벗기는 고문 등 여러 기구들을 보면서 인간의 잔혹상에 놀라움과 분노를 금할 수 없었다. 마지막 방에는 안중근의사 추모객을 위한 참배 공간이 있어 국화 한송이를 놓고 인사했다. 뤼순순국선열기념재단(세계일보에서 모금을 통해 설립한 재단)에서 운영하는 여행관련회사에서 파견된 조선족 안내원이 맡아 주었다. 홈페이지를 통해 보니 오랫동안 기념사업을 해 왔고 안중근숭모회와 대련안중근연구회 등과 공동으로 행사를 하기도 했었다. 여순을 점령하기 위해 러시아와 일본이 치열하게 전투를 전개했던 백옥산탑으로 찾았다. 20분가량 언덕길을 걸어서 도착하니 산 정상에서 뤼순항 전경과 뤼순 시내가 그대로 내려다 보였다. 당시 사용하던 무기창고도 있고 전함과 미사일 헬리콥터가 전시되어 있다. 다시 차를 타고 동계관산으로 이동했는데 러시아와 일본이 격돌했던 곳이다. 뤼순항 전경을 모형으로 만들어 전시하고 있었다. 그리고 러시아 대포와 일본군 희생자를 위한 추모탑 등이 설치되어 있다. 일정을 마치고 호텔로 돌아와 잠시 쉬었다가 버스를 타고 평양고려관으로 이동했다. 아파트 1층에 자리잡은 깔끔하게 단장된 식당인데 홀에 마련된 식탁에 한복을 차려입은 북측 여성접대원들이 익숙하게 음식을 차리고 준비한 문배주를 술잔에 채워준다. 음식도 맛깔나게 잘 나왔고 김태준단장님의 배려로 추가 술도 시켜 마셨다. 음식이 마무리될 시간이 되자 귀에 익은 ‘반갑습니다’ 라는 노래를 시작으로 민요풍의 노래를 불러 좌중을 즐겁게 해 주었고 흥이 난 우리는 답가를 해야 한다며 조석주박사를 비롯해 몇 사람이 차례로 노래를 했다. 우리가 안중근추모 평화기행을 위해 방문한 그룹임을 설명하자 더욱 친근하게 대해 주었다. 그래서 모두 손잡고 ‘우리의 소원은 통일’ 노래를 함께 부르며 마무리를 했다. 우리가 마지막 손님인 탓인지 밖으로 전송해 주어서 떠나는 버스 안에서 손을 흔들며 아쉬운 작별을 했다. 돌아와서 방에 둘러 앉아 평가회 겸 소감을 나누는 시간을 가졌다. 모두 뜻깊은 여행이었다는 점과 만족했다는 것 특히 마지막 평양식당에서의 식사를 인상깊게 느꼈다고 했다. 일부는 남아서 뒷풀이를 하면서 좀더 많은 이야기를 나눴다.
27일 아침에 일어나 식사를 하고 여러 사람이 숙소 근처 가게에서 선물용 술을 사서 챙기고 8시 40분 호텔을 출발해 대련 공항으로 향했다. 공항보다는 저렴하니 부담이 적어 좋다고들 하셨다. 20여분 만에 도착하니 공항 주변에 주택이 많은 시내였다. 티켓 수속하는 곳부터 탑승객 외에는 출입제한을 받으니 이틀간 다롄과 뤼순을 안내해준 가이드 양태홍씨와 아쉬운 작별을 했다. 수속을 마치고 들어간 공항매점에서 다음 여행을 위해 뤼순안내 화보책과 지도를 구입했다. 비행기는 만석이었고 인천공항에 내리니 권병근선생이 몸살기운으로 검역체크를 당하는 등 약간의 해프닝이 있었지만 모두 잘 마치고 다음 만남을 기약하며 돌아가며 악수하고 헤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