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년 전 서식 진귀한 어패류 기록
'단장한 예쁜 아가씨' 화류계도 번성
해마다 4월이면 창원시 마산합포구 진동면 바닷가에서는 미더덕축제가 열린다. 진동면을 중심으로 동쪽으로는 반도 지형인 마산합포구 구산면, 서쪽으로는 고성군 동해면, 남쪽으로는 거제도에 둘러싸인 이곳 바다는 미더덕과 홍합의 최대 생산지다. 각각 국내 생산량의 70% 정도를 차지한다. 굴양식장도 점점이 떠 있다. 이곳이 우리나라 최초 물고기 총서인 <우해이어보>가 탄생한 배경이라는 사실은 많이 알려지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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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산어보>보다 11년 앞선 최초 물고기 총서
우해이어보(牛海異魚譜)는 신유사옥으로 *진해현에 유배 온 김려(金鑢·호 담정藫庭)라는 사람이 유배기간 중인 1803년 저술했다. 예전에 우리나라 최초의 어보로 알려졌던 정약전의 <자산어보>보다 11년 앞선 것이다. 학계와 수산업계에서는 우해이어보가 우리나라 최초의 어보라는 사실은 이미 잘 알려져 있다.
조선 후기 실학자 정약용의 형인 정약전 또한 신유사옥에 연루돼 유배지인 전라도 흑산도에서 1814년 자산어보를 저술했다. 우해이어보와 자산어보는 이 같이 신유사옥에 연루된 두 학자가 바닷가 유배지에서 어류에 관심을 갖고 쓴 책이라는 점에서 공통점을 갖고 있다. 하지만 두 책은 특별한 연관성을 갖고 있지는 않다.
또 우해이어보는 '이어보(異魚譜)'라는 이름에서도 알 수 있듯이 당시 일반적으로 볼 수 있었던 어패류가 아닌 이 지역에서만 나는 특이한 종류를 기록한 책이다. 특히 한시에도 조예가 깊었던 김려는 우해이어보 각 항목 말미에 「우산잡곡(牛山雜曲)」이라는 명칭으로 당시 진동 지역을 중심으로 한 어촌의 생활상과 풍물을 담은 39수의 한시를 수록하고 있어 귀중한 사료로 평가받고 있다.
우해이어보에는 어류 53종과 갑각류(게) 8종, 패류 11종 등 72종의 어패류를 설명하고 있다. 또 각 항목마다 여러 근연종(近緣種·유사 종류)을 추가로 기록하고 있어 실제 수록된 어패류는 이보다 훨씬 많다.
원앙·양타·도알 등 지금은 알 수 없는 어류 등장
그 가운데 보라어에 대한 설명을 보면 "생긴 모양이 호서지방에서 나는 황석어와 비슷하나 그것보다는 작고 색깔이 엷은 자주색"이라고 묘사했다. 그리고 "이곳 사람들은 보락(甫鮥), 혹은 볼락어(乶犖魚)라고도 부른다. 엷은 자주빛깔이 나는 것을 보라(甫羅)라고 하는데 매우 아름답다는 뜻이니 아름다운 비단이라는 말과 같다"라고 했다.
이와 함께 "진해 어부들은 가끔 이 물고기를 잡지만, 그리 많이 잡지는 못한다. 거제도 사람들이 잡은 보라어를 젓갈을 담아 수백단지씩 싣고 와 포구에서 팔아 생마와 바꾸어간다. 거제도에서는 이 물고기가 많이 잡히지만 모시는 귀하기 때문이다. 젓갈이 좀 짭짤하면서도 쌀엿처럼 달다. 밥상에 올려놓으면 윤기가 나고 색깔이 좋다"라고 했다. 이 설명을 보면 보라어가 지금의 경상남도 도어(道魚)인 볼락이라는 것과 당시 거제도에서 많이 났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외에도 우해이어보에는 감성돔 식해(食醢)에 대한 설명이 등장하고, 당시에도 회를 즐겨먹었다는 것을 알 수 있는 대목이 나온다. 지금은 알 수 없는 원앙어에 대한 설명도 있다. "원앙어는 암수가 반드시 서로 따라다니며, 수컷이 가면 암컷은 수컷의 꼬리를 물고 죽을 때까지 떨어지지 않는다. 그래서 낚시하는 사람은 반드시 한 쌍을 잡게 된다"라고 묘사하고 있다. 또 "이곳 사람들은 '이 물고기를 잡아 눈깔을 빼내어 깨끗하게 씻어 말려서 남자는 암컷의 눈깔을 차고, 여자는 수컷의 눈깔을 차고 다니면 부부가 서로 사랑하게 된다'라고 한다"는 설명이 곁들여 있다.
이 같이 우해이어보에는 볼락, 감성돔, 정어리, 청어 등 지금도 경남 남해안 지방에서 흔한 물고기가 있는가 하면 원앙, 양타, 도알 등 지금은 어느 물고기인지 알 수 없는 어종이 많이 등장해 연구가 필요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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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딱지 지붕' 등 어촌 생활상도 상세히 묘사
우해이어보에는 게딱지(게의 등딱지)를 지붕의 재료로 썼다는 특이한 기록도 나온다. 해(蟹·게)를 설명하는 대목에 "영남지방의 어촌에서는 바닷가 섬에서 주은 게딱지로 염전 움막과 술집의 지붕을 덮은 곳이 많다. 그 밑에는 5~6명이 들어갈 수 있다. 이곳 사람들은 이런 집을 '잡(卡·지킴이집)'이라고 한다"라고 기록돼 있다. 게딱지로 어떻게 지붕을 덮었을까? 지금은 상상하기 어렵다. 하지만 '큰 게의 등딱지에 10되를 담을 수 있다'는 우해이어보의 기록으로 보아 표현이 다소 과장됐더라도 당시 엄청 큰 게가 있었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다. 또 '잡'이라는 표현으로 보아 염전의 오두막이나 지금의 포장마차 같은 조그만 주막집이 아닐까 생각된다. 작고 허술한 집을 비유적으로 이를 때 '게딱지'이라고 하는데, 이 말도 어쩌면 여기서 유래됐는지도 모른다.
게를 설명하는 항목의 말미에 덧붙인 우산잡곡에는 「진해 남문 밖에 있는 두 갈래 화류거리, 거리입구 초가집엔 술집마다 주막 문패가 꽂혔네, 새롭게 쪽 단장한 예쁜 아가씨 고운 흰 손으로 검은 소반에 큰 게 엄지발포를 담아오네」라는 한시가 있다. 이로 보아 당시 진해현은 화류계가 번성할 만큼 사람들이 모이는 번화가였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우해이어보에는 이 같이 200년 전의 어로작업 현장과 수산물의 유통과정, 남도 아낙들의 모습 등이 생생하게 묘사되어 있다. 그만큼 당시 진동을 중심으로 다양한 문화·관광콘텐츠가 담겨있다. 지방자치단체들이 지역의 이야깃거리를 발굴해 스토리텔링은 물론 관광 상품으로 만드는 요즘, 우해이어보를 활용해 다양한 사업을 펼치는 것은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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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해현 김려가 우해이어보의 서문에서 '우해는 진해의 별명이다'(牛海者 鎭海之別名也)라고 표기한 것을 두고 단순 해석으로 이 어보의 배경을 지금의 진해로 잘못 전하는 문헌이 더러 있다. 하지만 우해이어보 저술 당시 행정구역상 진해현은 지금의 진동을 중심으로 한 진북, 진전 등 삼진지역이다. 지금의 진해는 당시 웅천현이다.
글·사진 최춘환 편집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