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세기 스위스 제네바를 거머쥔 칼뱅은 그 자신이 그토록 혐오하던 구교의 교황이나 황제보다 더 무시무시한 힘으로 세상을 지배하였습니다.
그가 숨을 토해내면 온 도시가 회색빛으로 가라앉았고, 그가 도리질을 하면 광장의 화형대에서 시민들이 불태워졌습니다.
그러다 칼뱅의 종교적 견해에 이의를 제기한 어느 신학자가 산채로 화형당하는 일이 벌어졌습니다.
펜으로 다른 견해를 펼쳤을 뿐인데 하늘 아래 ‘자기와 다른 의견’을 용납하지 못하는 칼뱅은 종교권력의 힘으로 그를 살해하였던 것입니다.
수많은 인문주의자들이 “서재의 문을 닫고 그 안에서 탄식했을 뿐” 아무도 앞에 나서지 못할 때 오직 한 사람, 카스텔리오만이 외쳤습니다.
“한 인간을 불태워 죽인 일은 이념을 지킨 것이 아니라, 한 인간을 살해한 것이다.”
이 남자는 번역과 가정교사 일을 해서 겨우 처자식을 돌보는, 거처도 시민권도 없는 망명자인, 그야말로 공적인 영향력 면에서 보면 아무 것도 아닌 모기 같은 존재입니다.
코끼리처럼 거대한 칼뱅과 비교한다면 말이지요.
하지만 그는 칼뱅에게 공개적으로 이의를 제기합니다.
“이단자가 무엇인지를 생각해보면, 나는 우리 의견과 일치하지 않는 생각을 가진 모든 사람들을 우리가 이단자라 부른다는 사실을 발견하게 된다.
사람들은 자기 자신의 생각에 대해 혹은 자신의 생각이 옳다는 생각에 대해 너무나도 뚜렷한 확신을 가진 나머지 오만하게 다른 사람을 멸시하기에 이르렀다.
오늘날에는 거의 사람 수만큼이나 다양한 견해가 있건만 다른 사람이 자신과 견해가 같지 않다면 조금도 참으려 들지 않는다.
우리들 중 한 쪽이 잘못이겠지만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더욱 서로 사랑해야 한다.
당신은 당신의 의견이 옳다고 생각하는가.
다른 사람들도 자기들의 의견을 그렇게 생각한다.”
그런데 칼뱅이 거대한 권력 뒤에 숨어서 단 한 줄의 떳떳한 반론도 내놓지 못한 채 이 사내의 입을 영원히 봉해 버릴 궁리만 하느라 여념이 없는 사이, 카스텔리오는 지독한 박해에 따른 스트레스로 급사하고 맙니다.
저 선량한 인문주의자의 목숨이 얼음장 같은 신권정치가(神權政治家)의 손에 떨어지지 않은 것입니다.
이 얼마나 다행입니까.역사는 칼뱅만을 우리에게 남겨주었습니다.
그런 면에서 16세기 이 싸움의 승리자는 칼뱅입니다.
그러나 츠바이크는 말합니다.
“언제나 승리자들의 기념비만을 바라보는 세상을 향해서, 수 백 만의 존재를 망가뜨리고 그 무덤 위에 자신들의 허망한 왕국을 세운 사람들이 인류의 진짜 영웅이 아니라 폭력을 쓰지 않고 폭력을 당한 사람들이 진짜 영웅이라는 사실을 기억하게 해야 한다.”
요즘 4백 년 간 구천을 떠돌던 칼뱅의 망령이 스멀스멀 되살아나 우리 사회를 떠돌고 있는 것 같습니다.
저들은 칼뱅보다 더 지독한 칼뱅을 원하는 것일까요?
도대체 인문주의자들의 간곡한 만류는 먹히지 않는 우리 사회입니다.
이미령 동국역경원 역경위원(출처: 법보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