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 척 자( 開 坧 者 )
松 鶴 金 時 宗
석우(石牛) 李潤守(1914~1997년) 시인은 한국시단의 선구자이며 개척자의 길을 걸어 오신 분이시다. 名金堂은 석우 선생이 보석과 시계점을 경영하시던 점포 명이다. 선생은 명금당 기둥에 “竹筍 시인구락부”란 현판을 걸었다. 해방 후 한국 최초의 범 문단적 詩 전문지인 “죽순”의 산실이 명금당이었다. 한국 근대 문학사에 하나의 큰 획을 그은 “죽순” 창간호가 빛을 보게 된 것은 1946년 5월이다.
창간호에 발행인 석우(石牛)선생의 창간사와 유치환, 박목월, 이호우, 이응창, 이영도, 김동사, 오란숙, 최해룡 등 17명의 작품이 발표 되었다. 죽순의 동인으로 이윤수, 김달진, 박목월, 유치환, 이호우, 이효상, 이순자, 이응창, 김동사, 오란숙,등이였다. 구상, 박두진, 조지훈, 김춘수, 이상로, 신동집, 조연현, 박양균, 김상옥, 윤곤강, 조영암, 설창수, 박화목 등이 집필자로 참가했다.
내가 석우 선생을 만나기 전 매일경제신문 대구지사에 연감 편집위원으로 취업한 적이 있었다. 아마 1966년경이다. 대구방송국이 지금의 시민회관 자리에 있었고, 역전파출소 인근 이층에 매일경제신문 대구지사가 있었다. 당시 본사 사장은 김종락(김종필의 형)씨였다. 막상 연감 편집 관계로 입사를 했으나 지사에서는 연감 편집에 따른 원고 수집은 하지 않고 기자증을 주면서 세무서를 출입처로 정해 주었다.
서대구 세무서는 달성공원에서 북성로 방향 네거리 모퉁이의 이층 건물이었다. 북쪽으로 자갈마당 방향에 삼풍 국수(이병철선생의 경영) 공장인 목조 건물이 있었고, 남쪽은 서문 시장 방면이었다.
저녁 때가 되면 각처 출입 기자들이 모인다. 본사에 기사를 송고하고 나면 그 날의 일과는 끝난다. 어둠살이 지평선에 깔리면 도청, 시청, 병무청(경찰서),세무서 등 출입기자가 다 모이면 남산동 고려다방 안골목 요정으로 가곤했다. 밤마다 정종 술을 마시는 것이 하루 일과의 마지막 순간이었던 것이다. 그 시절은 밀주를 만들어 판매 수익으로 생계를 유지하는 사람이 많았다. 정부에서는 밀주 단속이 저조하다는 독촉 공문이 많이 하달되었던 시절이다. 한번은 밀주 단속 실적이 부진하다는 기획기사를 실었더니 관계 공무원들이 문책 인사를 당해 지방으로 좌천되는 것을 보고 기자 생활을 그만 두었던 때가 있었다. 그리고 도정 월보를 편집주간 하시던 여류 시인 서정희 여사가 작고하신 후 도 공보실에 희곡 작가이신 김찬호 선생이 편집을 맡게 되었고. 당시 서상은 선생은 공보 주임으로 재직하고 있었다.
석우 선생을 만나게 된 것은 문우의 소개로 1968년 루비 다방에서 처음 만났다. 선생은 명금당을 운영하시면서 한 때 “世代” 월간 종합 문예지에 간여한 적이 있었다. 나는 석우 선생 밑에서 총무부장이란 직함으로 구독 신청자를 물색하는 일이 내가 할 일이었다. 당시 세대 월간지를 증정 받으신 분은 대구, 경북에서 세 분이 고작이었다. 도지사, 대구시장, 서구청장 봉기수 등이었다. 나는 세대 월간 교양지 구독 신청을 받기 위해 공화당 연락부장이신 오상락 선생과 접촉이 빈번했다.
한번은 석우 선생 자택을 방문한 적이 있다, 봉산동 소재 소년 심리원 인근에 남향 집 와가이었고, 담벼락은 적벽돌로 된 울타리로 대문은 서향이었다. 선생은 나를 서재로 안내하고 술상을 들이도록 했다. 석우 선생은 평소 붉은 색의 안경테에 둥근 안경알을 선호하신 듯하였다. 됫병인 정종 술병을 앞에 두고 술잔을 주고받으시며, 밤이 깊어 가는 줄도 모르며 문학에 대한 꽃을 피운 적이 가마득한 옛날이다. 우람하신 체격에 죽순에 관한 말씀을 하실 때에는 두 눈에서 정기가 번적거리듯 열정을 가지신 분이 석우 이윤수 선생님이시다. 선생은 대구 시단의 개척자이다. 불모지인 대구에 최초로 “죽순” 시인 동인지를 창간하신 분이시고, 향토 민족시인 이상화 선생님의 시비 건립을 추진하신 분이 명금당 이윤수 선생이시다.
내가 석우 선생님과 석별하게 된 동기는“세대” 대구지사를 사임하고 삶을 위해 다른 길을 찾기 위해서였다.
대구 앞산공원 낙동강 전승 기념관 건너편에 서 있는 선생의 시비에 새겨진 “파도”라는 詩 구절은
“ 해풍이 앗아간 봄을 어루만지며 /외로이 모래 밭에 엎드려/ 모래 알을 헤인다/ 억겁일월/ 밀려갔다 밀려오는 파도처럼/ 아 아! 헤아려도 헤아릴 수 없는 /인간 삶의 /사랑과 슬픔과 고뇌의 씨앗들 /파도 되어 밀려온다”.
선생은 죽순 창간 50주년 기념행사를 준비하시던 중 귀가 길에 불의의 교통사고로 1997년 타게 하셨다. 생전에 아카데미 극장 앞 골목길의 “옥이집” “가보자집” “향촌동” 등지에서 술잔을 기울이시던 많은 문단 선배님이 고인이 되신 것을 생각하면 가슴이 저려온다. 나는 이승과 저승의 갈림길에 서서 늦게나마 고인이신 석우(石牛)선생의 시비 앞에 술 한 잔을 올리고 싶다.(尾)