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적추적 봄비가 내리고 있다. 농부들은 하늘의 조화로 내리는 비를 일컬을 때 “비 온다”
고 하지 못하고 “비 오신다”고 조심스럽게 말한다. 때맞추어 내려주는 비야말로 땅의 양식이
요 거름이며 보약이다. 그리고 강원도일원의 산불 재 발화 방지에도 큰 도움이 되리라.
오늘은 낙수소리를 안주삼아 주酒인공이 돼 보려한다. 흐르는 시절과 행사에 술이 빠지지
않았다. ‘술이란 적당히 마시고 중간에 그칠 줄 알아야한다’며 술을 절제하는 글귀가 조선왕조
실록에는 ‘적중이지適中而止’라 적고 있다. 부딪치는 술잔들은 서로의 마음을 읽으며 기분전환
에 도움이 된다. 기분전환은 마음의 에너지를 태워 인공적으로 좋은 기분을 만드는 마음 관리
의 기술이며, 전환효과가 있지만 과음하면 마음이 더 지치게 된다. 잘 마신 후 느끼는 공허함
의 이유가 여기에 있다.
소주는 한국인의 국민 술이다. 초록색 병에 담긴 무색의 술이며 입맛 따라 취향 따라 즐기
지만, 제각각의 도수로 입맛과 취향을 가르기도 한다. 일제강점기에 35도였던 소주는 1950대
에는 30도를 유지하다가 1973~1998년 25년간 25도를 지탱했다. 그러나 앞으로 얼마나 더 떨
어질까. 이미 16.9도까지 나와 있다. 원재료에 해당하는 알코올을 주정酒精이라 부른다. 도수
가 내려가면 주정이 덜 드는데 왜 소주 가격은 안 내려갈까? 업계에선 원가에 주정이 차지하
는 비중은 매우 낮다고 한다. 주당酒黨에게는 상식이겠지만, 소주를 만드는 방식에는 크게 두
가지가 있다. 증류식과 희석식이다. 증류식은 알코올이 들어 있는 액체를 가열한 뒤 증기를
다시 냉각시켜 불순물을 제거하고 순도純度를 높이는 방식이다. 위스키와 보드카 같은 독주毒酒
가 여기에 해당된다. 반대로 희석식은 에탄올을 물로 희석하는 방식이다. 고급소주를 제외하
면 대부분 소주는 희석식이다. 값이 싸서 대중화에 유리하지만 ‘고급술’로 평가를 받기는 상대
적으로 힘들다. 증류식과 희석식은 순도와 대중성의 차이라 이해하면 쉽다.
1973년 정부는 품질저하와 과도한 경쟁방지라는 명목으로 전국에 산재한 주류업체들을 통
폐합하기에 이르렀다. 1도道1사社라는 원칙에 따라 250여 곳에 난립한 소주제조사를 진로(서울·
경기), 경월(강원), 선양(충북), 백학(충남), 보배(전북), 보해(전남), 금복주(경북), 무학(경남), 대선(부산),
한일(제주), 10곳으로 줄었다. 요즘 같으면 상상할 수 없는 조치였다. 이어 1996년 1도1사 자도
주법自道酒法이 폐지되고부터 시장에 변화가 일어나고 있는 추세다.
현재는 제주 ‘푸른밤(16.9%)’, ‘한라산 오리지널(21%)’이 있으며, 경남은 ‘좋은데이(16.9%)’
다. 무학주조가 내 놓은 이 술로 파격적인 저도주低度酒가 등장했고, 이제는 부산과 수도권 진
출에도 성공했다. 부산의 대선주조는 ‘대선(16.9%)’을 판매하고 있다. 그리고 판매량 최고인
서울·경기는 ‘참이슬 프레시(17.2%)’ 강원도는 ‘처음처럼(17%)’ 충남·대전 ‘이제우린(17.2%)’
충북 ‘시원한청풍(17.5%)’ 전북 ‘하이트(19.5%)’ 광주·전남 ‘잎새주(17.8%)’ 대구·경북 ‘맛있는
참(16.9%)’ 등 전국 11개 업체에서 희석식 소주를 생산한다. 그런데 소주병은 왜 초록색일까?
변질 가능성이 거의 없는 소주는 투명하거나 푸른색 병을 사용했지만 1994년 경월을 인수한
두산(현 롯데주류)이 친환경 이미지를 강조하며 초록색 병에 담긴 ‘그린소주’를 출시하면서,
이후 ‘소주병공용화협약’에 따라 모든 업체가 소주병 디자인과 규격을 통일해 공동 재사용하
고 있다.
아무튼 흥興은 자기발전이 가능한 에너지다. 가난한 흥부興夫가 인생역전에 성공한 것도 이
름처럼 대책 없는 흥 때문이었으리라. 그냥 몸을 일으켜 세우면 된다. 술 없이도 맘만 먹으면
언제나 가열될 수 있지만, 왠지 허전하여 잔을 끌어당기는 묘한 맛에 끝내 주저앉고 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