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쇤브룬 궁전(Schloss Schönbrunn) NO.2 ☞ 그림을 클릭하시면 크게보실 수 있습니다
▲ 궁전 앞의 전시물
쇤브룬 궁전(Schloss Schönbrunn) 1569년에 신성로마제국의 황제인 막시밀리안 2세가 카터부르크 지역을 매입하였는데 그곳이 지금의 쇤브룬 궁전 터이다. 궁전 내의 공원과 다른 건물이 다 이곳에 있다. 황제는 이곳에 관심을 보였고 처음에는 동물원을 만들었다. 후에 그는 새로이 정원을 꾸미게 하였고 진기한 식물을 가져다가 식물원을 만들게 된다. 그런 이유로 그는 쇤브룬 정원의 창조자로 불린다. 쇤브룬이라는 이름은 "아름다운 우물"이라는 뜻으로서 빈의 왕궁이 인근의 물을 썼기 때문이라는 말이 있다. 오스트리아 왕족의 다수가 이곳에서 여름 휴가를 보냈고 사냥을 하기도 하였다. 오스만 제국의 침략으로 공격을 당하면서 성 전체가 복구 불능 상태까지 가기도 했다 레오폴드 1세가 요한 베른하르트 피셔 폰 에어라흐(Johann Bernhard Fischer von Erlach)에게 새로운 궁전을 지을 것을 명하였다. 그가 지은 첫 번째 도안은 상당히 유토피아적인 것으로서 고전과 근대의 조합을 꿈꾸었고 두 번째 도안에서는 이를 수정해 현실적인 건물 도안으로 변경하였다. 건축은 1696년 시작되어 3년 후에 첫 왕가 축제가 이곳에서 열렸다.
가장 초기 궁전은 원형 그대로 남아 있는 것이 거의 없다. 황제들 각기 모두 장식을 추가하거나 내부의 배치 등을 변경하였기 때문이다. 마리아 테레지아가 건축가 니콜로 파카시에게 로코코 양식으로 궁전을 건축할 것을 명하였고 황제의 결정에 따라 오스트리아 황가의 중추적인 역할을 한 쇤브룬 궁전이 완성단계에 이르게 되었다. 궁전 건물은 로마 양식으로서 인공적인 아름다움을 극대화하였으며 사치스러워 보이는 느낌은 피하였다. 안정적인 느낌을 가미하기 위해 정원을 만들어 여타 유럽 궁전의 정원과 비슷한 형태이다. 조각상을 세워 둔 정원과 본 궁전 사이에 글로리에테가 있다.
▲ 에렌호프 분수(Ehrenhofbrunnen vor Schloss Schönbrunn:슐로쓰 쇤브룬의 브룬넨) 궁전의 정문으로 들어가면 본관 건물과의 사이에 넓직한 광장이 있고 여기에 동서로 커다란 분수가 있다. 1776년에 잘츠부르크 출신의 조각가인 요한 밥티스트 하게나우어(Johann Baptist Hagenauer: 1732-1810)와 티롤 출신의 조각가인 프란츠 안톤 폰 차우너(Franz Anton von Zauner: 1746-1822)가 협동하여 제작한 분수들이다. 동쪽 분수의조각은 두명의 남성이 있고 그 아래쪽에 한 명의 여성이 있는 것이다. 그리고 푸토들이 엉켜서 놀고 있는 조각들도 있다. 세 사람은 각각 합스부르크의 영향이 미치고 있는 지역인 갈라치엔, 로도마이렌, 지벤뷔르겐을 비유한 것이다.
윗쪽의 두 남성은 각가 갈라치엔, 로도마이렌을 상징한 것이며 아래쪽의 여성은 지벤뷔르겐을 상징하였다. 서쪽 분수에도 역시 두 사람의 남성과 한 사람의 여성이 있다. 이들은 각각 도나우, 인(Inn), 엔스(Enns) 강을 상징한 것이다.
▲ 황제의 서재(Arbeitszimmer Kaiser Franz Josephs I) 프란츠 요셉 황제의 집무실은 접견실과는 달리 평범하고 다소 근대적인 장식과 가구가 배치 되어있다. 엘리자베스 여왕을 그린 수많은 그림과 개인적인 사진들은 황제의 인간적인 면을 엿보이게 한다. 프란츠 요셉은 황제는 아침 5시에 일어나 일을 시작했다. 그는 이 책상에 앉아 서류들을 검토하고 간단한 아침식사 들곤 했다. 황제인 그는 스스로 나라의 첫번째 하인이라고 일컬으며 국정을 결정하는 많은 시간을 이 책상에서 보냈다. 두점의 초상화는 프란츠 요셉의 나이 33살때 그린것이고 다른 하나는 그의 아내, 시시라는 애칭으로 불리워 지는 엘리자베스 여왕의 초상화 이다. ▲ 대회랑(Grosse Galerie) 길이 40미터 폭10미터 이상의 그레이트 갤러리는 무도회장으로 사용 되기도 하고 리셉션, 연회와 같은 궁정기능을 잘 소화해 낼수 있는 이상적인 장소 였다. 높은 창문과 반대편의 벽에 있는 크리스탈 거울들은 전체적으로 금과 회반죽의 장식과 천장의 웅장한 로코코 양식의 인테리어는 현존하는 최고의 작품들이다. 1961년 소련의 후르시초프와 미국의 케네디가 정상 회담을 했던 곳이기도 하다. ▲ 당구실(Billard zimmer) 빌리아드 룸은 오디오실과 다른방들로 구성된 프란츠 요셉 황제의 방들 중 첫번째 방이다. 이러한 방들은 진품의 설비와 장식들로 이루어져 있으며 대부분이 19세기 말경의 것들이다. 가구와 악세서리, 그리고 유품들은 세습군주 시대에 궁전에서의 일상생활 즉, 직업적인 면(왕으로서의 사회적 참여 등)과 가정적인 면 두가지 모두를 우리에게 보여 준다.▲ 왕비의 공부방(Stiegenkabinett der Kaiserin Elisabeth) 이곳은 엘리자베스 왕비의 공부방으로 사용된 곳이다. 여기서 그녀는 수만은 편지를 썼으며 시뿐만 아니라 일기를 쓰곤 했다. 군주제가 끝날 때 까지 이방에는 1863년에 만들어진 여왕 전용 층계가 있었고 그 층계는 일층의 그녀 개인 방으로 다시 이어지게 되어 있었다. 오늘날 이 방들은 더 이상 이전과 동일하게 존재 하지는않는데 이는 황후 개인의 취향에 의한것이었다. 이방에는 보라색 실크 벽장식들과 엘리자베스 여왕의 개인적인 물건들을 소장하고 있다. ▲ 황후의 화장(化粧)방(Toilettezimmer der Kaiserin Elisabeth) 엘리자베스 황후의 일과는 그녀의 날씬한 몸매를 유지하기 위해 뷰티케어, 다이어트 운동, 스포츠 등으로 꽉 짜여져 있었다. 그녀의 웅대한 헤어스타일을 위해서는 몇시간이 필요할 정도였다. 그녀의 헤어드레서인 프란체스카 파이팔릭은 황비의 가장 측근이 되었고 때때로 대중적인 석상에까지 모습을 나타내기도 했다.
▲ 호두나무 방(Nussholzzimmer-Audienzzimmer Kaiser Franz Josephs I)
이 방은 섬세한 호두나무 판넬로 이루 져 있어 '호도나무 방'이라고 명명 되었다. 도금한 장식들과 콘솔 테이블들은 전형적인 로코코 스타일이며 마리아 테레지아 여왕의 시기에 우아한 꽃 문양으로 만들어진 것들이다. 프란츠 요셉황제는 이방에서 군인, 재상, 관리들을 접견했다.월요일과 화요일에는 제국의 어떠한 안건이라도 황제에게 제안 할수가 있었다. 프란츠 요셉 황제는 이방에서 그의 재능과 수완들을 오랜시간 동안 유지시키며 발전해 갔다. 이곳에서는 프란츠 요셉 황제의 책상과 여러가지 물건들을 볼수가있다. ▲ 황제와 황비의 부부침실(Gemeinsames Schlafzimmer von Kaiserin Elisabeth und Kaiser Franz Joseph I) 이방은 황제와 황비의 부부침실로 사용 되었다. 1854년에 그들이 결혼할 즈음, 이방은 푸른색과 흰색의 실크 벽지로 되어있었으며 팰리산더 가구가 배치되어 있었다.하지만 이방은 결혼 첫해에만 사용되었는데 그것은 엘리자베스 황후가 숨막히게 형식적인 궁정생활을 거부했기 때문이다. 1870년대부터 그녀는 그녀 자신만의 독립적인 생활을 해 갔고 , 많은곳을 여행하면서 지냈다. 프란츠 요셉 황제는 혼자 외롭게 지내는 날이 많았으나 그녀의 죽음 직전까지도 그녀를 사랑하고 존경하는 마음을 잃지 않았다. 그녀는 1898년 이탈리아의 무정부주의자에 의해 암살되었다. ▲ 프란츠 요제프 황제의 침실(Schlaf zimmer) 침실이라기 보다 주로 휴식 공간으로 이용되었다. ▲ 수련의 방(Turnzimmer-Dressing and Exercice Room) ▲ 옷칠의 방(Vieux Laque Zimmer) 마리아 테레지아가 미망인이 된 후 사용했던 방으로 화려하다. 부군인 프란츠 슈테판 공을 진정으로 사랑했던 것으로 전해진다.
▲ 축하의 방(Ceremony Room) 이곳은 마리아 테레지아와 그녀의 남편 프란츠 슈테판이 공식 행사전 대기실로 사용 하였던 곳으로 방 이름은 벽에 걸려 있는 그림에서 유래 되었다. 그림은 프랑스와 바바리안인들을 보헤미아에서 물리친것을 나타내고 마리아테레지아의 승마학교 축사 장면과 마리아 테레지아에게는 중요한 이벤트인 슈테판 기사 임명 장면을 그린것이다. 이 방에 걸려있는 5개의 그림들은 황실의 매우 중요한 사건들을 기록했다. 1760년 마리아 테레지아의 아들 요셉의 프랑스 보르봉가 공주와의 결혼식, 보르봉의 공주 이사벨라의 빈 입성 장면, 오그스틴 교회(Augustinerkirche)에서 열린 결혼식과 리터홀(Rittersaal)에서 열린 결혼식 후의 저녁 식사 장면, 유럽의 퍼스트 레이디를 나타내는 마리아 테레지아의 초상화가 걸려 있다. 벽에 걸려 있는 그림들 속에는 모짜르트와 그의 아버지도 묘사 되어 있다(투명 유리로 표시 되어 있다) ▲ 궁전정원(Garten) 잘 정돈된 궁전 뒷 편의 프랑스식 아름다운 정원은 마치 여제 마리아 테레지아(Maria Theresa of Austria, 1717-1780)의 느낌이 묻어있는듯 한 형형색색의 아름다운 꽃들로 채워져 있다. ▲ 미로(Irrgarten,Labyrinth)뒤로 '오벨리스크 분수(Obeliskbrunnen)'가 보인다.
▲ 넵툰분수(Neptunbrunnen) ▲ 종려나무 온실
▲ 로마유적 분수(Römische Ruine)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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