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주 '백운사'가 새겨진 북(위), 종 / 고려
부처 / 청동에 금도금, 통일신라
보원사지 철불 /보물
충남 서산 보원사 터, 고려 11세기.
두 손은 모두 없어졌지만 오른손 모양을 보면 항마촉지인, 석가모니불로 추정.
몸에 비해 큰 머리와 어색한 옷주름, 고려 철불의 특징이다.
강원도 원주에서 출토된 세 구의 철불과 비교하면 같은 조각가 집단이 만든 것으로 여겨진다.
*카페 '절을 찾아서' 참조, 백제의 미소란 서산 용현리 마애불에서 1km 정도 떨어진 곳에 보원사 터가 있다.
오층석탑과 승탑, 비도 있음.
찾아보기(검색), 뉴스, 횐지본처, 보원사지에 유물전시관을 짓고 있다. 완공하면 철불은 보원사 터로 돌아갈 것 같다.
현재 보물로 지정되어 있지만 국보 승격을 위해 지역에서 노력하고 있다.
감산사 석조 미륵불 입상(좌)과 아미타불 입상 /국보
경주 감산사는 신라 성덕왕 18년(719)에 김지성이 부모의 명복을 빌고, 국왕과 왕족의 안녕을 기원하기 위해 창건한 사찰.
아미타불, 전체적으로 균형과 조화를 이루고 있으며, 인체 비례에 가까운 사실적 표현을 하고 있는 작품이다.
불상의 얼굴은 풍만하고 눈·코·입의 세부 표현도 세련되어 신라인 얼굴을 사실적으로 묘사하고 있다.
미륵불, 전체 높이가 2.52m로, 상당히 이국적인 풍모를 지녔다. 살짝 비튼 몸, 화려한 장엄, 길게 드리워진 영락 장식, 몸에 밀착된 군의(치마) 등은 처음 보는 표현들인데, 특히 군의는 인도의 도티(dhoti)를 연상하게 한다.
미륵불은 어머니, 아미타불을 아버지를 위하여, 삼국유사 권3 탑상편 남월산조 참조.
석조 약사불좌상 /
경주 남산 삼릉곡 마애대불 건너편에 있었던 것을 이곳으로 옮겼다. 9세기 만든 것으로 여겨진다.
철조불좌상 /보물
경기도 하남시 하사창동 어느 절터에서 나왔다. 하사창동 절터엔 아직도 석조 대좌 일부가 남아 있다.
높이 2.88m, 무게 6.2ton으로 우리나라에서 가장 큰 철불이다.
석굴암 본존불과 같은 형식의옷차림과 손갖춤, 급격히 가늘어진 허리 조형감과 추상화된 세부 표현으로 미루어
통일신라 불상을 계승한 고려 초기 작품으로 보인다.
양우릎에 굳은 옻칠이 있다. 전체 옻칠을 하고 금도금한 것으로 보인다.
석조 비로자나불좌상 /
우리나라에서는 비로자나불상은 8세기에 등장, 9세기에 크게 유행하였다.
중국이나 일본과 달리 보관을 쓰고 있지 않는 부처 모습으로 표현한 것이 특징. 통일신라 후반기로 추정.
*삿된표현일 수 있지만 얼굴이 동그랗고 전체 모습이 매우 귀엽다고 나는 느낀다.
목조 불좌상 /
조선 후기에 널리 만들어진 삼방불 중 한 점(약사불), 삼방불은 걱가불(중방), 약사불(동방), 아미타불(서방).
철조 불좌상 /
경기도 포천 불토. 고려 10세기. 두 손은 없어졌으나 항마촉지인으로 석가불이다.
석조 불두, 통일신라, 8~9세기
철조 불두, 고려, 10세기
철조 불두, 고려, 10세기
철조 비로자나불좌상 / 통일신라 말~고려 초.
도제陶製 여래좌상 / 조선 후기
금동 아미타삼존불 /
아미타불, 대세지보살, 관음보살. 양 보살상 바닥에 쓴 글에 1333년(고려) 시주자 이름이 있다. 장현과 부인 선 씨.
금동 관음보살입상
아미타불
대세지보살
금동 관음보살좌상 / 조선 초 15세기경
세운 무릎 위에 오른팔을 올리고 외논으로 바닥을 짚은 자세는 수월관음 모습에 연유하며,
전륜성왕이 취하는 자세라 하여 윤왕좌輪王座라 한다.
역삼각형의 얼굴과 가늘고 긴 상체, 원형의 커다란 귀고리와 온 몸을 휘감은 화려한 장신구는 명나라 영락永樂 연간(1403~1424)
불상의 영향. 2016년 조사에서 15세기와 16세기에 복장물이 납입한 것으로 확인. 한글이 쓰여진 종이도 발견.
*반가유상도 여성스러우며 그 선이 매우 아름답다. 이 보살상은 매우 고혹스럽다고 나는 느겼다.
통일신라시대 불상들, 8~9세기
동제 주악천인상(악기를 연주하는 천인, 구리), 경북 영덕 유금사(전통사찰)에서 출토.
금동 보살입상
금동 불입상
금동 불좌상
금동 불입상
금동 약사불입상
금동 약사불입상 /보물
금동 약사불입상 /
금동제 불입상-아미타불좌상 /국보
경주 구황동 삼층석탑에서 출토, 황복사로 전해오는 절터 삼층석탑 사리함에서 발견.
신문왕이 세상을 떠나자 692년 아들이 .....
'연가 7년'명 금동불 입상延嘉七年銘金銅佛立像 /국보
경남 의령에서 출토.
광배 뒷면에 제작 연도와 제작지가 기록,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불상.
539년 고구려 낙양(낙랑, 현재 평양) 동사東寺에서 승려 40인이 참여하여 만듦. 천불 가운데 스물아홉 번째 불상.
제작지와 출토지가 다른 대표적인 사례.
금동 반가사유상 / 경남 양산시에서 발견. 삼국시대 7세기
금동 반가사유상 /보물 삼국시대 7세기
금동 반가사유상 / 삼국시대 7세기
금동 불입상 /국보
경기도 양평에서 발견, 삼국시대 7세기 전반.
정면뿐 아니라 사방에서 입체감을 확인할 수 있는 금동불.
중국 북제, 북주에서 수대로 이어지는 옷주름 형태와 원기둥 같은 인체 표현을 보여줌.
이런 입체감 표현은 주조기술 발전과 함께 삼국시대 금동불 수준을 한층 끌어 올렸다.
금동 보살입상 /
강원도 영월에서 발견, 삼국시대 7세기 전반.
소조塑造 보살입상 /
평양 원오리 절터 출토, 삼국시대(고구려) 6세기.
금동 보살입상 /보물 제333호
삼국시대 6세기
신라 불상 / 6세기 ~ 7세기
금동 불입상 / 삼국시대 7세기 전반
금동 불입상 / 삼국시대 7세기 전반
금동 관음보살입상 /국보
삼국시대 7세기 전반, 서울 삼양동에서 발견. 정병을 든 관음보살상, 이때 관음신앙이 있었음을 알 수 있다.
금동 불입상 / 삼국시대 6세기 중엽, 충남 서산 보원사 터에서 출토
납석제蠟石製 불좌상 /보물 제329호
충남 부여 군수리 절터에서 발견, 삼국시대(백제) 6세기
*납석으로 이런 모습 불상은 귀한 모양이다. 이런 불상을 난 처음 본다.
금동 불좌상 / 삼국시대 5세기, 서울 뚝섬에서 발견
우리나라 불상 가운데 가장 이른 시기에 만든 것이다.
두 어깨를 덮은 옷 모습과 앞으로 모은 두 손, 대좌 양옆의 사자 표현 등 4~5세기 중국에서 유행하던 초기 불상 형태와 비슷.
우리나라 처음 불교가 들어왔을 때 불상을 가늠해 볼 수 있다.
고려시대 불상, 신체를 사실적이고 생동감 있게 묘사, 제작 기술면에선 신라 불상엔 못 미친다.
불교신앙이 전국으로 확산, 지역마다 특색있는 불상이 만들어졌다.
고려 전기에는 통일신라 전통에 따라 철불과 석불, 항마촉지인 석가불과 비로자나불이 만들어졌다.
고려 후기엔 세련되고 온화한 불상이 유행, 원나라 라마불교 영향으로 만든 이국적 불상도 일시적으로 유행하였다.
금동 보살좌상 / 14세기, 우편 금동 보살좌상은 이홍근 기증.
금동 탄생불 / 고려 후기, 인천 강화에서 발션.
청동 불감(좌) / 조선 1417년, 경남 고성 출토. 대좌 측면에 영락 15년(1417) 명문이 있다.
금동 불감(우) / 고려 14세기
불감은 부처를 모신 작은 법당이다. 석탑이나 불상 안에 넣었다. 고려 말부터 조선 초.
'정덕십년' 명 석조 지장보살좌상 / 보물 제1327호
대좌 뒤에 '정덕십년' 명문이 있다. 조선 1515년이다.
은제도금 관음보살좌상, 은제도금 아미타불좌상 / 조선 15세기
금동 불좌상, 금동보살좌상 / 경기 남양주 수종사 오흥석탑 출토, 조선 1628년
금동 다층소탑(공양탑) / 고려 전기
높이 74.5cm, 불전 안에 두는 사리탑 역할로 추정.
'천흥사'명 청동 종 /국보 제280호
통일신라 종을 계승한 고려시대 가장 오래된 종이다.
요나라 건호 통화 28년(고려 1010) 성거산 천흥사에서 만들었다는 명문이 있다.
*성거산, 충남 천안시에 있는 산이다.
청동 종 / 고려 13세기
'경암사' 명 청동 반자瓊巖寺銘靑銅盤子(경암사 쇠북) / 고려 1073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