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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연하다’고 생각하지 않으면, ‘모든 일’이 고마워집니다.
샬롬! 지난밤 잘 쉬셨는지요? 오늘내일 비소식이 있습니다만, 그래도 무더위는 그대로일 겁니다. 아무쪼록 건강한 하루가 되시길 빕니다. 어제는 ‘노인의 눈물’에 관한 것을 소개해드렸는데, 눈물은 우리 몸에서 해로운 물질을 씻어내는 역할을 할 뿐만 아니라, 혈액순환이 촉진되어 혈압을 내려가게 한답니다. 그래서 눈물을 흘리면, 몸이 더 가볍고 차분해진다고 하네요.
남편은 저에게 ‘고맙다’는 말을 많이 합니다. 시댁식구를 만나고 온 날이면, 서투른 한국어로 이렇게 말하곤 합니다. “우리 가족 만났어요? 고마워요!” 그거야 제가 그를 사랑하는 마음으로 노력한 것이 있으니,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 가족을 만나고 온 날에도, 그러니까 남편에게는 처가 식구들을 만나고 오는 길에도, 남편은 어김없이 ‘고맙다’고 말하곤 합니다. ‘우리 가족을 만나고 왔는데, 왜 자기가 고맙다는 거지?’
집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제가 요리할 때는 물론이고, 남편이 요리를 해서 제가 설거지를 해도, 남편은 저에게 ‘고맙다’고 합니다. 택배를 받아놓은 것에 대해서도, 고양이 밥 준 것에 대해서도 ‘고맙다’는 말을 잊지 않습니다. 제가 청소나 빨래를 하면, 매번 남편은 이렇게 말합니다. “와, 엄청 깨끗해요! 수고했어요. 정말 고마워요!”
처음에는 그게 낯설고 불편했습니다. 남도 아니고 가족끼리 너무 선 긋는 거 아닌가 싶기도 하고, ‘저도 남편처럼 매번 고맙다는 말을 해야 하나?’싶어서 그냥 서로 안 하는 게 낫지 않을까 싶기도 했습니다. 그렇게 11년을, 하루도 빠짐없이 고맙다는 말을 들으면서 보냈습니다. 고맙다는 말을 수천 번 듣고 나서야, 저는 그 말에 담긴 의미를 알게 되었습니다.
세상에 당연한 것은 없습니다. 배우자가 당연히 해야 할 일은 없습니다. 제가 요리를 했다고, 배우자가 당연히 설거지를 해야 하는 것이 아닙니다. 청소나 빨래는 물론이고, 택배를 받거나 고양이 밥을 주는 것처럼, 아주 작은 일도 당연히 해야 하는 일이 아닙니다. 결혼했다고 해서, 저의 가족을 당연히 소개해주고, 상대의 가족을 당연히 만나야 하는 것이 아닙니다. 당연하다고 생각하지 않으면, 모든 일이 고마워집니다.
그 마음을 배운 저는, 요즘 남편에게 매일 ‘고맙다’고 합니다. 그리고 그 말이, 남편이 저를 위해서 하는 모든 일에 의미를 부여하고, 아무리 작은 일에도 사랑을 담게 한다는 것을 알았습니다.(출처; 좋은생각, 서수진/소설가)
딸네가 영국에 있을 때, 한 번 영국에 간 적이 있습니다. 어느 날, 아침에 일어나서 밖에 나갔을 때, 생전 처음 보는 옆집 아저씨가 저에게 눈웃음으로 인사를 했습니다. 사실 그 이전에, 서양 사람들은 ‘생큐를 입에 달고 산다.’는 말을 이미 들어서 알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직접 겪고 보니, 참으로 신선하게 느껴졌습니다. 그래서 저도 아파트 생활을 시작하면서, 남녀노소를 막론하고, 사람을 만날 때마다 무조건 제가 먼저 인사합니다. 그런데, 제가 몇 번 했으면, 상대가 먼저 할 법도 한데, 그러나 그런 일은 극히 드뭅니다. 아무튼, 우리나라에서도 ‘고맙다’고 인사하는 것이 ‘보편적이고 일상적인 생활’이 되었으면 하는 소망을 가져봅니다.(물맷돌)
[또 너희가 너희 형제들에게만 인사한다면, 남보다 나을 것이 무엇이겠느냐? 믿지 않는 사람들도 그렇게 하지 않느냐? 그러므로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서 완전하심과 같이 너희도 완전하여라.(마5:47-48,현대인)]
“엄마, 아직도 발가락이 졸려요!”
샬롬! 밤새 평안하셨는지요? 지난밤도 열대야로 밤잠을 설치신 것은 아닌지요? 아무쪼록 건강하고 행복한 하루가 되시길 빕니다. 제가 ‘나이 들면서 점차 눈물이 많아진다.’고 밝힌 적이 있습니다. 그런데 사실은, ‘나이가 들수록 눈물의 양은 줄어든다.’고 합니다. 다만, 노화로 인하여 눈물관이 좁아지면서 눈물이 넘쳐 흐리기 때문에 눈물이 많다고 느끼는 것뿐이랍니다.
또래보다 좀 빠른 언니를 둔 탓에, 둘째의 성장속도는 상대적으로 느리게 느껴졌습니다. 글자를 깨쳐 부모 앞에 책을 가져다 놓고 뽐낼 시기가 된 것 같은데, 아무 말 없이 그림책만 보는 아이가 내심 걱정스러웠습니다. 길을 걸어갈 때마다 언제쯤 간판글씨를 읽을 수 있을지 조바심이 났습니다. 아이가 곤히 잠든 후엔 남편에게 걱정을 털어놓기도 했습니다. “아이마다 개인차가 있다는 걸 아는데도, 마음이 복잡하네요. 둘째가 정상적인 발달을 하고 있다는 것을 알지만, 첫째랑 비교하면서 자꾸 욕심과 죄책감이 커져요.”
그렇게 애를 끓이던 둘째는, 6살의 겨울 어느 날, 갑자기 책을 가져오더니 소리내어 읽는 모습을 보여줌으로써 우리를 깜짝 놀라게 했습니다. 얼마나 놀랬던지, 아직도 저는 그날 아이가 입었던 옷이 기억납니다. 늦잠을 자는 아이를 깨우며 ‘빨리 일어나 밥 먹으라!’고 재촉하면 “엄마, 아직도 발가락이 졸려요!”하면서 눈을 뜨지 못하던 아이, 유치원 가는 길에 떨어진 나뭇잎을 기어이 만져야 하는 아이, 과자 부스러기를 열심히 나르는 개미를 끝까지 따라가는 아이입니다. 그러나 그 뒤에는, 항상 그런 아이의 느릿한 속도를 지켜보지 못하고 마냥 재촉하기만 하던 제가 있었습니다.
초등학교에 입학한 후에도, 아이는 느긋했습니다. 저만 혼자 속을 끓였습니다. 학교에서 돌아온 그 날도, 아이는 방에서 나와야 할 시간을 한참 넘기며 계속 뭔가를 하고 있었습니다. 아이를 다그치기도 하고 달래기도 하면서, 저도 조금씩 지쳐갔습니다. 이제 초등학교에 입학했으니, 달라지기를 바라는 욕심으로 자꾸 재촉하던 제가 육아우울증을 겪고 있었습니다. 결국 그날도 저는 인내심이 한계에 이르러 “아직도 옷을 갈아입지 않고 있으면 어쩌자는 거야?!”라고 언성을 높이고 말았습니다.
그 순간, 문이 열리더니 아이가 제게 뭔가를 내밀었습니다. 그날 학교에서 받았다는, 포도 맛 젤리 하나와 작은 쪽지였습니다. 손바닥만 한 쪽지에는 “엄마, 사랑해요! 꽃이 피듯, 엄마를 향하여 제 마음이 피어나고 있어요!”라고 적혀 있었고, 벚꽃나무 한그루가 함께 그려져 있었습니다. ‘사랑의 벚꽃나무’라고 적힌 아이의 글씨를 보자, 눈물이 핑 돌았습니다.
그 뒤의 기억은 사실 선명하지 않습니다. 아마도 아이 앞에서 눈물을 보이지 않으려고 얼른 아이를 꼭 품에 안아주었던 것 같습니다. 그때 제 아이의 세계는 어떤 마음, 어떤 색깔이었을까요?(출처; 샘터, 이은주/ 충남 천안)
어떤 분이 말씀하기를 ‘이 세상의 부모들 중, 그의 과거 학생 시절 모범학생이 아닌 사람이 드물다.’고 했습니다. 그런가 하면, ‘자기 자녀를 바라보는 부모들 중에서, 그 자녀가 천재 아니면 영재 아닌 경우가 드물다’고 했습니다. 또 하나, ‘이 세상 다수의 부모들이 그 자녀를 자신을 드러내는 선전판 삼으려는 유혹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겁니다. 그래서 그 자녀를 무리하게 재촉하거나 안달해 하면서, 글쓴이처럼 ‘육아우울증’까지 걸리게 되는 것입니다. 아무튼, 자녀는 ‘부모의 소유물’이 아니라는 것을, 우리는 명심해야 합니다. 자녀는 하나님께서 주신 선물입니다. 고로, 부모의 욕심에 따라 자녀를 양육하려고 할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사람으로 만들기 위하여 기도로써 주님께 지혜를 구해야 합니다.(물맷돌)
[자녀는 여호와께서 주신 선물이며 상급으로 주신 그의 축복이다.(시127:3,현대인) 부모들에게도 한마디 당부하겠습니다. 자녀들을 너무 꾸짖지 마십시오. 또 잔소리를 늘어놓아 반항심을 일으키거나 분노를 품게 하지 마십시오. 그보다는 주님의 사랑이 담긴 훈계와 조언과 충고로 키우십시오.(엡6:4,현대어)]
우리가 모든 것을 다 바쳐서 선하게 살아야 할 이유?
샬롬! 지난밤 편히 쉬셨는지요? 요즘 휴가철인데, 혹시 이 편지를 휴가지에서 받아보고 있는 것은 아닌지요? 혹시 그렇다면, 즐겁고 행복한 휴가가 되시길 기원합니다. ‘아침편지’를 보내드리고 있는 저처럼 집에서 휴가를 보내고 계신다면, 그 나름 지혜로운 선택을 하지 않았나 싶습니다. 아무쪼록 무더운 여름을 아무 탈 없이 건강하게 잘 지내셨으면 합니다.
‘소크라테스’는 사형집행을 기다리면서 한 달간 감옥에서 지냈는데, 믿기 어려울 만큼 평안했고, 심지어 ‘기뻐하는 모습’을 보였다고 합니다. 죽음을 몇 시간 앞둔 그의 모습을 기록한 글(파이돈)은 고전문학에서 ‘가장 위대한 글’로 꼽히고 있습니다. 그는 죽는 순간까지 “신성한 능력인 하나님과 영혼이 존재하며, 이를 믿는 사람은 모든 것을 다 바쳐서 선하게 살아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이 사실을 믿기 때문에, 죽음이 전혀 두렵지 않다’고 하면서 오히려 눈물 흘리는 제자들을 위로했습니다.
제자들이 ‘망명하라’고 요청했으나, ‘자신이 재판에 응한 이상, 판결이 아무리 불리하더라도 따라야 한다.’면서 제자들의 요청을 거부했습니다. ‘불의한 행동은 어떤 이유로라도 행할 수 없다’는 게 그의 신념이었습니다. 그는, 혼탁한 그리스 사회에 ‘도덕과 양심의 절대성’을 최초로 명확히 했을 뿐 아니라, 죽음 앞에서 진리를 따르는 ‘실존적 삶’을 생생하게 보여주었습니다.
플라톤이 방대한 철학을 저술할 수 있었던 근본적인 힘은 스승의 언행일치(言行一致)적 삶을 목격했기 때문이라 할 수 있습니다. 진짜 용기를 직접 보는 것처럼, 결정적인 체험이 어디 있겠습니까? 그가 보여준 ‘정신의 위대함’이 플라톤과 바울 등을 거치면서 서양문명의 초석이 된 것입니다.
이렇게 보면, ‘소크라테스가 왜 죽어야 했는지?’ 조금은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는 재판에서 사형이 확정되자, 그 자리에서 일어나 재판관들에게 마지막 말을 남겼습니다. “이제 떠날 때가 되었군요? 나는 죽기 위해서, 여러분은 살기 위해서. 그러나 우리 중에 어느 쪽이 더 좋은 길을 향하여 가고 있는지는, 하나님 말고는 아무도 모릅니다.”
어느 시대, 어느 사회나 좁쌀같이 왜소한 정신과, 아름드리나무처럼 큰 정신이 있는 법입니다. 그의 죽음은 우리의 큰 정신을 이루는 밑거름이 되었고, 우리는 그 덕분에 오늘 ‘사람답게 살 수 있는 공간’을 얻은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출처; 좋은생각, 윤재윤/ 변호사)
그렇습니다. ‘소크라테스’야말로 우리에게 ‘위대한 죽음’을 보여주었습니다. 사실 예수께서 가셨던 ‘십자가의 길’은 우리 같은 피라미는 감히 바라볼 수 없는 길입니다. 하지만, ‘소크라테스의 죽음’이라면, 그 시늉만이라도 내볼 수 있는 용기가 생길 법도 합니다. 아무튼, 소크라테스는 ‘인간이 왜 착하게 살아야 하는지?’ 그 이유를 밝혀주었습니다. 하나님이 보시기에 그 길이 ‘더 좋은 길’이기 때문입니다. 오늘도 ‘이것이냐, 저것이냐?’ 선택해야 할 일이 있다면, 주님이 보시기에 좋은 길을 선택해야겠습니다.(물맷돌)
[그 누가 죽음을 맛보지 않고 불로장생할 수 있으며, 그 누가 제 목숨을 죽음의 세력에서 건질 수 있을까요?(시89:48,현대어) 나는 죽은 자를 일으키고 그들에게 다시 생명을 주는 자이니, 누구든지 나를 믿는 사람은 죽는다 하여도 다시 살 것이다. 또 살아서 나를 믿는 사람은 결코 죽지 않을 것이다. 네가 이것을 믿느냐?(요11:25-26,현대어)]
“남자가 울면 뭐 어때서? 난 울고 싶으면 울 거야!”
샬롬! 밤새 평안하셨는지요? 오늘 하루도 내내 건강하게 보내시길 기원합니다. 저는 ‘아침편지’를 발송하기 이틀 전에 준비해놓고, 그 사이 대여섯 차례 검토합니다. 그런데, 모 신문사 부장인 김윤덕 씨는 ‘한 번 칼럼을 쓸 때마다 100번 넘게 고친다.’고 합니다. 저 나름 많이 검토한다고 생각했는데, 김 부장에 비하면 그야말로 ‘번데기 앞에서 주름잡은 격’이라 할 수 있습니다. 참고로, 김 부장은 목사님의 딸로서 아나운서 김성주 씨의 누나입니다.
누군가 우는 소리가 나서 안으로 들어가 보면, 열에 아홉은 ‘민찬’이었습니다. 그날도 익숙한 울음소리가 들린 것은 야구부가 입장하고 30분쯤 지나서였습니다. 역시 민찬이가 대성통곡하고 있었습니다. “저희끼리 놀고 싶다고 세 번이나 말했는데, 얘가 자꾸 끼어들어 방해하잖아요!” 야구부 아이 하나가 억울한 얼굴로 툴툴거렸습니다. 서로 부딪히지 않도록 구역을 정해줬는데, 형들과 놀고 싶은 민찬이가 자꾸 금을 넣어간 모양이었습니다.
저는 아이들을 억지로 화해시켰습니다. “서로 사과하기 전까지 아무도 여기서 놀지 못한다. 다들 집에 갈래?” 마지못해 건성건성 미안하다는 말을 주고받은 아이들이 각자 자기 자리로 돌아가는데, 야구부 막내가 혀를 날름 내밀며 “바보, 남자가 무슨 그럴 걸로 우냐?”하고 말했습니다. 그러자, 민찬이가 눈을 똑바로 뜨더니, 자기보다 한참 큰 형들을 향하여 “남자가 울면 뭐 어때서! 난 울고 싶으면 울 거야!”하고 소리쳤습니다.
민찬이는 아는 것 같았습니다. 눈물을 참는 씩씩한 마음 반대편에는, 눈물을 참지 않을 용기가 있다는 것을! 그것은 ‘제가 한 번도 배운 적 없고 가져본 적 없는 용기’였습니다. 그날 이후, 저는 민찬이를 예전처럼 미워하지 않게 되었습니다. 툭하면 울면서도, 민찬이는 자기만의 방식으로 하루하루 용감한 어린이가 되어갔습니다. 티격태격 다투던 친구에게 먼저 사과도 하고, 관장님께 야단맞아도 다음 날이면 다시 까불거리며 인사하고, 지난여름에는 국기원 심사를 멋지게 통과해서 품띠도 땄습니다.
그곳에서 만났던 아이들 얼굴을 거의 다 잊었지만, 민찬이는 아직도 또렷이 기억합니다. 갈색빛이 돌던 숱 많은 곱슬머리와, 유난히 길었던 속눈썹, 한쪽만 쏙 들어가던 보조개 등. 하지만, 어느새 중학생이 되었을 그 아이의 모습을 상상하는 일은 언제나 조금 어색합니다.(출처; 샘터, 하현/작가)
뭐든지 적극적으로 하는 사람이 문제도 자주 일으킵니다. 조용하고 얌전한 사람은 문제를 일으키지 않습니다. 그 대신, 하는 일도 별로 없습니다. 혹시 자녀들 중에 민찬이 같은 성격의 소유자가 있다면, 스스로 완급을 잘 조절할 수 있도록 어릴 때부터 훈련시켜야 할 겁니다. 아무튼, 그런 사람이 일도 앞장서서 하고, 문제도 앞장서서 일으킬 가능성이 많습니다.(물맷돌)
[주께서 더욱더 깊이깊이 깨달음 주시리니, 열심 다하여 주님의 명령 따르렵니다.(시119:32,현대어) 목적지까지 달려서 상을 타려고 열심히 노력하고 있습니다. 이 상(賞)은 그리스도 예수께서 우리를 위해서 이루신 그 일을 바탕으로 하여 내리는 것입니다. 지금 하나님께서는 이 상을 주시려고 나를 하늘로 부르고 계십니다.(빌3:14,현대어)]
‘언제나 최선을 다해서 우는 그 아이’를 속으로 참 많이 미워했습니다.
샬롬! 밤새 평안하셨는지요? 8월 초하루 아침입니다. 아무쪼록 이번 한 달도 내내 무탈 안녕하시길 진심으로 기원합니다. 종래에는 음주운전 사고가 나면, 가해자가 대인(對人)천만 원과 대물(對物)5백만 원만 내고, 나머지는 보험사가 책임졌다고 합니다. 그러나 이제(지난달 28일부터)는, 가해자가 대인 1억5천과 대물 2천만 원을 물어내야 한다고 합니다. 음주사고뿐만 아니라, 약물 ? 무면허 ? 뺑소니 사고도 마찬가지라고 하네요.
우는 아이를 달랠 때는 세 가지를 기억해야 합니다. 첫째 ; 최대한 침착한 태도 유지하기. 보호자가 더 당황하거나 안절부절 못하는 모습을 보이면, 아이가 안정을 되찾기 어려워집니다. 둘째 ; 우는 것 자체를 부끄럽거나 나쁜 일처럼 이야기하지 않기. 아이가 감정을 표현하는 일을 부정적으로 받아들일 수 있습니다. 셋째 ; 울음을 그치는 조건으로 즉각적인 보상 제공하지 않기. 무언가를 얻는 가장 빠른 방법이 우는 것이라고 학습하게 되면, 원하는 게 있을 때마다 우는 버릇이 생기기 쉽습니다.
민찬이 할머니는 이 모든 것을 정확히 반대로 실천하는 양육자였습니다. 민찬이가 ‘와아앙’하고 울음을 터뜨릴 때마다, 할머니는 온 세상의 한 귀퉁이가 무너진 것처럼 당황하며 이렇게 말하곤 했습니다. “왜 울어, 우리 애기! 저기 친구들도 많은데 아이 창피해. 뚝 그치면 슬러시 사줄게.” 할머니가 자신의 눈물을 두려워한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는 민찬이는 깜찍하게 이런 협상을 시도하기도 합니다. “슬러시 말고 터닝메카드! 터닝메카드 사줘!” 그리고 다음날이 되면 어김없이 새로운 터닝메카드 장난감을 들고 나타났습니다.
저는 민찬이 할머니를 이해하면서도 그 모습이 꼴 보기 싫었습니다. 엄마아빠가 모두 바빠서 학원을 세 개씩이나 다니는 일곱 살짜리 손자가 안쓰러운 마음은 충분히 알 것 같았지만, 그럴수록 민찬이는 점점 더 울보 떼쟁이가 되었습니다. 문제는, ‘그런 민찬이를 제가 열심히 어르고 달래야 한다.’는 겁니다. 평일 오후 2시부터 5시까지, 저는 민찬이 보호자가 되었습니다.
민찬이는, 구슬 아이스크림이 먹고 싶어도 잉잉, 영어학원에 가기 싫어서 엉엉, 술래잡기 가위바위보에 져서 흑흑, 친구가 장난감을 빌려주지 않아서 꺽꺽…. 그의 등을 토닥이며 달래주면 어리광을 부리느라 더 울고, 모르는 척하면 오기가 생기는지 제가 다가갈 때까지 악을 쓰면서 울었습니다. 언제나 최선을 다해서 우는 그 아이를, 저는 속으로 참 많이 미워했습니다.(내일 계속)(출처; 샘터, 하현 / 작가)
저는 ‘민찬’이를 긍정적으로 보고 싶습니다. ‘뭐든지 적극적인 아이에게 밝은 장래가 있다’고 보기 때문입니다. 다만, 그 아이의 그런 성향을 바람직한 쪽으로 물꼬를 터주야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민찬이의 지능이 결코 나쁘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머리가 있어야 잔꾀도 부릴 줄 알기 때문입니다. 아무튼, 아이가 어릴 적에, 부모나 대리 보호자가 그 아이의 방향과 그 틀을 올바르고 바람직한 방향으로 미리 바로 잡아주어야 합니다.(물맷돌)
[나이 어린 사무엘은 몸이 점점 자라감에 따라 여호와와 뭇사람들에게 더 많은 사랑을 받게 되었다.(삼상2:26,현대어) “어린아이들이 내게 오는 것을 막지 말라. 하나님 나라는 이런 어린아이와 같은 사람들의 것이다. 내가 분명히 말한다. 누구든지 어린아이와 같은 마음으로 하나님 나라를 받아들이지 않으면 결코 그의 나라에 들어가지 못할 것이다.” 그리고 예수께서는 어린아이들을 품에 안고 그들의 머리 위에 손을 얹어 복을 빌어주셨습니다.(막10:14-16,현대어)]
‘정글 속 생쥐’가 살아남을 수 있는 방법은?
샬롬! 지난밤 편히 잘 쉬셨는지요? 7월의 마지막 주말아침입니다. 오늘도 폭폭 찌는 삼복더위를 열심히 잘 물리치시고, 내내 건강하고 행복한 하루가 되시길 기원합니다. 요즘은 그 사는 형편이 좀 어렵더라도 한두 가지 영양제는 복용하는 분들이 많아졌습니다. 그런데, 영양제의 기본적인 조합은 오메가3, 마그네슘, 비타민B, 유산균, 비타민C라고 합니다.
저는 주짓수 흰 띠입니다. 제가 다니는 체육관 관장님은 가장 초보자 단계인 흰 띠를 ‘정글 속 생쥐’로 비유하고 있습니다. 생쥐로 살아가기란 참 쉽지 않기 때문입니다. 흰 띠 생쥐가 처음 맞닥뜨리는 것은 ‘어색함’이라는 맹수입니다. 체육관은 낯설고, 도복을 입고 있는 제 모습도 이상하기만 합니다. 새로운 동작을 배울 때는 우습기 그지없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체육관 탈의실에 붙어있는 글을 보았습니다. “초보자 여러분, 배우고 익히기는 어려운 일입니다. 체육관에 매일 나오는 것만으로도 훌륭한 일입니다. 꾸준히 하는 나에게서 어제와 다른 나를 발견하길 바랍니다.” 이 글을 읽은 후, 저는 가능한 자주 체육관으로 향하고 있습니다. 덕분에, 저는 어색함에서 간신히 벗어날 수가 있었습니다.
그러나 생쥐는 곧 ‘스파링’에서 진짜 맹수를 만났습니다. 스파링은 ‘같이 훈련하고 있는 파트너’와 ‘주짓수 기술로 5분 동안 겨루는 연습경기’입니다. 처음 제가 파트너에게 제압당했을 때는 도저히 빠져나올 수가 없었습니다. 배운 기술은 쉽사리 생각나지 않고, 그마저도 써먹기 전에 금세 제지당했습니다. 그러자, 주짓수에 대한 흥미가 뚝 떨어졌습니다.
제가 “관장님, 스파링 할 때에 제가 뭘 해야 할지 모르겠어요?”하고 말하자, 관장님은 “흰 띠는 정글 속 생쥐잖아요. 도망치고 빠져나오고 버티는 것이 잘하는 겁니다.”라고 답했습니다. 지금까지 ‘뭐든지 잘해야만, 잘한다.’는 소리를 들으면서 살아왔습니다. 그런데, 이곳에서는 ‘못하는 게 잘하는 것’이라고 가르치고 있습니다. 사실 저 자신도 ‘잘하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이었습니다. ‘못하고 있는 상태’를 심히 견디기 어려워했습니다. 치열한 생존경쟁 사회에서 빨리 맹수가 되지 못하면 쉽게 그만두곤 했습니다.
그러나 주짓수를 배우면서, ‘비록 잘하지 못하더라도, 그런 제가 초라하더라도, 꾸준히 하는 것이 대단한 일이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저는 여전히 작지만, 그러나 맹수들 틈에서 주눅 들지 않고 있는 ‘용감한 생쥐’입니다.(출처; 좋은생각, 이지혜 / 제주도 제주시)
오래 전 ‘개그콘서트’ 프로에서 ‘박성광’이 ‘일등만 기억하는 더러운 세상’이라고 외치던 일이 생각납니다. 그런데, 글쓴이가 다니고 있는 체육관 관장은 “흰 띠 초보일 때는 ‘정글 속 생쥐’와 마찬가지이기 때문에, 이길 수 있는 실력도 없으면서 억지로 이기려고 할 것이 아니라, 그저 ‘도망치고 빠져나오고 버티는 것’이 잘하는 것이다”라고 말했답니다. 그러면서 ‘꾸준히 하는 것이 대단한 일이다’라고 했다는 겁니다. 맞는 말입니다. 아니, 진리입니다. 뭐든지 ‘꾸준히 계속하는 것’이 진정 중요한 일입니다.(물맷돌)
[여호와여, 주님은 내 하나님이십니다. 주께서 옛날부터 놀라운 일들을 계획하시고 변함없이 꾸준하게 이루어주셨으니, 나는 주님만 찬양하고, 주님의 성호만 기리겠습니다.(사25:1,현대어) 낙심하지 말고 선을 행하십시오. 실망도 포기도 하지 않고, 꾸준히 선을 행하다 보면, 복을 거두어들일 날이 올 것입니다.(갈6:9,현대어)]
한 번뿐인 소중한 인생, 우물쭈물하다 갈 수는 없잖아요?!
샬롬! 밤새 평안하셨는지요? 오늘도 꽤 무더우리라 여겨집니다. 삼복더위 잘 이겨내시고 건강한 하루가 되시길 기원합니다. 오늘은 ‘태음인(太陰人)’의 보양식을 소개합니다. 태음인 중엔 체격이 큰 분이 많은데, 더위를 잘 이겨내지 못하고 땀을 많이 흘린다고 합니다. 이런 분들은 콩국을 보양식으로 먹는 것이 좋답니다. 그리고 참치회와 추어탕, 그리고 설렁탕도 좋으며, 차는 매실차가 좋다고 하네요.(출처; 마음건강 길)
영정사진 촬영이 끝나자, 웰다잉에 대한 강의가 시작되었습니다. 강사교수님은 “오늘은 어르신 참가자가 많아서 ‘행복하게 인생을 마무리하는 법’에 초점을 맞췄다”고 했습니다. 그는 ‘왜, 이런 해괴망측한 일을 하느냐?’고 하는 사람도 있지만, 오늘 체험은 ‘빨리 돌아가시라’고 하는 게 아니라, ‘남은 생을 더 잘 살고 잘 마무리하자’는 의미에서 하는 것이라고 설명했습니다.
강사가 어르신들을 바라보며 “옛날 같으면 다 돌아가셨을 나이라, 지금 사는 것은 덤으로 사는 겁니다. 덤으로 사는데, 마음 졸여가며 아옹다옹 살 필요가 있나요?”하자, 곳곳에서 “아니요!”소리가 터져 나왔습니다. “(죽고 나서)보고싶은 엄마 아빠가 돼야 합니다. 지금은 자식과 갈등이 있더라도, 화해하고 용서해야 합니다. 개똥밭에 굴러도 이승이 낫습니다. 하늘이 준 생명은 악착같이 살다 가야 합니다.”라고 하자, 어르신들은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큰 화면에 ‘죽을 때 후회하는 것’이란 문구가 떴습니다. ‘1.건강 못 챙긴 것. 2.남을 가슴 아프게 했던 것. 3. ‘고마워’ ‘사랑해’라고 말하지 않았던 것. 4.죽음을 준비하지 못한 것.’ 몇몇 어르신은 “맞다, 맞아!”하시면서 맞장구를 쳤고, 어떤 분은 휴대전화 카메라로 이 화면을 찍기도 했습니다.
‘어떻게 죽기를 바라느냐?’고 하는 질문에, 어느 할머니는 이렇게 답했습니다. “아프지 않고, 건강하게 살다가, 편안한 마음으로 죽고 싶습니다. 자다가 가는 것도 상관없고, 조금만 아파서 자손들하고 대화를 나눈 뒤에 죽는 것도 좋을 것 같아요.” 그러자, 강사는 “많은 분이 자다가 조용히 죽기를 원합니다. 그러나 그것은 가족에겐 나쁜 죽음입니다.”라고 했습니다. “현대의학으로 나를 살릴 수 없다면, 사랑하는 가족의 품에서 돌아가시는 게 가장 품위 있는 죽음이 아닐까요?”라고 말했습니다.
임종체험관을 나오면서 어르신들과 소감을 나눴습니다. “처음엔 무서웠는데, 하길 잘했다”고 입을 모았습니다. 한 아저씨는 “이승에서 마지막이라고 하니, 과거가 주마등처럼 지나가더라. ‘인간답게, 품위 있게 죽고 싶다’는 생각이 새삼 들었다”고 했습니다. 어떤 아주머니는 “앞으로 얼마 남았을지 모르지만, ‘평소에 잘 살아야 잘 죽을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했습니다.
2시간 30분가량의 임종 체험을 끝내고 센터를 나왔습니다. 두렵기만 했던 죽음을 살짝 맛본 것 같아, 오히려 홀가분한 마음이 들었습니다. 죽을 때 억울하거나 아쉽지 않도록, 하루하루를 후회 없이 살아야겠다고 다짐했습니다. 센터 문에 붙은 글귀가 눈에 들어왔습니다. ‘우리 모두는 시한부 인생입니다. 한 번뿐인 소중한 인생, 우물쭈물하다 갈 수는 없잖아요?!’
[사람이 한 번 죽는 것은 정해진 운명이지만, 죽은 후에는 심판이 있습니다.(히9:27)]
어디선가 흐느끼는 소리가 자그마하게 들려왔습니다.
샬롬! 간밤에 별고 없으셨는지요? 혹시 열대야로 밤잠을 설치신 것은 아닌지요? 아무쪼록 오늘 하루도 삼복더위 잘 이겨내시고 내내 평안하시길 빕니다. ‘소음인(少陰人)’은, ‘키와 몸이 작지만, 균형 잡힌 몸매와 얌전하고 온화한 성품의 소유자랍니다. 이런 사람의 여름철 보양식이 바로 ’삼계탕‘이고, 과일로는 레몬과 복숭아, 차는 인삼차가 좋다고 합니다.
“여러분, 숨이 붙어 있는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잠깐 눈을 감고 마음으로 사랑하는 이들과 인사 나누세요. 가슴이 답답하고, 곧 숨도 멎을 거예요. 이제 여러분은 죽었습니다. 죽은 여러분의 시신을 화장해서 장례를 치르겠습니다.” 이 말과 함께 관이 닫혔습니다. 빛이 사라지고, 주변이 고요해졌습니다. 어디선가 흐느끼는 소리가 자그마하게 들려왔습니다.
옴짝달싹하기도 어려운 비좁은 관이 답답했습니다. 세상과 단절된 듯한 외로움이 느껴졌습니다. 몇 분쯤 지났을까, 가족의 얼굴이 떠올랐습니다. ‘나는 어떤 삶을 살았나, 지금 죽는 건 좀 억울한데….’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던 찰나에 구원의 소리가 들려왔습니다. “슬프고 아픈, 기억하기 싫은 일들은 관 속에 모두 다 버리고, 새롭게 태어납시다.”란 말과 함께 경쾌한 생일 축하노래가 울려 퍼졌습니다. 이렇게 저의 ‘임종체험’이 끝났습니다.
지난해 우리나라에서 31만 7천 8백 명이 생을 마감했습니다. 사실, 죽음처럼 자연스럽고 확실한 일도 없는데, 많은 사람이 ‘죽음’을 생각하는 것조차 꺼립니다. 하지만, 우리의 삶은 속절없이 죽음을 향하여 달려가고 있습니다. 세상 모든 사람은 언젠가는 반드시 죽게 되어 있습니다. 부자도 가난한 사람도, 노인도 청년도 죽습니다. 누구나 맞이해야 할 죽음, 쉬쉬하며 피하기만 할 게 아니라, 살아있을 때에 고민하고 준비해야 하지 않을까요?
임종체험은 이런 생각에서 비롯되었습니다. 죽음을 간접적으로 체험해보는 것입니다. ‘웰다잉(well-dying·품위 있는 죽음)’에 대한 사회적관심이 높아지면서 생겨났습니다. 우리나라에서는, 2000년대 중반부터 학교와 지자체, 복지단체와 종교기관 등을 중심으로 확산되어 갔고, 연예인들이 체험하는 방송도 나오면서, 한때 젊은이들의 ‘버킷리스트(죽기 전에 해보고 싶은 일들)’ 항목에 오르기도 했습니다.
임종체험의 첫 순서는 ‘영정사진 촬영’입니다. 우리는 촬영실 앞에서 자기 차례를 기다리며 수다를 떨었습니다. “벌써 가기 싫다”는 할아버지도, “예쁘게 찍어 달라”는 할머니도 있었습니다. 사진사는 활짝 웃는 표정을 권했습니다. 자신을 배웅해 줄 사람들에게 마지막으로 보일 사진이니, ‘밝고 행복한 모습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촬영실에서 한 할머니가 “앞니가 없어서 웃을 수가 없다”고 하자, 폭소가 터졌습니다. 한 할아버지가 곱게 차려입은 할머니에게 “김 여사! 그렇게 예쁘게 하고 가면 (저승에서) 오지 말라고 해요!”라고 하자, 또 한 번 웃음꽃이 피었습니다. 드디어 제 차례가 왔습니다. “너무 젊어서 저승에서 안 받아줄 거야!”라는 어르신들 농담에도, 저의 얼어붙은 얼굴이 좀처럼 펴지지 않았습니다.(출처; C닷컴, 이옥진 기자)
그렇습니다. 죽음은 그 누구도 피할 수 없는 우리 인간의 숙명입니다. 하지만, 비록 코로나에 걸려 죽을까봐 예방접종은 할지언정, ‘죽음에 대한 준비’를 하는 이들은 흔치 않습니다. 그러니까, 코로나에 걸리면 ‘죽는 경우’도 없지 않아 있지만, 대부분은 살아남습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부분의 사람은 그 예방접종을 합니다. 임종체험도 어쩌면 ‘죽음’에 대한 예방접종이라 할 수 있습니다. 죽지 않기 위한 것이 아니라, 그야말로 ‘품위 있는 죽음’을 맞이하고자 하는, 미리 체험하는 과정입니다. 아무쪼록, 우리 모두, 품위 있는 죽음을 맞이하기 위한 각종 준비를 하도록 합시다.(물맷돌)
[‘한평생 살기를 이 정도 살면 됐지, 얼마나 더 행복하게 살겠느냐?’고 스스로 흡족해하는 사람이 있다 하더라도, 복 받을 이라고 남들의 칭송을 한 몸에 받는 사람이 있다 하더라도, 그 역시 조상들이 있는 저승으로, 어둠이 영원히 끊이지 않는 저승으로 가기는 마찬가지다. 아무리 위대할지라도 죽음을 피할 수 없으리라. 짐승처럼 죽음을 맞이하리라.(시49:18-20,현대어) 만일 자신의 악한 욕망을 만족시키려는 사람은 악한 씨앗을 심은 셈이 되어, 그 결과 죽음을 거두게 될 겁니다. 그러나 성령을 위하여 좋은 것을 심는 사람은, 성령께서 주시는 영원한 생명을 거두게 될 것입니다.(갈6:8,현대어)]
교회에서 가장 중요한 것
일본의 나카타니 아키히로는 일본 전역의 호텔과 레스토랑을 사람들에게 소개하는 여행관련 가이드입니다.
나카타니에게 하루는 한 친구가 온천도시인 유후인에서 일본의 전통 숙소인 료칸을 소개해달라고 했습니다.
“유후인이라면… 나마노유 료칸에 가서 미조구치 군페이 씨를 찾아주세요. 유후인에 그곳만큼 좋은 곳은 없습니다.”
나카타니의 추천으로 좋은 여행을 다녀온 친구는 이번에는 산장을 소개해 달라고 부탁했습니다.
“후지바야시가 있는 무라타 산장이 최고입니다.”
대답을 들은 친구는 자신은 좋은 숙소를 부탁했는데 왜 항상 장소가 아닌 사람을 추천해주냐고 물었습니다.
“좋은 요리사가 있는 곳이 좋은 레스토랑이지 않겠습니까? 호텔 역시 좋은 서비스와 청결을 만드는 것은 사람입니다. 그래서 저는 장소가 아닌 그런 일을 할 수 있는 사람이 있는 곳을 추천해드립니다.”
좋은 장소를 만드는 것은 좋은 사람이듯이 좋은 교회를 만드는 것 역시 좋은 성도입니다. 나부터 믿지 않는 사람이라도 친절하고 기쁜 마음으로 즐거이 섬기며 복음을 전파하는 좋은 제자가 되십시오. 아멘!!
주님! 만나는 모든 사람에게 할 수 있는 최대의 선행을 베풀게 하소서.
내 이름이 우리 교회의 자랑이 될 수 있도록 헌신과 봉사합시다.
<김장환 큐티365/나침반출판사>
복음을 포장하라
한 경제학자가 식료품을 사러 동네 마트에 들렀다가 이상한 점을 발견했습니다. 펼쳐놓은 체리는 1파운드에 천 원 정도였는데 팩에 들어 있는 체리는 2파운드에 3천 원 정도였습니다. 원산지도 같았기에 산술적인 계산으로는 2천 원 정도여야 했습니다. 이해가 되지 않았던 경제학자는 점원에게 물었습니다.
“저기 쌓여있는 체리와 여기 포장된 체리의 품질이 혹시 다른가요? 왜 포장된 게 더 비싸죠?”
“포장지 말고는 모두 똑같은 체리입니다. 다만 포장된 체리가 쌓여있는 체리보다는 2배 정도 더 팔리긴 합니다. 사람들 눈에는 포장된 체리가 더 좋아 보이나 봐요.”
경제학자는 이후 학교와 기업에서 강의할 때마다 항상 이 일화를 통해 포장의 중요성을 전했습니다.
“포장은 그 물건이 얼마나 가치 있는지를 나타내기에 포장을 잘할수록 더 좋은 대접을 받습니다. 물건이나 이야기나 심지어 사람의 경우도 마찬가지입니다.”
예수님의 복음과 우리 교회를 나타내는 것은 바로 우리 자신입니다. 나의 말과 행동, 미소와 선행, 돈의 쓰임까지 모든 삶이 복음과 은혜를 나타내는 중요한 포장임을 기억하고 관리하십시오. 아멘!!
주님! 복음을 전하는데 방해가 되는 죄와 실수들을 저지르지 않게 하소서.
하나님의 사랑을 전하는 도구로 내 삶을 주님께 드립시다.
<김장환 큐티365/나침반출판사>
분노를 다루는 법
사람들은 흔히 화가 날 때 2가지 방법으로 대처합니다.
1. 폭발 ? 자기가 통제할 수 없는 방법으로 분노를 표출하는 방법.
2. 억제 ? 자신의 분노를 완전히 억눌러 숨기는 방법.
그런데 이 두 가지 방법은 모두 분노를 다스리기에 좋은 방법이 아니라고 합니다.
다음은 프랑스의 저명한 정신의학자인 프랑수아 를로르의 ‘분노를 지혜롭게 다스리는 8가지 기술’입니다.
1. 짜증을 유발하는 작은 원인들을 해결하라.
2. 반드시 중요한 일부터 처리하라.
3. 상대방이 일부러 그랬을 것이라는 시나리오에서 벗어나라.
4. 아무리 큰 분노라도 하루 동안 고민하고 대응하라.
5. 무례한 상대에게도 일단은 발언권을 줘라.
6. 나를 화나게 만든 사람보다 그 사람의 행동에 집중하라.
7. 아무리 화가 나도 언어폭력이나 신체폭력은 하지 마라.
8. 한 번 끝난 상황은 다시 언급하지 마라.
분노를 제대로 다스리는 사람은 자기 마음을 다스릴 줄 아는 지혜로운 사람입니다. 극한의 상황에서도 분을 다스리고 분위기를 유순하게 만드는 지혜로운 피스메이커가 되십시오. 아멘!!
주님! 분쟁보다 화목을 분노보다 용서를 베풀며 살아가게 하소서.
말씀의 원리를 따라 그날의 분은 그날 해소합시다.
<김장환 큐티365/나침반출판사>
대통령을 만든 인품
누구보다 성공한 아버지를 둔 소년이 있었습니다.
소년은 아버지를 닮기 위해 열심히 공부를 했지만 그때마다 어머니는 성적보다도 인격이 더 중요하다며 다음의 9가지 수칙을 지키라고 가르쳤습니다.
1. 상대방의 약점은 잊고 장점만 기억하여라.
2. 적을 만들지 말고 친구를 만들어라.
3. 다른 사람에게 절대로 돈 이야기를 꺼내지 말아라.
4. 필요없는 물건은 사지 말아라.
5. 주위 사람과 자신을 비교하지 말아라.
6. 입은 은혜는 반드시 갚아라.
7. 모든 친구를 소중히 생각하여라.
8. 자기 자신부터 사랑하여라.
9. 모든 상황에서 인생을 즐기려고 노력하여라.
전 미국 대통령이었던 조지 부시의 어머니면서 영부인이었던 바버라 부시 여사의 ‘인격을 더 아름답게 만드는 9가지 법칙’입니다.
믿음을 통한 변화는 인품과 성격, 삶의 행동과 목표에까지 모든 분야의 변화를 이끌어야 합니다. 신앙과 삶이 동떨어지지 않은 진정한 그리스도의 제자가 되십시오. 아멘!!
주님! 말씀으로 받은 은혜가 삶으로 이어지게 하소서.
결과보다도 과정, 실력보다도 인품을 중요하게 여깁시다.
<김장환 큐티365/나침반출판사>
희생의 이유
데이비드 메인스 목사님과 도심 빈민지역에서 사역을 하는 카렌 메인스 사모님은 목사님과 상의 끝에 집을 개방해 24시간 누구나 올 수 있게 했습니다. 숙소나 식사가 필요한 사람이 오면 사모님은 식사를 대접하고 침대를 내어줍니다. 그리고 잠시 복음을 전하는 것이 집을 제공하는 대가의 전부입니다.
사람들은 사모님에게 굳이 그렇게까지 해야 하냐고 물을 때가 많습니다. 이유는 3년 만에 집안 기물이 모두 파손되어 다시 구입해야 했고, 집안에서 몰래 담배를 피워 불이 날 뻔한 적도 있고, 몸이 피투성이가 되거나 성병에 걸린 학생들이 침대를 더렵혀 위생적으로 문제가 생길 뻔한 적도 있었기 때문입니다.
사모님은 이런 사람들의 질문에 자신의 책 ‘행복으로 초대하는 오픈홈’에 이런 답변을 적었습니다.
“복음의 시작은 이런 불편함입니다. 이웃을 사랑한다는 결심은 말만으로는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예수님을 믿지 않으면 지옥에 간다는 사실을 정말 믿을 때 가만히 있을 수 없게 되고 비록 내가 불편해지더라도 나그네를 대접하고 복음을 전하는 일을 쉴 수 없게 됩니다.”
수 많은 우여곡절이 있던 사모님의 오픈홈은 20년간 40만 가정을 변화시킨 놀라운 역사의 현장이기도 합니다. 영혼 구원의 기쁨을 알 때 불편함과 어려움은 오히려 축복이 된다는 사실을 믿으십시오. 아멘!!
주님! 하나님의 일을 위해 나 자신을 드리게 하소서.
복음을 위해서라면 아까워말고 기꺼이 희생합시다.
<김장환 큐티365/나침반출판사>
복음의 희소성
호주산 소고기를 판매하는 미국의 한 유통회사가 있었습니다. 이들은 어떻게 하면 미국인들이 호주산 소고기를 먹을까?를 고민했습니다.
사람들은 이미 충분한 미국산 소고기가 있었기 때문에 굳이 호주산에 관심을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하루는 다음과 같은 안내문이 붙었고 사람들의 관심을 끌었습니다.
“호주의 기상악화로 소고기 물량이 다음 주부터 줄어듭니다.”
그러자 평소에 호주산 소고기를 사지 않던 고객들이 물건을 대량으로 사가며 판매율이 2배로 뛰었습니다. 그리고 한 달 뒤 이번엔 또 다른 안내문이 붙었습니다.
“기상악화로 호주산 소고기 물량 축소
? 호주 국립 기상청 예측”
호주산 소고기는 다시 폭발적으로 팔리기 시작했고 이번엔 무려 6배가 넘는 판매고를 올렸습니다.
대학의 한 심리학 연구팀이 유통업체의 협조로 ‘희소성’에 대한 심리법칙을 알기 위해 진행한 실험 중 하나인데 사람들은 무형이든 유형이든 희소성에 큰 집착을 보였습니다.
모든 사람에게 필요한 하나님의 진리의 말씀은 세상의 단 하나뿐인 유일한 죽음의 해결책입니다. 근원적인 죄에서 벗어나 구원을 얻고 영생에 이르는 유일한 진리를 사람들에게 전하십시오. 아멘!!
주님! 예수님을 향한 믿음 외에는 어떤 구원의 방법도 없음을 알게 하소서.
유일한 구원의 방법인 예수님의 십자가를 함께 세상에 알립시다.
<김장환 큐티365/나침반출판사>
작은 차이의 중요성
미국의 상이군경협회는 회원들에게 우편으로만 후원요청을 합니다. 평소 18%였던 낮은 모금률이었지만 작은 변화 하나를 주자 35%로 두배 가까이 올랐는데 후원금을 보내는 우편에 우표를 붙인 작은 차이가 2배 모금률 성장의 비결이었습니다.
비록 몇 백원 밖에 안하는 우표지만 받은 사람이 후원금을 보내지 않으면 우표가 버려지기 때문에 심리적 부담감이 생겨 은연중에 보답하려는 마음이 생기기 때문입니다.
같은 이유로 백화점의 시식코너도 얼핏 보기에는 손해 같지만 시식코너가 없을 때에 비해 판매율이 올라가기 때문에 판매점 입장에서는 오히려 이득입니다.
단체 예약을 하고 손님이 나타나지 않는 노쇼(No-show)의 비율이 30%이던 미국의 유명 레스토랑은 예약을 받을 때 “만약 못 오시게 되면 미리 연락을 주시겠어요?”라는 말 한마디를 더 붙이자 노쇼 비율이 10%로 줄었습니다.
텍사스대학교 심리학팀 연구에 따르면 빨간불일 때 평범한 차림으로 횡단보도를 건너는 것보다 정장차림으로 건널 때 따라 건너는 사람의 비율이 3.5배나 높아졌다고 합니다.
겨자씨만한 믿음이 산을 옮길 능력이 있듯이 작은 행동의 차이가 큰 변화를 만듭니다. 하나님이 주시는 믿음과 기쁨으로 매일 조금씩 새롭게 변하십시오. 아멘!!
주님! 그리스도인의 합당한 모습으로 작은 행동부터 변화하게 하소서.
같은 예배와 같은 교제를 해도 주님을 향한 사랑으로 합시다.
<김장환 큐티365/나침반출판사>
왜 믿어야 하는가
“내가 왜 당신한테 물건을 사야 합니까?”
컨설팅업체 폭스사(Fox&Co)의 제프리 폭스는 이 질문이 사업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라고 했습니다.
우리 물건이 왜 좋고, 왜 사야 하는지를 설득하지 못하면 당연히 물건은 팔리지 않습니다. 제프리 회장은 이 대답을 할 때 다음의 3가지 사항을 유의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1. 정직하게 대답해야 한다.
2. 객관적으로 대답해야 한다.
3. 확실한 수치로 대답해야 한다.
예를 들어 “우리 물건은 굉장히 좋기 때문에 사야 합니다”가 아니라 “이번에 최신 기술로 개발된 기계를 구입하면 지금 하던 일을 1시간 빠르게 끝내고 포장비용도 100만 원 절약 됩니다”라고 말해줘야 마음을 얻고 거래를 성공할 수 있습니다.
이 원칙을 그대로 가지고 신앙을 위한 질문으로 바꿔보십시오. 전도대상자가 나에게 “왜 믿어야 합니까?”라는 질문에 뭐라고 대답하시겠습니까? 내 인생을 죽음에서 생명으로 바꿔놓은 놀라운 하나님의 은혜를 누구에게라도 전할 준비를 하십시오. 아멘!!
주님! 어디서든 복음을 전할 몸과 마음의 준비가 되어있게 하소서.
복음을 왜 믿어야 하는지 다른 사람에 전할 말을 준비합시다.
<김장환 큐티365/나침반출판사>
중심을 보는 삶
중심을 본다는 것은 참으로 어렵습니다. 오랜 시간을 보내야 알 수 있기 때문입니다. 기도를 깊이 하다 보면 하나님의 은혜에 깊은 감동을 받을 때가 있습니다. 한 젊은 친구가 있습니다. 그 친구는 주님의 일을 위해 무언가 부탁을 하면 한 번도 “아니요”라고 하지 않았습니다. 그런 친구가 작은 사업을 하나 시작했으나 결과는 좋지 못했습니다. 너무 안타까워서 기도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러나 주님께서 그 친구의 중심을 보시고 그를 사랑하심을 알게 됐습니다. 더불어 주님은 아름다운 기회를 그 친구에게 주길 원하셨습니다.
성경 속 사무엘 선지자는 이새의 집을 방문합니다. 사울왕에 이어 이스라엘의 왕이 될 사람을 찾기 위해서입니다. 사무엘 자신이 죽을 수도 있는 방문이었습니다. 사무엘은 이새의 아들들 가운데 너무나 용모가 뛰어난 아들들을 발견합니다. 그들에게 기름 붓기를 원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그들에게 기름을 붓지 못하게 합니다. 그곳에 없는 아들을 찾게 하십니다. 그 사람이 다윗입니다. 양을 치고 왔던 다윗의 복장은 깨끗하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주님의 눈은 다윗의 중심만 보고 계셨습니다.
지성호 목사(서울이태원교회)
역사적 책임감
최근 교회당을 수리하기 위해 공사를 시작했습니다. 본래 계획한 대로 공사를 진행하기 마련인데 그대로 하는 게 쉽질 않습니다. 애초 계획이 수정된 것 때문은 아닙니다. 예상하지 못했던 부분이 나타나기 때문입니다. 가령 땅에 묻혀 있던 물탱크가 발견되거나 벽을 철거하는 과정에서 모르고 있던 구조물이 나타나기도 합니다.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관이나 전선이 드러나기도 합니다. 이렇듯 하나의 건물도 역사를 품고 있습니다. 그 역사는 미래를 결정하는 매우 중요한 요소가 되기도 합니다.
지금을 살아가는 그리스도인에게 주어진 임무가 있다면 삶의 영향력 크기와 관계없이 역사적 존재로 살아가야 한다는 것입니다. 우리 생각과 언어, 행동은 이미 역사적 의미를 지니고 있습니다. 영향력의 크기가 다를 뿐 역사는 우리 각자의 삶이 한데 모여 큰 흐름을 만들어냅니다. 그런 의미에서 비록 평범한 개인의 삶이라 할지라도 역사적 관점에서 자신의 삶을 결정하고 해석할 줄 알아야 역사에 책임을 다하는 자세일 것입니다. 이렇게 살 때 후손에게 부끄럽지 않은 미래를 선물할 수 있습니다.
조주희 목사(성암교회)
사막에 샘이 넘쳐 흐르는 경고
미국 유학 시절, 이름도 기괴한 ‘죽음의 계곡’, 데스밸리(Death Valley)를 여행한 적이 있습니다. 한국에서는 전혀 본 적 없는 신비한 풍경을 지닌 곳이었습니다. 사막인데 산도 있고 물은 없지만 강바닥은 보이는데, 워낙 태양이 뜨겁게 내리쬐는 곳이라 수분이 증발하고 소금이 강처럼 펼쳐져 있기도 했습니다.
데스밸리 근처에 가니 다양한 경고판이 계속 나타났습니다. 지금도 기억나는 두 가지가 있습니다. 하나는 기온이 너무 높으니 에어컨을 끄고 운전하라는 것이었습니다. 차량 과열 사고를 막기 위한 경고였습니다. 또 하나는 맹독성 파충류를 조심하라는 거였습니다. 몇 방울의 수분으로 1년을 버티는 동물들이어서 치명적인 독을 품고 있다고 했습니다. 1년 내내 비가 오지 않고 뜨거운 햇볕만 내리쬐어 생물이 살 수 없는 곳, 그곳이 바로 데스밸리였습니다. 그런데 그곳에 최근 홍수가 났다고 합니다. 1000년에 한 번 있을 확률이랍니다. 1년 강우량이 350㎜인데 하루에 그 비가 내렸다는군요. ‘사막에 샘이 넘쳐 흐르리라’는 부흥과 복의 선언인데, 어쩐지 저주의 경고로 들립니다. 정신 차리고 창조 질서를 회복해야겠습니다.
김종구 목사(세신교회)
아름다운 믿음
“그러나 이제 주님께서 그들의 죄를 용서하여 주십시오. 그렇게 하지 않으시려면, 주님께서 기록하신 책에서 저의 이름을 지워 주십시오.”(출 32:32, 새번역) 모세는 하나님께 백성을 용서해 달라고 기도합니다. 차라리 자신의 이름을 하나님의 책에서 지우시고 이 백성은 용서해 달라는 것입니다. 백성을 위한 모세의 마음이 참으로 절절합니다. 자신을 버려서 백성을 구하려는 모세의 기도, 참 아름다운 기도입니다.
“나는, 육신으로 내 동족인 내 겨레를 위하는 일이면, 내가 저주를 받아서 그리스도에게서 끊어질지라도 달게 받겠습니다.”(롬 9:3, 새번역) 바울의 고백입니다. 바울은 바로 앞에서(롬 8:38~39) 그 무엇으로도 그리스도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우리를 끊을 수 없다고 말했지요. 그리스도는 바울의 모든 것입니다. 그리스도 없는 바울은 아무것도 아닙니다. 그런데 겨레를 위한 일이라면 그리스도에게서 끊어질지라도 달게 받겠다는 것입니다. 자신을 버려서라도 겨레를 구원하고 싶다는 바울의 믿음, 참 아름다운 믿음입니다.
어제가 광복절이었습니다. 겨레를 위해 자신을 버린 선열들의 아름다운 믿음을 기억합니다.
서재경 목사(수원 한민교회)
잠수복과 나비
‘잠수복과 나비’는 장 도미니크 보비라는 프랑스인이 쓴 책입니다. 손이 아니라 눈으로 썼습니다. 저자는 43세 때 갑자기 쓰러져 혼수상태가 됩니다. 이후 회복됐지만 왼쪽 눈 외에는 모든 몸이 마비됐습니다. 그를 도왔던 사람이 알파벳을 읽을 때 자기가 원하는 글자를 읽으면 왼쪽 눈을 깜박입니다. 그렇게 해서 단어를 만들고 문장을 구성해 마침내 책을 완성합니다. 육신은 잠수복을 입은 것처럼 자유롭지 못했지만 마음은 나비처럼 훨훨 날았습니다. 그는 눈으로 이렇게 말했습니다. ‘흘러내리는 침을 삼킬 수만 있다면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입니다. 숨을 들이쉬고 내쉬기만 해도 행복한 사람입니다. 불평과 원망은 행복에 겨운 자의 사치스러운 신음입니다.’ 그는 사랑하는 아들을 안아주지 못하는 안타까움도 토로했습니다. 침을 삼킬 자유, 숨 쉴 자유, 아이를 안을 자유가 얼마나 감사한 자유인지요.
오늘은 일제로부터 자유를 다시 찾은 77주년 광복절입니다. 이미 몸은 나비처럼 날아다닐 수 있게 되었지만, 마음은 잠수복에 갇혀 있는 것처럼 이런저런 불평과 원망으로 눌려 있는 것은 아닌지 돌아보는 날이기도 합니다.
김성국 목사(미국 뉴욕 퀸즈장로교회)
하나님을 아는 지식
우리는 살아가면서 인생의 여러 가지 문제 앞에서 다양한 해결책을 간구할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대부분 인간적인 생각에서 나온 해결책들은 근원적인 문제를 해결하지 못합니다. 코로나19 팬데믹 이후의 교회 역할에 대해서도 다양한 의견이 제시되고 있지만, 핵심은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 새로워지는 것입니다.
20세기를 대표하는 복음주의 신학자 가운데 한 사람인 제임스 패커는 저서 ‘하나님을 아는 지식’에서 “오늘날 교회의 연약함의 뿌리에는 하나님에 대한 무지, 곧 하나님의 도(way) 및 하나님과 교통하는 일에 대한 무지가 자리 잡고 있다”라고 지적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에 대해 아는 것(Knowing about God)’이 아니라 ‘하나님을 아는 것(Knowing God)’으로 돌아가야 한다고 말합니다. 하나님을 바로 알 때 하나님이 인생의 모든 문제보다 훨씬 더 크신 분이심을 깨닫게 됩니다. 하나님 그분 자체가 아니라 하나님에 대해 아는 지식을 추구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연약한 신앙의 밑바닥에는 언제나 하나님에 대한 무지가 자리 잡고 있습니다.
고상섭 목사(그사랑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