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을 향한 손가락, 혹은 분노의 서정
-이영식의 「그 겨울의 손가락 욕辱」 읽기
배옥주
세밑이었지.
썰렁하다 못해 두개골의 눈구멍처럼 텅 빈 세종로 대로변 상가들. 한 집 건너 나붙은 폐업 딱지가 부고장인 듯 을씨년스럽다. 연말 특수는커녕 남이야 죽든 말든 좌우 두 패로 갈라져 극한으로 치닫는 정치의 혹한기. 겨울의 항문은 꽁꽁 얼어붙어 오갈 데 없이 꽉 막히고 말았네.
아귀 놈은 어디로 숨었는지 시뻘건 콩나물만 산더미로 쌓인 아귀찜 앞에 소주잔 놓고 뵈지도 않는 내일을 아귀아귀 씹는 군상들. 거친 세파 속 이러구러 악바리로 헤쳐온 이 시대의 아귀여, 머리보다 큰 아가리 떡 벌려서 닥치는 대로 집어삼킨 아가리의 힘으로 버텨온 너와 내가 아니더냐.
말로만 번지르르 애국자인 개뼈다귀 같은 것들. 싸잡아 안주로 씹으며 소주잔 털어 넣다 보면 욕 잔치가 거나하게 벌어지고 거칠어진 이바구에 아귀 뼈가 씹히는 거다. 그려, 아귀는 버릴 게 하나도 읍다니께. 아귀 부속 같은 우리가 한강의 기적을 일군 거여. 아문 그렇고말고.
소주병 수북이 쓰러뜨린 뒤 일어서며 주머니 뒤적이다가 손끝에 딸려 나온 종이쪽지 하나. 그래 이 잡것, 바로 네 놈이렷다. 허구한 날 공치는 판에 가게 세貰는 빠지지 않는데 상점 문틈으로 기어든 겨울 불청객. 다름 아닌 급전이나 사채를 유혹하는 또 다른 검은 아귀, 아귀들. (내가 왜 이 종이쪽지를 주머니에 넣고 다니는 거지?)
이 우라질 놈의 세상, 온종일 묵었던 울화를 전단지처럼 북북 찢어 날리고 아귓집 골목 나서는데 머리카락도 몇 안 남은 이마 위를 번들번들 비벼대는 맥반석처럼 차가운 달. 한껏 불콰해진 사내가 작심한 듯 가운뎃손가락을 비아그라 먹은 성기처럼 불뚝 일으켜 세우더니
씨벌, 엿이나 먹어라!
- 이영식, 「그 겨울의 손가락 욕辱」
1. 욕辱에서 시詩로
욕辱은 솔직하다. 품위를 벗어던진 담론의 바깥, 문학적 언어의 경계 너머, 본능적으로 내뱉지만 글로는 좀처럼 옮기지 않으려는 그 자리에서 언어의 전복이 시작된다. 웃음과 욕설에는 질서를 뒤흔드는 카니발적 힘이 내재되어 있다(바흐친:Mikhail Bakhtin). 아름다운 말이 많은 것을 숨길 때, 추한 말은 더욱 많은 것을 드러낸다. 욕은 억눌린 자들이 세상을 향해 내미는 솔직한 손가락이다.
「그 겨울의 손가락 욕辱」은 제목부터 도발적이다. 화자는 '욕'에 한자 ‘辱’을 병기하여 수치와 저항의 언어임을 선언한다. 욕은 이 시에서 단순한 감탄사가 아니다. 정치의 혹한기에 짓눌리고, 세금에 치이고, 내일을 잃은 사람들이 마침내 세상을 향해 돌려세우는 언어로 봉기한다. 한껏 취한 사내가 겨울 달을 향해 치켜세운 가운뎃손가락 하나가 그 어떤 정치 연설보다 정직한 발언이 되는 역설, 그것이 이 시가 지닌 힘이다.
2. 분노의 해부
화자는 분노를 토로하지 않는다. 다만 해부할 뿐이다. 정치 언어는 분노를 다독이거나 봉합하려 하지만, 문학 언어는 그것을 열어젖히는 데 몰두한다. 「그 겨울의 손가락 욕辱」은 한 사내의 취한 밤을 빌려 이 시대가 어떤 층위의 분노로 쌓여 있는지를 솔직하게 발설한다. ‘세종로’라는 공간이 먼저 말하고, ‘아귀’라는 이미지가 그것을 받아 깊어진다. ‘종이쪽지’의 균열이 스스로를 의심하게 만들고, 마침내 달을 향한 ‘가운뎃손가락’이 모든 것을 폭발시킨다.
시는 ‘세종로 대로변’이라는 구체적 장소에서 시작한다. 세종로는 단순한 거리가 아니다. 광화문 앞, 권력의 심장부와 가까운 곳에 위치한 이 거리는 정치적 상징성을 내포한다. 거리의 상가들은 “두개골의 눈구멍처럼 텅 빈” 죽음의 이미지로 형상화되어 있다. 민중의 삶은 권력의 중심부 옆에서 텅 빈 해골처럼 비어가고, 한 집 건너 나붙은 “폐업 딱지”는 한 사람의 생계가 끝났다는 부고다.
우리는 “잘 먹고 잘 싸면 된다”고 말한다. 하지만 겨울은 항문조차 “꽁꽁 얼어붙어 오갈 데 없이 꽉 막히고 말았”다. ‘항문’이라는 신체의 외설적인 부위를 계절의 은유로 변주하여 독자를 단번에 끌어당긴다. 막힌 항문은 배설되지 못한 분노, 출구를 잃은 시대의 울분을 상징한다. 신체의 하부를 통한 이 미학적 외침은 생명력과 저항의 원천이 된다.
시의 중심 이미지는 ‘아귀’다. 아귀는 동시에 세 가지로 존재한다. 음식으로서의 아귀, 굶주림의 귀신인 불교적 아귀, 그리고 이 시대를 살아가는 민중으로서의 아귀. 이 삼중 의미가 겹쳐지면서 단순한 술자리 묘사를 넘어선다. ‘너와 나’인 우리는 “머리보다 큰 아가리 떡 벌려서 닥치는 대로 집어삼킨 아가리의 힘으로 버텨”온 민중이다. 이들의 생존 방식은 삼키고 씹고 버티는 것이다. “아귀 부속 같”은 존재들이 일군 한강의 기적은 쓸쓸하면서도 비장하다. 그러니 온몸 소진해가며 나라를 일으킨 ‘아귀’는 입만 떠들썩한 광장의 정치인들과는 비교할 수 없다. “버릴 게 하나도 읍”는 아귀는 민중사의 언어로 새롭게 호명된다. “말로만 번지르르 애국자인 개뼈다귀”는 껍데기만 남은 공허한 언어일 뿐이다. 씹어도 영양이 없고, 버려도 아깝지 않은 것. 화자는 정치적 언어의 공허함을 이 이미지 하나로 압축한다.
화자는 주머니에서 딸려 나온 종이쪽지 하나를 발견한다. “(내가 왜 이 종이쪽지를 주머니에 넣고 다니는 거지?)”라는 괄호 속의 물음은 예리한 자의식의 균열을 보여준다. 괄호는 이 시에서 유일하게 분노가 멈추는 자리다. 화자는 급전·사채 전단지를 ‘검은 아귀’라 욕하면서도 주머니에 넣고 다니는 자신을 괄호 안에서 조용히 대면한다. 욕설과 울분이 넘실대는 텍스트에 뚫린 이 작은 구멍은, 화자가 배설하지 못한 분노의 대상이기도 하고 주체이기도 하다. 이것은 단순한 ‘고발시’가 아니라는 명백한 증거다. 시인은 세상을 향해 손가락질하면서도, 그 손가락이 동시에 자신을 향할 수 있다는 것을 직시한다. 이 자의식이 이 시를 선동이 아닌 문학으로 만든다.
달과 가운뎃손가락이 맞서는 장면은 이 시의 정점이다. “맥반석처럼 차가운 달”과 “비아그라 먹은 성기”처럼 세워진 가운뎃손가락이 수직으로 맞선다. 이 형상은 신성한 것과 세속적인 것, 차가운 것과 뜨거운 것, 거대한 것과 작은 것의 충돌이다. 숭고와 서정의 이미지인 달을 향해 가운뎃손가락을 치켜세운다는 것은 ‘아름다움의 언어’가 아무것도 해결하지 못하는 세상에서 가장 추한 언어로 응수하겠다는 화자의 당돌한 선언이다.
그리고 마지막 행 “씨벌, 엿이나 먹어라!”는 시의 바깥에 돌올하게 서 있다. 들여쓰기도 행 구분도 없이 연의 흐름과도 단절된 형식 자체가 의미가 된다. 욕은 어떤 구조 안에도 담기지 않고 그냥 터져 나온다. 이 시 전체가 쌓아온 울분의 배출구이자, 독자에게 날리는 직격탄이다.
3. 욕辱의 윤리학
이 시는 묻는다. 아름다운 언어로 표현할 수 없는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는 누가 어떤 언어로 써야 하는가. 품위 있게 다듬어진 언어만이 시의 자격을 얻는 것인가. 「그 겨울의 손가락 욕辱」은 그 전제에 정면으로 가운뎃손가락을 겨눈다. 때로, 가장 낮은 곳에서 피어난 언어가 가장 높은 진실에 닿는다고.
호모 사케르(Homo Sacer)는 법의 보호도, 권력의 시선도 닿지 않는 곳에서 그저 살아남는 것만으로 버텨가는 존재들이다. 아감벤(Giorgio Agamben)이 말하는 호모 사케르의 역설은 공동체 안에 포함되어 있지만 동시에 배제되어 있다는 의미다. 이 시에서 ‘아귀’로 대변되는 사람들은 보호받지 못한 채 생존만을 강요받는다. 세종로 대로변의 텅 빈 상가 앞에서, 아귀찜집 소주잔 앞에서, 사채 전단지를 주머니에 넣고 다니면서도 그 사실을 스스로도 인정하기 두려운 사람들이 정확히 그 자리에 있다. 포함된 자로서 세금을 내고 기적을 일구었지만, 배제된 자로서 이들에게 허락된 말은 ‘욕’뿐이다. 이 시에서 욕은 패배의 언어가 아니다. 오히려 이 시대가 우리에게 강요한 침묵을 끝내겠다는 선언이다. 취한 사내가 달을 향해 치켜세운 가운뎃손가락은 우스꽝스럽고 비루해 보이지만 어떤 정치 연설이나 시위 구호보다 직설적이고 비장하다.
“씨벌, 엿이나 먹어라!” 긴 사설보다 더 정직한 이 한 줄이 시대적 언어의 빈곤을 찌른다. 바흐친은 카니발의 웃음이 조롱과 긍정, 파괴와 재생을 동시에 품는다고 했다. 이 시의 욕 역시 세상을 향한 분노이면서 그 분노를 품고도 내일을 씹어 삼키며 살아가는 사람들에 대한 애정이다. ‘아귀’를 버릴 게 하나도 없다고 말하는 순간, 보잘것없고 못생기고 밑바닥을 기어온 이 시대의 아귀들은 가장 존엄한 존재로 호명된다. 무너지는 곳에서 태어난 언어가 무수한 숨결에 가 닿을 수 있는 것이다. 그 겨울, “비아그라 먹은 성기”처럼 달을 향해 치켜세운 손가락이 우리가 삼켜온 모든 것을 가리키고 있다.
우리는 얼마나 오래 ‘분노’를 삼켜온 것일까. 이영식의 시에서 터져 나온 ‘욕’은 소외된 이들이 비로소 되찾은 주체적인 언어의 봉기다. 차가운 달을 향해 비루하게 치켜세운 가운뎃손가락은 뜨거운 문학적 저항이라 할 수 있다. 세상이 외면해 온 가장 낮은 곳의 진실을 가장 높은 곳의 신성에 맞부딪치게 만들기 때문이다. 현실은 여전히 혹독하다. 그렇지만 버릴 것 하나 없는 아귀와 같은 삶을 긍정하고 보듬는 분노의 서정은 절망을 일으켜 세우는 단단한 힘이 될 것이다. 이제 가운뎃손가락이 가리키는 내일을 정직하게 응시해야 할 때다.
약력
배옥주
2008년 《서정시학》 시 등단
2022년 《애지》 평론 등단
시집 『오후의 지퍼들』, 『The 빨강』, 『리을리을』
연구서 『이형기 시 이미지와 표상 공간』
평론집 『언어의 가면』
<애지 비평문학상>, <김민부 문학상>, <두레 문학상> 수상
<요산창작지원금> 수혜, <문학나눔> 우수도서 선정
<부경대학교> 문학박사, <부경대학교 연구교수>, <애지> 편집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