밥
황구하
저녁때를 넘긴지 꽤 된 시간, 희끗희끗 눈발 날리는 낯선 도시로 들었습니다. 밥집을 찾아 이 골목 저 골목 한참을 돌다가 겨우 한 식당을 찾았지요. 개량한복을 차려 입은 종업원이 족히 일고여덟 명은 되어 보이는 깔끔한 집이었습니다.
배가 많이 고팠던 우리는 자리에 앉자마자 허겁지겁 차림표를 펼쳤습니다. 그런데 그 집엔 특이하게도 달리 음식 차림이 나와 있는 것이 아니고 달랑 ‘정일품, 정이품, 정삼품’이라는 세 가지 벼슬 품계에 황당하게 높은 값이 각각 매겨져 있었습니다. 벼슬을 마음대로 가지라면 누구나 높은 벼슬을 원할 터, 가격이 좀 높다 해도 낮은 벼슬 차림보다는 높은 벼슬의 차림을 선택하는 사람이 많을 것입니다. 상술로 치면 최고의 아이디어라고 칭찬 받아 마땅한 차림표였지만 사람의 얕은 마음을 더욱 도드라지게 하는 것 같아 씁쓸했지요.
정일품이 얼마나 대단한지 한번 먹어보자는 남편의 농담을 가라앉히고 그 집에선 가장 낮은 품계의 정삼품 벼슬밥(?)을 먹게 되었습니다. 그냥 나와서 다른 식당에 갈 수도 있었지만 며칠 동안의 여정으로 지칠 대로 지쳐 있는 아이들도 그렇고 눈발 속 낯선 곳을 또 빙빙 돌아야 하는 수고를 몸과 맘이 허락지 않아 엉거주춤 주저앉게 된 것이지요.
종업원 몇 명이서 서너 번을 오가며 음식을 날라다주고 지나치게 큰 접시에 음식이 담긴것 빼고는 다른 한정식 업소의 차림과 별 다를 게 없었습니다. 맘이 개운치 않은 탓인지 밥은 입안에서 자꾸만 서걱거렸습니다. “밥은 얼마든지 드립니다.”라는 종업원의 말도 여느 밥집 아줌마가 고봉밥을 떠주며 하는 말과는 거리가 멀었고요. 남편도 아이들도 썩 맛난 표정이 아니었지요. 헛헛했습니다. 쌀 한 가마니를 한자리에서 아작낸 꼴이니, 참으로 큰 죄를 지었습니다. 시골 아버님 얼굴이 자꾸 어른거렸습니다.
나중에 알고 보니 그 골목은 증권, 은행, 보험업계 건물들이 즐비한 속칭 ‘돈골목’이라고 했습니다. 소위 누군가를 대접한다는 명목으로 그 식당을 많이 찾는다는 것이지요.
마루에 앉아 밥을 먹는데
그가 대문 앞에 쭈빗쭈빗 서 있었다
엄마는 얼른 부엌으로 달려가
밥 한 덩이 퍼 담은 바가지에 서너 찬을 얹어
아래채 마루에 놓아주었다
그는 말없이 허리를 조아리더니
마루에 오르지도 않고
뜰팡에 쪼그리고 앉아 밥을 먹었다
자꾸 고갤 돌리는 어린 나에게
엄마는 눈을 꿈적꿈적하였다
어느 사이 그는 보이지 않고
덩그러니 마루에 혼자 남겨진 바가지
들고 오며 보았다, 바가지 한쪽
잘 모두어 놓은 밥 한 숟갈
그가 남기고 간, 한 말씀
―황구하, 「밥, 말씀」 전문
밥이 밥다운 시절이 있었습니다. 그때는 아궁이에서 나뭇가지 탁탁 타는 소리, 밥물 잦아드는 소리, 도마질소리, 그릇들 재잘거리는 소리, ‘밥 먹자’고 부르는 엄마의 소리만으로도 군침이 돌았습니다. 동무들과 뛰어 놀다가도 이집 저집 굴뚝에 피어오르는 연기를 보며 집으로 달려가곤 했지요. 윤기 흐르는 하얀 쌀보다 거무튀튀한 보리, 콩, 감자, 고구마 등 잡곡이 섞여 있을 때 많았지만 아랫목 이불에 묻어놓은 달달한 밥이 그렇게 나를 키웠습니다. 끼니때가 되면 어김없이 걸인이 대문 앞에서 쭈빗거렸고 누구나 그걸 또 그냥 넘기지 않았지요. 가난했지만 걸인마저도 “잘 모두어 놓은 밥 한 숟갈”로 고개 숙일 줄 아는, 밥 한 그릇에 사람다움이 뜨겁게 피어올랐습니다. 밥은 그렇게 헛헛함을 채우며 가족과 이웃과 함께 나누고 베푸는, 세상을 살리고 세상을 밀고 나가는, 세상에서 가장 힘이 센 온기였습니다.
세상이 달라졌습니다. 가난의 품격이 참으로 가난해졌습니다. 못 먹던 시절의 암울함 너머 따뜻한 기억을 떠올릴 새도 없이 먹을거리가 넘치고 넘쳐납니다. 웰빙이다 건강식이다, 보리밥이다 잡곡밥이다 하면서 그 귀한 쌀은 처치곤란으로 남아돌아 그야말로 ‘꿔다 놓은 보릿자루’ 신세로 전락하고 말았습니다.
비만을 비롯한 각종 성인병이 어린이들에게까지 생겨나고, 너도나도 살을 빼기 위해 안간힘을 씁니다. 그래서 텔레비전 프로그램의 살빼기 성공담은 가장 솔깃한 관심이고, 몇 개월 만에 날씬해진 몸매는 감동의 대상입니다. 아이러니하게도 또 한쪽에서는 그야말로 음식열전이 벌어집니다. 왁자지껄 맛집 소개부터 시작하여 ‘강장제’라거나 ‘다이어트에 좋다’는 온갖 딱지를 단 음식이 푸짐하게 쏟아져 나오지요. 그런데도 북한을 비롯한 제3세계의 어린이들은 물론이고 우리 사회 곳곳에 한 끼 밥조차 먹을 수 없는 사람들이 많다는 것은 얼마나 서글픈 일인지요.
급기야 농민들이 나락가마니를 쌓아놓고 허수아비를 불태우는 일이 벌어졌습니다. 쌀값 보장을 촉구하며 논에서 벼를 거두어들이지 않고 통째로 갈아엎어야 하는 그 심정이 어떠하겠는지요. 쌀값이 계속 폭락하면서 뜨거운 한 그릇 밥을 만드는 농사, 사람을 살리기 위해 짓는 농사가 오히려 농촌을 죽이고 있는 현실입니다.
실제로 대형마트에서 80킬로그램 쌀이 13만 원 대에 팔리고 있더군요. 여기에다 농협을 제외한 일반 미곡종합처리장이 지난해와 같은 물량을 올해는 다 수매하지 못했다고 합니다. 계속되는 쌀값 폭락으로 적잖은 피해를 입어 올해는 수매 물량을 조절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지요. 공산품, 농자재 등 모든 물가는 쑥쑥 올라만 가는데 쌀값은 거꾸로 10년 전보다 더 떨어진 상황, 오죽하면 자식처럼 키운 벼를 트랙터로 갈아엎겠는지요. 길거리 ‘쌀값(80㎏) 21만원 보장’, ‘대북 쌀 지원 재개’ 등 농민의 목소리가 담긴 현수막이 찬바람에 더욱 처연하게 나부낍니다.
우리는 너나없이 다 밥 먹고 삽니다. 그 ‘밥심’으로 여기까지 왔습니다. 볍씨 뿌려서 추수하기까지 사람의 손길이 여든여덟 번 스쳐야 쌀(쌀 미(米)=팔십팔(八十八)) 한 톨 얻을 수 있답니다. 땡볕과 장마를 견디며 바람과 달과 별을 품고 저 우주로부터 나에게까지 온 쌀 한 톨. 그 쌀 한 톨이 내 몸의 붉은 피 되는 거룩함에 머리 숙여 보았는지요. 자동차나 가전제품 등의 수출에만 매달리는 무차별적인 FTA 추진 속 벼랑 끝으로 내몰린 쌀협상으로 우리는 쌀과 땅과 삶을 통째로 떠내려 보내고 있는 건 아닌지요. 나를 키우고, 나를 살찌우며, 나를 일으켜 세우고 살리는 그 밥이 기세등등한 돈과 권력의 밥이 되고 있는 것은 아닌지요. 이 세상이 ‘돈골목’인지 ‘돈 골목’인지 참으로 어지럽기만 합니다.
꽁꽁 얼어버린 한겨울, 아버님 한숨소리 깊고 나는 여전히 부끄러운 포만으로 허기집니다. 가슴을 쓸어내리며 지긋이 쌀을 안쳐야겠습니다. 마음의 죽비를 힘껏 치고, 뜨끈뜨끈한 밥 한 숟갈 공손히 받아야겠습니다. 밥을 먹고 마음에 점을 찍어[點心] 삶의 허기로 흐려진 의식을 바로잡아야겠습니다. 그 밥은 그냥 밥이 아니니까요.
―『시에티카』 2011년 상반기 제4호
황구하
충남 금산 출생. 2004년 『자유문학』으로 등단. 시집 『물에 뜬 달』.
첫댓글 우리의 밥상이 존중받는 세상, 그냥 밥이 아닌 밥이 그리운 시절입니다.
뭐니뭐니해도 상 중엔 밥상이 최고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