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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창조주가 선물한 세상 원문보기 글쓴이: 박종태목사
나는 왜 살아야 하는가?/욥 23:1-10
○ 하나님 앞에서 변명하기를 원하는 욥
1. 욥이 대답하여 가로되
2. 내가 오늘도 혹독히 원망하니 받는 재앙이 탄식보다 중함이니라
3. 내가 어찌하면 하나님 발견할 곳을 알꼬 그리하면 그 보좌 앞에 나아가서
4. 그 앞에서 호소하며 변백할 말을 입에 채우고
5. 내게 대답하시는 말씀을 내가 알고 내게 이르시는 것을 내가 깨달으리라
6. 그가 큰 권능을 가지시고 나로 더불어 다투실까 아니라 도리어 내 말을 들으시리라
7. 거기서는 정직자가 그와 변론할 수 있은즉 내가 심판자에게서 영영히 벗어나리라
○ 사람이 가는 길을 아시는 하나님
8. 그런데 내가 앞으로 가도 그가 아니 계시고 뒤로 가도 보이지 아니하며
9. 그가 왼편에서 일하시나 내가 만날 수 없고 그가 오른편으로 돌이키시나 뵈올 수 없구나
10. 나의 가는 길을 오직 그가 아시나니 그가 나를 단련하신 후에는 내가 정금 같이 나오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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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 처| 이용효목사
최진실씨 자살 후 우려하였던 베르테르 효과가 현실이 되어 나타나고 있습니다.
지난 3일 트렌스젠터 장채원씨가 목을 매 자살하였고, 7일에는 배우겸 모델 김지후씨가 자기집 방에서 목을 매 자살하였으며,10일에는 전 국무총리실 사무차장 김영철씨가 자기집 화장실에서 목을 매 자살하였고, 며칠전 부산에서는 하루만에 7명이 목을 매 자살하였습니다.
오늘날에는 너무나 많은 사람들이 쉽게 자살을 합니다. 부부싸움을 한 다음 자살 하고, 카드빚 때문에 자살을 하고, 사업에 실패해서 자살을 하고, 신병을 비관해서 자살하고, 학교 성적이 나쁘다고 자살하고, 부모의 꾸중을 듣고는 자살하고, 생활고를 비관하여 자살하고, 자식들에게 짐이 되기 싫다하여 노인이 자살하고, 실직하고 퇴직한 것을 비관하여 자살하고, 채무 압박 등으로 인하여 자살하고, 농가 부채를 비관하여 자살하고, 청년 실업난으로 인하여 자살하고, 심지어 몇 년 전에는 백억이 넘는 부동산을 가진 분이 재산세 삼천만원 때문에 고민하다 우물에 투신자살하는 등… 자살의 이유는 많습니다.
***그런데 어떤 사회는 자살을 미화하고 종교화합니다.
2차 대전 때 일본의 ‘가미가제’ 특공대는 무려 4천여 명의 열아홉, 스무 살 젊은이들이 전투기를 몰고 미국 군함을 향해 돌진, 자폭하게 하였습니다.
지금도 이슬람 국가에서는 매일 젊은이들이 ‘지하드(聖戰)’라는 깃발 아래 폭탄을 안고 목표물에 뛰어듭니다. 알라를 위해 죽으면 바로 천국에 갈 수 있다고 부추겨 그들을 자살로 몰고 갑니다.
한국 통계청이 조사한 바에 따르면 2005년 한 해 동안 자살자의 수가 12,047명이었다고 합니다. 하루 평균33명이 자살을 한 것입니다. 자살자는 남자가 약 71%, 여자가 약 29%로 남성의 자살비율이 높았습니다. 그런데 올해 새로 나온 통계는 남자가 여자 보다 약 4배정도 많다고 나왔습니다. 지난 10년 동안 대한민국은 OCED 국가 중 자살률이 1위이고, 자살 증가율도 1위라고 합니다. 특별히 IMF로 어려움을 겪었던1998년의 자살률이 현저히 높았다가 그 이후 다소 주춤하던 자살률은 2002년 경제 불황기로 접어들면서 다시 높아지더니 지금은 가장 높은 수준에 이르렀다는 통계를 볼 때 자살의 사회적 요인도 무시할 수 없습니다.
자살할 가능성이 높은 사람들을 뽑아 보았더니,
첫째로, 45세 이상 된 사람들이었습니다.
어째서 45세입니까? 종종 말하는 ‘중년의 위기’ 때문입니다. 인생을 살 만큼 살아보았습니다. 머리에 쥐가 나도록 공부도 해 보았고, 직장생활도 20년 정도 했고, 결혼하면 행복하다 해서 결혼했고 자식도 낳아 키워 보았습니다.
그런 시점에 “이것이 인생의 전부인가?”하는 의문이 들고 가슴 속에 공허감이 깊어진답니다. 집도, 자동차도 사 보았고, 여행도 다녀 봤지만 다 그저 그렇습니다. 그러다가 어떤 계기를 만나면 죽음을 택하는 것입니다.
텔레비전에 나온 한 중년 남자는 자신의 내면이 <연료가 떨어져 더 이상 탈 것이 없이 다 연소된 느낌>이라고 하였습니다.
성경에 보면 저 위대한 선지자였던 엘리야도 자살 충동을 강하게 느낀 사람이었고, 예수님의 제자 가운데 한 사람이었던 가롯 유다는 실제로 자살을 선택했습니다.
사람의 죽음에 대하여 함부로 말해서는 안 되기에 무척 조심스럽지만 요즘 이런 충격적인 사건을 보면서 이제라도 적극적인 예방책이 필요하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우리 사회에 만연한 병리 현상을 통해 사람들은 우울증에 시달리기 시작합니다.
링컨, 처칠, 루소, 도스토예프스키, 차이코프스키, 칼빈, 루터, 웨슬리, 키에르케고르......이런 사람들의 공통점도 바로 우울증입니다.
오늘날도 전 세계 인구 중 3억 4천만이 우울증에 시달릴 정도로 우울증은 우리와 매우 가까이 있습니다.
이것은 기독교인이라고 예외가 아닙니다.
우울증에 꼭 따라오는 이야기가 자살입니다.
우울증 환자의 2/3가 자살을 생각하고 10-15%는 자살을 실행합니다. 또 자살 인구의 90%이상이 우울증을 앓고 있었다고 합니다.
자살심리는 여러 가지가 있는데 가장 중요한 요소는 희망의 상실이고 사랑의 상실입니다.
자살하는 분들의 가까이에 사랑을 주는 사람들이 있고, 내일에 대한 희망이 있다면 자살을 방지할 수 있을 것입니다.
상담소에 자살 상담을 해 온 사람들의 80~90%는 우울 증세를 보이고 있습니다. 개인적 상황 때문에 자살을 하는 것 같지만 더 근본적인 이유는 개인적인 상황이 발생할 때 그 상황을 감정적으로 처리할 수 없기 때문에 자살에 이르게 되는 것입니다. 즉, 돈, 이성, 가정파괴, 사업실패 등이 있을 때 소외감이나 단절감으로 인한 고통을 처리하지 못하고 그것을 해결하는 마지막 방법으로 죽음을 선택하는 것입니다.
***자살하려는 사람들은 자살하기 직전에도 자신의 존재를 확인하고 다른 사람으로부터 인정을 받기 위해 반드시 죽음을 알린다고 합니다.
그럴 때 잘 파악해야 합니다.
예를 들면 식사량이 줄어듭니다.
말이 없어집니다.
자기가 아끼던 것 나눠줍니다.
갑자기 침착해 집니다.
주변 사람들에게 안부를 전합니다.
나 멀리 떠나고 싶어, 잘 있어….
우리 아이들 부탁해..등의 글을 문자로 보냅니다.
자살은 심리적 요인이 큽니다.
우리나라 자살률을 보면 통계적으로 여자보다 남자가 4배 이상 많고 남자 중에서도 40대가 가장 많습니다. 그러고 보면 한국에서 살면서 남자이면서 40대인 사람이 가장 불쌍한 사람일 것입니다.
여러분 자살의 반대는 살자입니다.
생각만 바꾸면 자살은 방지 될 수 있습니다.
삶이 힘들고 고통스럽고 우리를 슬프게 하는 것들이 많은 것이 사실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살아야 할 이유는 너무나 많이 있습니다.
1. 하나님이 살아 계시기 때문입니다.
욥은 사람으로서 당할 수 있는 극심한 환란을 당하였습니다. 사탄이 욥을 쳤습니다. 하루아침에 욥에게 상상할 수 없는 슬픈 일이 꼬리를 물고 일어났습니다. 스바 사람들이 욥의 종들을 죽이고 소와 나귀를 빼앗아 갔습니다.(1:15절) 하늘에서 불이 내려와 종들과 양들이 불에 타 죽었습니다.(1:16절) 갈대아 사람들이 욥의 종들을 죽이고 낙타 때를 빼앗아 갔습니다. (1:17절) 맏아들의 집에서 음식을 먹던 그의 자녀 10명이 큰 바람에 집이 무너져 다 죽었습니다.(1:18,19절) 사탄이 그의 몸을 쳐서 온 몸에 종기가 나서 재 가운데서 질그릇 조각으로 몸을 긁고 있을 때 그의 아내가 “하나님을 욕하고 죽으라” 고 하였습니다.(2:7~9절) 설상가상으로 그의 친구들이 찾아와 위로하지는 않고 욥을 정죄하기 시작하였습니다.
욥의 마음은 매우 아프고 슬픔이 깊어 심한 우울증 증세를 보였습니다.
그는 자기의 생일을 저주하였습니다. (3:1절)
그는 죽고 싶다고 하였습니다.(3:21절)
그는 아무런 희망이 없다고 하였습니다. (6:6절)
욥기6:15절에는 “이러므로 내 마음이 뼈를 깍는 고통을 겪느니 차라리 숨이 막히는 것과 죽는 것을 택하리이다” 라고 하여 그는 순간적으로 자살을 생각하기도 하였습니다.
하지만 그가 이 모든 고통을 이기고 자신을 이기고 승리 할 수 있었던 것은 하나님이 살아계신 것을 확신하였기 때문입니다.
욥기19:25~27절에는 “내가 알기에는 나의 구원자가 살아계시니 마침내 그가 땅위에 서실 것이라 내 가죽이 벗김을 당한 뒤에도 내가 육체 밖에서 하나님을 보리라 내가 그를 보리니 내 눈으로 그를 보기를 낯선 사람처럼 하지 않을 것이라 내 마음이 초조하구나”
그는 하나님이 생명의 주인이시오 죽음 그 후에 하나님을 만날 것을 알았기에 자살의 충동을 이기고 참을 수 있었습니다.
생명이란 단어를 번역하면 '살아라(生)는 명령(命)'이며 사명이다. 사명이 다하면 죽지만 사명이 다하지 않으면 끝까지 살아야 된다는 준엄한 명령을 주신 생명의 주인 되신 하나님 앞에서 그 분의 뜻을 기다리며 사는 것이 인간의 도리라는 뜻입니다.
욥기14:14절에는 “장정이라도 죽으면 어찌 다시 살리이까! 나는 나의 모든 고난의 날 동안을 참으면서 풀려나기를 기다리겠나이다.” 라고 하여 극심한 내면의 갈등과 고통속에서도 하나님을 의식하였기에 하나님을 향한 희망을 버리지 않았습니다.
그렇습니다. 여러분 하나님이 살아 계십니다.
성도여러분 수학을 알려면 수학책을 보아야하고, 영어를 알려면 영어책을 보아야하고, 역사를 알려면 역사책을 보아야만 하듯이 하나님을 알려면 하나님의 책인 성경을 읽어야 합니다.
우리는 성경에서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를 알고 하나님이 어떤 일을 행하시는지를 알 수 있고 성경을 통해서 독생자를 보내신 하나님의 사랑을 알 수 있습니다.
또, 우리는 신앙의 여러 체험을 통해서도 하나님이 살아 계심을 확신할 수 있습니다.
사람의 불행은 하나님과의 관계를 단절하는 데 있습니다.
성경 예레미야2:19절에 “그런즉 네 하나님 여호와를 버림과 네 속에 나를 경외함이 없는 것이 악이요 고통인 줄 알라. 주 만군의 여호와의 말이니라” 이 말씀에 의하면 사람이 겪는 고통과 아픔의 문제의 원인은 환경에 있지 않고 하나님과의 관계에 있다고 하였습니다.
***전도서는 세상의 사람들 중에 가장 지혜로운 사람인 솔로몬이 기록하였습니다. 전도서는 인생이 무엇인가를 알려 주는 책이고, 또, 인생이 무엇을 하고 살아야 행복한지를 알려주는 책입니다.
전도서에서 부귀와 영화 공명 그리고 권세와 인기를 한 몸에 가지고 모든 인생들이 원하는 육체의 쾌락을 다 해보았던 솔로몬이 인생의 행복이 그런 것들에 있지 않고 오직 하나님께 있다고 하였습니다.
전도서의 결론과 같은 말씀이 전도서의 마지막 절인 전도서12:13절,14절입니다. “일의 결국을 다 들었으니 하나님을 경외하고 그의 명령을 지킬지어다. 이것이 모든 사람의 본분이니라.”
그렇습니다. 하나님을 알지 못하고 살아가는 사람들은 내가 어디서 와서 왜 살며 어디로 가는지 알지 못한 채 그저 육신에 매여 살아갈 뿐입니다.
하지만 하나님을 만난 사람은 이 땅에서 사람들과 환경과 물질을 초월하는 삶을 살 수 있는 것입니다.
2.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시기 때문입니다.
대개 사람들은 충격적 상황이 올 때 심리적으로 감당할 수 없어서 자살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어떤 어려운 상황이 와도 포기하지 않고 긍정적인 삶을 살아가려면 심리적으로 자존감을 회복해야 합니다.
우리는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부정적인 감정들을 치유하고 자존감을 가져야 합니다.
하나님은 친히 우리를 창조하셨습니다.
가장 사랑하는 대상으로 내셨습니다.
가장 완전한 모습으로 내셨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자신을 부족하다고 생각하고 혼자라고 생각하고 아무 능력도 없다고 생각하는 것은 잘못된 평가입니다.
우리의 평가는 모두 다른 사람들의 평가에 속은 것입니다.
사람들은 키가 크고, 몸매가 늘씬하고, 이목구비가 오뚝하고, 공부를 잘하고, 돈을 잘 버는 사람을 우월한 존재로 봅니다.
반면 그렇지 못한 사람들을 열등하게 봅니다.
그 평가는 대부분 물질적이고, 정욕적이고, 세속적이고, 우상적이고, 사단적인 기준입니다.
왜 그 잘못된 평가에 속아서 자신을 미워하고 분노하고 포기하려 합니까?
하나님의 생각은 그렇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생각은 사람들의 생각과 다릅니다 (사 55:8-9).
이사야 43:7에 "무릇 내 이름으로 일컫는 자 곧 내가 내 영광을 위하여 창조한 자를 오게 하라 그들을 내가 지었고 만들었느니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은 당신의 아버지이십니다.
하나님은 당신을 책임져 주십니다.
*** 한 무리의 아이들이 길을 가고 있을 때 한 아주머니가 그 아이들 중에 약하고 외모가 부족해 보이는 한 어린이를 보고 활짝 웃습니다. 어린이들 가운데 예쁘고, 키가 크고, 똑똑해 보이는 어린이들이 있었지만 그 분은 그런 아이들에게는 눈길도 주지 않고 오직 한 아이에게만 관심을 보입니다.
왜입니까?
그 아이는 그분의 자식이었습니다. 사람도 예쁘고, 잘 생기고, 귀엽고, 똑똑하고, 재치 있는 아이들 보다 비록 못생기고 부족하여도 다른 아이들 보다 자기 자식을 훨씬 더 사랑합니다.
왜 그렇습니까?
자녀이기에 그러합니다.
하나님은 당신이 여러 가지로 부족하지만 오직 하나 예수님을 믿는 하나님의 자녀이기에 지극히 사랑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당신을 사랑 하십니다.
그 증거가 십자가입니다.
하나님은 당신을 위하여 놀라운 계획을 가지고 계십니다.
하나님은 당신을 위하여 대신 죽으실 정도로 당신을 사랑하십니다.
3.하나님이 우리에게 반드시 승리를 주시기 때문입니다.
자살하는 사람은 삶의 능력의 한계점에 도달하고 막다른 골목에서 자살만이 고민에서 벗어날 유일한 길이라고 믿고 있기 때문인 것입니다.
도저히 피할 길이 없고 너무나 삶이 고달프기 때문에 이 고달픔을 벗어나기 위해서는 죽어야 하겠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인생의 막다른 골목은 하나님의 기적의 시작인데도 불구하고 하나님을 모르니까 그런 것입니다.
여러분 하나님께 나가면 아무리 막다른 골목에 처했다 하더라도 하나님 안에서 꿈과 희망을 가질 수 있고 꿈과 희망이 있는 이상 사람들은 자살하지 않습니다.
***욥은 극심한 고난과 비난 가운데서도 하나님을 향한 소망을 가지고 있었고, 이 고난이 지나면 하나님이 나를 들어 사용하실 것이라는 확신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3본문10절 “그러나 내가 가는 길을 그가 아시나니 그가 나를 단련하신 후에는 내가 순금같이 되어 나오리라”
***예수께서 말씀하시기를 ‘내가 곧 길이다.’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예수를 우리가 믿는다는 것은 우리 인생에 막다른 골목에서 삶의 길을 얻는 다는 것입니다. 예수그리스도는 죄악 가운데 의의 길이 되시고, 저주 가운데 축복의 길이 되시고, 질병 가운데 치유의 길이 되시고, 가난 가운데 부요의 길이 되시고, 죽음가운데 영생천국의 길이 되시는 것입니다.
어떻게 적막강산이 될지라도 어떻게 삶의 동굴 속에 들어가서 나갈 길이 없을지라도 예수님을 모시게 되면 모든 동굴은 터널이 되어 버리고 마는 것입니다. 나갈 길이 생기는 것입니다.
***출애굽기 14장 10절로 14절에 보면 이스라엘 백성이 애굽에서 나와 홍해가에 와서 막다른 골목에 처했습니다. 좌절하고 절망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길을 만드시는 하나님이라는 사실을 이곳에서 계시해 주셨습니다.
“모세가 백성에게 이르되 너희는 두려워 말고 가만히 서서 여호와께서 오늘날 너희를 위하여 행하시는 구원을 보라 너희가 오늘 본 애굽 사람을 또 다시는 영원히 보지 못하리라 여호와께서 너희를 위하여 싸우시리니 너희는 가만히 있을지니라."
하나님이 홍해를 가르시고 이스라엘을 건너게 하신다음 뒤 따라온 애굽의 군대는 깊은 바다에 수장시켜 버렸습니다.
그러자 조금 전 까지 원망하던 이스라엘 백성들이 그 놀라운 기적을 체험하고는 모두 북을 치며 춤을 추며 길을 여시는 하나님 승리를 주시는 하나님을 찬양하였습니다.
시편 42편 5절에 "내 영혼아 네가 어찌하여 낙망하며 어찌하여 내 속에서 불안하여 하는고 너는 하나님을 바라라 그 얼굴의 도우심을 인하여 내가 오히려 찬송하리로다"고 말한 것입니다.
막다른 골목에서 하나님을 바라게 되면 오히려 좌절과 절망 대신에 찬송을 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예레미야서 33장 2절로 3절에 "일을 행하는 여호와, 그것을 지어 성취하는 여호와, 그 이름을 여호와라 하는 자가 이같이 이르노라 너는 내게 부르짖으라 내가 네게 응답하겠고 네가 알지 못하는 크고 비밀한 일을 네게 보이리라"
일을 우리가 짊어지면 안 됩니다.
우리가 짊어지면 지치고 피곤해 집니다.
일을 행하는 여호와, 그 일을 지어 성취하는 여호와인 것입니다.
일은 여호와께서 행하시고 우리는 하나님을 믿고 의지하고 따라가면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일을 당해서 감당하지 못할 때 주께 부르짖어 기도하면 하나님이 나타나셔서 우리의 알지 못하는 크고 비밀한 해답을 보여 주시는 것입니다.
***부르짖으면 우리의 마음에 우울한 감정이 사라지고 하나님이 주시는 평안이 임하고 담대한 마음으로 다시 시작할 수 있게 만들어 주시는 것입니다.
인생의 주인은 하나님이시지 저와 여러분이 아닙니다.
그러므로 과거도 현재도 미래도 하나님께 내어 맡기고 기도하면 하나님이 역사하시는 것입니다.
잠언 16장 3절과 9절에 보면 "너의 행사를 여호와께 맡기라 그리하면 너의 경영하는 것이 이루리라 "
"사람이 마음으로 자기의 길을 계획할지라도 그 걸음을 인도하는 자는 여호와시니라"고 말씀한 것입니다
고난은 누구에게나 있습니다.
모든 사람이 이 땅에서 다 당하는 것입니다.
예수님도 인간을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자.>라고 하셨습니다.
하지만 우리 예수님은 “세상에서 너희가 환란을 당하나 담대하라 볼찌어다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요17:33절) 고 하시어 주 안에 있는 자들에게 승리를 약속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욥에게 고난을 허락하셨지만 이 고난을 통하여 욥을 연단하신 후 욥에게 예전 보다 갑절의 복을 주셨고 온 세상 사람들에게 인내와 축복의 샘플이 되게 하셨던 것입니다.
그리스도 안에 있어야 인생에 수고하고 무거운 짐을 벗어 버리고 하나님의 영광 속에서 자살충동을 다 이기고 영혼이 잘되고 범사에 잘되며 강건하고 생명을 얻되 넘치게 얻으며 살아갈 수 있는 힘과 용기를 얻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당신을 전능하신 손으로 붙잡아 주십니다.
하나님은 당신을 끝까지 사랑하시고 끝까지 붙잡아 주실 것입니다.
믿음을 잃지 마십시오. 낙심하지 마십시오.
모든 염려를 주께 맡기시기 바랍니다. 오늘도 주께서 권고해 주실 것 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