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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이 황송한 말씀을 듣습니다
33: 1-6
1.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너는 네가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낸 백성과 함께 여기서 떠나서 내가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맹세하기를 네 자손에게 주마 한 그 땅으로 올라가라
2. 내가 사자를 네 앞서 보내어 가나안 사람과 아모리 사람과 헷 사람과 브리스 사람과 히위 사람과 여부스 사람을 쫓아내고
3. 너희로 젖과 꿀이 흐르는 땅에 이르게 하려니와 나는 너희와 함께 올라가지 아니하리니 너희는 목이 곧은 백성인즉 내가 중로에서 너희를 진멸할까 염려함이니라 하시니
4. 백성이 이 황송한 말씀을 듣고 슬퍼하여 한 사람도 그 몸을 단장하지 아니하니
5.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기를 이스라엘 자손에게 이르라 너희는 목이 곧은 백성인즉 내가 순식간이라도 너희 중에 행하면 너희를 진멸하리니 너희는 단장품을 제하라 그리하면 내가 너희에게 어떻게 할 일을 알겠노라 하셨음이라
6. 이스라엘 자손이 호렙산에서부터 그 단장품을 제하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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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본문을 통해서 이스라엘의 현재 위치가 애굽에서부터 출발한 이후에 여러 우여곡절이 있었지만 처음 하나님께서 모세를 부르시던 산 호렙 산에 와 있음을 6절을 참고하면서 알 수가 있습니다. 이 산은 본래 처음 모세를 부르실 적에 출애굽기 3장 12절에 보면 "내가 정녕 너와 함께 있으리라 네가 백성을 애굽에서 인도하여 낸 후에 너희가 이 산에서 하나님을 섬기리니 이것이 내가 너를 보낸 증거니라" 하고 말씀해 주셨던 그 산까지 이스라엘 백성은 지금 와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이처럼 모세에게 약속하셨던 그대로 호렙 산까지 이스라엘을 인도하여 왔습니다. 애굽으로부터 시작해서 여러 어려운 일들이 있었지만 이 호렙까지는 인도하여 오셨습니다. 그런데 이 호렙에서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하시는 말씀을 가만히 살펴보면 뭔가 하나님과 이스라엘 백성 사이에 굉장히 좋지 않은 감정이 형성되었던 것 같습니다. 감정의 골이 아주 깊이 패인 것 같습니다. 하나님께서 실망을 하셔도 크게 실망을 하신 것 같습니다.
그래서 모세에게 하나님께서 하신 말씀이 무엇인고 하니 "지금까지는 내가 너희와 함께 있으면서 이곳 호렙에까지 왔지만 이 호렙에서부터 가나안까지는 내가 약속한 바가 있어서 인도는 하겠다마는 지금부터는 함께 가지는 않겠노라. 내가 내 사자를 너희 앞서 보내어 전에 함께 하던 때와 마찬가지로 너희 길을 열어주어서 가나안 족속 히브리 사람, 여부스 사람, 히위 사람 등 너희를 해할 수 있는 강한 민족들을 다 쳐서 길을 열어줄 것인즉 너희는 갈지라. 나는 이제부터는 너희와 함께 가지 아니하고 너희와 뚝 떨어져서 먼저 가면서 전처럼 길을 내어 주겠노라."라고 말씀하십니다.
하나님께서 왜 이처럼 그동안 아무리 어려워도 함께 오셨는데 이제는 함께 가지 아니하고 그러나 약속의 현장까지는 꼭 들어갈 수 있도록 하나님께서 그 백성을 앞서 가면서 길을 열어주시겠다 말씀하셨는고 하면 그 이유도 잘 말씀하고 있습니다.
"너희는 목이 곧은 백성이라. 너희가 마귀에 대해서 목이 곧고 강하다면 또 세상에 대하여 목이 곧고 강하다면 좋겠지만 나 여호와 내게 대하여 목이 빳빳하고 숙이지 아니하고 자랑하고 교만하고 내게 대하여 반역하는 것을 이제는 더는 두고 볼 수 없어서 내가 굉장히 감정이 복 바쳐 있고 이 감정을 가지고 너희와 함께 진행하다가는 내가 힘이 있기 때문에 언제 어디서 어떻게 너희를 진멸해 버릴까 이것이 내가 걱정이다. 너희 이 꼴을 보고서 계속 같이 간다라고 한다면 내게는 큰 능력이 있어서 언제 내가 실수할지 모르겠다. 언제 내가 너희를 다 죽일지 모르겠다. 그것이 염려되기 때문에 너희와 내가 같이 가지 아니하겠다 한 것이니라. 그러나 약속이 있어서 너희를 가나안 땅까지는 가게 할 것이니라."
이렇게 하나님께서 말씀하고 계신 겁니다.
그러실 만 합니다. 왜냐하면 그 어려운 애굽 땅에서 구출해 내어 주었는데 이 이스라엘 백성이 바란 광야에서 이제는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으로 그 해의 열매를 먹도록 하기 위해서 하나님께서 정탐꾼을 내도록 하여 정탐을 해 오도록 하였더니 정탐꾼들이 와서 말하기를 "우리는 그들에게 비하면 그들이 밥이라. 메뚜기라. 그러므로 우리는 그들을 이기지 못할 것이라. 거기에 젖과 꿀이 흐르고 많은 과일이 있어서 우리가 이것을 견본으로 가져오기도 했지만 우리는 들어갈 수 없는 곳입니다."라고 발표를 합니다.
이 보고를 들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을 반역하여 하나님께서 우리를 이곳까지 불러내어서 우리를 죽게 하는도다 하면서 큰 반역을 했던 사건을 여러분은 잘 알고 계시지요. 그러나 하나님께서 그 반역 후에도 동행해 오신 것을 알 수가 있습니다.
그 얼마 후에 그런 일이 있고 얼마 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므리바의 사건을 여러분 아시지요. 반역에서 물을 내어 저들을 마시우게 하고 몸을 적시우게 하고 했던 그 물 사건 직전에 있었던 것이 무엇입니까? 하나님께 큰 반역을 했습니다. 하나님을 원망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애굽에서부터 지금 이곳까지 나올 때에 많은 이적으로 함께 해 주고 계시건만 이스라엘 백성들은 틈만 있으면 한나절을 참지 못하고 아직까지 물 하루도 굶은 적이 없고 못 마신 적이 없고 양식 한끼도 굶은 적이 없는데도 단 몇 시간을 참지 못해서 하나님 앞에 원망하는 원망을 하나님께서 들으셨으나 그래도 하나님께서는 이 백성과 함께 이곳 호렙까지 오셨습니다.
이 호렙에서 하나님이 하신 말씀이 아주 심각합니다.
"모세야, 더는 함께 갈 수 없다. 함께 가다가는 내게 있는 능력을 사용해서 아마 다 죽일 것 같다. 그러니까 떨어져 가자." 이런 말씀을 이제 하게 됩니다. 이 말씀을 왜 하게 되었는고 하니 바란 광야에서의 정탐 후에 그 반역사건 그리고 반석에서의 물을 꺼내기 직전에 백성들이 하나님 앞에 있던 그런 반역사건 그 이후에 지금 호렙에까지 왔는데 하나님께서는 이제 이후부터는 계명을 내려주어서 율법을 내려주어서 그 나라에 법을 만들고 세계 제일의 선진국을 만들고 세계 제일의 인격적인 나라를 만들고 법치국가를 만들기 위해서 하나님께서 법을 내려 주셨습니다. 이 법대로만 살면 세계에서도 제일 일등 가는 국가가 됩니다.
하나님께서 이런 관심을 가지고 이제 모세를 불러서 직접 말씀을 명하시고 그 명하신 말씀들을 또 잊을까봐 목판도 아닌 석판에다가 바위에다 다 하나님이 손수 새기셔서 그 바위에서 판을 떼어내어 가지고서 모세의 두 손에 들려서 그 백성에게 보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제 자기 백성을 세계 최고의 국가와 민족으로 만들기 위해서 이 율법과 계명을 내려보냈습니다. 하나님께서 그 말씀과 함께 이제 백성이 있는 현장으로 내려와 보니 이게 무슨 소리입니까? 떠드는 소리가 대단합니다. 보통 소리가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임하시니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기 위해서 모인 그런 영광의 모임 소리가 아니었습니다. 가만히 보니 내려오신 하나님은 아랑곳하지 아니하고 쳐다보려고도 않고 모세를 바라보지도 않고 저들이 금송아지를 만들어 가지고서 판대기 위에다 금송아지를 만들어 올려놓고 전부 거기에 목을 굽혀서 절을 합니다. 하나님께 대하여는 목이 빳빳하여 대어듭니다. "언제 당신을 하나님이라 했습니까? 이 금송아지가 우리를 애굽에서부터 이끌어낸 우리의 여호와라."고 하면서 떠들어댑니다.
하나님께서 바로 이 장면을 보신 것 그 33장 1절 바로 앞에 있는 32장 35절에 보면 "여호와께서 백성을 치시니 이는 그들이 아론의 만든바 그 송아지를 만들었음이더라"라는 말씀입니다. 이처럼 하나님 앞에 반역을 하게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또 하나님이 견딜 수 없도록 더 이상 참을 수 없도록 하나님의 화를 돋군 이 백성, 그래서 하나님께서 같이 가지 않겠다 라고 말씀하시면서까지도 다 진멸하지 아니하시고 내가 앞서 가면서 너희 길을 내겠다 라고 말씀합니다. 가나안 땅까지는 꼭 들어가게 해 주겠다는 겁니다.
이것은 왜 하나님께서 이르셨는가? 오늘 이렇게 하고 계시는 하나님을 통하여 우리는 무엇인가 발견해야 됩니다. 하나님은 어떤 분이시냐? 출애굽기 3 장 12절에 모세에게 약속한대로 "내 백성을 애굽에서 이끌어 내어 분명히 이 산까지 오게 할 것이요. 그리고 이 산에서 내게 경배하게 될 것이라. 모세 너는 이러한 사실을 보게 되면 내가 너를 보낸 하나님인 줄 알게 될 것이라."고 말씀한 바가 있었을 것입니다.
또 오늘 본문 33장 1절에도 보면 "너희의 행동이 나를 화나게 했지만 내가 언제 너희를 진멸할지 모르는 이런 형편까지 만들었지만 그러나 나는 너희를 죽이지 아니하고 차라리 떨어져서 거리를 두고 이렇게 가면서라도 너희를 가나안 땅까지 이끌어 들여야 하는 것은 너희의 조상 아브라함과 약속했고 이삭과 약속했고 그리고 너희와 약속했으므로 너희는 가나안 땅까지 분명히 갈 것이다." 이렇게 말씀하고 계신 겁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처럼 한번 언약하면 이 언약을 당대에 지키지 못하면 그 자손의 대에라도 반드시 지켜 주시는 하나님이심을 여기에서 발견할 수가 있습니다. 하나님은 한 번 약속하시면 우리를 축복하시면 하나님은 진실하게 그리고 그 언약에 충실하셔서 반드시 이루어내시는 하나님이심을 여기에서 발견하게 됩니다. 어떤 사항이 온다 할지라도 하나님은 한번 하신 약속을 어기지 아니하시는 하나님임을 여기에서 발견하며,
아울러 이 하나님이 이스라엘에 대하여 언약을 중요시 하시기도 하셨지만 이 이스라엘 민족에 대하여 하나님께서 하신 여러 가지 일들을 살펴보면 언약 그 이상의 어떤 어쩔 수 없는 특별한 관계를 갖고 있지 않으셨나 하는 생각을 떨쳐버릴 수가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에게 하신 이런 일들을 가만히 살펴보면 언약 차원만은 아니었습니다.
언약만 놓고 볼찐데 상대가 파기하면 나도 파기하면 되는 겁니다. 하나님이 언약하실 때 네가 어떻게 어떻게 하면 나도 하리라 주로 이렇게 언약 하셨기 때문에 상대가 이렇게 나오면 하나님께서 이 언약 지키지 않아도 됩니다.
그러나 이 이스라엘에 대하여는 이처럼 하나님이 왜 매달리고 계신가? 성질대로 혹 죽일까봐서 지금 혹 하나님이 실수 하실까봐서, 실수는 무슨 실수입니까? 백성이 큰 죄를 짓기에 그 죄 값으로 죽이려 하시는데 "혹 죽여버리면 내가 어떻게 하겠는가?"
미리 하나님께서 걱정하셔서 모세더러 먼저 이끌고 가라고 말씀하고 계신 하나님의 이 말씀을 들어볼 때 하나님과 이스라엘과의 관계는 뭔가 끈끈한 이 약속의 차원 이상의 무엇인가 있지 아니하냐 하는 생각을 떨쳐버릴 수가 없는데 함께 가다가는 너희를 죽일까 내가 염려되니 따로 가라고 하신 주님께서 잠시 후에 생각하겠습니다만 그 이후에 모세가 또 말씀드리기를 "하나님께서 친히 우리와 함께 가시지 아니하시면 우리 홀로는 안가겠습니다." 하고 버티니까 "그러면 또 내가 같이 가지." 해서 하나님이 또 같이 가십니다. 나중에 소개해 드리겠습니다.
금방 같이 안 가시겠다고 하신 하나님께서 조금 몇 말씀 드렸더니 "내가 이 일도 해 주지." 하면서 이스라엘과 함께 가시면서 하나님께서 해명 삼아 하신 말씀이 무엇인고 하면 33장 19절 하반절에서 발견할 수가 있습니다. 오늘 본문 장인 33장 19절 하반절에 "나는 은혜 줄 자에게 은혜를 주고 긍휼히 여길 자에게 긍휼을 베푸느니라" 이것이 조금 전에 함께 못 가겠다고, 다 죽일 것 같다고 하시던 하나님께서 조금 후에 또 함께 가시면서 힘을 보태주시면서 하신 말씀이 "나는 은혜 베풀 자에게 은혜를 주고 긍휼을 베풀 자에게 긍휼을 베푸느니라." 이런 해명을 하고 계십니다.
여러분, 이 말씀을 잘 헤아려 보십시오. 이 말씀이 정직하기 때문에 은혜를 베푼다는 뜻입니까? 의롭게 살기 때문에, 깨끗하기 때문에, 잘 믿기 때문에, 자격이 있기 때문에 은혜를 주고 긍휼을 베푼다는 겁니까? 이 말씀을 잘 살펴보시면 "너희가 이렇게 이렇게 잘하므로 깨끗하게 살고 죄짓지 아니하고 잘 믿고 충성하고 헌금 많이 하고 하기 때문에 나는 은혜를 베풀고 긍휼을 베푸느니라" 이 말이 아니지 않습니까. 이 말씀이 아닙니다.
여기에 하나님께서 해명하신 말씀 19절 하반절 말씀은 "나는 은혜 줄 자에게 은혜를 주고 긍휼히 여길 자에게 긍휼을 베푸느니라" 이 말씀은 조건이 필요 없습니다. 죄 안 짓기 때문에 잘 믿기 때문에 충성하기 때문에 그것을 시험삼아서 전부 저울로 재듯이 재어보고 '아 되었다. 얼마 줄게, 얼마 줄게. 은혜 줄게 긍휼 베풀게' 이런 관계가 아니라는 겁니다.
"내가 은혜를 베푸는 것은 내가 긍휼을 베푸는 것은 그저 내게 은혜 받을 자이기 때문에 주는 것이요 내가 긍휼 베풀 자이기 때문에 주는 것이지, 그가 잘 믿느니 못 믿느니, 헌금을 많이 하느니 적게 하느니, 정직하느니 안 하느니 그런 것 일일이 재어 가지고서 그 가치대로 얼마씩 얼마씩 떼어주는 그런 관계가 아니니 그저 내가 은혜 줄 자이면 주고 긍휼을 베풀 자이면 주는 것이니라. 살리고 싶으면 살리고 그것은 내가 그렇게 하는 자에게 주는 것이니라."
바로 이 말씀의 뜻은 정직하고 깨끗하고 잘 믿어서 자격이 있기 때문에 은혜를 베푼다는 말씀이 아닙니다. 그런 자격이 있기 때문에 긍휼을 베풀겠다는 말씀이 아닙니다. "어쩔 수 없이 저에게는 은혜를 줄 수밖에 없고 어쩔 수 없이 저에게는 긍휼을 베풀 수밖에 없어. 저가 잘하면 더욱 좋고 다른 사람들에게 자랑도 하고 싶겠지만 저가 못한다고 하여 내가 버릴 수 있느냐?" 저들과 나 사이는 잘하고 못하고 때문에 맺어졌다가 끊어졌다가 금방 동행하다가 금방 떨어졌다가, 격리를 해서 가다가 이런 관계가 아니라는 것을 지금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 특별한 관계를 가졌던 하나님에게의 이스라엘은 어떠했느냐? 이 특별히 은혜를 받을 대상 긍휼을 입어야 될 대상인 이 이스라엘에게 하나님께서는 어떻게 하셨는가? 많은 곳에서 특별히 취급한 것을 볼 수가 있지만 오늘 시간 관계상 몇 군데서 말씀드릴까 합니다. 조금 앞으로 가셔서 출애굽기 3장을 한번 열어보시겠습니다.
조금 전에도 소개를 드렸습니다만 출애굽기 3장 12절에 보면 하나님께서 모세를 부르시고 "하나님이 가라사대 내가 정녕 너와 함께 있으리라 네가 백성을 애굽에서 인도하여 낸 후에 너희가 이 산에서 하나님을 섬기리니 이것이 내가 너를 보낸 증거니라" 하시면서 하나님께서 모세를 애굽으로 보내어 자기 백성 이스라엘을 이끌어낼 때에 반드시 호렙산까지 오게 할 것이라고 모세와 약속을 합니다. 두고보라고 하십니다.
그러니까 하나님께서 애굽에 있는 자기 백성 이스라엘을 이끌어 낼 때에는 이 호렙산까지 분명히 데리고 올 계획이었고 이 호렙산에 데리고 와서 호렙산에 살게하려고 한 것이 아닙니다. 꼭 계속 나가 가지고서 어디까지 가느냐? 아브라함에게 약속하고 이삭에게 약속하고 야곱에게 약속하였던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까지 반드시 들어가게 해 줄 것이라는 계획 속에서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을 인도하게 되었습니다. 이끌어내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바로 그 후에 모세를 보내시면서 하나님께서 애굽에 가서 이렇게 말하라고 합니다. 이 하나님께서 하실 말씀인지 한번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18절 이하를 봅니다. 3장 18절 이하
"그들이 네 말을 들으리니 너는 그들의 장로들과 함께 애굽 왕에게 이르기를 히브리 사람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우리에게 임하셨은즉 우리가 우리 하나님 여호와께 희생을 드리려 하오니 사흘길쯤 광야로 가기를 허락하소서 하라 내가 아노니 강한 손으로 치기 전에는 애굽 왕이 너희의 가기를 허락지 아니하다가 내가 내 손을 들어 애굽 중에 여러가지 이적으로 그 나라를 친후에야 그가 너희를 보내리라 내가 애굽 사람으로 이 백성에게 은혜를 입히게 할찌라 너희가 갈 때에 빈손으로 가지 아니하리니 여인마다 그 이웃 사람과 및 자기 집에 우거하는 자에게 은 패물과 금 패물과 의복을 구하여 너희 자녀를 꾸미라 너희가 애굽 사람의 물품을 취하리라"(출3:18-22)
어렵지 않은 말씀입니다. 간단히만 설명을 드리지요.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이렇게 이렇게 하라고 일러준 내용입니다. "네가 애굽에 바로에게 가거든 이스라엘 장로들과 함께 바로 왕에게 나가서 너희를 영영 보내 달라고 하면 이 노동자인 너희를 보내주겠느냐. 너희를 종으로 삼고 머리 좋은 이 이스라엘 민족을 부려먹고 있는 애굽이 놓아주겠는가? 저들이 큰 공사를 지금 하고 있는데 놓아주지 않을 것이다. 그러니 너희가 가 가지고서 왕에게 말하기를 우리 하나님 여호와께서 우리에게 나타나셨는데 하나님께서 우리에게서 예배를 받으시려고 하는데 희생을 받으시려고 하는데 이 애굽 땅 안에서 받으시면 좋겠는데 저 여기서부터 한 삼일 길쯤 나간 저 홍해 근처 저기에서 하나님이 머물고 계시면서 우리더러 와 가지고 하나님 앞에 희생의 제사를 드리라 하니 우리를 보내주소서. 삼일만 갔다가 하나님 앞에 희생을 드리고 돌아오겠다."라고 하라고 모세에게 일러줍니다. 누가요? 하나님께서.
이게 참말입니까? 참말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본래의 계획은 무엇입니까? 삼일 길 갔다가 되돌아가는 것 아닙니다. 호렙산에까지 올 것이라고 약속했으며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으로 가고 영영히 애굽으로는 돌아가지 않게 하시겠다는 것이 하나님의 어김없고 흔들 수 없는 계획이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가나안 땅까지 가는 동안에 애굽으로 돌아가겠다고 했던 적이 몇 번 있습니다. 차라리 애굽이 더 좋지 않습니까 라고 할 때 하나님께서 가장 싫어했습니다. 애굽으로 되돌아 가겠다고 말할 때마다 하나님은 노를 끝까지 발하셨습니다. 애굽으로부터 자기 백성 이스라엘을 한번 뽑아낸 후에는 절대로 다시 돌아가게 하려는 계획은 하나님에게서 추호도 없습니다.
그러신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말하기를 "삼일 길 갔다가 거기 계신 하나님에게 제사 드리고 우리 삼일만에 돌아오겠습니다. 그러면 왕복 한 6일쯤 걸리겠습니다. 그러니까 우리를 한 일주일만 휴가 주십시오. 그리고 갔다와서 휴가 기간 논 것만큼 더 열심히 하겠습니다 라고 거짓말하라." 합니다.
그뿐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이렇게까지 하셨을까 싶은 일이 또 하나 있습니다.
"너희가 그동안 애굽 사람들을 위하여 온갖 고생을 다하고 너희의 땀을 흘리고 너희가 힘들어서 죽게까지 되었도다. 그러나 너희의 가진 것이 무엇이냐? 벌거벗고 나올 형편 아니냐. 무슨 손에 가락지가 하나 있냐. 무슨 돈이 있냐. 옷인들 좋은 것을 하나 입었느냐. 내 백성이 이 꼴 당해서 저 이방나라 애굽의 백성들에게서 당하기만 당하고 벌거벗고 도망 나오듯 하는 것은 싫으이. 내가 그 동네 주인들의 마음을 흔들어 놓을테니 너희는 각각 내 백성 이스라엘의 여인들에게 말하여 이르기를 주인이 가지고 있는 목걸이를 빌리라 하라. 금 패물을 빌리라 하라. 은 패물을 빌리라 하라."
요즘으로 말할 것 같으면 "좋은 옷 밍크 코트 같은 것을 빌리게 하라. 아주 비싼 좋은 것은 다 빌리게 하라. 빌리면 구하면 저들이 줄 것이라. 내가 저들 마음을 흔들어 놓을 것이라." 너희가 빌릴 때에 알아서 얘기하라 하지 않았겠습니까? "주인이여, 그동안 우리가 충성을 했사온데 한 삼일 길 하나님이 나오라 하시니 가기 싫어도 가야 되겠습니다. 그런데 우리의 신은 희한합니다. 우리가 벌거벗고 이렇게 험한 꼴 해 가지고 이렇게 가게 되면 하나님께서 우리 제사도 잘 안 받으려고 하고 누가 이렇게 만들었느냐고 아주 하나님이 노발대발할 수가 있습니다. 그러니까 우리 하나님은 아주 사치스러운 하나님이라 더득 더득 번쩍 번쩍하고 하는 것을 걸치고 가야 좋아하는 하나님이신즉 주인이여, 부자 마님이시여, 갖고 계신 것을 몇 일 동안만 좀 빌려주십시오. 그러면 그들이 다 줄 것이라." 그랬어요.
"그러면 그것을 빌려 가지고 너희 여자들만 걸칠 것이 아니라 아이들에게도 걸치고 너희와 함께 가는 우거하는 다른 세상 사람들에게도 함께 걸쳐서 하여간에 출발할 때에 남자든지 여자든지 아이든지 어른이든지 상관없이 목이든지 어깨든지 사방에 걸쳐라." 이렇게 했습니다. "더득 더득 걸쳐라. 몽땅 빌려 가지고 걸쳐라."
아마 이쯤 했으니까 모세가 말하기를 하나님의 성품을 잘 아시니까 "그러면 그것 언제 돌려주지요?" 이런 얘기 안 했겠습니까. 하나님의 답변이 무엇입니까? "돌려주기는 뭘 돌려줘? 너희가 취하는 거야. 너희가 뺏는 거야." 그랬어요.
이것이 18절 이하에 19절 20절 21절 22절에 잘 나타나 있습니다. 22절에 "여인마다 그 이웃 사람과 및 자기 집에 우거하는 자에게 은 패물과 금 패물과 의복을 구하여 너희 자녀를 꾸미라 너희가 애굽 사람의 물품을 취하리라" 그랬어요.
참으로 하나님께서 이런 일 하라고까지 하셨을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지금 오늘 본문에 있었던 출애굽기 33장은 어디입니까? 호렙산입니다. 하나님께서 노를 발하셔서 그 백성을 죽이실 것 같아서 같이 가지 않겠다 라고 하실 때에 이 백성들이 이 황송한 말씀을 듣고 자기들의 단장품을 이 호렙에서부터 다 제했다고 했습니다. 가져가지 아니하고 다 감추어 가지고 갔다 라고 했습니다. 한사람도 자랑꺼리를 번쩍거리지 않았다고 합니다.
이 단장품이 어디서 난 겁니까? 광야 생활하면서 무슨 금반지를 만들고 목걸이를 만들었겠습니까? 의복을 지었겠습니까? 그런 일 한 번도 한 적이 없습니다. 그러나 이들 몸에는 번쩍 번쩍 하고 있었습니다. 어디서 나온 겁니까? 전부 애굽 주인들에게 빼앗아 나온 겁니다. 빼앗은 것도 아니지요. 갚아주겠다 하고 갔다와서 그냥 먹어버린 것이지요. 그것을 또 누가 시켰습니까? 하나님이 시켰습니다.
저는 하나님의 종으로서 하나님의 이런 방법에 대해서 말씀을 안 드리고 싶은 것이 사실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속임수를 그렇게 싫어하시면서 또 거짓말하여 남의 것을 빌려 가지고 제것 만들어버리는 이 사기를 아주 싫어하시는 주님이신데 하나님이 이 이스라엘에 대하여는 가장 싫어하는 것을 하라고 하셨습니다.
가나안 땅까지 이끌어가서 영원토록 애굽에 들어가지 않게 하시려는 하나님께서 그 결심하고 모세를 보내어 일을 하시면서 "삼일만 갔다 올께요." 거짓말하라고 합니다. 거짓말만 또 했습니까? 은금 패물 다 빌려달라고 걸쳐 가지고 그것도 집안에 있는 남의 동네에 있는 사람까지 모두다 더득 더득 걸쳐 가지고 나오라고 했습니다.
"그 애굽의 여인들에게 내가 마음을 움직여서 너희에게 은혜를 입히도록 내가 만들어 놓을 테니까 너희들은 그냥 나올 때 삼일만 쓴다하고 갖고 나와라. 결국은 너희가 취할 것이다."라고 말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제일 싫어하는 것이 거짓말하여 빌리고 그것을 자기 것으로 삼는 이것 사기에 해당되는 것 아니겠습니까. 하나님은 아주 싫어하십니다. 하나님의 성품 전체를 보면 거짓을 가장 싫어하고 남의 것을 거짓말하여 자기 것으로 만드는 것 이것 아주 싫어하는 겁니다.
이렇게 되면 애굽 사람들에게 하나님은 뭐가 되겠습니까? 바로 왕에게 하나님은 어떤 꼴이 되겠습니까? 아마 삼일이 지나도 돌아오지 않고 한 달이 지나도 돌아오지 않고 각 가정마다 중요한 것 다 걸치고 나가버린 것을 알게된 애굽의 백성들이 뭐라고 말했습니까? "야, 그 이스라엘 사람들의 신이라는 그 신 희한한 한 신이네. 완전히 거짓말 신이네. 사기 신이네." 그러지 않겠습니까.
하나님은 영광의 하나님이십니다. 거룩하신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은 당신의 그 체면을 아주 중요시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의 영광은 대단한 영광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 이 이스라엘 백성에게 대하여 하신 것을 보면 "내 영광을 버렸으면 버렸지 내 백성이 손해만 보고 나오는 것을 볼 수가 없어. 세상 바로와 그 백성들에게 종노릇만 하고 벌거벗고 나오듯이 빈손 들고 나오는 꼴은 내가 볼 수가 없어. 그리고 내가 그 애굽에 이들을 더 둘 수는 없어. 내가 거짓말쟁이라는 소리를 들어도 내가 사기꾼이라는 소리를 들어도 내 영광이 땅에 떨어지는 한이 있어도 나의 그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이 이스라엘 백성이니 이 백성을 내가 빈손으로 나오게 하지 못할 것이라. 그리고 바로에게 도로 잡혀가게 하지는 아니할 것이라."
하나님께서 이렇게까지 자기 백성을 사랑하셨건만 이스라엘 백성이 목이 곧아서 갖고 나온 금부치 몇 달 지나고 몇 년 지나니까 내 것 다 되었구나 싶어서 양심에 가책도 없어지고 언제부터 자기가 부자되어 사치하고 살게 되었다고 그것을 더득더득 걸치고 하나님 앞에 고개를 빳빳하게 들고 나와서 교만하고 자랑하고 겸손이라는 것은 없더라 그겁니다.
그러던 이 이스라엘 백성이 한 두 번도 아니고 바란 광야에서 반역하고 또 얼마 지나서 그 물 사건 반석 앞에서도 또 반역하고 오늘은 하나님께서 그래도 저들을 어쩔 수 없는 관계인지라 일등 백성 만들어 주려고 그저 하나님의 그 율법과 계명을 주어서 저들이 살아갈 수 있는 법치국가를 그 당시부터 만들어 가려고 계명 판을 내려보냈더니 함께 내려오시는 하나님은 돌아보지도 아니하고 금송아지를 만들어 놓고 "이 금송아지가 우리의 여호와라. 우리가 애굽에서 이끌어낸 신이라." 이렇게 하고 있으니 그동안 오래도 참았지만 이 꼴 보고는 하나님이 더 이상 참을 수가 없었던 것 같습니다. 하나님께서 아주 큰 일을 저지를 수 있는 그런 어떤 환경에까지 감정에까지 치달았던 것 같습니다.
그때 하나님께서 "모세야" 모세가 그 형편을 보고 그 현장에 있었으니 하나님께서 부르시는 "모세야" 하는 소리가 좀 달랐겠지요. 기분이 좋아서 "어이 모세야!" 부르지 않았습니다. "모세야!" "예." "나 여호와 이 호렙에까지는 너희와 함께 왔지만 이제 이 호렙에서부터는 너희와 함께 가지 않겠노라."
그 다음 말씀이 아주 심각합니다. 내가 왜 함께 가지 아니 하느냐? 너희가 미워서 영영히 이별하겠다는 뜻이 아니라 이별할 수가 없구나. 너희가 목이 곧아서 나에게 이처럼 반역하고 하고 나오니 내가 이 감정을 가지고 너희와 지금까지 해온 것처럼 함께 가다가는 내게 힘이 있어서 너희를 언제 엎어버릴지 모르겠다. 땅을 벌려서 너희를 삼켜버리든지, 불을 내려서 죽이든지, 전염병으로 하든지, 홍수에다 집어넣든지 너희를 언제 없앨지 모르겠다. 내게 염려가 있다면 너희를 죽일까 싶어서 염려다. 그래서 지금부터는 함께 가지 아니하고 너희 앞서가면서 내 사자들로 함께 가는 것과 마찬가지로 너희의 길을 열어 줄테니 약속된 대로 가나안 땅까지 너희는 들어갈지니라." 이렇게 말씀하는 겁니다.
이를테면 자식이 너무 부모에게 잘못하니까 그 부모가 그놈의 자식을 가까이 보고 있다가는 일 저지를 것 같아요. 함께 있으면 뭘 들고 패 죽일 것 같아요. 너무 너무 성질을 올리니까 더 이상 참을 수 없으니까 그만 부모가 내 이 집구석에 안 있겠다 하면서 자식을 집에다 두고 딴 데로 가버리는 때도 있고 쫓아내는 경우도 있는데 이놈아 너는 내 자식 아니다 하면서 기어이 쫓아내면서 대문을 잠구어 버리는 수가 있어요.
왜 쫓아냅니까? 너무나 너무나 성질 올리니까 더 이상 볼 수가 없어서 큰 사고 저지를 것 같으니까 부모가 도망가든지 아니면 자식을 쫓아냅니다. 쫓아내어 놓고 하루가 가기 전에 이 부모는 쫓겨 나간 놈 형수를 불러 가지고서 "야 야 시동생한테 한번 가봐야지…." "예 예 갔다 오겠습니다." 하면서 나가는데 "그냥 가면 되나? 그 옆에 그것 봐라 그것. 그것 가지고 가라." 뭐냐? 돈이라 봉투에다 돈을 잔뜩 넣어놓고 가보라는 겁니다. 돈 갖다주라는 겁니다. 부모의 심정이 이러하지요.
이게 부모의 심정인데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에 대하여 하시는 일들이 어떤 일이냐? 함께 가다가는 죽일 것 같으니까 내가 실수할 것 같으니까, 왜 실수입니까? 실수가 아닙니다. 죄짓고 잘못한 것 죽였는데 실수라고 합니다. 내가 죽일까봐 염려가 되니 이제부터 따로 떨어져 가라는 겁니다. 모세와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의 이 말씀을 듣고 우리가 하나님의 이 황송한 말씀을 듣고 슬퍼합니다.
본문으로 가서 한번 더 봅시다. 1절 이하를 봅니다. "주마 한 그 땅으로 올라가라 내가 사자를 네 앞서 보내어 가나안 사람과 아모리 사람과 헷 사람과 브리스 사람과 히위 사람과 여부스 사람을 쫓아내고 너희로 젖과 꿀이 흐르는 땅에 이르게 하려니와(너희는 분명히 좋은 곳에 갈 것이다) 나는 너희와 함께 올라가지 아니하리니 너희는 목이 곧은 백성인즉 내가 중로에서 너희를 진멸할까 염려함이니라"(출33:1下-3) 하나님의 염려, 할 염려도 아니지요. 죄지은 자기 백성 더 이상 두고 보다가는 하나님의 의분이 올라서 혹 죽일까 실수할까봐 염려가 되어 가지고서 떨어져 가자는 겁니다.
4절에 "백성이 이 황송한 말씀을 듣고 슬퍼하여 한 사람도 그 몸을 단장하지 아니하니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기를 이스라엘 자손에게 이르라 너희는 목이 곧은 백성인즉 내가 순식간이라도 너희 중에 행하면 너희를 진멸하리니 너희는 단장품을 제하라 그리하면 내가 너희에게 어떻게 할 일을 알겠노라 하셨음이라"(출33:4-5)
그러니까 하나님께서 하신 말씀이 "지금 너희가 이처럼 죄를 짓고 나를 어렵게 만들었으니 언제 너희를 진멸할까 두려우니 뭔가 내 마음을 좀 더 강해지지 않도록 너희를 진멸하지 않도록 내가 뭔가 좀 다른 마음을 좀 가져보기를 원하니 너희 그것 더득 더득 붙이고 나온 것 번쩍 번쩍 하는 금 패물 은 패물 그것 좀 보켓(주머니) 안에 감추라고 하라. 언제부터 너희가 그렇게 잘났다고 나를 무시하고 멸시하느냐. 너희 패물같은 것 저 안에 저 주머니 속에 감추고 조금 미안한 척이라도 해 봐라. 그러면 내 마음이 좀 달라지면 너희 안 죽을 것이야."
지금 하나님의 걱정은 무엇입니까? 회개를 하라 회개하면 봐주겠다 이게 아닙니다. 하나남께서 회개를 특별히 회개하는 것을 봐야 값으로 용서를 해주고 그렇게 우리는 하나님을 알고 있지만 하나님은 우리에게 그런 관계가 아닙니다. 조금 잘 믿는다고 내 백성이고 조금 잘 못 믿는다고 너는 내 백성 아니고, 회개한다고 용서해주고 회개 안 해준다고 죄인이고, 우리는 자라는 백성인지라 어린 아이 같아서 크고 있기 때문에 교육은 그렇게 받고 있습니다만 하나님과 이스라엘 백성 사이에는 조금 잘 믿는다고 특별히 봐주고 조금 못 믿는다고 남의 백성 되고, 좀 더 충성한다고 하나님이 더 좋아하고 충성 못한다고 남 되고 그리될 수 없는 관계라는 것입니다. 처음부터 그럴 수 없다는 겁니다.
여러분 부모님들이여, 자녀들이 잘한다고 여러분의 아들 딸 되고 못한다고 남 됩니까? "너는 이놈아, 내 자식 아니야." 아무리 소리를 쳐도 남일 수가 없는 관계인 것을 인정하시면 아멘 합시다. 육신의 부모도 그리하거늘 하물며 영의 참 아버지 되신 우리 하나님, 여러분 어떻습니까? 하나님과 육신의 부모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 하나님과 이 세상에 있는 육신의 부모를 두고 둘 중에 어느 곳에 더 진실하게 들어갑니까?
여러분은 모르겠습니다만 저는 정말 급하면 육신의 부모에게서는 큰 기대를 못합니다. 정말로 급하면 육신의 부모에게 말하지 못하는 것을 하늘에 계신 하나님께는 아무리 부끄러워도 말씀드리고 도와달라고 하나님을 찾아갈 수는 있는데 육신의 부모는 하나님만큼 미더워지지 않습니다. 또 육신의 부모는 하나님만큼 참을 능력도 없습니다. 하나님과 이스라엘간의 관계는 이처럼 한 관계였습니다.
그래서 이 황송한 말씀을 듣고 슬퍼서 한 사람도 어김없이 단장품을 다 제하고 머리를 숙이고 슬퍼하고 죄송해 하고 있었더니 모세가 하나님의 심정을 너무나 잘 알므로 33장 15절에 이런 말씀을 드리게 됩니다. "모세가 여호와께 고하되 주께서 친히 가지 아니하시려거든 우리를 이곳에서 올려 보내지 마옵소서" 주께서는 우리에게 은총을 베푼 줄로 압니다 라고 말합니다. 모세는 하나님의 심정을 너무나 잘 압니다.
하나님은 기본적으로 우리와 임마누엘 하시기를 원하십니다. 함께 가시기를 원하십니다. 잘하든지 못하든지 하나님은 우리와 함께 계시기를 원하는데 이 호렙에 와서부터 지금부터는 떨어져 가겠다 라고 말씀하시니 "얼마나 화가 나셨으면 저럴까, 이 백성을 죽이실까봐 하나님이 자신을 염려해 가지고서 우리와 떨어져 가시겠다고 하였는데 오늘 이 백성 지금 단장품을 제하고 지금 하나님 앞에 슬퍼하며 이 황송한 말씀을 듣고 엎드렸으니 내가 이 말씀을 드려 보리라. 하나님, 함께 가시지 아니하시고 친히 가시지 아니하시고 우리만 올려보내시려면 비록 앞에서 하나님께서 길을 내어 주실지라도 우리는 올라가지 않겠습니다."라고 하나님 앞에 말씀을 드려봅니다.
그랬더니 하나님께서 어느 사이에 17절에 대답하십니다.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너의 말하는 이 일도 내가 하리니…" 조금 전에는 뭡니까? 함께 가지 않겠다 라는 것입니다. 너희 다 죽일까 싶어서 떨어져서 먼저 가겠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뭡니까? 금부치 조금 떼고 목걸이 팔걸이 이런 것 전부 좀 떼고 미안합니다 하고 회개하는 척만 좀 했습니다. 그때 하나님께서 그것을 가만히 쳐다보시더니 모세의 말을 듣습니다. "하나님, 우리와 같이 가지 아니하신다면 우리 올라가지 않겠습니다. 우리만은 가지 않겠습니다." "모세야, 네가 지금 말한 것은 나와 같이 가자는 것이냐? 그래 네가 말한 이 일도 내가 또 하지." 하면서 함께 올라가시면서 하신 말씀이 무엇이냐? 19절 하반절에 "나는 은혜줄 자에게 은혜를 주고 긍휼히 여길 자에게 긍휼을 베푸느니라" 이것이 해명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은혜 베풀 자에게 은혜 주시고 긍휼 베풀 자에게는 긍휼을 주시는데 잘하기 때문에 정직하기 때문에 충성 많이 하기 때문에 더 주고 못하기 때문에 미워 버리거나 그리 할 수 없는 관계라는 것입니다. 인정하시면 아멘 합시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자기 백성으로 택하셨으니 이스라엘과 하나님의 관계는 잘 믿는다고 내 백성이고 못 믿는다고 남의 백성, 그럴 수 없다는 겁니다. 잘 믿어도 내 백성 잘 못 믿어도 내 백성, 충성해도 내 백성 충성 못해도 내 백성, 죄 안 짓고 의롭게 살아도 내 백성, 그러면 더욱 좋지요. 만방에 나가서 자랑하겠지요.
그러나 "의롭지 못하고 죄를 짓고 또 짓고 나를 괴롭게 하고 내 성질을 머리끝까지 돋아올려도 내 백성에게는 은혜 줄 수밖에 없다. 남들이 보면 뭐라 하겠는가? 남들이 보면 욕할 거야. 그렇지만 남이야 욕을 하든지 말든지 내 체면 따진다고 내 영광 따진다고 내 백성 된 백성을 내가 버릴 수는 없는 것 아니냐."
많은 사람들은 하나님을 법적으로만 믿으려고 합니다. 상식적으로 믿으려고 합니다. 기계적으로 합리적으로 믿으려 합니다. '믿으면 천당이지. 헌금 많이 하면 축복 많이 받고 회개하면 용서지' 하나님 앞에 나아가는 자들이 믿으면 다 되는 줄 압니다. 그래서 믿는 것을 가지고 큰소리 칩니다. 헌금하는 것을 가지고 큰소리 칩니다. 회개하고 나서 나는 아무 죄 없다고 자유하다고 큰소리 칩니다.
물론 회개하면 하나님께서 용서하십니다. 믿으면 자기 백성으로 천국까지 인도합니다. 충성하면 하나님께서 보상해 주시는 것은 사실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에게서 오늘 우리는 무엇을 듣습니까? "그리하면 좋지만 네가 그리하지 아니할지라도 나는 네가 버렸다가 붙였다가 할 수 있는 그런 관계가 아니지 않느냐. 내가 택한 영원한 내 백성이라. 너는 나의 택한 영원한 내 백성이기 때문에 이런 관계를 가졌는데 잘한다고 내 백성 되고 못한다고 남의 백성 되겠느냐? 나는 그럴 수 없느니라. 남의 나라 백성 같으면 죄를 지으면 한꺼번에 진멸해도 내가 아무 후회 않겠지만 내 백성을 죽여놓고는 그 뒤에 내가 허전해서 살수 없을 것이라. 떨어져가자."
황송한 말씀을 호렙산에서 하나님으로부터 이스라엘 백성만 듣습니까? 아니면 오늘 우리가 듣습니까?
오늘 우리가 듣고 있음을 믿으시기를 바랍니다. 이스라엘 백성과 하나님 사이가 하나님을 아버지라 부르는 우리 사이 하나님과 우리의 사이가 어떻게 비교가 되겠습니까?
하나님께서 아직 하나님을 아버지라 부르지도 않는 성령으로 거듭난 그런 실적도 없는 그러나 하나님께서 내 백성으로 삼으시고 약속되었기 때문에 버릴 수 없어서 잘하든지 못하든지 이끌어 가는 그 이스라엘 백성, 거기에 비하면 우리는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씨가 우리 안에 드신 것을 믿으시기를 바랍니다. 성령으로 거듭난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아들의 살과 피가 우리 속에 흐르고 있음을 믿으시기를 바랍니다.
뗄래야 뗄 수 없는 하나님의 아들 딸임을 인정하십니까? 하나님은 그런 우리의 아버지이십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믿을 때에 이런 아버지 사랑이 많으실 뿐만 아니라 정이 많으신 하나님, 성질이 나면 성질 때문에 실수할까봐 두려워하는 정이 많으신 하나님, 이 하나님은 우리를 끊어내지 못하시는 하나님, 이 하나님을 믿으시기를 바랍니다.
오늘 우리는 언약에 충실하신 하나님도 발견했지만 더 나아가서 하나님과 우리 사이는 붙었다가 떨어졌다 할 수 있는 그런 사이가 아닙니다. 내가 잘 믿으면 믿는 그 동안에는 하나님의 자녀 되고 내가 좀 하나님을 의심하고 염려하게 되면 남 되고.
여러분, 하나님과 우리 사이는 그런 관계가 아닙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더러 "너희가 율법을 잘 지키면 내가 더욱 기분이 좋겠지만 너희가 혹 지키지 아니한다고 하여도 너희가 내 자식된 것은 끊을 수 없는 사실이라." 하나님은 이처럼 우리를 대하고 계시니 이 황송한 말씀을 함께 듣고 있습니다.
하나님에게 있어서 우리는 어떤 대상이냐? 율법과 계명보다 크다는 사실입니다. 하나님에게 있어서 우리는 어떤 대상이냐? 영광의 하나님의 자신의 영광보다 더 크다는 사실입니다.
애굽에 가서 거짓말을 하라 합니다. 바로 왕과 애굽 백성이 하나님을 뭐라고 말할 것입니까? 평생에 하나님을 거짓말쟁이라고 할겁니다. 우리 백성의 금부치 은부치 다 거짓말하고 빼앗아가게 한 하나님이라고 할 것입니다. "내가 이방 나라 백성으로부터 내 명예에 그만큼 손해를 보아도 좋다. 원하는 것은 아니지만 내가 이방 사람들에게 욕을 먹을지라도 내 백성 거지꼴 해 가지고 나오는 것은 싫어. 일만 해주고 병신처럼 벌거벗고 나오는 것은 싫어."
하나님의 마음이 우리에게 대하여 이러하시니 이러한 하나님을 믿으십시오. 조금 죄 안 지었다고 고개 들고 나오고, 조금 실수했다고 하나님이 날 떠나셨나 이런 염려들을 하시는데 우리는 그리할지라도 하나님은 우리에게 대하여 오늘밤 하시는 말씀이 조금 잘한다고 내 자식이고 조금 못한다고 남의 자식일 수 없는 사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영원한 관계라고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버리고라도 우리 기분을 살려주시려는 하나님이신 것을 오늘 말씀해주신 것입니다.
우리가 죄악이 너무 관영하고 하나님을 반역하여 죽일 수밖에 없고 진멸할 수 없는 상황에 갔을 때 떨어져 가자고 합니다. 너희가 미워서라고 말하지 않습니다. "내가 내가 염려되어 내 자신이 염려되어…." 무슨 염려입니까? "나에게 약을 올렸다고 내가 칠까봐 염려되어 좀 떨어져 가겠다."
그랬더니 모세와 그 백성이 단장품을 제하고 회개하는 척을 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한 사람 한 사람 가까이 가서 회개를 중심까지 했는가 진심으로 했는가, 이게 가짜냐 엉터리냐, 하나님은 그것 따지기 싫어했습니다. 오히려 따지다보면 가짜가 많이 나올 것 같으니까 겉으로 보고 "되었다 되었다 전부 다 금부치 은부치를 빼어내 빼어내. 야 다 되었다. 회개했네." 깊이 가서 물어보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오셔서 깊이 깊이 따지고 들어온다면 거짓말 탐지기도 탐지를 해 낸다는데 하나님께서 우리 중심을 꽤뚫어 보시고 너는 아직 가짜야 한다면 누가 하나님 앞에서 천국까지 가겠습니까.
여러분, 하나님 앞에서 하나님의 마음을 누그러뜨려서 우리와 떨어져 가시지 아니하고 동행하실 수 있도록 회개하는 흉내라도 내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의 은혜 이렇게 크건만 우리가 주님 앞에 무엇을 하는지….
찬송합시다. 353장입니다.
우리는 천국갈 때까지 우리의 영혼이 우리의 육신의 생활이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에 까지 이르도록 주의 교훈과 교양으로 교육받고 있어서 '잘못하면 너희는 멸망한다. 충성하지못하면 너희에게 복을 주지 아니한다. 잘 믿으면 충성하면 회개하면 이런거 이런거 준다' 학생을 가르치듯이 우리는 그런 가르침을 받고 있습니다.
그러나 오늘밤 이렇게 가르치시는 하나님 그 깊은 속 마음은 우리를 잘한다고 자식삼고 못한다고 버릴수 있는 그런 하나님이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하나님과 우리의 사이는 회개 잘하고 충성 잘하고 믿음 좋아서 붙었다가 떨어졌다 하는 그런 관계가 아니라 영원한 관계, 끊을 수 없는 관계, 참 아버지이신 것을 오늘 드러내어 주셨으니 호렙산에서 이스라엘 백성만 황송한 말씀을 들은 것이 아니라 오늘 우리가 이 황송한 말씀을 듣습니다. 황송하리만큼 감사하신 주께서 이 해에 여러분과 함께 동행하실 줄을 믿습니다. 기도합시다.
출처: 은혜목회정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