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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희로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께 범죄케 할까 함이니라
신명기20:10-18절을 보면
“네가 어떤 성읍으로 나아가서 치려할 때에 그 성에 먼저 평화를 선언하라 그 성읍이 만일 평화하기로 회답하고 너를 향하여 성문을 열거든 그 온 거민으로 네게 공을 바치고 너를 섬기게 할 것이요 만일 너와 평화하기를 싫어하고 너를 대적하여 싸우려 하거든 너는 그 성읍을 에워쌀 것이며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그 성읍을 네 손에 붙이시거든 너는 칼날로 그 속의 남자를 다 쳐죽이고 오직 여자들과 유아들과 육축과 무릇 그 성중에서 네가 탈취한 모든 것은 네 것이니 취하라 네가 대적에게서 탈취한 것은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주신 것인즉 너는 그것을 누릴찌니라 네가 네게서 멀리 떠난 성읍들 곧 이 민족들에게 속하지 아니한 성읍들에게는 이같이 행하려니와 오직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기업으로 주시는 이 민족들의 성읍에서는 호흡 있는 자를 하나도 살리지 말찌니 곧 헷 족속과 아모리 족속과 가나안 족속과 브리스 족속과 히위 족속과 여부스 족속을 네가 진멸하되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명하신 대로 하라 이는 그들이 그 신들에게 행하는 모든 가증한 일로 너희에게 가르쳐 본받게 하여 너희로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께 범죄케 할까 함이니라”
구약입니다
우리는 성경에서 의미하고 있는 말씀을 잘 알아야 합니다. 그저 사람의 이성을 가지고 성경을 보다가는 나도 망하고 또 주변 모든 사람이 망하는 길로 간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은 우리 인생 모두가 영생을 얻기를 원하신다는 것을 먼저 알고서 성경을 보아야 합니다.
이스라엘입니다
그들을 왜 가나안으로 인도하셨습니까? 물론 그 첫 번째는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하신 언약을 이루시고 이스라엘로 하나님의 백성으로 살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그리고 가나안에 있는 백성들의 죄악이 관영을 해서 하나님께서 그들을 심판하시기 위해서입니다. 또 이스라엘이 가나안에 들어가서 그 주변 국가들에게 복음을 전파하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노아의 홍수입니다
세상에 있는 모든 사람들의 생각이 항상 악함을 보시고 그들을 물로 심판을 하시고 노아와 그 가족에게 은혜를 베풀어 주셨습니다. 그리고 후에 사람들이 흩어져 살아가고 있는데 특히 이 가나안에 있던 사람들에게는 다른 신이 들어왔고 그들의 죄악이 관영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노아의 홍수입니다
그 이전에는 모든 사람이 하나님을 믿었습니다. 그리고 홍수가 난 후에 언어가 달라지고 사람들이 흩어짐으로 해서 새로운 신들이 생겨났고 그것으로 하나님을 믿는 사람이 이제는 거의 사라지고 말았습니다. 당시 홍수 후에 사람들에게 그런 일이 있었고 죄악이 관영해진 그 때에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자손들을 가나안으로 인도하셨습니다.
성경을 알아야 합니다.
처음에는 이 세상 모든 사람이 하나님을 믿었습니다. 그러니까 노아 홍수 후에는 모든 사람들이 하나님을 믿었습니다. 그런데 노아 홍수가 있기 전과 같이 세상에 죄악이 점점 더 관영해 지고 있는 시대라는 것을 알고 이 말씀을 보아야 합니다.
이스라엘입니다
우리는 먼저 그들에 대해서 알아야 합니다. 모세를 통해서 하나님의 말씀을 전했습니다. 물론 문자적으로는 율법을 전파했습니다. 그러나 그 안에는 모든 복음의 말씀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애굽에서 나온 이 세대는 가나안 땅을 정탐하고 나서 악평함으로 해서 광야라는 교회에서 다 죽었다는 것을 우리가 알고 있습니다.
가나안에 있는 족속입니다
헷 족속과 아모리 족속과 가나안 족속과 브리스 족속과 히위 족속과 여부스 족속은 이미 죄악이 관영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이 가나안에 있는 족속을 진멸하게 하시고 이제 복음을 들은 이스라엘로 들어가게 하시고 있습니다.
1세대는 죽었습니다.
그리고 유아와 광야에서 태어난 자들이 자라서 그들이 이제 가나안을 목전에 두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그들이 가나안에 들어가기 전에 모세가 이스라엘을 향해서 율법을 말씀을 하고 있고 그 율법 안에는 모든 복음이 담겨져 있다는 것을 이제 우리 성도들은 알고 있습니다.
노아 홍수 후입니다
우리가 잘 알고 있듯이 노아의 가족만 있었고 그들은 다 하나님을 믿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이 자손들을 많이 낳기 시작을 했고 그 중에서도 가나안에 있는 사람들의 죄악이 관영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또한 하나님께서는 이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을 천국으로 예표를 해서 이스라엘에게 그 여정을 가르쳐 주시고 있습니다.
창세기를 보았습니다.
물론 400년 전입니다 아브라함이 그 땅에 왔을 때 그들이 다른 신을 섬기고 있었지만 하나님을 두려워했던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모두가 하나님에 대해서는 어느 정도로 알고 있었습니다. 그 이후에 다른 종교가 생겨나기 시작을 했다고 보는 것이 맞습니다.
사람들이 하나님을 안 믿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사람들을 구원하시는 일에 대해서 믿지를 않으면서 대적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런 일로 인하여 자연스럽게 전쟁이 일어나게 되어 있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지금 그 대적과의 전쟁에 대해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가나안에 들어가는 세대입니다.
그들은 복음을 알고 있었던 세대라고 보는 것이 맞습니다. 그런 그들이 가나안에 들어가면 대적을 하는 성읍들이 있게 된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나서 그들과 불가피하게 전쟁을 할 때를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에게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당시 근동지방입니다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었습니다. 왜 그런가 하면 그들은 노아의 홍수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고 노아의 후손들에 의해서 그들이 탄생이 되었기 때문에 그 조상들로부터 하나님에 대해서 들었습니다. 그런 그들이 복음을 모르는 상태에서 이스라엘의 대적이 되고 있습니다.
먼저 이것을 알아야 합니다.
지금 이 대적은 그냥 세상에 있는 다른 나라를 말씀을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는데 그들이 대적이 되어 있습니다. 실제 교회 안에 있는 일과 같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이스라엘은 모세를 통해서 광야라는 교회에서 애굽에서 나온 유아와 그리고 광야에서 태어난 이스라엘이 복음을 들었습니다.
가나안 땅입니다
그 땅도 처음에는 모두가 하나님을 믿었습니다. 그런데 그들이 이제 다른 신을 섬기면서 죄악이 관영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진멸하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가나안 땅이 아닌 먼 지방에 있는데 그들은 아직 복음을 듣지를 못했기 때문에 전쟁에 대해서 이렇게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입니다
그들은 가나안에 들어가면 복음을 전해야 하는 의무를 가진 백성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실제로는 전혀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실제 이 율법이 있지만 성경을 보아서 우리가 잘 알고 있지만 이스라엘이 주변 성읍을 치려고 한 것이 아니라 도리어 침략을 많이 받았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대적입니다
물론 이스라엘에게 있어 육적으로 대적이 있습니다. 그들은 주변국이라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영적인 대적이 누구입니까? 바로 율법주의라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당시 노아 홍수 후에 하나님에 대해서 알고 있었던 사람들이 자연스럽게 율법주의가 되었고 그들은 복음을 들은 이스라엘에 대적이 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 싸움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래도 아직까지는 하나님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제 세상에 인구가 점점 많아지면서 사람들은 더 멀리 흩어지고 새로운 종교가 생겨나기 시작을 했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물론 그 당시에도 가나안 땅에는 바알과 아세라를 섬기고 있었던 것을 볼 수 있었습니다.
영의 구원입니다
육체로 살아가려고 하는 사람들에게는 대적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천국을 사모하고 살아가는 우리에게 육체의 일은 대적이 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이 가나안에 들어가서 실제 있었던 일을 통해서 우리는 대적과의 싸움을 늘 생각하면서 살아가야 합니다.
“네가 어떤 성읍으로 나아가서 치려할 때에 그 성에 먼저 평화를 선언하라”
이스라엘입니다
이제 가나안에 들어가서의 일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먼저 이스라엘은 복음을 알고 있는 성도라는 것을 기본으로 생각을 하고 성경을 보아야 합니다. 그러니까 복음을 알고 하나님을 믿는 성도입니다 그러나 세상은 율법주의라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이스라엘은 물론 육적으로 대적이 되었지만 우리에게는 영적으로 대적이 되고 있다는 것을 알고 보아야 합니다.
어떤 성읍입니다
분명하게 말씀을 하고 있지 않습니다. 그러나 복음을 가지고 있는 이스라엘과 대적이 되어 있는 어떤 성읍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냥 이스라엘이 어떤 성읍을 치러 가는 것이 아니라 그들과 싸움에서 이겨서 그들의 것을 탈취하기 위해서 전쟁을 일으키는 것이 아니라 대적이 되어 있는 성읍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대적입니다
이스라엘에게는 육적으로 대적입니다 그러나 우리에게는 영적으로 대적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이스라엘의 육의 일은 우리에게 있어서 영의 일이라는 것을 늘 기억하고 성경을 보아야 합니다. 단지 그냥 대적이 아니라 하나님께서는 복음과 율법과의 싸움에 대해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의 육입니다
그것은 우리의 영의 일이라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 율법은 실제 전쟁을 말씀을 하는 것이 아니라 대적이 되어 있는 성읍에 대해서 너희가 어떠한 마음을 가져야 하는가를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 성읍은 교회가 될 수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누가복음19:38절을 보면
“가로되 찬송하리로다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 왕이여 하늘에는 평화요 가장 높은 곳에는 영광이로다 하니”
대적이 된 성읍이 있습니다.
왜 대적이 되었다고 생각을 하고 있습니까? 하나님께서는 사람들이 종교가 되어서 율법주의가 되는 것을 가장 싫어하시고 있습니다. 당시에 사람들은 그래도 하나님에 대해서 알고 있었고 하나님을 믿는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모세와 같이 복음을 전하는 자가 없었기 때문에 자기 소견대로 하나님에 대해서 알았고 그들이 율법주의에 빠져 대적이 되었습니다.
물론 실제 대적이 될 수도 있습니다.
이스라엘의 실제 대적은 지금 이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우리에게는 율법주의가 되어 있는 교회라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 말씀은 이제 가나안을 목전에 두고 있는 이스라엘에게 하고 있는 말씀이고 그들이 가나안에 들어갔을 때 주변 성읍들이 어떠한가를 모세를 통해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이 복음을 들었습니다.
처음 애굽에서 나온 1세대는 믿음이 없어서 광야에서 죽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유아들과 광야에서 태어난 사람들이 모세로부터 율법을 들었지만 그 안에는 복음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복음을 알고 있었고 그래서 가나안에 들어갈 수 있었습니다. 그 복음을 믿고 있는 이스라엘에 대적이 있다는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들입니다
먼저 평화를 선언하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무엇에 대해서 말씀을 하라고 하고 있습니까?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에 대해서 말씀을 하라하고 있습니다. 어느 성읍이 대적이 되었는데 그들을 그냥 치고 들어가지를 말고 먼저 평화를 선언하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
그분은 이 세상에 모든 사람들에게 평화가 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대적이 되어 있는 성읍을 치러갈 때는 먼저 이스라엘에게 복음을 전하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렇게 이스라엘을 통해서 복음이 전파가 되기를 원하셨지만 이스라엘은 우리가 사사기를 보아서도 잘 알고 있지만 그들 먼저 율법주의가 되고 말았습니다.
이스라엘입니다
그들이 평화를 선언했습니까? 주님이 오셨을 때 이스라엘에게 무엇이라고 말씀을 하셨습니까? 그들이 로마에 의해서 멸망을 당할 것을 아시고 이스라엘의 성전을 보시면서 너희가 평화에 관한 일을 알았다면 좋았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몰랐습니다.
평화에 대해서 전혀 몰랐습니다. 이 세상에 이성적인 평화를 말씀을 하는 것이 아니라 영의 일에 있어서 평화를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은 가나안에 들어가자마자 바알과 아세라를 섬기는 일을 반복을 했던 것을 볼 수 있습니다.
평화를 선언해야 홥니다.
그런데 평화에 대해서 알아야 평화를 선언할 수 있는 것 아닙니까? 이 시대도 마찬가지입니다 서로 대적이 되어 있을 때 평화에 관한 일을 알아야 평화를 선언할 수 있는 것 아닙니까? 평화에 관한 일을 모르면서 평화를 선언할 수 있다고 생각을 합니까?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이 가나안에 들어가면 이 평화에 관한 일을 모를 것을 미리 아시고 이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알았습니까?
이스라엘은 모를 수 있습니다. 그들이 성막을 보고 그것이 저의 육체라는 것을 안다는 것은 정말 쉽지 않습니다. 그러나 이방인들은 어떻습니까? 이제 신약에 다 기록이 되어 있고 요한복음에서 성전을 보고 저의 육체라고까지 말씀을 하고 있는데도 예수 그리스도를 전혀 모르고 있습니다. 그들이 어떻게 평화를 선언할 수 있습니까?
우리 성도입니다
대적이 있으면 평화를 선언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런데 이 시대는 평화에 관한 일을 아는 사람이 없습니다. 그저 성경에 기록이 되어 있는 예수 그리스도라는 문자를 아는 것을 가지고 평화를 안다고 말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성경의 모든 말씀에서 그에 대해서 알아야 평화를 선언할 수 있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그 성읍이 만일 평화하기로 회답하고 너를 향하여 성문을 열거든 그 온 거민으로 네게 공을 바치고 너를 섬기게 할 것이요”
대적입니다
그 성읍을 치려할 때 먼저 평화를 선언하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이스라엘은 한 번도 이 평화에 대해서 몰랐습니다. 그리고 이방의 교회 역시 문자적으로는 예수 그리스도를 알고 있다고는 했지만 평화에 대해서 전혀 모르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평화를 선언했습니다.
그러면 두 가지 상황이 있게 됩니다. 하나는 평화를 받아들이는 것이고 하나는 평화를 거절을 하고 대적을 해서 싸움을 하게 되는 경우입니다. 이 두 가지에 대해서 하나님께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먼저 평화를 선언했습니다. 그런데 그들이 평화를 하기로 회답하고 너를 향하여 성문을 열거든 그 온 거민으로 너에게 공을 바치고 너를 섬기게 하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육의 말씀이 아닙니다.
마치 이 세상의 나라와 나라의 싸움에서 굴복을 하는 나라가 조공을 바치고 그 나라를 섬기게 하는 것을 말씀을 하는 것이 아닙니다. 성경은 그런 육의 일을 말씀을 하는 것이 아니라 영의 일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사람들은 성경을 육의 일로 보고 중세 시대에는 심지어는 이 말씀에 있는 그대로 육적으로 했던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로마서13:6절을 보면
“너희가 공세를 바치는 것도 이를 인함이라 저희가 하나님의 일꾼이 되어 바로 이 일에 항상 힘쓰느니라”
성경입니다
늘 말씀을 드리지만 육의 일이 아니라는 것을 먼저 알고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에게 전쟁을 해서 성읍을 칠 때 그들이 평화에 회답을 하면 이 세상에서 받는 것과 같이 공을 받으라고 이 말씀을 하는 것이 절대로 아니라는 것을 먼저 알고 있어야 합니다.
이스라엘입니다
그들은 누구입니까? 하나님의 백성이고 복음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라는 것을 전제로 해서 이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 시대 기독교인들에게 하는 말씀이 아니라 모세로부터 복음을 들었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하나님의 일꾼이라는 것을 전제로 해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들이 평화를 선언을 했습니다.
그러니까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했다는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때 그들이 평화를 하겠다고 회답을 하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마치 세상에서 공세를 바치는 것과 같이 그들을 섬겨야 한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왜 공세를 바치고 있는가를 로마서에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들이 선한 일에 대해서는 두려움이 되지 않고 악한 일에 대해서 두려움이 되게 하기 위해서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공을 바치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왜 공을 바치고 있습니까? 그것을 로마서에서 사도 바울이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마치 세상 사람들이 국가에 공세를 바치는 것과 같이 생각을 해야 합니다. 그들이 공세를 바치는 것은 선한 일에는 두려움이 되지 않고 악한 일에 대해서 두려움이 되게 하기 위해서 관원들이 그 일을 해 달라고 공세를 바치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그와 마찬가지입니다
이스라엘은 복음이 있는 사람들입니다 그러니까 이제 가나안에 들어가는 사람들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영적으로 천국에 들어가는 사람들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 그들이 성읍을 치려할 때 먼저 평화를 선언하고 그 성읍에 있는 사람들이 평화에 회답을 하면 이스라엘은 그들에게 선한 일에 대해서 두려움이 되지 않고 악한 일에 대해서 두려움이 되게 하기 위해서 공을 바치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복음을 전해야 합니다.
그 성읍이 평화에 대해서 회답을 하면 이스라엘은 복음을 전해야 합니다. 그래서 선한 일에 대해서는 두려움이 되지 않고 악한 일에 대해서는 두려움이 되게 하라는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마치 세상에서 사람들이 국가에 공세를 받치는 것을 예를 들어서 그들이 그 공세를 받아서 선한 일에 두려움이 되지 않고 악한 일에 대해서 두려움이 되게 치리를 해 달라는 뜻입니다
로마서15:27절을 보면
“저희가 기뻐서 하였거니와 또한 저희는 그들에게 빚진 자니 만일 이방인들이 그들의 신령한 것을 나눠 가졌으면 육신의 것으로 그들을 섬기는 것이 마땅하니라”
너를 섬기게 할 것이요
어떤 성읍에 평화를 선언을 했습니다. 그리고 그 성읍이 평화에 대해서 회답을 했습니다. 그것은 이제 이스라엘이 전하는 복음을 듣고 하나님을 믿겠다고 하는 것과 같습니다. 그런 그들에게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들이 신령한 것을 나눠가졌으면 육신의 것으로 섬기는 것이 마땅하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마땅하다
이치로 보아 옳다라고 사전에서 말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법은 아닙니다. 꼭 그렇게 해야 하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이 대적을 치러 갔습니다. 그런데 그들에게 평화를 선언을 하니까 평화의 말씀을 듣고 회답을 했습니다. 그런 그들에게 복음을 전하라고 말씀을 하고 있고 그렇게 복음을 전하는 이스라엘을 섬기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마땅한 일입니다
이스라엘은 복음을 알고 있는 성도라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지금 가나안에 들어가는 이스라엘은 모세로부터 복음을 들었습니다. 그리고 그들이 이제 가나안에 들어가서 해야 하는 일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어느 성읍이 대적을 해서 전쟁이 났는데 그 성읍에 먼저 평화를 선언하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들이 평화에 회답을 했습니다.
그러면 그들에게 복음을 전하고 선한 일에 두려움이 되지 않고 악한 일에 두려움이 되게 하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영의 일에 있어서 선한 일에 두려움이 되지 않고 하나님을 믿는데 있어서 악한 일을 하면 두려움이 되게 하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것을 세상의 공세를 바치는 것을 비유로 해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렇게 복음을 전합니다.
이스라엘이 신령한 것을 전했습니다. 그러면 그들이 육신적으로 섬기는 것은 마땅하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이스라엘이 복음을 전해서 그들이 평화에 관한 일을 알았다면 이스라엘이 신령한 것을 주었으니까 그들을 섬기는 것은 당연하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은 이 일을 하지 않았습니다.
“만일 너와 평화하기를 싫어하고 너를 대적하여 싸우려 하거든 너는 그 성읍을 에워쌀 것이며”
이스라엘입니다
복음을 가진 성도입니다 반드시 대적이 있기 마련입니다 아니 이 세상에 있는 모든 사람들은 복음과 대적을 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이 평화를 성언했는데도 그들이 평화를 싫어하고 그러니까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것을 싫어하고 있다는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성도는 복음을 전해야 합니다.
우리의 대적에게도 복음을 전해야 합니다. 그것을 신명기에서는 평화를 선언하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 평화를 싫어하고 너를 대적하고 싸우려고 할 때는 그 성읍을 에워쌀 것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이스라엘이 복음을 전했지만 하나님을 믿지 않겠다고 거절을 하고 있는 사람들이라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복음을 전해 보아서 잘 알고 있습니다.
우리가 복음을 전하면 거의 모든 사람이 그 복음을 듣고 평화에 회답을 하는 것이 아니라 대적을 하게 되어 있습니다. 그때 하나님께서는 그 성읍을 에워쌀 것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지금 물론 이스라엘에게는 실제 대적이 되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에게는 복음을 전하는 일이 되고 있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왜 이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평화를 선언을 하면 회답을 하는 성읍이 거의 없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심지어는 하나님을 믿는 이스라엘이라는 나라도 평화에 관한 일을 몰라서 로마에 의해서 완전히 멸망이 되고 말았습니다. 평화에 관한 일을 모르게 되면 어떻게 된다는 것을 이스라엘을 통해서 말씀을 하시고 실제 주님이 오셨을 때 이스라엘이 그렇게 됐습니다.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그 성읍을 네 손에 붙이시거든 너는 칼날로 그 속의 남자를 다 쳐죽이고”
의미입니다
성경은 남자와 여자와 유아에 대해서 다 비유로 해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그 의미를 알고 성경을 보아야 합니다. 물론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에게 실제 대적을 하는 나라에 대해서 이렇게 하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 말씀은 실제의 일이라기보다는 이렇게 된다는 의미에서 말씀을 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그 성읍을 네 손에 붙이시거든
내가 복음을 전했습니다. 그리고 평화에 관한 일을 전했습니다. 그런데 그들이 듣지를 않고 싸우려고 하고 있습니다. 그때 무조건 쳐 들어가는 것이 아닙니다. 분명히 성경에 어떻게 기록이 되어 있습니까? 그 성읍을 여호와께서 네 손에 붙이시거든 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아니면 어떻게 합니까?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의 손에 그 손을 붙이시지 않으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물러가야 합니다. 그 성읍을 쳐서는 안 됩니다. 왜 안 되는가 하면 잘못하다가는 이스라엘이 그 성읍에 의해서 죽임을 당할 수 있기 때문에 반드시 하나님이 붙이시거든 이라는 조건이 있어야 합니다.
남자를 다 죽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남자를 어떻게 상징하고 있습니까? 성경에서 남자를 말씀을 할 때는 그 일에 대해서 주관자가 된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 대적의 남자라고 하면 그는 율법주의에 깊이 빠져 있는 사람이라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 남자는 다 죽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대적입니다
이스라엘은 복음이 있고 평화에 관한 일을 알고 있습니다. 그 대적이 누구입니까? 바로 율법주의입니다 그 대적의 남자는 율법주의자를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그 성읍을 네 손에 붙이시거든 남자는 칼날로 다 죽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오직 여자들과 유아들과 육축과 무릇 그 성중에서 네가 탈취한 모든 것은 네 것이니 취하라 네가 대적에게서 탈취한 것은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주신 것인즉 너는 그것을 누릴찌니라”
평화에 대해서 아직 잘 모르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복음에 대해서 아직 듣지를 못하고 있는 성읍이라는 말씀입니다 그런데 그 성읍이 대적을 하거든 그 안에 있는 남자는 다 죽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 남자들은 끝까지 율법주의를 고집하고 평화를 받아들이지 않겠다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여자입니다
그리고 유아들이 있습니다. 그들은 살려두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네 것이니 네가 취하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참 이해가 안 될 수도 있지만 우리는 바로 알아야 합니다. 여자와 유아는 아직 자기의 신앙에 대해서 모르고 있는 사람들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복음도 그렇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성도를 남자라고 합니다. 그러나 아직 복음을 듣고 있는 사람들은 여자와 유아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마찬가지입니다 평화에 대해서 대적을 하고 있는 사람은 남자입니다 그러나 아직 평화에 대해서 잘 모르고 있는 사람들을 여자와 유아라고 비유로 해서 말씀을 하고 그들을 네 것이니 취하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성경입니다
그 의미를 알아야 합니다. 문자를 보고 성경을 알려고 하면 아무리 보아도 깨달을 수 없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성령을 보내 주셔서 진리로 인도를 하시고 있습니다. 사람의 이성으로는 이 성경을 보고 진리를 깨달을 수 없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성령을 보내 주시고 있습니다.
이 시대입니다
민주 국가가 되고 여권이 신장이 되어 있는 시대에서는 도무지 이해가 안 되는 말씀이 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비유적으로 말씀을 하고 있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결코 여자와 유아들을 비하하기 위해서 그런 것이 아니라 영의 일을 깨닫게 하기 위해서 비유적으로 말씀을 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네가 네게서 멀리 떠난 성읍들 곧 이 민족들에게 속하지 아니한 성읍들에게는 이같이 행하려니와”
가나안에 들어가려고 하고 있습니다.
지금까지의 말씀은 가나안에 살고 있는 그들에게 하고 있는 말씀이 아니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멀리 떠나 있는 성읍들은 아직까지 확실하게 종교가 없기 때문에 그들에게 하고 있는 말씀입니다 그들은 평화를 선언할 때 회보할 수 있는 사람들이 있기 때문에 이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복음을 전할 수 있습니다.
아니 그들이 복음을 듣고 받아들일 수 있습니다. 그런 민족들에게 이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렇게 이스라엘을 통해서 이방에 복음이 전해지기를 원하셨지만 그들은 평화를 선언하지도 않았고 대적과의 싸움도 하지 않았고 오히려 대적에게 포로가 되는 삶을 살았습니다.
“오직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기업으로 주시는 이 민족들의 성읍에서는 호흡 있는 자를 하나도 살리지 말찌니”
창세기15:16절을 보면
“네 자손은 사 대 만에 이 땅으로 돌아오리니 이는 아모리 족속의 죄악이 아직 관영치 아니함이니라 하시더니”
가나안 땅입니다
그리고 멀리 있는 이 민족들입니다 이 둘의 차이가 무엇입니까? 가나안 땅에는 죄악이 관영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죄악이 만연하여 가득차 있다는 사전적인 뜻이 있습니다. 그러니까 그 땅에 있는 모든 것이 다 죄악으로 가득차 있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잔인하십니까?
절대 그렇게 생각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구약의 말씀을 보고 오해를 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왜 하나님께서 세상에 죄악이 관영할 때 노아 시대에 홍수로 그들을 멸하셨는가를 알아야 합니다. 죄악이 관영하면 하나님을 믿는 사람이 하나도 없다는 말씀이 되고 있습니다.
그들이 돌이킵니까?
복음을 전하면 그들이 말씀을 듣고 회개를 할 수 있습니다. 만약에 그렇게 될 수 있다면 하나님께서는 절대로 노아홍수를 일으키시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평화를 듣지 않기 때문에 진멸을 하셨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와 마찬가지로 가나안에 있는 모든 족속들이 그렇게 되었기 때문에 이스라엘에게 그들 중에 호흡이 있는 자를 하나도 살리지 말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어차피 안 믿는 사람입니다
예수님께서 제자 한 사람에게 죽은 자들로 죽은 자로 장사하게 하고 너는 나를 따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좀 냉정하게 들릴지 모르겠지만 어차피 죽은 자는 이제 죽으나 더 있다 죽으나 마찬가지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바로 이 가나안 땅에 있는 민족들이 그렇다는 것을 하나님께서 아시고 그들을 진멸하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성경은 영의 일입니다
그들은 생명을 얻을 가능성이 제로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그것을 미리 아시고 계십니다. 그들이 먼저 죽으나 나중에 죽으나 마찬가지기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호흡이 있는 자를 하나도 살리지 말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지금도 교회 안에 죄악이 관영해 있습니다. 그것을 깨닫지 못하면 가나안에 있는 족속과 같이 된다는 것을 명심하고 있어야 합니다.
죄악이 관영합니다.
이 시대 교회를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마치 가나안에 있는 족속과 같이 죄악이 관영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호흡이 있는 모든 자를 진멸하라고 말씀을 하고 있지만 자기들에게 죄악이 관영해 있다는 것을 전혀 모르고 있습니다. 성경을 모르면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지만 어떻게 된다는 것을 성경에서 말씀을 하고 있지만 사람들이 깨닫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곧 헷 족속과 아모리 족속과 가나안 족속과 브리스 족속과 히위 족속과 여부스 족속을 네가 진멸하되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명하신 대로 하라”
이사야53:5절을 보면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을 인함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을 인함이라 그가 징계를 받음으로 우리가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우리가 나음을 입었도다”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그가 왜 이 세상에 오셨습니까?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는 모든 사람들이 죄악을 행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을 인함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을 인함이라 그가 징계를 받음으로 우리가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우리가 나음을 입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입니다
그들은 죄악을 행하면서 살았습니다. 그럼 이 시대는 다릅니까? 만약에 이 세상에 한 사람이라고 죄악을 행하지 않은 사람이 있다면 주님께서는 이 세상에 오시지 않았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교회 안에서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는 모든 사람이 다 죄악을 행하고 있기 때문에 주님이 오셔서 그가 상함을 입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성경은 예표입니다
노아 시대에 모든 사람이 죄악이 관영했습니다. 그리고 이제 또 가나안 땅에 있는 사람들이 죄악이 관영해서 하나님이 이스라엘로 그들을 호흡이 있는 자를 진멸하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가나안에 들어간 이스라엘이 역시 죄악을 행하면서 살았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들만 그렇습니까?
이 시대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는 사람들은 다 그렇게 죄악이 관영하게 되어 있습니다. 어떻게 죄악이 관영한가 하면 율법주의에 빠져 하나님께서 우리를 구원하시고자 하는 은혜를 거절하는 행위를 하고 있다는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는 그들이 그 신들에게 행하는 모든 가증한 일로 너희에게 가르쳐 본받게 하여 너희로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께 범죄케 할까 함이니라”
다 죽습니다.
이것은 예표입니다 이스라엘에게 죽이라고 하신 것과 같이 교회 안에서 죄악을 행하는 모든 사람은 다 죽는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그 죄악이 무엇인가를 알아야 하고 혹시라도 내가 죄악을 행하고 있지 않은가를 지혜를 구해서 알아야 합니다.
다 죽이라고 말씀을 합니다.
왜 죽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까? 이스라엘이 가나안에 들어가서 살 때 그들이 그 신들에게 행하는 모든 가증한 일로 너희에게 가르쳐 본받게 하여 너희로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께 범죄케 할까 함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실제 이 말씀 그대로 이스라엘은 가나안에 들어간 1세대가 죽고 나자 바알과 아세라를 섬겼다고 사사기를 통해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신약에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단에 속한 자는 한두 번 훈계한 후에 멀리하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또 그와는 인사도 하지 말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복음을 가진 자가 진리를 전하는 것이 아니라 도리어 그들이 행하는 모든 가증한 일을 본받아서 행하고 있기 때문에 이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의 대적입니다
성경에서 율법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정말 하나라도 남겨두지 말아야 합니다. 그 한 가지가 온 덩이를 부풀게 함으로 해서 사망에 이른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내가 남겨 두면 그것을 이길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성경 말씀과 같이 가증한 일을 본받게 된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싸움입니다.
영생은 싸워서 이기는 자가 얻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 시대는 자기 대적이 누군가도 모르고 있습니다. 도리어 그 대적의 가증한 일을 본받아서 교회 안에서 온갖 바알과 아세라를 섬기면서도 자기들이 하나님을 아주 잘 믿고 있다고 하고 있습니다.
지혜를 구하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분은 우리에게 평화에 관한 일을 가르쳐 주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구원을 받아 영생을 누리시기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부탁드립니다.
출처: ╋예수가좋다오 글쓴이: 주신 믿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