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전 4 : 19 주께서 허락하시면 - 주께서 허락하시면 내가 너희에게 속히 나아가서 교만한 자들의 말이 아니라 오직 그 능력을 알아보겠으니 ( 그러나 주께서 허락하시면 내가 너희에게 속히 나아가서 교만한 자의 말을 알아 볼 것이 아니라 오직 그 능력을 알아 보겠노니 )
여기서 우리는 지도자로서의 바울의 모범을 다시 발견한다.
그런데 16: 8에서 바울은 오순절까지 에베소에 머물러 있겠다고 말하나 본 절에서는 '속히 가기를 원한다.'라고 하여 약간의 모순이 발생하는 듯 보인다.
일부 학자들은 16: 8과 본 절을 모순된 것으로 생각하여 이들이 서로 다른 서신서 들에 의하여 재편집된 것이라고 주장하기도 한다(J. Weiss, J. Hering).
1] 주께서 허락하시면 내가 너희에게 속히 나아가서 교만한 자들의 말이 아니라 오직 그 능력을 알아보겠으니
'주께서 허락하시면'(*, 에안 호 퀴리오스 델레세)이란 말은 조건을 전제로 한 말이다.
인간적인 인정과 감정을 드러내지 아니하고 오직 주님의 뜻에 자신의 전도 계획을 맡기는 참된 주의 종의 태도를 보여준다.
즉 하나님의 사업을 위해 계획하고 애쓰는 바울 일지라도 그의 계획과 앞일은 모두 하나님께서 주관하신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그러나 우리는 바울 당시의 여행 문화가 오늘날과 같은 것이 아니라는 점을 기억해야 한다.
그들은 터미널에 나가면 당장 운송 수단을 만날 수 있는 오늘날과는 달리 여행을 위하여 오랜 기간 준비해야 한다.
때로는 항로를 이용하기 위하여 몇 달 며칠씩 항구에 기다려야 하는 환경에 놓여 있었을 것이다.
또한, 오늘날과 같은 필기도구가 없는 환경 속에서 이 많은 분량의 편지를 기록하는 것은 상당한 시간이 필요함을 기억해야 한다.
다시 말해서 4 장과 16 장을 집필하는 사이에 대두될 수 있는 시간의 경과와 환경의 변화를 염두에 두어야 한다(C. K. Barrett).
바울은 본 절에서 될 수 있는 대로 빨리 가기를 소원하는 의지를 표명하면서 그들이 더 실수하지 않기를 경고하고 있으며, 16 장에서는 구체적인 시간, 곧 오순절 이후라는 계획(計劃)을 말하고 있다.
따라서 이 구절에 나타났듯이 바울의 여행 계획에 모순이 있다고 말할 수는 없다.
그렇다면 16: 8에서 바울이 오순절까지 에베소에 머물겠다고 한 이유는 무엇인가? 그것은 아직도 에베소에서 전도 활동을 할 기회가 많았기 때문이다.
* 행 14: 27 - 그들이 이르러 교회를 모아 하나님이 함께 행하신 모든 일과 이방인들에게 믿음의 문을 여신 것을 보고하고
* 고후 2: 12 - 내가 그리스도의 복음을 위하여 드로아에 이르매 주 안에서 문이 내게 열렸으되
* 골 4: 3 - 또한 우리를 위하여 기도하되 하나님이 전도할 문을 우리에게 열어 주사 그리스도의 비밀을 말하게 하시기를 구하라. 내가 이 일 때문에 매임을 당하였노라.
그러므로 바울의 이 같은 표현은 자신의 에베소에서의 복음 전파 사역이 아직 끝나지 않았음을 보여주며 특별히 효과적인 복음 전파의 기회가 자기에게 많이 주어졌기 때문에 에베소를 쉽게 떠날 수 없었다는 사실을 설명해 주고 있다.
그러나 바울은 이 모든 상황에도 불구하고 '주께서 허락하시면' 속히 너희에게 가겠다는 간절한 심정을 지니고 있다.
고전 4 : 20 하나님의 나라는 - 하나님의 나라는 말에 있지 아니하고 오직 능력에 있음이라. ( 하나님의 나라는 말에 있지 아니하고 오직 능력에 있음이라. )
'하나님의 나라'는 예수의 교훈 속에 자주 등장하는 주제로서 공관복음서에서 더 일반적인 표현으로 사용되었으나 바울 서신 가운데서는 본서에서 제일 많이 등장한다.
1] 하나님의 나라는
일반적으로 '하나님의 나라'(*, 헤 바실레이아 투 데우)는 그리스도의 성육신과 재림으로 성취될 메시아 왕국을 의미한다.
* 막 1: 15 - 이르시되 때가 찼고 하나님의 나라가 가까이 왔으니 회개하고 복음을 믿으라 하시더라.
다음과 같은 두 가지 의미가 있다.
(1) 이 세상 끝 날에 도래하게 될 하나님의 새 하늘과 새 땅(계 21 장).
* 마 19: 28 -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세상이 새롭게 되어 인자가 자기 영광의 보좌에 앉을 때에 나를 따르는 너희도 열두 보좌에 앉아 이스라엘 열두 지파를 심판하리라
* 마 25: 31 - 인자가 자기 영광으로 모든 천사와 함께 올 때에 자기 영광의 보좌에 앉으리니
(2) 그리스도의 초림으로 인해 이미 성도들 간에 실현되고 있는 하나님의 나라.
* 눅 17: 20-21 - 20 바리새인들이 하나님의 나라가 어느 때에 임하나이까? 묻거늘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하나님의 나라는 볼 수 있게 임하는 것이 아니요 21 또 여기 있다 저기 있다고도 못하리니 하나님의 나라는 너희 안에 있느니라.
즉 하나님께서 성도들을 현재 영적으로 지배하시며 그들의 삶 속에 그의 능력을 나타내 보여주신다는 의미로서의 '하나님의 나라'이다.
바울이 '하나님의 나라'라는 말을 사용한 것은 두 번째 의미로 사용한 말이다.
바울이 책망한 것은 고린도 교인들이 1: 5,6과 본장 8절이 시사한 대로 모든 구변과 지식에 풍족한 수준에 있으나 생활의 실제 모습은 하나님 나라의 모습과 거리가 먼 시기(猜忌)와 심한 분쟁이 있었기 때문이다.
2] 말에 있지 아니하고 오직 능력이 있음이라.
바울은 그리스도로 말미암은 성도들의 새로운 삶과 그 능력을 암시한다.
* 고후 5: 17 -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 것이 되었도다.
* 요 3: 3-8 - 3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거듭나지 아니하면 하나님의 나라를 볼 수 없느니라. 4 니고데모가 이르되 사람이 늙으면 어떻게 날 수 있사옵나이까? 두 번째 모태에 들어갔다가 날 수 있사옵나이까? 5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물과 성령으로 나지 아니하면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느니라. 6 육으로 난 것은 육이요 영으로 난 것은 영이니 7 내가 네게 거듭나야 하겠다 하는 말을 놀랍게 여기지 말라. 8 바람이 임의로 불매 네가 그 소리는 들어도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지 알지 못하나니 성령으로 난 사람도 다 그러하니라.
즉 고린도 교인들의 삶의 공동체 곧 교회 속에서 구체적으로 드러나는 복음의 능력과 사랑의 실천을 요구한 것이다.
'말'(*, 로고스)은 '능력'과 대조적인 개념으로 사용되어 말에 상응한 내용이 따르지 않는 단순히 '헛된 말'이라는 것을 시사해 준다.
'능력'은 가시적인 것으로서 예수께서 그의 왕국을 선포할 때에 나타났던 기적들을 의미하는 것으로 이해할 수도 있다.
* 눅 11: 20 - 그러나 내가 만일 하나님의 손을 힘입어 귀신을 쫓아낸다면 하나님의 나라가 이미 너희에게 임하였느니라.
본 절에서는 인간의 공허한 웅변과 대조를 이루는 능력, 곧 하나님 나라에 대한 지식으로 인해 변화된 품성, 새 사람으로서의 옛사람을 벗어 버린 의와 거룩함과 화평을 이루는 실제 모습을 뜻하는 것으로 이해함이 더욱 타당할 것 같다(L. Morris, J. Calvin).
따라서 바울은 인격과 삶의 변화, 즉 행동으로 나타나는 능력을 강조함으로써 헛된 말과 지식 즉 영적 교만 속의 열매 없는 신앙생활을 고발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