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순찬 기자 입력 2022.10.22 03:00 조선일보 카카오 먹통 대란을 계기로 정치권과 정부가 동시다발로 재발 방지책을 논의하고 있다. 네이버·카카오 같은 부가통신사업자의 ‘서버·데이터 이중화 의무’를 비롯해, 데이터센터를 방송·통신 시설처럼 국가 재난관리시설로 지정하자는 논의도 시작됐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는 ‘제2의 카카오 사태’를 막기 위한 ‘디지털 위기 관리 본부’(가칭)를 신설하겠다고 21일 밝혔다. 그러나 규제 논의가 봇물을 이루면서, 인터넷 업계에서는 “개선 취지에 공감하지만 세심한 기준 없이 도입되면, 자칫 산업계의 발전을 막을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오고 있다. ◇빠른 규제 움직임, “대기업 독과점 심화 우려”도 정치권이 내놓은 대표적인 사고 재발 방지 대책은 부가통신사업자의 ‘데이터 이중화 의무’ 법안이다. 부가통신사업자는 인터넷 통신망을 이용해 사업하는 기업을 뜻한다. 이 기업들에 대해 유사시를 대비해 똑같은 데이터, 서버(대형 컴퓨터)를 예비로 하나 더 만들도록 강제하겠다는 것이다. 부가통신사업자는 네이버·카카오 같은 매출 수조 원 기업부터 자본금 1억원짜리 인터넷 스타트업, 중소 인터넷 쇼핑몰까지 광범위하다. 여야가 발의한 법안엔 ‘이중화 의무’만 포괄적으로 담겨있고, 어느 규모의 기업이 규제 대상이 될지는 추후 시행령으로 구체화할 것으로 알려졌다. 소상공인, 스타트업 업계에선 “이중화 의무 규제가 자칫 대기업의 독과점을 더 강화하는 결과를 낳을 수 있다”는 반응이 나온다. 한 중소 IT 기업 관계자는 “이용자 데이터가 많으면 많을수록 비용도 천문학적으로 커진다”며 “대기업은 감당할 수 있지만 중소 업체들엔 일종의 족쇄처럼 작용해, 대기업들의 지위만 더 공고해지는 일종의 해자(垓字)가 될 수 있다”고 했다. ◇”일정 규모 이상, 중요 사업자만 대상” 일각에선 규제 대신 ‘시장 논리’에 맡겨야 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IT 전문 법률가인 구태언 법무법인 린 변호사는 “카카오톡이 국민 생활에 밀접해 이중화 의무가 필요하다면, 멈췄을 때 국가와 국민에게 치명타를 줄 수 있는 전기, 수도, 우편은 왜 이중화 의무가 없느냐”며 “이중화 규제가 글로벌 빅테크와 경쟁 중인 자국 군대에 ‘철갑’을 두르다가 망하라는 식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국내 인터넷 산업의 발목을 잡는 ‘제 발등 찍기’가 될 수 있다는 지적이다. 한 인터넷 스타트업 관계자는 “이중화 의무에 일정 규모 기준이 정해지면 규제 부담 때문에 기업들이 그 선을 넘지 않으려는 부작용이 생길 수 있다”고 말했다. 중견 기업으로 성장하면 각종 혜택이 사라지는 걸 우려해 과거 일부 중소기업이 일부러 성장을 자제했던 ‘피터팬 증후군’ 같은 현상이 생길 수 있다는 얘기다. 실제로 21일 과기부와 국내 부가통신사업자 간 긴급 점검 회의에서도 사업자들 사이에서 이 같은 우려가 나왔다. 과기부 관계자는 “모든 사업자가 아닌 일정 규모 이상, 국민 생활에 밀접한 중요 사업자 위주로 검토하고 있으니 너무 우려할 필요는 없다”며 “여러 의견을 종합적으로 검토해 연말까지 최선의 방안을 내놓을 계획”이라고 말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