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제유배문학 「문와설(聞鼃說)」 개구리 소리를 듣고 도덕적 본성을 논하다> 해암(海巖) 고영화(高永和)
이번 지면에 소개하는 한문 고전수필 설(說) 「문와설(聞鼃說)」 ‘개구리 소리를 듣다’는 조선후기 문신 죽천(竹泉) 김진규(金鎭圭, 1658~1716)의 문집 『죽천집(竹泉集)』 권6(卷之六) 잡저(雜著)편에 수록되어 있다. 이 글의 주제는 개구리 울음소리를 통해, 천부적인 인간의 존엄성(인의예지) 회복과 물질적 탐욕에 빠진 소인배(인간)에 대한 도덕적 본성을 논하였다.
이에 김진규의 「문와설(聞鼃說)」은 도랑에서 우는 개구리 소리를 소재로 천성을 잃고 사리사욕만 좇는 소인을 비판하며, 분수를 지키는 개구리가 오히려 타락한 인간보다 낫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하늘이 인간에게 도덕적 본성을 주었음에도 이를 저버리고 말(언어)을 비방과 사치의 수단으로 삼는 행태를 통렬히 경계하는 한문 고전수필이다.
○ [한문 고전 수필] 수필의 성격을 지니는 한문 양식으로는 설(說), 기(記), 잠(箴) 등이 있다. 본래 설(說)은 사실에 대한 논의의 성격이 강한데, 대개 비유나 우의를 통해 독자를 설득하고자 하는 내용이 많은 편이다. 사물이나 현상에서 이치를 이끌어내어 의견을 서술하는 문체인 ‘설(說)’은 사물 또는 사건(사실, 개별적 체험)의 뜻과 이치를 해석하고 자신의 의견(깨우침, 교훈)을 서술하는 것이므로, 다분히 우의적이고 비유적이며 교훈적인 성격이 강하게 나타나는 것이 특징이다.
○ 「문와설(聞鼃說)」은 자연 현상인 '개구리 울음소리'에서 시작하여, 인간이 만물의 영장으로서 지녀야 할 도덕적 책임감을 역설하고, 당대 지배층이나 인간들의 사치와 타락을 경계하는 교훈적인 작품이다. 후반부 문장이 "그 노래와 통곡, 웃음과 탄식은 이미 그 바름을 얻지 못하였다."이다. 문맥상 소인배들의 소리는 결국 개구리의 의미 없는 울음소리와 다를 바 없다는 비판으로 이어졌다. 여름밤 개구리들이 시끄럽게 울어대지만, 이는 감정이나 이성이 없는 단순한 자연의 본능(천기)일 뿐이다. 하늘은 동물에게 박하게 베풀었다. 반면 인간은 언어를 통해 감정을 표현하고, 도덕(인의예지)을 논하며, 풍요로운 문명생활을 누린다. 하늘이 인간에게만 유독 후하게 베푼 이유는 동물과 달리 '도덕적 본성'을 지녔기 때문이다. 이에 군자는 하늘이 주신 도덕적 가치(본성)를 지키며 물질적 풍요를 경계하고 소인은 도덕적 의무는 저버린 채, 화려한 옷과 집, 기름진 음식 등 물질적 탐욕만 좇으며 본성을 잃어버린다. 결국 개구리보다 못한 존재가 된다. 앞서 전반부에서 '하늘이 인간에게만 유독 두텁게 은혜를 베푼 이유(인의예지)'를 설명한 뒤, 후반부에서는 그 은혜를 배신한 '소인(인간)에 대한 통렬한 비판'과 '역설적 주제'를 완성한다.
○ 결국 인간의 언어가 타락한 모습을 묘사했다. 하늘이 인간에게 언어와 지혜를 준 것은 도덕을 밝히고 세상을 바르게 가르치라는 뜻이었다. 그러나 타락한 소인들은 이를 오직 자기 자랑, 남을 헐뜯는 비방(謗), 아첨(諛), 거짓말(誑), 모함(讒誣) 등 사리사욕을 채우는 살벌한 무기로만 사용한다. 이어 개구리와 소인의 역설적 대비를 언급한다. 개구리는 더러운 곳에 살고 미련해 보이지만, 욕심이 없어 분수를 지키고(無所僭), 감정에 휘둘리지 않으며, 자연의 섭리대로 정직하게 울 뿐이다. 하지만 소인은 좋은 집에서 비단옷을 입고 살지만, 욕망의 노예가 되어 하늘이 준 본성을 잃어버리고 입으로 온갖 죄악을 저지른다.
마무리하건대, ‘외양만 번지르르할 뿐 인간의 도리를 잃은 소인은, 비록 미물일지라도 순리에 따르는 개구리보다 결코 나을 것이 없다. 화려한 문명 생활을 누린다고 해서 개구리를 비웃을 자격이 없다’는 강한 반어와 경종을 울리며 글을 끝맺었다.
**「문와설(聞鼃說)」** ‘개구리 소리를 듣다’ / 김진규(金鎭圭 1658~1716)
죽천자(竹泉子, 죽천은 작가의 호)가 밤에 홀로 앉아 있었다. 이때 마침 여름비가 내렸는데, 집 주변이 모두 도랑과 하수구였다. 수많은 개구리가 모여들어 울어댔다. 그 소리가 혹은 크고 혹은 가늘었으며, 혹은 길고 혹은 짧았다. 시끌벅적하고 왁자지껄했다. 앞서 우는 놈이 선창하면 뒤따라 우는 놈이 화답하듯 하여, 그 울림이 온 들판에 가득 찼다.
내가 이를 듣고 감회가 있어 설(說)을 지어 말한다. 저 개구리들은 무엇을 하는 놈들인가? 진흙을 먹고 더러운 곳에 살면서, 턱을 고이고 엎드렸다가 뒷다리를 뻗어 뛸 뿐이다. 어찌 즐거움과 슬픔, 수고로움과 편안함이 있다고 해서 이처럼 부르짖고 시끄럽게 소리를 지르겠는가? 대개 그런 감정에서 나온 것이 아니다. 제때가 되어 기운이 움직이자, 주둥이를 열고 배를 들썩여 소리를 낼 뿐이며, 자기 또한 왜 소리를 내는지 알지 못한다. 이것은 실로 하늘에서 부여받아 저절로 그러한 것일 뿐이다.
이와 달리 사람의 소리는 어찌 그리 나오는 것이 많고 쓰임이 넓은가! 즐거우면 노래가 되고, 슬프면 통곡이 되며, 수고로우면 탄식이 되고, 편안하면 웃음이 된다. 그리고 또 나뉘어 언어가 되니, 옳은 것은 칭찬하고 그른 것은 비난하며, 의심스러운 것은 논의하고, 염려되는 것은 도모한다. 나아가 또 변론을 써서 분석하고, 비유를 들어 깨우쳐 주며, 미혹되면 가르치고 어두우면 경고한다. 혀를 움직이고 입을 열어 뱉어내는 것이 그 종류가 수만 가지일 뿐만이 아니다. 대체로 소리의 기예와 지혜는 만물 중에 사람이 최고이다. 그러나 이것이 어찌 사람이 스스로 할 수 있는 것이겠는가? 이 또한 하늘에서 부여받은 것이다.
또한 사람의 삶은 비단 소리만 그러한 것이 아니다. 곡식을 먹기 위해 농사를 짓고, 집에서 살기 위해 기둥과 들보를 세운다. 가죽옷과 베옷으로 추위와 더위를 막고, 기구와 가구를 만들어 생활에 보탬이 되게 한다. 무릇 누리는 바의 많고 넓음이 소리의 경우와 같다.
아아, 하늘이 부여해 주심이 이토록 사람에게는 후하고 물건(동물)에게는 박한 것은 무엇 때문인가? 대개 사람은 동물과 달라서 인의예지(仁義禮智)의 본성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현명한 사람은 또 그 본성을 다하고 그 이치를 궁구하여, 소리로써 이를 드러내고 말로써 이를 인도한다. 가르치고 경고하며, 비유하고 변론하여 대중에게 고함으로써, 모두가 동물과 다른 점을 회복하게 한다. 이 때문에 (하늘이) 유독 사람에게만 후하게 부여하여, 동물과 다른 귀중함을 표출하신 것이다.
그러므로 군자는 그 본성에 있어 반드시 동물과 다른 까닭을 스스로 다하고자 노력한다. 소리 또한 마땅히 내야 할 데서 내고, 그 기예와 지혜를 사사로이 부리지 않는다. 자신이 누리는 바에 있어서는 혹시 과분하지 않을까 오직 두려워한다.
그러나 소인은 이와 반대이다. 본성을 스스로 다하는 것은 하지 않으면서 누리는 것만 더욱 분수에 넘치게 한다. 농사지은 곡식에 만족하지 못하고 기름진 고기만 찾으며, 기둥과 들보에 만족하지 못하고 높고 화려한 집만 힘쓴다. 가죽옷과 베옷은 비단옷으로 바꾸고, 기구는 아로새겨 꾸민다. 천성을 난폭하게 쓰고 본성을 상실하니, 어찌 그 소리가 마땅히 내야 할 데서 나올 수 있겠는가? 그들의 노래와 통곡, 웃음과 탄식은 이미 그 바름을 얻지 못하였다. 말하는 바의 찬양과 비방, 도모와 논의가 대개 사사로운 욕심에서 나온다. 그러면서 인의예지(仁義禮智)를 변론하고 비유하며 가르치고 경고하는 일에는 어리석고 어둡다.
(그 소리와 언어를) 쓰는 목적은 모두, 자기에게는 장점이 없으면서도 남에게 자랑하려 하고, 남에게 선행이 있으면 도리어 비방하려는 것일 뿐이다. 아첨하고 속임으로써 자신의 이익을 채우고, 참소하고 무고함으로써 자신의 독기를 부린다. 오직 날마다 시끄럽게 말다툼하고 조잘거려 대며, 오로지 입과 혀의 기예와 지혜가 자기 한 몸 먹고살기에 충분하다는 것만 알 뿐, 하늘이 그것을 부여해 준 본래의 목적은 알지 못하니 슬픈 일이다!
저 개구리들은 비록 천한 존재이지만, 진흙을 먹고 더러운 곳에 사는 것에 만족하며 분수에 넘치는 짓을 하지 않는다. 또한 슬픔과 즐거움에 상처받지 않고, 옳고 그름을 사사로이 대하지 않는다. 그저 제때가 되어 기운이 움직이면 소리를 내어 하늘로부터 부여받은 바를 따를 뿐이다. 사람이 되어서 이 개구리만도 못해서야 되겠는가?
그러니 어찌 (소인들이) 곡식을 먹고 대궐 같은 집에 산다고 해서, 진흙과 더러운 곳에 사는 개구리를 비천하게 여길 수 있겠는가? 입과 혀의 잔재주만 부리면서, 개구리들의 시끄럽고 왁자지껄한 소리를 업신여길 수 있겠는가?
[竹泉子夜獨坐 時暑雨而舍傍皆溝渠澮洫 衆䵷萃而鳴 其聲或巨或細或長或短 聒聒然咋咋然 前者若唱 後者若喁 響滿田野 子聞之 感而作說曰 彼䵷何爲者耶 是爲生泥哺而汙處 持頤而蹶 展股而跳 而已 豈有樂有哀有勞有逸 而號呼喧叫之若此耶 盖非出乎是 自爾時至氣作 開吻動腹以聲 而亦不自知其所以聲 玆實受乎天而然爾 若夫人之於聲 何其發之夥而用之該也 樂而爲歌 哀而爲哭 勞而爲歎 逸而爲笑 而又分而爲言語 所是譽之 所非訿之 疑焉議之 慮焉謀之 而又用辯以析之 譬以諭之 迷則誨而昏則警 舌之掉口之吐 其種萬千不翅 而大都聲之機慧 最於物矣 然此豈人之所自能 亦受乎天也 且人之生 不特聲爲然 粒食而有稼穡 宮居而有棟楹 裘葛以禦寒燠 器械以資服用 凡所享之 夥且該亦類爾 噫 天之予也 若是乎人焉厚而物焉薄 何帠 盖爲人異乎物 有仁義禮智之性 而其賢者又能盡其性窮其理 而聲以發之 言以道之 以誨以警 以譬以辯 以告衆人 而皆復其異乎物者 是以獨厚其予 以表異乎物之可貴耳 故君子於其性 必自盡其所以異 聲亦發乎所當發而不以其機慧自給 於其享則唯恐或浮 而小人反是 自盡則未而享之愈僭 稼穡之不饜 至竆膏腴 棟楹之不足 至務高明 裘葛變爲綺纈 器械餙以雕鏤 天之暴而性之喪焉 則何其聲之能發乎所當發也 其歌哭也笑歎也 旣 不得其正 言之譽訿謀議 槪出乎私 而其以辯譬誨警於仁義禮智者則昧昧焉 凡以用之者 已無長而詫之 人有善而謗之 諛誑以濟其利 讒誣以逞其毒 惟日嚚嚚然誻誻然 徒知口舌之機慧足以自給 而不知天之所以予焉 悲夫 彼䵷雖陋 安於泥哺汙處而無所僭 又能不病於哀樂 不私於是非 自爾時至氣作而爲聲 以遵其受乎天者 人而遽不如何哉 然則庸可以食粒居宮而卑泥汙乎哉 口慧舌機而慢聒咋乎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