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4화 체육복을 읽는 아침(교사 수필) 1. 어두운 바다에 오징어 배 1/2 240125
아이들이 특성화 고등학교에 진학하는 이유는 다양하다. 우선 ‘공부가 적성에 안 맞다’거나 ‘인문계 고등학교에 진학할 성적이 안 돼서’가 가장 많고, ‘어려운 가정 형편에 보탬이 되고자 한다’거나 ‘대학 등록금이 아깝다’는 이유들이 이어진다. 또 ‘일찌감치 사회생활에 필요한 전문 기술을 배워서 내 밥벌이를 스스로 하겠다’는 기특한 마음들도 있다.
인문계 고등학교를 졸업한 아이들이 대부분 대학에 진학하는 것처럼, 특성화 고등학교를 졸업한 아이들은 3학년 때 현장 실습이라는 이름으로 먼저 사회로 나간다. 그러나 그들은 사각지대로 내몰리는 것이다. 학교에 있지 않은 사람들도 뉴스에서 이 참담한 소식들을 접했을지 모른다. 제주도 생수 공장에서 컨베이어 벨트에 끼어 사망한 친구, 여수에서 요트 아래에 잠수해 조개와 해조류를 제거하다가 사망한 친구, 진천 과자공장과 전주의 콜센터에서 선배의 괴롭힘과 고객들의 폭언을 견디지 못해 스스로 목숨을 끊은 친구들. 이 실습 제도는 이름과 외피를 조금씩 바꾸어 계속 이어져 나간다.
지금에서야 이 제도가 얼마나 허점과 모순이 많은 제도인지 조금씩 보이지만 그때의 나는, 마치 아이들이 졸업 전에 취업하지 못하면 사회의 잉여 인간이 되는 양 여기던 새내기 교사였다. ‘롯데리아’도 한글로 잘 못 쓰는 녀석들을 사회로 내보내는 건 상상도 못 할 일이었다. 이런저런 고민을 하다가 아이들이 공구를 만지고 있는 실습장으로 갔다. 순진하기도 하고 성격도 둥글둥글해서 친구들의 장난을 잘 받아주는 연규라는 녀석이 기계를 껐다 켰다 하고 있었다. 알파벳도 제대로 잘 모르는 녀석이 영어를 읽을 줄 알아야 움직일 수 있는 기계를 움직이고 있기에 칭찬을 좀 해주려고 말을 걸었다.
“오, 연규야. 너 그 스위치를 안 틀리고 조작하는구나?”
“아 쌤~ 이 정도를 가지고 그러세요. 기계가 켜지면 위험하니까 빨간색, 기계가 꺼지면 안전하니까 초록색 아닙니까”
그랬다. 스위치 위에 쓰인 ON, OFF라는 영어단어를 읽은 게 아니라 자기 나름의 방식으로 작동 방법을 이해한 거였다.
아직 군대 물이 덜 빠졌던 나는 이런 생각이 들었다. 군인이 전투에 나갔는데 총이 망가졌다. 그런데 여기는 전쟁터고, 무언가 나를 지킬 수 있는 무기가 없으면 죽는 건 시간문제다. 그런데 이 망가진 총을 고치기 위해서 처음부터 총기를 구조와 원리를 익히는 건 바보 같은 짓이다. 그렇다면 지금 내가 가진 것과 주변의 상황을 최대한 이용해야만 한다. 허리에 칼을 차고 있으면 다행이고, 무기로 쓸 만한 게 없다면 주변에 있는 나무줄기라도 꺾어서 창 대신 써야 한다. 적이 몰려들기까지 시간이 좀 있다면 몸에 진흙을 바르고 구덩이에 숨어 그들이 지나가기까지 기다려야 한다.
이 녀석들을 한글과 영어 기초부터 가르치기에는 시간이 없고, 내세울 만한 다른 특기도 마땅치 않으니 아예 다른 무기가 필요했는데, 그래서 생각해 낸 게 국가 기술 자격증 취득이었다.
자동차 정비 기술이야 정규 교육과정에서 배우지만 그것만으로는 부족할 테고, 작년에 학교에 신설된 중장비 반에서 힌트를 얻었다. 공사 현장에서 잔뼈가 굵었어도 필기시험을 통과하지 못해 중장비 운전 면허를 따지 못하는 아저씨들이 많다고, ―그때도 지금도 물론 불법이지만― 이 자격증을 그들에게 빌려주고 가만히 앉아 돈을 버는 이들도 많다고 주워들은 기억이 났다. 애들에게 그런 불법을 자행하라고 시키겠다는 게 아니라 그만큼 산업 현장에서 이 자격증의 효용이 크다는 반증으로 받아들인 것이다. 게다가 어디서든 끊임없이 토목공사가 벌어지는 우리나라에서라면 절대 굶어 죽을 걱정이 없을 것이다. 그래 이거다.
국가기술자격증은 기능사, 산업기사, 기사, 기능장, 기술사 총 다섯 가지 등급으로 나뉜다. 기능사는 가장 낮은 단계의 자격증으로 제약 조건 없이 누구나 응시할 수 있다. 필기와 실기로 구성되는데 필기는 과목별 과락 없이 총점 60점 이상이면 통과다. 우리 학교 중장비 실습장에는 흔히 포크레인이라고 부르는 굴삭기와 지게차 몇 대가 구비되어 있다. 짐을 싣는 파레트를 포크에 꽂아 지정된 장소까지 옮기거나, 굴삭기의 바스켓(흙이나 돌을 퍼담는 부분)이나 암(바스켓이 달린 구부러지는 팔 같은 부분)을 자유자재로 움직일 수 있는가 정도가 실기 과목의 주요 요소였다. 이 녀석들이 그래도 오토바이를 몰아 본 경력이 있어서 그런지 실기 실력은 아주 기똥찼다. 조금만 더 연습하면 굴삭기 바스켓을 바닥에 대고 중장비 본체로 브레이크댄스도 출 법했다. 실제로 이듬해의 내 결혼식 축하 영상에 아이들이 움직이는 지게차와 굴삭기가 등장하기도 했다.
문제는 필기였다. 일반적인 내용이면 냅다 시키면 되겠는데 이 필기시험 문제들이 어려운 외래어와 전문용어 범벅이라는 것이 가장 큰 문제였다. 예를 하나 들어보자.
1) 실린더 헤드 등 면접이 넓은 부분에서 볼트를 조이는 방법으로 가장 적합한 것은?
① 규정 토크로 한 번에 조인다.
② 중심에서 외측을 향하여 대각선으로 조인다.
③ 외측에서 중심을 향하여 대각선으로 조인다.
④ 조이기 쉬운 곳부터 조인다.
‘음… 실린더 헤드가 뭔지는 모르겠지만 일단 볼트를 조인다고 하니 한 번에 조이면 팔이 꼬일 테니 ①은 탈락, 내 평소 인생관에 따르면 ④지만 설마 이게 답일 리는 없고 그럼 ②아니면 ③인데 …… 볼트에 소용돌이 같은 홈이 있으니까 가운데로 몰려들겠지. 그럼 ③이다. 근데 볼트를 대각선으로 어떻게 조인다는 거지.’
정답은 ②다. 해설을 읽어본다.
가스켓같이 고무 재질이 밀릴 수도 있고, 한쪽 방향부터 조이게 되면 반대편 방향 나사 구멍이 안 맞을 수도 있기에 (…) 이음부에서 누유가 생길 수도 있기에 현장에서는 대각선으로 조이는 방식을 선택하고 있습니다.
‘가스켓? 나사 구멍이 반대편에도 있다고? 누유?’
지금도 집에 무언가 고장이 나거나 전구가 나가면 아내는 나를 찾는 대신 본인이 직접 고치거나 인터넷에서 해결 방법을 찾곤 한다. 가장의 체면이 말씀이 아니다. 멀쩡하던 드라이어나 리모컨도 내가 만지면 퍽 하고 고장 나는 징크스를 가진 덕분이다. 그런 내게 닦고 조이고 기름 쳐야 하는 기계는 너무도 먼 당신이었다. 하지만 이왕 마음먹은 거 조금 더 나가보기로 했다. 자동차 정비기능사 자격증 취득 방과후수업을 운영하시던 자동차 전공 박 부장 선생님을 찾아갔다.
“저, 부장님. 혹시 괜찮으시다면, 제가 부장 선생님 수업을 좀 들어도, 괜찮을까요?”
“응? 이 선생, 방과 후 수업도 공개수업을 해야 되나?”
“저 그게 아니라 ……”
아이들에게 자격증이라도 한두 개 더 따게 해 주고 싶은데 이 녀석들이 공부할 마음도 없거니와 하려고 해도 너무 무식하다, 내가 도와주고 싶은데 나도 이게 뭔 말인지 도통 모르겠다, 그러니 내가 위대하신 우리 부장님의 수업을 듣고 애들이 아는 말로 번역해서 필기시험에 합격할 수 있도록 하겠다 등등 온갖 구구절절한 말을 늘어놓았다.
교사들에게 자신의 수업을 다른 이에게 보여주는 일은 대단한 용기가 필요한 일이다. 그만큼 교실은 독립적이고 교사 개인의 영향력이 지대한 공간이다. 그러나 부장 선생님은 흔쾌히 내 부탁을 받아들여 주셨다. 정년까지 얼마 남지 않으신 분이셨는데 어찌 보면 굉장히 당돌하게 느껴질지도 모를 후배의 부탁을 들어주시는 모습을 보며 나도 그 연세가 되었을 때 꼭 그러리라고 마음먹었다. 그 기억 덕분에 내 수업 장면을 보길 원하는 후배나 동료들에게는 언제든 그러시라 말씀드리고 교실 문을 연다. 내가 특별한 수업 기술이 있거나 매시간 박수를 쏟아내게 하는 강의력이 있어서가 결코 아니다. 그렇게 가깝지 않은 동료에게 수업을 보여달라고 말하는 용기에 격려해 주고 싶은 마음, 그렇게 용기 내서 찾아오기까지 홀로 느꼈을 좌절과 어려움, 그 과정을 나 역시 겪었다는 것을 알려줌으로써 결코 혼자가 아니라는 위로를 전하고픈 마음 때문이다. 그때의 박 부장님은 내게 그런 마음속 촛불 하나를 켜주신 셈이다.
각설하고, 허락을 받은 바로 다음 주부터 정규수업이 끝난 후 업무도 제치고 퇴근도 미룬 채 방과 후 수업에 들어갔다. 아이들의 자리에 앉으니, 허벅지가 책상을 들어 올릴 만큼 꽉 끼었다. 불편한 의자에 앉아 50분 동안 앞에 선 사람의 말을 듣고만 앉아 있자니 좀이 쑤시고 졸려서 죽을 지경이었다. 그때의 경험 덕분에 50분 내내 강의만 하는 수업은 절대적으로 하지 않으려고 한다. 최대한 아이들이 자기 얘기를 하거나 글을 쓰도록 하고, 강의할 내용이 많더라도 수업을 중간에 끊고 과제를 준 뒤 빈자리에 앉아서 아이들의 시선으로 교실을 둘러본다. 어느 지점에 졸음 도깨비가 내려앉아 있는지, 어디에 지루함 귀신이 붙어서 아이들을 교실 밖 다른 세상으로 홀려서 데리고 가는지.
담임 선생님과 함께 수업을 듣게 된 아이들은 아마 꽤 나 고역이었을 거다. 왁자지껄 떠들면서 제멋대로 한 2~30분만 앉아 있으면 되었던 수업이, 50분 동안 숨소리도 못 내고 꼼짝없이 앉아 있어야 하는 환경으로 바뀌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수업을 2~3주쯤 들으니 모르던 말들도 조금씩 들리고 기계의 원리도 조금씩 이해가 되면서 아이들에게 조금 더 쉬운 말로 설명하는 게 가능해졌다.
“야 만수야 스키 탈 때 무조건 직진하는 게 아니라 대각선으로 내려가잖냐. 그러니까 기름칠해 놓은 나사도 미끄러지지 않게 대각선으로 조이는 거야.”
이 기능사 필기시험이라는 것이 매번 새로운 문제로만 구성되는 게 아니라 기출문제를 모아놓은 문제 은행에서 무작위로 조합되는 형태라는 것도 많은 도움이 되었다. 나는 공부를 좀 우악스럽게 하는 타입이다. 학생 시절에 수학을 참 못했다. 기초가 부족하기도 했지만 제대로 공부해 본 적도 없어서 다른 과목 점수로 평균을 메우는 식으로 피해 왔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고3이 되어 대학은 좋은 델 가고 싶으니 점수는 올려야겠는데, 당연히 방법을 알 리가 없었다. 그래서 영어 사전을 외우듯 공통수학의 정석, 수학Ⅰ의 정석을 풀이집까지 필사해 보기로 했다. 그렇게 세 번쯤 반복하니 모의고사 문제가 정석의 어느 단원의 어느 문제가 변형된 것인지까지, 보이기 시작했다. 그렇게 국사 교과서도 베껴 쓰고, 사회문화 교과서도 베껴 쓰고, 기능사 시험도 마찬가지였다. 아이들 몰래 인터넷에 올라와 있는 굴삭기, 지게차운전기능사 필기시험을 대여섯 번 풀어보니 이미 합격선을 훌쩍 넘길 수 있었다. 아무리 공부해 본 적 없는 이 인간들이라도 기출문제 풀이를 한 스무 번쯤만 하면 필기시험에 합격시킬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러자니 시간이 문제였고, 결국 우리 반에 특단의 계엄 조치를 발령하게 되었다.
“내일부터, 특별한 이유가 있는 자들을 제외하고, 야간 자율학습을 시작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