많은 분들이 현재 다니고 있는 직장을 포기하고 로스쿨을 진학하는 것이 어떨지에 대해 고민을 하고 있다는 말을 한다. 그리고 어떤 선택을 하는 것이 좋을지 물어왔다. 많은 분들에게 보다 좋은 답변을 하는게 하고 싶지만, 필자의 한계는 역시 필자개인의 경험에 근거할 수 밖에 없을 것이다. 필자의 개인경험을 바탕으로 직장을 포기하는 것이 좋을지 말지에 대한 참고가 되었으면 하는 바람에서 이 글을 쓴다.
필자는 소위 말하는 대기업에 다니면서 여러 해 동안 해외주재원 생활을 했다. 그래서인지 제법 평범한 샐러리맨 치고는 넉넉한 수입도 있었다. 해외주재원 생활하던 시절에 골프회원권을 사서 틈나는대로 골프를 치러 다녔다면 “평범한 샐러리맨”이상의 생활이라 해도 큰 무리는 없을 것이다. 그러던 중 해외에서 고객을 모시고 골프를 치다가 외환위기가 발생했다는, 즉 한국이 IMF의 지원을 받기로 했다는 소식을 들어야 했다. 그리고는 곧 들려오는 본사의 명령, 이유여하를 막론하고 해외사무소를 접고(철수하고) 조속히 귀국하라는 것이었다.
그래서 회사의 명령대로 해외사무소를 정리하고 귀국했다. 약 10년간 다니던 회사였던지라, 그리고 해외영업을 활성화하려고 온갖 정열을 다받쳤던 터라 정들었던 사무소를 정리하고 들어오니 도저히 회사에 더 이상 미련이 없어져버렸다. 화가 나서 소위 명예퇴직을 했다. 그당시 운좋게도 회사에서는 명예퇴직을 장려했고, 약간의 넉넉한 보너스를 주었다. 그래서 운좋은 “배부른 명퇴족”이 될 수 있었다.
그리고는 과거 해외사무소의 경험을 바탕으로 다른 직장에 취업하는 데 성공했다. 그러나 외환위기중 수많은 동료들이 직장을 다시 얻지 못하고, 실패를 하는 모습을 보았다. 물론 일부는 이를 악물고 사업을 일으킨 동료도 있었고, 캐나다 등지로 이민을 가서 이젠 소식조차 끊긴 동료도 많았다. 그중에 일부 동료는 이런 사람도 있었다. 해외에서 박사학위를 따고, 강제로 명예퇴직을 당해서 직장을 찾지 못해 전전긍긍하는....수많은 여러종류의 사례를 보면서 느낀 것은 “학위증”보다는 “자격증”을 마련해야겠다는 것이었고, 또다른 하나는 “평생직장”은 없으므로 내 스스로 실력을 갖추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옮긴 새직장에서 틈나는 대로 미국의 로스쿨을 갈 준비를 했다. 오랜 해외생활로 영어에는 비교적 자신이 있었지만 약 3년을 꼬박 투자했다. 우선 LSAT준비를 했고, 그리고 영어공부를 더 열심히 했으며, 미국법에 도움이 되는 것이라면 모든 수업을 다 들어보았다. 그리고 LSAT시험을 여러번 응시했다. 몇 번의 시행착오끝에 마침내 미국의 로스쿨을 가기로 결심을 굳혔을 때 주변에서 반대가 심했다. 많은 반대의 이유가 있었지만, 첫 번째 이유는 내가 결심을 굳혔을 때의 나이가 이미 만으로 38살이었다는 것이었다. 주변에서 많은 사람들이 '귀국한 뒤 나이가 너무 많아 실업자가 될지도 모른다'는 말부터 “그나이에 무슨 영화를 누리겠다고 유학을 가려는가? 만으로 28살에 유학을 가도 그다지 이른게 아닐텐데...” 등 만류가 대단하였다. 물론 나이가 60대 가까운 분들은 필자에게 아직 젊었을 때 도전해보라고 하기도 했지만 이들은 소수였다. 천주교 신자였던지라 명동성당에 자주 가서 기도도 하며 고민했지만 역시 결론은 쉽지 않았다. 그 무렵, 여동생이 이런 말을 했다. “이 세상에는 하고 싶은게 있어도 다 못하고 죽는 사람도 많은 데 오빠는 복도 많소. 도대체 뭘 망설이나요? 지금 도전해보다 죽으면 설령 실패해도 해보고 싶은거 다해보다 실패하니 후회는 않을거 아니오?”
이말을 들은 순간 온몸에 전기에 감전된 듯 용기가 치솓았다. 수많은 반대 속에서도 "지금이 아니면 마지막이 될지도 모를 공부를 해야겠다"며 준비를 했다. 그 이후로는 어쩌다 동료들과 회식시간에 노래방을 가도 “나는 문제 없어....”, “해야 해야 내가 간다,”... 등의 스스로를 격려하는 노래를 수없이 불렀다.
미국의 로스쿨에 진학하기 위한 입학시험(LSAT)을 시작으로 JD 취득 그리고 LL.M취득, 변호사 시험(Bar exam)을 거치며 쉼없이 공부해야 했다. 이 씨가 미국으로 건너가 변호사 자격증을 손에 쥐기까지 정말 원없이 공부할 수 있었다.
나이들어 유학을 가니 주위에서 교수님이라고 인사를 하는가 하면 도서관에서 여기저기 물어보자니 부끄럽기도 하였다. 나이들어 유학을 가면 체력에서 떨어지고, 기억력 나빠지고, 그리고 실패하면 돌아갈 곳이 없다는 불안감이 더없이 커지면서 힘든 점이 많다. 그러나 좋은 점이 없는 것도 아니다. 우선 사회경험이 많으므로 회사법, 부동산법, 어음.수표법, 증권법을 배워도 쉽게 이해가 된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주식투자 한번 않해본 젊은 친구들이 증권법을 배울 때와 공모주 청약, 상한가, 하한가, 신주발행, 사업설명서 등을 다 이해하고 가는 사람과 이해도가 같을 수는 없지 않겠는가?
그 뿐만이 아니다. 나이들어 유학을 가면, 얼굴이 두꺼워져서 웬만큼 교수들에게 농담을 해도 별로 얼굴이 붉어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런 이유에서인지 나는 부지런하게 수업준비도 했지만 틈틈이 교수님들에게 쉬는 시간마다 별도의 질문지를 준비해 괴롭혔다. 또 많은 뇌물(?)도 주었다.
어떤 교수님들에게는 한국의 인사동에 연락을 해서 “OO 교수님, 행복하세요 건강하세요 . 이동욱‘이라고 앞면에 쓰고는 뒷면에는 ”Dear Prof. OO, Be always happy. Be always healthy. Dongwook Lee"이렇게 새겨진 개인별 머그 컵을 선물하기도 했다. 머그컵 하나는 약 1만원~2만원이지만, 운송료는 5만원이 넘어 배보다 배꼽이 더 큰일이 벌어지기도 했다. 이렇게 개인별로 “personalized service"를 제공하여 교수님들을 내편이 되도록 했다. 그리고 특히 여자교수님들에게는 초코렛을 발렌타인 데이 때마다 가져다 드렸다. 그랬더니 발렌타인 데이가 얼마 지나지 않은 어느 날인가, 약 60 정도 된 할머니 교수님이 제게 이런 엽서를 하나 주었다. “내가 초콜렛에 가슴이 뛸 나이는 분명히 지났는데 Andrew(당시의 내 영어이름이었다)는 늘 나를 happy 하게 한다.” 그러면서 그분은 내게 추천서 한통을 써주셨다. 내가 공부하던 도시에서 가장 큰 법원에서 judicial clerk이 되도록 추천을 해주는 그런 내용이었다. 한국에서 judicial clerk이라고 하면 혹자들은 “법원서기”아닌가 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지만, 이것은 로스쿨 졸업생에게는 정말 자랑스러운 것이다. judicial clerk이란 한 학교에서 1명 아니면 2명 정도밖에 될 수 없는 것이다. 심지어 미국의 대통령에 출마하는 후보자들조차 자랑스레 "judicial clerk"을 했음을 이력서에 밝히고 있다.
친절한 교수님들 덕분에 여러 가지 경험을 하고 미국에서 한국으로 돌아왔다. 한국은행에서도 일해보고, 외국계회사에서도 일해보았다. 그러나 공직에 참여하는 기쁨을 다른 곳에서는 얻을 수 없다고 생각해서 법무부에 들어와 일하고 있다. 틈틈이 FTA협상이며 비자면제 협상이며 이런 협상에 참가하면 돈으로 다 만족할 수 없는 기쁨을 느낀다. 그리고 지난번에는 워싱턴에 출장을 갔더니 나와 같은 학교를 나온 클래스메이트가 미국을 대표해서 협상단 테이블에 앉아있었다. “나는 내조국을 대표하고, 너는 너의 조국을 대표하니 우리 최선의 선의의 경쟁을 해보자“라며 악수를 했다.
이제 직장을 다니면서 로스쿨에 진학할지 말지를 고민하는 분들에게 말해드리고 싶다. 진정으로 바라는가? 그렇다면 손에 지금 쥐고 있는 것을 놓아야만 더 큰 것을 잡기위한 손을 뻗을 수 있지 않느냐고 말이다. 더구나 지금 그 손에 쥔게 무엇인지 말해보라. 그러면 정말 자기 손에 쥔 것이 별게 아닌게 느껴질 것이다. 그리고 진심으로 정성을 다해 노력을 하면 직장문제는 전혀 고민하지 않아도 될 것이다. 갈 수 있는 직장이 너무 많아서 고민을 해야 할 것이다. 그래서 성서에도 이런 말이 있지 않은가? “공중에 나는 새를 보라. 심지도 않고, 거두지도 않고, 창고에 모아들이지도 아니하되 너희 천부께서는 기르시나니, 너희는 이것들 보다 귀하지 않으냐?- 마테오 복음 6:26(필자가 워낙 나이롱 천주교 신자라서 약간 오타가 있을지 모르지만 전체적으로 이런 의미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개인적으로는 로스쿨에 진학한 것이 일생 중에 가장 잘한 결정이라고 생각한다.물론 이런 말 하면 직장포기하는 것을 신중하게 하라는 어느정도 반론이 나오리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생각해보자. 일생에 정말 진심으로 원하고 진정으로 하고 싶은게 있을 때 죽을 각오로 하지 않으면 될 것이 이세상에 어디있는가? 여기서 실패하면 이제 죽는 것 밖에 다른 길이 없다고 생각하고 도전해보라. 현재를 아마추어로 살면서, 미래의 프로가 되기를 꿈꾸거나, 현재를 대충대충 살면서 앞으로 잘되기를 바라거나, 현재는 아무것도 제대로 준비하는 것 없이 지내놓고는 미래에는 편안하고 풍요롭고 행복하기만을 꿈꾸는 사람들, 그들은 몽상가들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