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 연
윤 요 섭
입춘이 지나더니 날씨가 달라졌다. 겨울은 가고 봄이 온다고 바람과 햇볕이 전령을 띄운다. 그래도 이별은 곡절이 많다. 떠나는 겨울이 흔적을 남기려 애를 쓴다. 봄비인가 했더니 금세 함박눈으로 자취를 남기고 간다. 그 변덕스런 이별에도 틈을 비집고 냉이가 나오고 파란 싹이 돋는다. 우리는 이런 순환을 당연한 것처럼 즐기고 산다. 가고 오고 또 가고 거듭되는 윤회를. 그러면서 만나고 헤어짐은 또 얼마나 거듭 되는가.
우리가 살아오는 동안에 많은 인연을 맺고 산다. 순연이던 악연이던 스스로 의도했던 아니던 삶이 있는 한 그 고리는 끊이지 않는다. 태어난 곳, 부모와 친척 이웃과 친구, 가르침을 얻은 학교와 선생님. 이 모두 내가 성장하면서 맺은 인연들이다. 다 자라 한 사람으로서의 구실을 하기 위해 작든 크든 사회와 국가에 기여하면서 엮어진 인연 또한 어떻게 말로 표현 할 수 있을까.
옷깃만 스쳐도 인연이라는데 그 많은 세월에 어디 옷깃만 스치고 지났던가. 주고받고, 얽히고 설키면서 오늘에 와 있다. 이제 고목이 되어 겨울을 맞으니 작은 바람에도 잎은 떨어져 가지만 남아 방향 없이 마구 흔들린다. 눈을 감고 옛날을 추억한다. 그 싱그러운 훈풍을 맞으며 환희에 찼던 젊은 날들 많은 우여곡절을 겪으면서 이승에 왔다가는 흔적을 남긴다. 얻은 것도 많고 버린 것도 많다. 우리는 이것을 삶이라 생각한다. 끝없는 인연으로 엮여 가면서.
그런 인연 중에도 가장 애잔하고 아린 것이 부모와의 인연이다. 끊을 수도 버릴 수도 없다. 내 삶을 지탱하는 끈이기에 순연이던 악연이던 그냥 그렇게 이어져간다. 그 속에서 내가 자라고 성숙해 간다. 독립된 개체로 자기의 삶을 꾸릴 수 있을 때까지 닮아가고 깨닫고 원망도 반항도 해보면서 그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나는 유년기를 부모님과 떨어져서 할아버지 할머니가 사시는 작은 농촌에서 지냈다. 우리의 일생에서 유아기가 얼마나 중요한때인지 모르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사람은 다른 동물과 달리 태어날 때 아주 불완전한 상태로 태어나 조금씩 성장과 성숙을 거듭하면서 성인이 되어간다. 눈이 뜨이고 귀가 열리고 모방도 하며 주위 사람들과 연을 맺으며 자기 세계를 넓혀간다. 그런데 내 주위에는 또래친구가 없어 늘 혼자 놀다 잠든 기억이 많다. 그래서였을까? 행동이 느리고 말이 적고 우울했다. 그래도 나를 일으켜 세운 것은 무한한 할머니의 사랑이었다. 다함없는 배려와 사랑으로 기를 살리고 자존감을 돋우셨다. 자라서 학교에 입학하고 부모님과 함께 있어도 할머니 생각은 가슴 가득 메우고 있었다.
자녀가 자라서 결혼할 시기가 되면 어떤 사람이 인연이 될까 걱정한다. 많은 인연 중에 이보다 중한 것이 또 있을까싶다. 남아있는 자기의 삶을 함께 할 사람을 찾는 일이다. 이보다 더 소중한 인연이 있을까 마는 그래도 그것이 어느 한쪽의 버팀이나 노력으로 풀리는 일이 아니다. 부부의 연은 단 둘만의 문제가 아니고 가족이라는 테두리가 생기면서 확대되어간다. 나는 손을 잘못 잡았나 밤이 두려워졌다. 결혼하고 반년 만에 폐결핵 중증 진단을 받고 병원에 가 누운 남편의 수척해져가는 모습과 얼마 뒤에 태어날 영문 모르는 아기의 운명. 이런 상황을 거머쥔 나는 원망도 후회도 할 여지가 없다. 가엾다는 듯 두 어깨를 쓰다듬고 스치는 인연들. 어떻게 지나갔을까.
그런 세월은 15년이란 시간과 공간을 뒤흔들어 놓고 마침내 끝이 났다. 열다섯 번의 한숨을 짓던 봄도 가고 가슴 태우던 가을도 갔다. 나는 그 끈을 놓지 않았고 마침내 내가 원하던 답을 얻어 냈다. 내 등 뒤에서 잘못 맺은 인연이라고 눈짓하던 또 다른 인연에게 속으로 소리쳤다. 절대 악연이나 절대 순연이란 없는 것이라고........
남편의 병이 좋아지면서 지금까지의 서운했던 모든 것들이 마른땅에 물 스며들 듯이 사라졌다. 고마웠다. 병원에서 받아온 완치 판정이 담긴 엑스레이를 보고 또 보고 “정말 다 나은 것 맞지요” 그의 눈에는 알 수 없는 물기가 고여 있었다.
우리들은 인연이 얽혀 웃고 울고 살아간다. 잘못 엮이면 엉킨 실타래 풀 듯이 잘 풀어서 괜찮은 삶으로 사는 것이 지혜로운 길이 아닐까 곱씹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