녹차가 주는 지혜의 향기 / 강길용
한여름이다. 무더위가 기승을 부린다. 올해 여름도 전기가 모자랄 것 같다고 한다. 이러한 이야기들이 짜증스러움을 더해 준다. 짜증을 더한 짓무르는 무더위 아래서 도시인들은 또 힘겨운 삶과의 격전을 벌여야 한다. 시원한 냉커피 한잔이 그리워지고 콜라나 사이다, 주스 같은 음료들의 시장을 놓고 기업들은 보이지 않는 전쟁을 치른다. 음료수는 모두 냉동시켰다. 마시지 않으면 갈증을 풀어 줄 것 같지가 않은 계절이다.
에어컨의 사용도 늘어났다. 한 가정에 한대 꼴로 돌아가게 될 날도 멀지 않았다. 모두들 열심히 여름을 준비하며 살아간다. 뜨거운 것보다는 차가운 것을 좋아한다. 내가 가끔 들려서 비디오를 빌려다 보는 우리 동네 비디오 가게의 어린 꼬마 녀석도 아이스크림을 사 주면 무척이나 좋아한다.
혀를 길게 내밀고 있는 멍멍이들도 그늘을 찾고 밤에 방에서 나와 길거리에 앉아 이야기 하는 노인들의 모습들도 많아졌다. 여름이라는 계절의 힘은 가히 알아줄 만 하다.
이런 더위 아래서도 내가 마시는 차는 언제나 뜨거운 것이다. 커피를 마셔도 뜨거운 것을 마신다. 냉커피는 거의 마셔 본 적이 없다. 이런 나를 향하여 어떤 사람은 "오래 살려고 몸 생각하는 것이냐?"는 빈정거림 반 농담 반의 이야기를 건넨다.
내가 뜨거운 것을 좋아하는 것은 체질 때문일 것이다. 그렇다고 냉커피를 마실 줄 모르는
것은 아니지만 어쩐지 익숙지 않다. 그리고 커피는 그렇게 마시고 싶은 생각이 없다. 그래서
내가 즐기는 차가 녹차이다.
내가 녹차와 진지한 마음으로 만난 것은 10년 전쯤이다. 존경하는 교수님을 찾아갔다가 녹차의 맛을 보았다. 그 당시 가끔 들려서 교수님의 이야기를 들으며 마셨던 녹차의 맛은 숭늉을 마시는 것 같기도 하고 아무런 맛도 없는 것 같기도 하였다.
그 때까지만 녹차에 대한 맛도 몰랐고 녹차를 왜 마시는지 조차 모를 정도였다. 커피와 같은 진한 향이 없다는 것이 일차적인 나의 불만이었다. 두 번째는 한잔을 마시기까지의 과정이 복잡하다는 것이다. 그리고 또 하나는 녹차는 얼음을 띄워서 마실 수 없다는 점이다.
녹차를 마시기 위해서는 물을 끓이고 그것을 다시 온도를 맞추어 식히고 잎 차를 다기(茶器)에 넣고 물을 부어 일차로 한잔을 마시기까지 긴 시간이 지나야 한다. 그 사이 교수님과 간단한 이야기를 나누었다. 다 마시고 나자 교수님이 물을 다시 끓이셨다. 그리고 한잔을 마시라고 했을 때 나는 예의를 차린다고 사양을 했다. 그런데 교수님의 말씀은 "녹차는 3번은 마셔야 제 맛을 느끼는 거네"라고 점잖게 다례(茶禮)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 주셨다.
그 이야기를 들으면서도 편하게 마시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한 데 녹차를 마시는 과정이 번거로워서 내키질 않았다. 녹차를 마시면 일곱 가지 맛을 느껴야 한다는 말씀을 하셨지만 이해할 수 없었다. 단 한가지 맛도 제대로 느낄 수 없었다. 그래서 일곱 가지 맛을 느껴야 다도(茶道)에 이르렀다고 말할 수 있다는 이야기를 들으며 나는 속으로 헛웃음을 쳤다.
그렇다고 지금 그 맛을 모두 느끼는 것은 아니다. 지금은 일상적으로 느낄 수 있는 맛을 느끼기는 한다. 그러나 그 안에 들어 있는 삶의 여유가 주는 맛은 제대로 접해 본 적이 없다. 모두 살기 바쁘다는 핑계로 대충하고 서둘러 넘어가려는 마음 때문일 것이다. 아침에 일어나 물을 끓이는 것 하나도 벅찬 것은 사실이다.
특히 술을 마신 다음날이나 아주 피곤한 일을 치르고 난 뒷날은 그 자체가 귀찮아서 포기한 경우가 많았기에 제대로 다도(茶道)를 즐길 수 없다. 어쩌면 그것도 핑계에 불과한 것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내가 둘러댈 변명은 그런 것들뿐이다.
그럴 때마다 나는 가슴에 손을 얹고 반성을 해 본다. 세상사는 일이 그렇게 바삐 간다고 하여 해결된다면 모든 사람들이 달음질을 쳐야 한다. 그렇게 허둥대지 않고도 얼마든지 살 수 있는데 말이다. 규칙적인 수면을 취하고 식사를 한다면 건강을 유지할 수 있는 것은 물론이고 스트레스도 덜 받는다.
바쁜 가운데서도 나는 커피를 마시는 대신 녹차를 마시려고 한다. 녹차를 마시고 있으면 어디에서 오는지 모르지만 여유 같은 것이 생겨난다. 마치 봄날의 새싹이 돋아나듯이 널널한 가슴이 된다.
녹차에는 세상을 사는 지혜가 담겨 있다. 고요한 가운데서도 움직임이 있고 거센 마음의 격동 속에서도 고요함을 만나게 하는 그윽한 향기가 그것이다. 조용히 앉아서 마시면 생각을 할 여유를 주고 함께 마시면 물이 끓는 시간, 알맞은 온도가 되도록 기다리는 시간에 그리운 사람이나 사랑하는 사람, 가까운 친구와 대화를 나누며 정을 쌓아 가게 하는 지혜도 있다.
아직 오래 전에 들려 주셨던 교수님의 말씀처럼 일곱 가지 맛을 느끼지는 못한다. 바쁘게 쉽게 다례(茶禮)를 지키지 못하며 마시는 사람이 고고한 참 맛을 느끼려는 것은 욕심일 것이다. 향기와 맛이 없는 듯 살아 있다. 은은하며 부드러운 멋을 찾을 수는 없지만 마음의 한쪽에서 여유로움이 가득 차 오름을 느끼는 것만으로도 좋지 않을까 한다. 삶의 참 맛을 느끼게 하는 녹차에 대한 나의 생각을 넉넉한 마음으로 적어 본다.
1996. 6. 13 月山 康吉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