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는 제주만의 역사와 문화를 많이 가지고 있고, 현재까지도 명맥을 이어 오고 있는 것이 있다. 그 대표적인 게 역시 해녀라고 할 수 있겠다. 해녀는 ‘기계 장치 없이 맨 몸과 오로지 자신의 의지에 의한 호흡조절로 바다에 들어가 해산물을 채취하는 것을 직업으로 하는 여성’을 일컫는 말이며 바닷속에서 해산물을 채취하는 활동을 물질이라고 부른다. 해녀를 볼 때마다 늘 경외심이 든다. 젊은 시절부터 나이 지긋한 할머니가 될 때까지 수십 년을 맨몸으로 바다에 뛰어들어 물질을 해 올 정도면 체력과 정신이 얼마나 강인해야 되는 것인가, 가늠이 잘 되지 않는다. 보통 고된 일이 아니기 때문일까, 해녀의 고령화 현상이 심해졌고 인구는 가파르게 줄고 있다. 그러나 예부터 쌓여진 해녀만의 역사와 전통과 문화가 있기에, 그 보존 가치를 인정받아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에 해녀가 등재되었다. 도에서는 해녀를 위한 정책도 시행하고 있다. 우리 같은 여행자가 할 수 있는 것은 해녀 문화에 관심을 갖고 그와 관련된 장소를 한 번이라도 찾아가는 것이다. 최근엔 해녀를 주제로 한 연극을 보며 해녀가 마련한 식사를 맛볼 수 있는 ‘해녀의부엌’이란 곳도 인기가 많은 듯하다. 일정이 맞지 않아 가지 못했지만, 언젠가는 한번 경험해 보고 싶은 제주의 장소 중 한 곳이다.
해녀박물관
해녀에 대한 전반적인 내용을 보고 싶다면 세화리 해녀박물관이 아주 좋은 장소이다. 세화 해변에서 도보로 가까운 곳에 있고 201, 260번 버스가 박물관 앞에 정차하기 때문에 뚜벅이로 오기에도 더할 나위 없는 곳이다. 해녀박물관은 크게 제1전시실부터 제3전시실까지 있다. 제1전시실에서는 제주 해녀들의 생활 모습을 만날 수 있는 곳이다. 1960~70년대 해녀가 거주했던 집이 실감나게 꾸며져 있어 과거의 생활상을 볼 수 있으며, 제주의 고유한 음식문화도 볼 수 있다.
제2전시실에는 해녀들의 바다 일터와 역사, 공동체를 만날 수 있는 곳이다. 해녀들의 쉼터이자 옷을 갈아입고 바다로 들어갈 준비를 하는 불턱은 해녀 문화에서 중요한 비중을 차지한다. 축구로 비유하자면 ‘라커룸’이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제주 바다를 다니다 보면 곳곳에서 불턱을 만날 수 있다. 이뿐만 아니라 테왁과 고무옷 등 물질을 하는 데 쓰이는 도구들도 볼 수 있다.
제3전시실은 해녀들의 생애를 전시한 공간이다. 물질을 하게 된 계기를 비롯해 해녀가 들려주는 다양한 경험담을 듣다 보면 겉으로 드러나지 않는 내면의 이야기에 저절로 귀를 깊게 기울이게 된다. 해녀는 일제강점기 때 일제의 경제 수탈 등에 적극적으로 저항하며 항일운동을 펼치기도 했다. 해녀박물관이 있는 부지에는 이를 기리는 제주해녀항일운동 기념공원과 기념탑이 조성되어 있다.
제주해녀항일운동기념탑
숨비소리길
해녀박물관에 왔다면, 숨비소리길도 꼭 걸어볼 만하다. 내가 해녀박물관을 찾은 것도 박물관 자체보다는 숨비소리길을 걷고 싶은 마음이 더 컸다. 해녀들은 별다른 도구 없이 맨몸으로 입수하여 물질을 하기 때문에, 중간중간 올라와서 숨을 고를 시간이 필요하다. 물 위로 잠시 나와 호흡을 가다담을 때 내는 소리가 숨비소리인데, 이산화탄소를 한꺼번에 내뱉고 산소를 들이마시는 과정에서 ‘호오이 호오이’하며 나는 휘파람 같은 소리가 그것이다. 숨비소리길은 해녀들이 물질과 밭일을 하기 위해 밤낮없이 누비던 길을 트레킹 코스로 엮어 탄생한 길이다. 코스는 해녀박물관에서 시작해 한적한 밭담길을 가로질러 하도리 별방진에서 반환해 바다를 따라 걸으며 다시 박물관으로 돌아오는 원점 회귀 코스이다. 거리는 약 4.4km로 그리 길지 않아 걷기 좋은 코스이다.
숨비소리길은 2018년 말에 개장을 했고, 아직 2년밖에 되지 않은 신상 트레킹 코스라(방문 당시는 2020년 11월이었다) 많이 알려지진 않았을 거라고 생각했다. 예상대로 앞서가던 여행자 두 명을 제외하면 숨비소리길을 온전히 걷는 사람은 없어 보였다.
초록빛이 가득한 밭과 환상적일 정도로 맑은 날씨의 조화는 전혀 초겨울이라는 생각이 들지 않을 만큼 상쾌했다. 별방진을 향해 가는 내내 고즈넉한 밭담이 이어진다. 밭담길은 김녕해수욕장 인근 진빌레 밭담길과 비슷하면서 조금은 다른 느낌이었다. 진빌레 밭담길은 주변에 다른 건물이 없어 온전히 밭담에 빠질 수 있었다면, 숨비소리길의 밭담길은 시야에 민가도 있고 번듯하게 지어진 현대식 건물들도 있어 고즈넉한 마을 분위기와 함께 휴양지 분위기가 공존하는 느낌이었다.
반환점에서 마주하게 되는 별방진은 조선시대 때 왜적이 침입하는 것을 막기 위해 쌓은 성곽이다. 타원형 구조로 현재 남은 성곽의 둘레는 950m이다. 성곽에 올라가면 마을과 주변의 풍경이 제법 잘 내려다보여 유채꽃이 피는 계절엔 사진 명소로 사람들이 많이 찾는 곳이기도 하다.
하도리 별방진
별방진을 지나면 다시 해녀박물관으로 들어가는 도로에 진입하기 직전까진 쭉 바다를 보며 걸을 수 있는 코스이다. 해녀의 무대인 바다를 보며 걷는 동안 관련된 유적들을 쉽게 만날 수 있다. 불턱을 비롯해 성창(평상시 테우나 작은 목선을 정박하던 작은 어항), 갯담(바닷돌을 이용해 겹담을 둘러쌓고 고기를 잡던 장치) 등을 볼 수 있다. 형태가 눈에 확 들어오는 불턱과 달리 성창과 갯담이라는 개념은 상대적으로 생소하기도 하고 모른 채 지나갈 수도 있었지만, 안내판이 세워져 있어 해녀 문화를 하나하나 놓치지 않고 머릿속으로 꼭꼭 씹으며 숨비소리길을 둘러볼 수 있었다.
보시코지 불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