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편을 만들던 때가 참 그리워지는 요즘이다.
요즘은 송편도 기계가 만들어 낸다나?
시어머니는 음식이 많은 것을 좋아하셨다.
나는 음식은 먹을 만큼만 하는 것이 합리적이라고 생각했다.
먹고 남으면 한보다리씩 들려 보내야 한다는 것이 어머니의 지론이고
그 일을 다 해내기는 나는 버거운 며느리였다.
서울까지 가다가 변해서 못 먹는다는 핑계로 싸 주지 않으면
그게 또 못 마땅해서 나는 늘 어머니에게 형제들 안 챙기고 저만 아는 욕심많은 며느리였다.
그러나 그런 것이 무슨 대수랴
이번 추석에는 양을 더 줄였다.
송편도 네 접시 놓을 것만 갯수세서 만들고 쪘다.
과일도 하나씩만 놓기로 하였다.
내가 차례상을 이렇게 놓아도 우리 선영들은 아무 말이 없다.
본래 차례란 차를 올리는 예이지 음식을 많이 하는 것이 아니다.
오곡백과 풍성하니 선영들께 많이 올리면 좋겠지만 내 힘에 맞게 하는 것이 가장 좋은 방법이라
생각하기 때문이다.
상에 올린 음식 중 내 돈 들여 산 것은 새우뿐이다.
배는 친정 막내가, 사과는 남편이, 포도는 막내시누이가, 꽃게는 막내 동서가, 한과는 아들과 큰시누이가, 나물은 시골 땅에서 나온 것들로 전은 내가 만들었다.
이러다보니 비용도 많이 들지 않고 음식 적절하니 냉장고도 헐렁하니 좋다.
저녁에는 결혼한 조카가 애들까지 다 오며 민어 한마리를 사와서 회로 먹으니 풍성하고 맛있고 그렇다.
큰엄마집이라고 몰라라 안 하고
온 가족이 다 모이니 다복한 가족모임이 되었다.
진짜 명절이란 이런 가족이 이리 모여서 그냥 웃고 옛 이야기 하며 지내는 것 아닐까?
아들은 가족들이 헤어질 때 저도 간다고 떠나고 서울에서 왔던 시동생은 새벽 두시경 간다고 떠났다.
다시 둘만 남은 집이 되어 조용하지만 빨래까지 다 해서 널어 두고 나니
조용하다.
먹고도 조금 남은 송편 데워서 점심 먹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