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호등은 빨강, 주황, 초록 등으로 되어있다. 운전하다 보면 초록색 등을 좋아한다. 황색등이 들어오면 기회를 놓칠세라 신속히 지나간다. 그러나 붉은 색등이 들어오면 마음이 불편해진다.
한동안은 빨강 신호등이 싫었다. 왜냐하면 그것은 단지 나의 갈 길을 가로막는 거부 신호에 불과했기 때문이었다. 언제나 예기치 못한 장소에서 불쑥불쑥 나타나 거역할 수 없는 권위로 나의 의지를 꺾어 놓는 방해꾼인 빨강 신호등을 무척이나 싫어했었다.
따라서 신호대기에 걸려있는 시간은 무료하고 초조할 수밖에 없었으며, 가능하면 빨강 신호등이 켜지기 전에 빨리 건널목을 통과하거나, 미쳐 푸른 신호등으로 바뀌기도 전에 출발하는 습관마저 붙게 되었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빨강 신호등을 대하는 마음이 조금씩 달라지기 시작했다.
잠깐 휴식하며 계기판을 들여다보거나 거울 등을 점검하고, 좌우편에서 달려오는 차들을 신호가 바뀐 뒤에도 한 번 더 지켜보게 되었다. 그것은 나의 운전 습관에 있어서 커다란 변화였다. 요즈음은 인생 여정에서 일어나는 여러 가지 장애물들에 대해서도 같은 생각을 해본다.
불쑥 나타나 한바탕 먼지바람을 일으키면서 때아닌 눈물마저 흐르게 하는 사건들이 무의미한 세월의 낭비만은 아니라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오히려 잠시 머물러 서서 자신을 돌아보게 하는 하나님의 빨강 신호등이라고 생각이 든다.
인생의 빨강 신호등을 생각하면 답답하고 갑갑한 마음을 잠시 내려놓고 그동안 돌아보지 못한 일들을 돌아보며 오히려 삶의 여유의 시간을 즐기는 지혜를 배운다. 그래 이건 내게 축복이야, 이런 시련의 시간, 실패의 시간이 없다면 일만 하다가 보낼 수밖에 없는 소중한 삶을 위하여 하나님이 주시는 휴가라고 할까?
그렇게 생각하면 이 세상에서 나에게 못된 일이라고는 하나도 없을 것이라는 생각에 이른다. 모든 것이 가능하고, 모든 것이 고마운 사건들이 될 수 있다. 조금의 부족함도 없이 그저 넘치는 은혜로 다가온다. 그래서 그랬을까? 사도 바울은 이렇게 증언했다.
(빌 4:11) 내가 궁핍하므로 말하는 것이 아니니라 어떠한 형편에든지 나는 자족하기를 배웠노니 (빌 4:12) 나는 비천에 처할 줄도 알고 풍부에 처할 줄도 알아 모든 일 곧 배부름과 배고픔과 풍부와 궁핍에도 처할 줄 아는 일체의 비결을 배웠노라 (빌 4:13)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
바울의 이런 삶의 태도가 그 어떤 처지와 상황에서도 만족할 수 있는 사람이 되게 한 것이다. 인생 빨강 신호등이 들어오면 이제는 짜증 내고 불평하고 조급해하지 않고 오히려 감사하고 때마침 주어진 기회라고 즐길 줄 아는 사람이 되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