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깝고도 먼 부부
안골노인복지관 수필창작반 양희선
산과 들을 초록빛으로 물들인 5월, 그 5월은 가정의 달이다. 5월 5일은 어린이날, 오늘 하루만은 책을 벗어나 맘껏 뛰놀 수 있게 해야 될 어린이세상이다. 8일은 자식 된 도리로 부모님을 찾아뵙는 어버이날이다. 15일은 스승의 날과 가정의 날, 21일은 부부의 날로 부모자식 간에 사랑의 고리로 엮어진 달이다.
부부의 날은 2007년 대통령령으로 정해진 법정기념일로 둘(2)이 하나(1)가 된다는 의미로 21일을 부부의 날로 제정하였다. 성인남녀가 결합하여 한 지붕아래 한솥밥을 먹으며 생각과 말과 행실을 어긋남이 없이 서로배려하며 동고동락 하는 게 부부가 아닐까? 행복이 가득한 신혼 시절에는 사랑에 눈이 멀어 좋은 점만 보이다가, 날이 갈수록 하나둘 약점이 들어나기 마련이다. “열길 물속은 알 수 있어도 한 길 사람 속은 모른다.”는 속담처럼 속마음은 겉으로 들어나지 않기 때문이다. 남남이 만나 살다보면 정다울 때는 가깝게 느껴지고, 냉정할 땐 남처럼 먼 사이로 고운 정, 미운정이 들면서 둘이 하나가 되어 사는 게 부부이다.
부부의 연은, 정반대의 사람과 연분이 맺어지는 조화가 묘하다. 그이는 키가 크고, 나는 작다. 그분은 열 체질로 뜨거운 것은 질색이나, 냉 체질인 나는 따뜻한 것을 좋아한다. 그는 육식을 즐기는 반면 나는 채식을 선호한다. 남편은 불같이 급한 성격으로 생각할 틈도 없이 즉흥적이나, 나는 꼼꼼하게 매사를 신중히 생각하는 느긋한 편이다. 그는 법과원칙만을 주장하는 대꼬챙이로 융통성이 없으며 마음이 여려 배포가 없다. 사소한 의견충돌로 언성을 높이며 토닥토닥 말싸움을 할 때는 늘 무승부로 끝나 칼로 물 베기다. 고집 없는 사람 어디 있으랴만, 남의 의견은 들으려 않고, 자기주장만 고집할 때는 제풀에 지쳐 누그러질 때까지 기다리는 수밖에 없다. 자기성질을 이기지 못해 화를 냈다가도 뒤끝이 없어 슬그머니 풀어져 순한 양이 된다. 자기 말을 고분고분 듣지 않을 땐, ‘자존심만 강하고 인정머리가 없다’는 핀잔을 듣는다. 그는 불같은 성깔이지만, 마음이 선하여 정이 많은 편이다. 타고난 성격은 어쩔 수 없는 것일까? 나이는 들어가도 바뀌질 않는 것 같다.
부부란, 고달플 땐 힘이 되어주고, 아플 땐 간병사가 되며, 외로울 땐 위로 자가 되어, 즐거울 때나 괴로울 때 마음을 주고받으며 늙어가는 게 내외지간이다. 미울 때는 백년 원수요, 고울 때는 살가운 여보 당신이다. 촌수 없는 가족으로 부모자식보다 더 가까운 무촌이지만, 돌아서면 남남이 되는 것이 부부다.
결혼식 주례사에서 검은머리가 파뿌리 되도록 오래오래 행복하게 살라는 축사가 단골말이었다. 하지만, 중장년 부부의 황혼이혼은 이혼율 전체의 30%를 넘어섰다는 대법원통계다. 생각이 각각 다른 사람끼리 만나 결혼생활에 회의를 느끼고 갈등이 쌓여 고달픈 삶을 접으려는 극단적인 결심을 인생끝자락에 할 수 있을까? 예전엔 있을 수 없던 일들이 손쉽게 벌어지고 있는 현실이 안타깝다. 6070세대이전 남성들의 가부장적인 권위의식이 아직도 남아 불화의 씨앗이 되었을까. 여성상위 시대라고는 하지만, 우리세대는 남성이 여성을 이끌어간다고 본다.
남편은 가장이다. 할 일 없는 영감이라고 밉게 보면 한이 없다. 남편과 아내는 한 몸인 자기다. 집안대소사의 잡다한 일은 가장의 몫으로 일처리를 잘 해내고 있으니 떳떳하지 않겠는가. 꾸준한 자기 몸 관리로 앓아눕지 않고 건강해야 가정이 평화롭다. 솔선수범하는 봉사활동은 끈기와 희생 없이는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자식들에게 산교육이 되리라 믿는다. 밥상머리에 마주앉아 주거니 받거니 일상적인 이야기를 나누며 음식을 맛있게 먹을 때, 동반자가 옆에 있어 행복하다. 외롭지 않게 말동무로 웃겨주고, 때로는 울려주는 부모자식보다 더 가깝고 편한 당신이 있기에 감사하다. 외출하여 집에 없으면 기다려주고, 몸이 아플 땐 염려해주는 분, 오직 그림자처럼 따라다니는 동반자다. 눈빛만 봐도 마음을 읽을 수 있는 사람, 허물없는 사이일수록 예의(禮義)와 본분(本分)을 다해야 하는 게 부부관계다.
(2015. 5. 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