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설교의 제목은 붙잡아 주시는 주님입니다. 제가 부재로 영적인 슬럼프로 제목을 듣고 싶습니다. 누구든 신앙생활을 하다 보면 또 뭐 프로 선수들조차 슬럼프가 오게 마련입니다. 아마도 바울도 또 모세도 이사야도 내놓으라 하는 쟁쟁한 선지자들도 영적인 슬럼프들이 있는 모습들을 간혹 보고는 합니다.
저희도 신앙생활을 하시다 보면 처음에는 열정도 있었고 믿음도 충만했고 그런데 어느 순간 내가 보면 슬럼프가 온 듯한 표류하는 듯한 그런 느낌이 들 때가 간혹 있습니다. 오늘 말씀을 보면 베드로가 이 영적인 슬럼프에 잠깐 빠졌다 나오는 순간을 보게 됩니다.
베드로는 슈퍼 e입니다. 아주 외향적인 사람입니다. 이 베드로는 또 예수님의 수제자입니다. 그리고 나중에는 초대 교황이 되는 사람입니다. 오늘 말씀은 이 베드로의 이 영적인 슬럼프를 보면서 우리도 신앙생활을 하다 보면 이런 영적인 슬럼프에 빠질 때가 있지 않은가 함께 나눠보기를 원합니다.
이 오늘 말씀은 오병이어의 기적 후에 그래서 사람들이 배불리 먹고 나서 사람들이 떠나지 않고 자꾸 계속 예수님께 나아오니까 예수님이 서둘러 제자들한테 빨리 배 타고 가 빨리 가 호수 건너서 가 보내시고 예수님께서는 기도를 하신 후에 그 배를 쫓아가던 상황입니다.
이 배에서의 사건은 이번이 두 번째 사건입니다. 첫 번째 사건은 예수님과 함께 이동할 때에 뱃속에서 예수님이 주무실 때에 풍랑이 몰려오니까 제자들이 예수님을 깨우면서 예수님 어떻게 좀 해봐요?
그러니까 아니 함께 내가 같이 있는데 뭐가 무서워 그러면서 바람아 잠잠하라 하면서 한 번 이 믿음이 적은 자더라 했던 사건이 있었고 그 이후에 두 번째 사건입니다. 이때는 예수님이 없이 제자들만 배를 타고 가는 상황 가운데 파도가 폭풍이 몰아치게 됩니다. 그래서 고난을 당하며 주님을 망각하더라고 말씀에 나옵니다.
오병이어의 기적 이후에 아주 제자들도 으쓱하고 자부심과 함께 역시 우리 제자들이야 우리 예수님이야 우리는 제자로서 자부심을 가지고 가던 중에 폭풍우가 몰아치니까 주님을 까먹게 되는 거죠.
그때 바다 위로 예수님이 걸어오시게 됩니다. 이미 고난을 당하는 가운데 주님이 오시는데도 불구하고 너무 공포와 두려움에 내 자신이 휩싸여버리니까 주님이 나에게 오시는 것조차도 망각하게 되고 유령이라고 합니다. 어쩌면 제자들은 예수님이 베푸시는 기적들을 보면서 아마도 제3자의 입장에서 봤을 수도 있습니다.
내 문제가 아니야 저 사람들의 문제야. 저 사람이 아픈 거야. 저 사람이 믿음이 없는 거야. 저 사람이.
근데 이 지금 이 순간은 그렇지가 않습니다. 구경꾼의 입장에서 늘 봐왔던 기적이지만 오늘은 제자들 본인들이 직접 경험하는 믿음의 상황인 것입니다. 기적의 순간인 것입니다.
예수님이 무리로 걸어오실 때에 이때 베드로가 아주 외향적인 베드로가 나섭니다. 나서면서 주님 저도 걷고 싶습니다 라고 했을 때 오라고 말씀하십니다. 예수님께 걸어가던 그 베드로, 그 베드로가 그 걷던 중에 계속해서 걸어갔어야 되는데, 믿음의 걸음이 됐어야 하는데 바람이 불어칩니다. 막 머리가 휘날리고 옷이 막 벗겨질 것 같고 파도가 막 쳐오릅니다.
그런 환경의 무서움에 두려움에 감정 속으로 빠져 들어갑니다. 아무래도 인간은 죄인이기에 그 죄성은 환경을 자꾸 바라보게 됩니다. 사단은 환경을 자꾸 인식시켜줍니다. 니 환경이 지금 이런 상황인데 되는 게 아무것도 없는데 환경을 자꾸 일깨워 줍니다. 그 힘들어하는 환경 가운데 어느새 나도 모르는 사이에 그 환경에 젖어 들어가게 됩니다.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매어 있게 되는 몸에 베어들게 되는 환경의 습관으로 빠져들게 됩니다. 환경 때문에 우울증, 무기력함 그런 것들에 빠져들게 됩니다. 꼭 그것뿐만이 아니라도 우리는 영적인 슬럼프를 경험할 때가 있습니다. 우리의 삶이 표류하는 듯한 무풍지대에 있는 것 같은 방향을 못 잡고 나아가지도 못하고 그대로 멈춰 있는 듯한 느낌이 들 때가 있습니다.
아마 베드로도 주님이 오라 그래서 걷고 있었는데 점점 환경을 바라보면서 두려움이 차오르면서 빠져들어가는 자신을 보며 순간 찰나 주마등처럼 생각들이 지나갔을 것입니다.
왜 주님이 오라고 그래서 가고 있는데 왜 주님의 뜻이 아닌가 내가 무언가를 잘못했나 그러면서 옛날에 예수님을 처음 만났던 순간부터 예수님이 깊은 곳으로 가서 던져라 했을 때, 그물을 던졌을 때에 아주 많은 물고기를 잡았던 그 기적을 맛봤던 순간, 또 자신의 장모님을 예수님이 고쳐주시는 것을 봤었던 순간, 그러한 경험했던 무수한 주님과 함께했던 주님의 은혜의 순간들이 스쳐 지나갔을 것입니다.
기적의 종류들을 한번 제 나름 나눠보면 이 죽은 사람을 살리는 기적도 있었고 병자를 고치는 기적도 있었고, 눈이 멀었던 바디메오를 눈뜨게 하고 중풍병자를 걷게 하고, 또 배고픈 자들을 오병이어를 통해 배를 채워주고, 그러니까 공의를 위한 공적인 하나님의 공의를 나타내고자 하는 그런 기적들 어떻게 보면 그거는 당연할 것 같아요.
근데 그냥 사적인 그냥 개인적인 체험을 위한 기적들도 가끔은 있습니다. 베드로가 본인 입장에서 경험한 것은 본인의 아픈 장로님을 예수님이 고쳐주시기도 했고, 또 물고기 깊은 곳에 가서 던지라고 그랬는데 물고기를 많이 잡게 되어지는 그러한 경험도 자신의 이익이 되는 경험도 맛보기도 하였습니다.
간혹 우리는 우리의 삶 가운데에서 사역이나 교회 일을 대할 때는 그것은 하나님의 일이기 때문에 그런 것들에 있어서는 저도 사역을 하다 보면 당연히 이거는 하나님의 일이기 때문에 그냥 내가 주어진 일을 하다 보면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이야 라는 믿음 가운데 나아가게 되고 이루어지는 것을 보게 되고 그것이 은혜가 되어지는 순간들이 많이 있고 그런 경험들이 많이 있는데 간혹 내 개인적인 기도 제목을 가지고 나아갈 때는 그게 흔들림이 있다는 거죠.
이게 과연 하나님의 뜻일까? 내가 그냥 단지 나만을 위한 그리고 또 우리는 그런 것들이 좀 물론 기복 신앙을 구하는 교회들도 있긴 하지만 대체적으로 교회에서는 하나님의 나라와 의를 구하는 그런 기도가 이루어진다라는 그런 교육들을 많이 받았기 때문에 그 자신의 문제를 가지고 씨름하며 나아가는 그 순간이 상당히 그 영적인 슬럼프에 빠지기가 쉬운 그런 부분들이 많이 느끼게 됩니다.
그렇지만 이 베드로의 경험을 봤을 때에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런 것들이 기적으로 나타나고 하나님이 역사하시는 모습을 볼 때에 주님께서 우리에게 허락하시는 부분들이 있다는 것을 보게 됩니다.
그리고 주님께서는 우리와 늘 함께 하신다라는 것을 보여주시고자 하는 것도 보게 됩니다. 그 베드로가 빠져들어가는 그 순간 그때 베드로는 아주 많은 무수한 생각들을 했을 것입니다.
다른 제자들이 날 보고 있기도 하고 수제자인데 이거 왜 내가 무에 빠져들어가는 거야?
그런 생각도 있었을 것이고,
아니 여태까지 내가 경험했던 건 여태까지 뭐였지
라는 생각도 있었을 것이고, 내가 과연 이렇게 해서 물에 빠져 죽는 것인가라는 생각도 있었을 것입니다.
그 순간 그 순간 결국 내가 의지해야 할 것은 세상이 아니라 좋은 환경이 아니라 파도가 멈추기를 바라는 것이 아니라 주님을 찾는 것입니다. 주님이 내 앞에 있음에도 불구하고 나는 빠져들어갈 수밖에 없는 연약한 존재라는 것을 바라보게 되고 인정할 수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그때에 그때에 그 환경에 사슬을 끊어야 합니다. 부르짖음으로 사단이 만들어 놓은 환경의 굴레를 깨고 나와야 하는 것입니다. 그때 베드로가 주님을 바라보며 주여 나를 구원하소서 나를 구해주시옵소서 하며 부르짖게 되는 것입니다.
그 부르짖음 가운데에 주님께서는 즉시로 반응을 하십니다. 즉시 손을 내밀어 붙잡아 주십니다. 나의 그 슬럼프에 빠져 있는 영적인 상태에 그때에 내가 결국엔 뭡니까? 본질은 뭡니까? 환경이 문제가 복잡한 게 본질이 아니지 않습니까?
결국 주님을 다시 새롭게 붙잡는 것입니다. 그럴 때에 바람이 그입니다. 주님과 함께할 때 평안이 찾아오게 됩니다. 주님과 함께하는 물론 주님이 앞에 계시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환경은 늘 주님과 함께하는 가운데서도 나의 환경은 그렇게 허락허락하지 않습니다.
계속 소용돌이치는 마음이 있습니다. 계속해서 부글부글 끓어오르는 마음이 있을 수밖에 없지만 그때에 그 사슬을 끊어내는 부르짖음으로 나는 주님을 붙잡게 되는 것입니다. 주님이 붙잡아주시는 부르짖짐이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주님과 함께할 때에 두려움이 없어집니다. 평안함이 찾아올 수 있습니다. 그 가운데 은혜가 있게 되어지는 것입니다.
그러한 흔들림 가운데 저는 늘 그 흘러 흔들림이 있을 때마다 내가 뭔가 잘못 방향을 잡았는가 뭔가가 잘못된 것인가 할 때마다 그런 고민 가운데에서 다시 한 번 옛날을 은혜의 순간들을 기억을 해봅니다.
주님 분명히 나를 사랑하시고 주님 분명히 나한테 베풀어주셨던 은혜들이 다시 한 번 기억해 봤을 때에 그때를 되돌아보면서 주님이 나한테 베풀어주셨고 하셨던 일들을 기억하며 아 분명히 내가 이 가운데 주님께서 함께 하시고 계시다는 확신을 다시 한 번 갖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분명히 주님께서 여태까지 베풀어 주셨던 은혜가 다 각자의 믿음 믿음, 신앙생활 가운데 있습니다.
그것을 나의 환경 때문에 나의 문제 때문에 망각하고 있지는 않은지 다시 한 번 나의 문제와 환경을 끊어내는 깨어내는 부르짖음 가운데 주님께서 베풀어주셨던 은혜 가운데 다시 한 번 주님께 나아가는 슬럼프를 깨고 일어서는 저희 구미목장 교회 성도들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 Messenger’s Note:
“In his heart, a man plans his course, but the LORD determines his steps.” (Proverbs 16:9)
“Nevertheless, not my will but yours, be done.” (Luke 22:42)
“And when the angel stretched out his hand toward Jerusalem to destroy it, the LORD relented from the calamity and said to the angel who was working destruction among the people, ”It is enough; now stay your hand.“ And the angel of the LORD was by the threshing floor of Araunah the Jebusite.
And David built there an altar to the LORD and offered burnt offerings and peace offerings. So the LORD responded to the plea for the land, and the plague was averted from Israel.” (2 Samuel 24:16,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