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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월당 시집 제3권 2-1 2 석로釋老 1 증준상인贈峻上人 준 대사[上人]에게 주다 20首
준상인峻上人 선문로숙禪門老宿 준 대사[峻上人]는 선문禪門의 노인이다.
초어호남初於湖南 유가은지처有可隱之處 처음에 호남 땅에 숨어 살만한 곳이 있어서
주석수년住錫數年 지팡이[錫]를 머물러 두기를 몇 해 하다가
도력기성道力旣成 편력운수遍歷雲水 도道의 힘이 성취된 뒤에 雲水를 두루 돌아다니며
홀과경락忽過京洛 홀연히 서울에 들어오니
사녀복주士女輻湊 선비와 부녀자들이 바퀴살 모이듯 하여
망풍이미望風而靡 풍성風聲을 바라만 보고서도
소화무동所化無同 휩쓸려 교화한 것이 그 같은 이가 없었다.
내인명재급선신거사乃因名宰及善信居士 이에 이름난 재상과 잘 믿는 居士들을 통하여
고청인아固請因雅 아사雅士를 따를 것을 굳이 청하였으나
적대원흘適大願訖 마침 큰 소원이 이루어졌기에
부유호남復遊湖南 다시 호남에 놀러 갔는데
용의유도골언容儀有道骨焉 용모에 道骨이 있었다.
복어임신하제僕於壬申夏制 내가 壬申年 여름에
미석조계弭錫曹溪 지팡이를 曹溪寺에 멈추었으므로
수동주상사대遂同住上社臺 마침내 함께 윗 암자[社臺]에 있었는데
과시소문果始素聞 과연 듣던 소문과 같았고
기모도초탈지심其慕道超脫之心 곧 道를 사모하면서도 超脫한 마음이
착어사지표著語辭之表 말하는 표면에 나타나서
매일구문선관每日扣問禪關 매일 선에 들어가는 문을 캐어물어도
어랑랑연語琅琅然 낭랑하게 말하는 것이었다.
인기낭일탐완경因其曩日探翫景 그 전날 찾아 구경한 경치에 따라
각소수련却掃數聯 두어 수 휘둘러 써서
이자벽봉청간以資碧峯清澗 푸른 봉우리 맑은 시냇물에서
면식지일미眠食之一味 자고 먹는 一味가 되게 하려고
념한주이拈翰走爾 붓을 잡아 달리었다.
►석錫 지팡이
석錫을 지팡이라 번역한 것은 중의 지팡이는 주석으로 된 것이기 때문이다.
지팡이를 머물러 둔다 함은 그 지팡이의 임자가 머물러 있다는 말이다.
其一
남산자취울부용南山紫翠鬱芙蓉 남산의 붉고 푸르름 연꽃 모여 빽빽한데
사재조계제일봉寺在曹溪第一峯 절은 조계曹溪 제일 첫 봉우리에 앉았네.
만고건곤쌍초교萬古乾坤雙草屩 만고萬古의 하늘과 땅에 한 쌍의 짚신뿐이요
백년신세단수공百年身世短瘦筇 백년 동안의 신세는 짧고 마른 지팡이뿐일세.
유시대월간승화有時對月看僧話 때로는 달을 대하며 중이 말한 것을 보는데
하처분향좌고송何處焚香坐枯松 어느 곳에 향 피우고 枯松에 앉아 있는가?
요식오사진면목要識吾師眞面目 우리 대사 참 모양을 알려고 한다면
죽림서반석교동竹林西畔石橋東 대 수풀 서쪽 끝 돌다리 동녘에서 일세.
其二
편편일석향공비翩翩一錫響空飛 지팡이 하나 펄펄 공중에 나는 소리
오월송화만취미五月松花滿翠微 오월달의 송화松花가루 높은 산에 가득하다.
진일발경천호반盡日鉢擎千戶飯 진종일 바리때엔 천 집의 밥 담겨 있고
다년납걸기인의多年衲乞幾人衣 여러 해 장삼은 몇 사람 옷 빌렸던가?
심동류수자청정心同流水自淸淨 마음은 流水 같아 저절로 청정하고
신여편운무시비身與片雲無是非 몸이야 한 조각 구름이라 옳고 그름 없다네.
답편강산쌍안벽踏遍江山雙眼碧 강산은 다 밟았어도 두 눈은 푸르른데
우담화발급시귀優曇花發及時歸 우담화優曇花 피었을 적에 때 맞춰 돌아왔네.
펄펄 석장 하나 허공 울리며 나는데
오월 송화 가루 산허리에 가득하네
종일 바리때 들고 천 집의 밥을 얻고
여러 해 얻어 기워 몇 사람의 옷인가
마음은 흐르는 물 저절로 청정하고
몸은 조각구름이라 시시비비 없다네
강산 두루 밟고 다녀 두 눈이 푸르게
우담화 피었을 적에 때맞춰 돌아왔네
►우담화優曇花 우담優曇은 범어 우담바라화優曇婆羅華의 略語.
3천년에 한번 꽃이 핀다는 식물로서 꽃이 필 때는 금륜왕이 나온다 한다.
<법화문구法華文句>에 “優曇花者此言靈瑞 三千年一現 現則金輪王出”이라 하였다.
其三
지애청산불애명只愛青山不愛名 청산만을 사랑하고 이름은 사랑하지 않는데
청산상대가망정靑山相對可忘情 청산을 마주보니 情이야 잊을 수 있으랴!
태흔일경백운쇄苔痕一徑白雲鎖 길에 이끼 흔적 있는 것 흰 구름이 막은 거요
화영반창홍일명花影半窓紅日明 그림자 창에 반이니 붉은 날이 명랑하다.
간암단문천절력澗暗但聞泉浙瀝 내는 어두컴컴 들리느니 시냇물 소리일 뿐
봉회잉견월휴영峯回剩見月虧盈 봉우리 돌아서니 차고 기우는 하늘의 달 보겠네.
갈등삼척무인화葛藤三尺無人和 칡과 등이 석 자라도 인간의 화응 예 없으니
부여격림유조성付與隔林幽鳥聲 건너편 숲 그윽한 새 소리에나 마음 붙여 보리라.
其四
일주청향일권경一炷淸香一卷經 주먹 맑은 향에 한 권의 불경이요
일륜고월일계성一輪孤月一溪聲 바퀴 외로운 달 한 개울의 물소릴세.
정중감명황금천鼎中甘茗黃金賤 속의 단 차[甘茗]가 황금도 천하게 여기고
송하모재자수경松下茅齋紫綬輕 늘 아래 띳집이 붉은 관복도 가벼이 보네.
표묘연하심여결漂渺煙霞心與潔 득한 안개 노을[煙霞] 마음과 함께 깨끗하고
선연수월성상명嬋娟水月性常明 고와라 물 위의 달, 성품도 항상 명랑하네.
한면진일무인도閑眠盡日無人到 한가로이 잠들어 종일 가도 오는 이는 없고
자유청풍감죽영自有淸風憾竹楹 청풍만이 절로 와서 대 난간을 흔드네.
其五
긍학참선구출리肯學參禪求出離 즐거이 參禪하는 것 배워 티끌세상 떠나려는데
진공소아우상기眞空笑我又相欺 진眞·공空이 날 보고 또 속는다 웃으리라.
쟁명진토혼무의爭名塵土渾無意 진토塵土의 명리 다툼엔 전연 뜻이 없지만
방지강호이불의放志江湖已不疑 강호江湖에 방랑함은 이미 의심 않는 일
탑상좌문송락자榻上坐聞松落子 솔방울 떨어지는 소리 평상 위에 앉아 듣고
림간행견죽생치林間行見竹生稚 숲 사이로 가다가 대 순 돋아나는 모양 보네.
지장고영표연거只將枯影飄然去 그저 마른 그림자랑 표연히 가거니
록수청산하처기綠水青山何處期 푸른 물 푸른 산 그 어디에 기약 하리오?
其六
유신하처불위가有身何處不爲家 이 몸이 있으려면 어느 곳에 집 못 지으리
감분청산시일차甘分靑山試一嗟 달갑게 나눠줄지 청산에 한 번 시험해 보게나.
우후하서종서초雨後荷鋤種瑞草 비 온 뒤면 호미 들고 서초瑞草를 심고
풍전급임탐호마風前扱衽探胡麻 바람 불면 옷섶 걷고 들깨나 거두소.
일창명월일창철一窓明月一窓徹 창에 가득 밝은 달 창 하나를 온통 꿰뚫고
천리부운천리차千里浮雲千里遮 천리 長空에 뜬 구름은 천리를 막고 있네.
호향연하군막출好向煙霞君莫出 이 좋은 안개 노을 두고 그대여 가지 마오.
소계류수장선화小溪流水長蘚花 작은 시내 흐르는 물 이끼꽃이 자라나네.
其七
팔만봉두월욕저八萬峯頭月欲低 팔만봉八萬峯 머리에는 달도 나직이 떠 있는데
서광화무락정제曙光和霧落庭除 새벽 빛 안개 섞여 뜰 가에 내려앉네.
반계우야등화로半溪雨夜藤花老 반계半溪는 밤비에 등꽃이 늙었고
일경춘풍우엽제一逕春風芋葉齊 외길의 봄바람에 토란잎 가지런하네.
송자타창운입호松子打窓雲入戶 솔방울은 창을 치고 구름은 문에 들고
태흔요체죽아계苔痕繞砌竹芽階 이끼 흔적 섬들에 둘려 있고 대는 계단을 뚫었네.
세간갑자지다소世間甲子知多少 세상의 甲子·乙丑 몇 번이나 지났는가?
유유공림산조제唯有空林山鳥啼 빈 숲속에 산새만이 홀로 울어대누나.
其八
종일망혜신각행終日芒鞋信脚行 진종일 짚신 신고 발길 닿는 대로 가는데
일산행진일산청一山行盡一山靑 산 하나 가고 나면 또 산 하나 푸르렀네.
심비유상해형역心非有像奚形役 마음이야 형상 없거니 어이 물질에 종이 되며
도본무명기가성道本無名豈假成 도道야 본래 無名이어니 어이 빌릴 수 있으리.
숙무미희산조어宿霧未晞山鳥語 간밤 안개 축축한데 산새들 지저귀고
춘풍부진야화명春風不盡野花明 봄바람 다 하잖아 들꽃은 환하네.
단공귀거천봉정短筇歸去千峯靜 단장 짚고 돌아가니 일천 峯이 고요하고
취벽란연생만청翠壁亂煙生晚晴 푸른 석벽에 얽힌 연기 늦게서야 맑게 개네.
종일토록 짚신 신고 발 가는 대로 다녀
한 산이 건너 다하면 다시 한 산 푸르네.
마음이란 모양이 없으니 어찌 형체의 부림을 당하랴.
도란 본디 무명이니 어찌 빌려서 이루겠는가?(도를 얻은 척 할 수 없다)
宿露未晞山鳥語
묵은 이슬이 마르지 않았는데도 산새는 우짖고
봄바람 계속 부니 들꽃은 환하다.
짧은 지팡이 짚고 돌아오노니 온갖 봉우리들 고요하고
푸른 절벽의 어지러운 안개, 저녁햇살 속에 비치네.
其九
풍악고저십이봉楓岳高低十二峯 단풍 산 높고 낮게 열두 峯이 보이는데
봉두석각괘고송峯頭石角掛枯松 봉우리 위의 돌 뿔엔 枯松이 걸려 있네.
진분각시곽랑교塵紛却是郭郎巧 티끌 분분한 것 이건 되려 곽낭郭郞의 교묘함인가?
세사진수호접공世事盡隨蝴蝶空 세상일은 모두 다 나비 따라서 空 되었네.
계자락시잔조박桂子落時殘照薄 계수 열매 떨어질 땐 남은 햇살도 엷은데
양화비처만산농楊花飛處晚山濃 버들 꽃 나는 곳엔 늦도록 산 빛 짙어
포단독좌향여루蒲團獨坐香如縷 창포 둥근 방석에 앉았으니 향 연기 실같이 오르고
애청풍교반야종愛聽楓橋半夜鍾 즐겨 듣는 소리 한밤에 울리는 풍교楓橋의 종소릴세.
►곽랑교郭郎巧 곽낭의 교묘함.
이 말은 逆으로 한 말이다.
남이 춤추는 것을 졸拙하다고 곽낭郭郞이 흉을 보므로
곽낭더러 추어보라 하였더니 꽉낭은 더 졸하였다는 옛말이 있어
졸拙하다는 말을 교巧하다고 逆說한 것이다.
양대년楊大年의 〈괴뢰시傀儡詩〉에 “鮑老當筵笑郭郞 笑他舞袖太琅瑞”이라 하였다.
►풍교楓橋 다리 이름.
<명일통지明一統志>에 “楓橋 在蘇州府城西七里”라 하였고
장계張繼의 〈풍교야박시楓橋夜泊詩〉에 “夜半鍾城到客船”이라는 귀절이 있다.
其十
공색관래색즉공空色觀來色即空 공空·색色을 보아오니 색이 바로 空이어서
갱무일물가상용更無一物可相容 다시 에서 한 물건도 없으면 시로 용납 안 되네.
송비유의당헌취松非有意當軒翠 소나무가 뜻이 있어 추녀 끝에 푸른 것 아니요.
화자무심향일홍花自無心向日紅 꽃도 무심한 채 해를 향해 붉어 있네.
동이이동동이이同異異同同異異 같고 다르고 다르고 같고 같으면서 다르고 다르니
이동동이이동동異同同異異同同 다르고 같고 같고 다르고 다르면서 같고 같네.
욕심동이진소식欲尋同異眞消息 같고 다른 참 소식을 굳이 찾으려거든
간취고고최상봉看取高高最上峯 높고 높은 최상봉에서 보아 알 것이로세.
공空과 색色 살펴보면 색이 곧 공이로다
다시금 한 물건도 서로 용납함이 없구나
소나무는 아무 뜻도 없어도 집안까지 푸르고
꽃은 절로 무심하게 해를 향해 붉게 피었도다.
다름을 같다 하고 같음을 다르다 하니 같고 다름이 다르고
같음을 다르다 하고 다름을 같다 하니 다르고 같음이 같도다.
같고 다름의 참된 이치를 찾고 싶으면
높고 높은 최상봉에서 살펴보고 찾게나.
►동이이동同異異同 같고 다르고 다르고 같다.
당唐의 詩人 노동盧仝이 마이馬異에게 “同不同異不異”이라는 詩를 지어 준 일이 있어 여기에 그것을 따라 지은 듯하다.
其十一
괴래무사가치분怪來無事可馳奔 괴이한 거야 달리고 뛸 만한 일 없는 것인데
시유청풍래귀문時有清風來歸門 때로 와서 맑은 바람 문을 쓸어 주네.
춘조롱성현관절春鳥弄成絃管節 봄새들 우짖는 소리 관현管絃의 음악 이루고
만산농작화도흔晚山濃作畫圖痕 저문 산 짙은 빛은 화도畵圖의 흔적일세.
만정천전유금답滿庭天篆幽禽踏 뜰에 가득한 천연의 전篆자는 산새들의 발자취요
팔척인효량점문八尺人爻凉簟紋 팔척 긴 人字 무늬의 서늘한 돗자릴세.
정려만단도살료情慮萬端都殺了 만 가지 얽힌 情과 생각 다 죽여 버리니
야심풍진일창운夜深風趁一窓雲 깊은 밤 창에 가득 바람이 구름 몰아오네.
其十二
야란고탑월배회夜闌孤塔月徘徊 밤 깊어 외로운 탑엔 달이 어정거리는데
인정봉창풍자개人靜蓬窓風自開 인적 고요한 뺑대 창문 바람에 절로 열리네.
호접몽중운표묘蝴蝶夢中雲縹渺 나비 꿈꾸는 속에 구름 멀어 아득한데
자규성리월최외子規聲裏月崔嵬 자규 우는 속에 달만 저리 높이 떴네.
일병일발무심로一瓶一鉢無心老 병 하나 바리때 하나로 무심히 늙었는데
만수천산득의회萬水千山得意回 만수萬水요 千山이 마음 흡족해 돌아왔네.
자괴속인혼부도自怪俗人渾不到 괴이한 건 시속 사람 도시 오지를 않는데
춘풍양각록매태春風養却綠莓苔 봄바람은 푸른 딸기와 이끼를 길러 주네.
►호접몽蝴蝶夢 나비 꿈.
장자가 꿈에 나비가 되어 하늘을 훨훨 날아 다녔는데 멋대로 놀 수 있는 즐거움에
자기가 나비인 줄로만 알고 장자라는 것을 전혀 몰랐다는 故事.
<莊子 제물론齊物論>에 “昔者莊周夢爲胡蝶 翔翔然胡蝶也 自喩志與不知也”라 하였다.
►자규子規 두견이. <금경禽經>에 “子規 一名杜”이라 하였다.
►일병일발一瓶一鉢 병 하나 바리때 하나. 소박한 승려僧侶의 생활.
其十三
십년강해주풍진十年江海走風塵 십년 동안 江海로 풍진 세상 달렸더니
소향청산입몽빈笑向靑山入夢頻 웃으며 청산을 향하면 꿈에 자주 보이네.
세상종영쟁사은世上縱榮爭似隱 세상에 영화 있은들 숨느니만 어이 같으리
주문수귀불여빈朱門雖貴不如貧 붉은 칠 대문이 귀하다지만 가난함만은 못하네.
객희죽가현봉탑客稀竹架懸蓬榻 손 드물어 쑥 평상은 대 시렁에 달려 있고
암정송초괘갈건菴靜松梢掛葛巾 고요한 암자 솔가지 끝엔 葛巾이 걸려 있네.
독좌무인감공화獨坐無人堪共話 함께 얘기할 말벗 없어 홀로 앉았으니
계수훤초시가빈桂樹萱草是嘉賓 계수나무 원추리 풀이 바로 좋은 손님일세.
其十四
유조일성제효연幽鳥一聲啼曉煙 깊은 산새 한 소리 새벽 연기에 우짖는데
당문송회벽련천當門松檜碧連天 문 앞에 서 있는 소나무·전나무 하늘에 푸른 빛 연했네.
십년인사수류수十年人事隨流水 십년 세월 사람의 일 流水 따라 흐르고
반일풍광공두견半日風光空杜鵑 한나절 風光은 공연한 두견일세.
시구매인한리득詩句每因閑裏得 시귀詩句는 언제나 한가로운 속에 얻고
선심다향정중견禪心多向靜中牽 선심禪心은 거의 다 고요한 속에 끌리네.
청산강대치연소靑山強對癡然笑 청산은 억지로 어리석은 이 보고 그렇듯 웃고
명월수분락소천明月誰分落小泉 밝은 달은 누가 나누어 적은 샘에 떨어졌나?
其十五
반생강해우여운半生江海友如雲 반평생을 江海로 돌아 벗이 구름 같았네만
금일상봉도미진今日相逢道味眞 오늘 서로 만나니 道의 맛이 참인 듯하여라.
비석독행담저영飛錫獨行潭底影 지팡이 날리며 혼자 가는데 못 속에 그림자 지고
부상수식수변신敷床數息樹邊身 평상 펼쳐 놓고 나뭇가에 한 몸 자주 쉬네.
사천경게류흉억四千經偈留胸臆 4천권의 불경·진언 가슴속에 남아 있고
백이산하전일진百二山河轉一塵 백百하고 둘[二] 되는 산과 내 한 티끌로 변했네.
기미소연무여화氣味蕭然無與話 기미氣味가 쓸쓸한 듯 함께 얘기할 벗 없는데
자다당수세린린煮茶鐺水細粼粼 차 끓이는 남비의 물 가늘게 소리 낸다.
其十六
풍악향봉총유명楓岳香峯摠有名 풍악산楓岳山·묘향산 유명하지만
종사아욕문무생從師我欲問無生 대사 따라 나는 가 생生 없는 것 묻고 싶으이.
한계이료팔천게寒溪已了八千偈 한계寒溪에서 팔천 진언 벌써 다 외웠는데
산조경화삼량성山鳥更和三兩聲 산새는 다시 또 두세 소리 화답한다.
표발경래산월정瓢鉢擎來山月靜 표주박 바리때 받쳐 오니 산달이 고요하고
순의괘처모운경鶉衣掛處暮雲輕 누더기 옷 걸린 곳 저문 구름 가볍네.
유인약문안선처有人若問安禪處 만일 안심하고 禪할 곳 묻는 이 있거든
류수일헌화만영流水一軒花滿楹 흐르는 물 한 마루에 들보까지 꽃 차 있다 하소.
其十七
참투선관화갈등參透禪關話葛藤 선禪의 관문關門 뚫으려고 갈등된 것 말하는데
렬봉여극벽층층列峯如戟碧層層 벌려 있는 산봉우리 창인 양 층층이 푸르렀네.
심근발체군지부尋根拔蔕君知否 뿌리 찾아 꼭지 뽑는 것 그대 아는가, 모르는가?
적엽심지아불능摘葉尋枝我不能 잎새 따고 가지 찾는 건 나는 하지 못하네.
약저성중고취죽藥杵聲中敲翠竹 약 방아 소리 속에 푸른 대 두드리고
다착영리점홍등茶錯影裏點紅燈 차 남비 그림자 속에 붉은 등 켜 놓았네.
자연회득선가취自然會得禪家趣 자연히 禪家의 취미 깨달아 알았거니
긍향방인설상승肯向傍人說上乘 즐거이 옆 사람 향해 큰 법[上乘]을 얘기하네.
其十八
일음일음부일음一吟一吟復一吟 한 번 읊고 한 번 읊고 다시 한 번 읊조리니
청산관식거래금靑山慣識去來今 청산도 오가는 이제를 익히 알고 있으리.
풍취라복수청공風吹蘿蔔脩清供 무우 밭에 바람 불어 깨끗한 공양 올리게 하고
월조매화반고심月照梅花伴古心 매화꽃에 달 비치어 태곳적 마음을 벗하게 하네.
천리해천횡표묘千里海天橫縹渺 천리나 먼 바다 하늘 가로질러 아득한데
백년신세기부침百年身世寄浮沈 한 백년 이 신세야 뜨고 잠기는 데 부쳐 두네.
만정량엽무인견滿庭凉葉無人見 뜰에 가득 서늘한 잎새 보는 사람 없는데
적관죽방생경음寂寬竹房生磬音 적막한 대방[竹房]에서 소리 나는 듯하여라.
其十九
편편일학자무종翩翩一鶴自無蹤 훨훨 나는 학 한 마리 그대로 종적이 없으니
의주수선최상봉擬住修禪最上峯 선禪 닦는 최상봉에 행여 있을까 생각하네.
력력금고유해호歷歷金鈷猶解虎 역력한 쇠꼬챙이 범의 싸움 풀어 줬고
단단와발이강룡團團瓦鉢已降龍 둥글둥글 흙 바리때 벌써 용을 항복받았네.
평생기해수진사平生豈解愁塵事 평생에 속세 일 시름인 줄 어이 알았으리!
도로유지악대공到老惟知樂大空 다 늙은 이제에도 크게 空한 것만 알 뿐일세.
미식오사하처거未識吾師何處去 우리 대사 어딜 갔나 알지는 못하네만
락화미우독휴공落花微雨獨携筇 지는 꽃 이슬비에 지팡이 끌고 혼자 갔으리.
►해호解虎 '범의 싸움 풀어 줌. 해호석解虎錫.
예전에 高僧이 범이 싸우는 것을 말려서 개같이 순하게 길들였고
또 용을 길들여 조그만 바리때 속에 놓아두었다 한다.
<증도가證道歌>의 “降龍鉢 解虎錫 兩站金 歷歷"이라 한 것을 인용한 것이다.
其二十
기작인간호구객豈作人間糊口客 어쩌다 인간으로 호구糊口하는 客이 되었는가?
자언증왕축융봉自言曾往祝融峯 스스로 말하네만 증왕에 축융봉祝融峯에 살았다 하네.
심응반야매화월心凝半夜梅花月 마음은 한밤에 핀 매화 달에 엉켜 있고
도향심산수엽풍道響深山樹葉風 도道는 深山 나뭇잎 바람에 메아리치네.
선지십편증료의禪旨十編曾了議 선禪의 뜻 열 권 책 벌써 다 論하였고
현관일구이궁통玄關一句已窮通 현玄에 드는 관문 한 귀절 벌써 다 통했네.
평생종적인수식平生蹤跡人誰識 평생의 발자취를 그 누가 알 것인가?
문법방지불락공問法方知不落空 법法을 묻고서야 空에 떨어지지 않은 것 알았네.
►축융봉祝融峯 중국 五嶽의 하나인 남악南嶽 형산衡山의 최고봉最高峯.