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南禪軒 독서일기 2026년 7월 16일 목요일]
《우실하 지음 『고조선문명의 기원과 요하문명』
제1부 요하문명의 발견과 자연-지리-기후적 조건 》 (1)
고조선문명의 기원과 요하문명 우실하 지음
이 책 『고조선문명의 기원과 요하문명』은 우실하 박사가 2018년에 처음으로 쓰고, 2021년 지식산업사에서 3쇄 발행했다. 저자 우실하 박사는 경북 상주 출생으로 동양사회사상, 문화이론, 한국문화론, 한국문학사/사상사 등의 학문 분야에서 많은 저술과 활동을 하고 있다. 특히 요하문명의 중심지인 중국 요녕대학에서 교수, 적봉대학에서 방문교수를 역임하면서 현지답사를 통한 충실한 연구 결과를 축적하고 있다.
이 책의 구성은 703p 3부 14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제1부는 [요하문명의 발견과 자연-지리-기후적 조건]이란 제하에 제1장 서론, 제2장 요하문명에 대한 개괄적 소개, 제3장 ‘요하문명’의 발견과 중국학계의 발 빠른 대응, 제4장 요하문명 지역의 자연-지리-기후적 조건 등으로 요하문명을 소개하고 잇다.
제2부는 [요하문명의 주요 고고학문화와 한반도]란 제하에 제5장 소하서문화(小河西文化 : BC 7000~6500)와 한반도, 제6장 흥륭와문화(興隆洼文化 : BC 6200~5200)와 한반도, 제7장 부하문화(富河文化 : BC 5200~5000)와 한반도, 제8장 조보구문화(趙寶溝文化 : BC 5000~4400)와 한반도, 제9장 홍산문화(紅山文化 : 4500~3000)와 한반도, 제10장 홍산문화 옥기의 상징성과 홍산인의 사유체계, 제11장 청동기시대 하가점하층문화(夏家店下層文化 : BC 2300~ 1600)와 하가점상층문화(夏家店上層文化 : BC1600~ ) 등으로 요하문명을 구성하는 7개의 시대 별 대표적인 문명을 상술하고 있다.
제3부는 [최근 중국 고고-역사학계의 동향과 고조선]이란 제하에 제12장 최근 중국 고고-역사학계의 동향, 제13장 요(堯)임금의 도성 평양(平陽)과 단군조선, 제14장 한국학계의 과제와 동방 르네상스 등으로 요하문명을 대하는 중국과 한국 학계의 올바른 태도와 지향점에 대하여 논하고 있다.
1. 5p 여는 글
(1) 이 책은 1980년 초부터 본격적으로 발굴되기 시작한 요하문명의 주요 신석기-청동기시대 유적과 유물에 대하여 필자의 각종 답사 자료 등을 통해서 체계적으로 살펴보고, 요하문명 지역의 유적-유물과 한반도와의 관련성에 대해서 소개하고자 썼다.
(2) 우리나라는 2000년 당시에 ‘요하문명’이나 ‘홍산문화’를 키워드로 검색되는 국내의 논문이 단 한 편도 없었고, 2017년 현재에도 몇몇 연구자의 논문만이 검색된다.
(3) 그러나 중국학계에서는 수천 년 동안 아무도 알 수 없었던 이 새로운 고대 문명이 요서 지역을 중심으로 새롭게 발견되면서, 1996년부터 국가 차원에서 요하문명을 중국 상고사와 연결시키기 위해서 5년 단위의 다양한 역사 관련 프로젝트[工程]을 이어가고 있다.
(4) 이런 국가 차원의 역사 관련 공정들을 통해서 중국학계는 요하문명의 주도 세력이 한족(漢族)의 조상이라는 전설적인 황제족(皇帝族)이고, 따라서 만주 일대에서 발원하는 후대의 모든 소수민족은 황제족의 후예이며, 이 황제족 후예들이 이룩한 역사는 모두 중국사의 일부라는 논리를 만들어가고 있다.
(5) 중국학계는 요하문명의 발견 이후 1996년부터 이어지는 각종 역사 관련 공정들을 통해서 그들의 상고사를 완전히 재편하고 있는 것이다.
(6) 중국학자들이 새롭게 발견된 요하문명과 그들의 상고사와의 연결 가능성을 연구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것이다. 문제는 만주 일대의 요하문명을 주도한 세력을 한족의 조상이라는 황제족으로 끌고 가려는 일방적인 시각이다.
(7) 이런 중국학계의 시각에 대해서 한국학계가 적절히 대응하지 않는다면, 예맥, 부여, 발해, 고조선 등과 연결되는 한민족(韓民族)의 조상들은 모두 황제족의 후예가 되는 것이고, 이들이 이룩한 역사는 모두 중국사의 일부가 된다는 것을 분명하게 기억해야 한다. 현재도 중국의 역사 교과서에서 부여, 발해, 고구려를 중국사로 가르치고 있다는 것을 모르는 한국인들이 많다.
(8) 현재까지 요하문명의 각종 신석기-청동기시대 유적들은 요서 지역을 중심으로 발견되고 있다. 그런데, 우리나라 중-고등학교 역사 교과서에는 비파형동검 등이 분포하는 요서 지역을 포함한 만주 지역도 ‘고조선 영역’, ‘고조선의 문화권’, ‘고조선의 세력 범위’ 등으로 보고 있다. 현재 대부분의 역사 교과서에서 청동기시대를 BC 200-1500년 사이에 시작된 것으로 보고 있고, 고조선의 건국을 BC 2333년이라고 기술하고 있다. 특히 ‘고조선 문화권’ 또는 ‘고조선 세력 범위’ 관련 지도에서 요하문명의 중심지인 요서 지역이 분명하게 포함되어 있다.
(9) 요하문명 지역은 우리의 상고사와 떼어 놓을 수 없는 곳이다. 고조선, 예맥, 부여, 고구려 등은 바로 이 지역과 직⦁간접적으로 연결되어 있다. 늦었지만 이제라도 요하문명에 대해 체계적으로 연구해야 한다.
(10) 필자는 요하문명이 ‘동북아 공통의 시원문명’이라고 본다. 이런 인식을 바탕으로한, 중, 일, 몽골이 함께 공동연구를 진행할 때, 요하문명이 한, 중, 일, 몽골의 공통의 문명적 기반이라는 인식을 확산시킬 수 있고. 미래에 벌어질 각 국가 사이의 많은 역사 갈등을 햐결하고 동북아문화공동체를 앞당길 수 있는 초석이 될 수 있다고 보며, 이를 바탕으로 동북아시아가 세계의 정치, 경제, 문화의 중심지로 거듭나는 ‘21세기 동방 르네상스’가 시작될 수 있기를 기대해 본다. 2019. 1. 20 一竹 禹實夏
[논주]
요하문명 지역이 2026년 현재 중국 영토이기 때문에 발굴, 연구, 보관, 전시 등 모든 권한이 중국에 있다. 그 권한은 당연히 인정되어야 한다. 그러나 요하문명을 이룩한 사람들이 어떤 사람들이고, 현재 어느 민족, 어느 나라 국민들의 조상인가 하는 문제는 별개이다. 중국은 53개 대소 민족의 합중국이다. 요하문명 지역에 현재 살고 있는 후예들도 포함된다. 그러나 요하문명의 중심 세력은 한반도로 이동했다. 그러므로 중국이 연구에 연구를 거듭하여 고대사를 재구성하고 재편성한다고 해도 요하문명의 정체가 분명히 드러나기 때문에 무조건 일방적으로 요하문명이 중국인 조상들의 문명이라고 고집하지는 못할 것이다. 요하문명은 파면 팔수록 동이족과의 연관상이 더 많이 진하게 드러날 것이다. 우리 한국인들은 요하문명이 우리 조상들의 것이라고 반론하거나 항의할 필요가 없다. 문화재로 드러나는 역사의 진실은 결코 왜곡하거나 은닉할 수 없다. 요하문명은 거기에 있고, 후예들은 여기에 있다. 2026. 5. 4 南禪軒에서
2. 제1부 요하문명의 발견과 자연-지리-기후적 조건
(1) 17p 유지, 유적, 문화, 문명의 개념
중국은 특정한 지역에서 고고학적 유지=유적=유적지가 발견되면, 흥륭와유지, 조보구유지와 같이 그 지역의 행정 최소 단위 이름을 붙여서 명명한다. 한국은 동삼동패총유적, 문암리유적, 오산리유적 등으로 명명한다.
주변에서 시대가 같고 출토 유물도 같은 유지들을 하나로 묶어서 소하서문화, 흥륭와문화, 홍산문화 등으로 명명한다.
시간적으로 공간적으로 계승관계에 있는 신석기시대와 청동기시대의 여러 고고학문화가 발견되고, 국가단계에 이르는 시기에까지 이어지면, 이들을 모두 묶어서 그 지역을 관통하는 큰 강의 이름을 따라 요하문명, 황하문명 등으로 명명한다.
(2) 19p 요하문명과 고조선문명의 관계 설정 문제
중국 황하 중류 지역의 신석기-청동기시대를 포함한 고대문명을 광의로는 ‘황하문명’이라 부르고, 협의로는 완벽한 청동기시대 국가단계인 ‘상문명(商文明)’이라 부른다.
요서, 요동을 포함한 요하 일대의 고대문명을 광의로는 ‘요하문명’이라 부르고, 협의로는 완벽한 청동기시대 국가단계인 ‘고조선문명’이라 부르고자 한다.
신용하는 요하문명의 일부와 한반도와 한강문화, 그리고 북한의 대동강문화를 포함하는 ‘고조선문명’이라는 개념을 제시하고 있다. 그는 한반도 지역의 태양숭배와 새를 토템으로 한강문화와 대동강문화를 건설한 ‘한족’, 요서 요하문명 지역으로 올라간 곰을 토템으로 한 ‘맥족’, 요동 지역과 그 북쪽으로 이동한 호랑이를 토템으로 한 ‘예족’ 등이 다시 한반도 북부 지역에서 결합하여 고조선문명을 형성했다는 ‘한-맥-예 3부족 결합설을 제시하였다.
[논주] 저자 우실하는 신용하의 학설을 인용한 다음에 “신용하의 견해 역시 설득력이 있다고 보지만 필자는 요서 지역을 중심으로 초기의 고조선문명이 시작되었다고 보는 점에서 다르다”라 한다.
신용하의 학설은 삼국유사와 위지동이전을 근거로 하고 있는데, 태양숭배와 새 토템은 근거가 미약하고, 한강문화와 대동강문화는 실체가 없다. 발굴된 유적과 유물은 주로 기원 이후 시대의 것이다. 한반도 북부 지역에서 고조선문명이 시작되었다면, 요하문명 지역에서 가장 많이 발굴되었지만 경계를 넘어 만주와 한반도 전역에 걸쳐 발굴된 빗살무늬토기와 비파형동검의 주체 세력이 누구인가. 신용하의 학설을 굳이 인용할 필요가 있었을까?
학계에서는 고대사에 대한 학설이 난무하고 있는데, 이미 대로가 뜷려 있는데도 불구하고 가시덤불 속에서 무얼 그렇게 어렵게 헤매고 있는지 모르겠다. [삼성기전상편], [단군세기], [북부여기] 등에 선현들이 써서 전해주는 고대사가 일목요연하게 정리되어 있다. 2026년 현재는 아직도 짙게 남은 중화사대주의와 일제식민사관의 잔재 때문에 선현들의 상고사가 제 가치를 공인받지 못하고 있지만, 한 세대 후에는 반드시 한국 역사학 상고사의 중심이 될 것이다.
(3) 요하문명에 대한 한국, 중국, 몽골의 시각 차이
첫째, 중국의 주류사학계는 요하문명의 주도세력이 중화민족의 조상이라는 황제족이 이룩한 문명이라고 끌어가고 있고, 이것은 이미 고고-역사-신화학계 등에서 정설로 자리 잡아가고 있다. 또한 만주 일대에서 등장하는 후대의 모든 소수민족은 황제의 후예이며, 이들 황제의 후손들이 만든 역사는 모두 중국사의 일부라는 입장이 확산되어가고 있다.
둘째, 한국의 주류사학계에서는 요하문명은 한국상고사, 고대사와 연관이 없다고 보고 있고 거의 관심을 두고 있지 않다. 필자 등 일부 학자들은 요하문명과 한국 상고사, 고대사와의 관게에 대해서 연구를 시작한 단계이다.
한국의 재야사학계에는 『환단고기』 등에 보이는 환국, 배달국이 바로 요하문명을 통해 밝혀지고 있다고 한껏 고무되어 있다.
요하문명은 한국-중국의 상고사와 모두 연관된 지역이며, 한국-중국과 어떻게 어떻게 연결되는지는 차근차근 연구한 뒤에 결론 지어져야 한다고 본다.
요하문명 지역은 우리의 상고사와 떼어놓을 수 없는 곳이다. 고조선, 부여, 예맥 등은 바로 이 지역과 직간접적으로 연결되고, 후대의 고구려도 이 지역과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기 때문이다.
BC 2000~1500년 사이에 시작된 청동기시대에 만든 비파형동검과 탁자식 고인돌, 미송리식토기와 팽이형 토기는 주로 만주와 한반도 북부 지방에서 집중적으로 발굴되는데, 이를 통해 고조선의 문화권을 짐작할 수 있다.
셋째, 대부분의 일반 중국인뿐만이 아니라 중국학자들도 칭기즈칸은 중국인이고, 몽골족은 중국의 소수민족 가운데 하나라고 본다. 1991년에 『칭기즈칸의 전기』를 출간했던 중국의 주요정 같은 유명 역사학자도 “내가 보기에 칭기즈칸은 중국인이고, 따라서 중국국경 내에 있는 몽고족은 중국 소속이다. 따라서 칭기즈칸은 (중국) 국경 내외에 있는 모든 몽골민족의 조상이다”라고 했다.
2004년 중국에서 여러 학자들이 공동 집필과정을 거쳐서 출판한 『몽고족통사』에서는 몽골족의 역사를 요하문명부터 시작되는 것으로 보고, 요하문명의 주도세력이 중화민족의 시조라는 황제족이라는 논리를 인정하고 있어서, 결론적으로 몽골족의 모든 역사는 중국사의 방계역사가 되어 있다.
요하문명이 발견된 요하 중상류 지역은 대부분의 지명이 몽골어로 되어 있고, 몽골족의 발원지이기도 하며, 몽골제국의 중요한 영토이자 몽골족 역사의 강역이었다. 몽골학자들이 적극적으로 요하문명, 홍산문화에 대한 연구를 해야 하는 충분한 이유가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