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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의 난각 코드 끝자리
이영숙
변화의 양과 속도를 압축해서 보았을 때 지구의 46억 년과 산업혁명 이후의 200년이 맞먹는다는 사실은 지금에 이르러 그다지 놀라운 일이 아니다. 가깝게는 신자유주의에 의해 인류는 불과 30~40년 만에 이전까지와는 질적으로 전혀 다른 세계에 진입하였다. 전자가 지구 환경에 연계된다면, 후자는 세계 질서에 연계된다. 세계의 가치는 단일해짐으로써 자본은 어느덧 범세계적이고 범종교적인 단일권력이 되었으며, 자본에 잠식당한 지구에서 자연은 인간과 분리되고 대상화되었다. 스스로 우월해진 인간은 열등한 자연을 ‘잡아’ 자본의 제단 앞에 번제물로 바쳤으며, 자본적으로 우월해진 인간이 자본적으로 열등한 인간을 번제물로 바치는 일도 허다해졌다. 세계자본과 세계화라는 현상에 종속된 국내 자본의 체제에서 인간의 조건 역시 시시각각 변하고 있다. 그중에서 노동은 이제 자본의 가장 먹기 쉬운 밥이 되었다.
인간은 노동을 통해 자신의 개성을 표현하고, 소질과 적성을 일깨우며 삶의 목표를 달성하고자 한다. 또한 사회 속 자신의 위치와 역할을 확인하고 소속감과 사명감을 가지며, 자아를 실현하고 사회화를 완성하며 동시에 자유를 누리고자 한다. 그러나 자본의 폭력성과 야만성이 대두된 이래 노동은 몸이라는 구체에서 직업이라는 추상이 되었고, 새로운 노동 현실과 인간다운 삶의 상실이 동시적으로 수립되었다. 인간의 삶을 영위하기 위한 기본 조건인 노동이 인간다운 삶을 상실하는 계기가 되었다는 아이러니는 인간 사회의 물질적 고양이 영혼의 피폐를 가져온 근대적 아이러니와 맞물려 있다. 사회의 지속이라는 노동의 사회적 목적이나 생존과 인간의 가치 창조라는 노동자의 개별적 목표가 자본에 포섭된 이후 ‘만인에 대한 만인의 투쟁’이 빠르게 전개되었다. 노동계급 간의 집단적 유대나 공동체적 열망들이 파편화되었으며, 자본과 기술의 전체주의적 욕망 속에서 연봉이 1억이든 2천이든, 해외여행을 자주 하든 꿈도 꾸어보지 못하든 간에 노동의 목적이 ‘삶에 필요한 물질적 기반의 충족’에 머물게 됨으로써 삶은 사소해지고 노동은 도구화되었다. “푸른 아침”이 없는 삶으로 내모는, “누가 이 칼을 가질 자격이 있”느냐고 다음 시가 묻는다.
이빨 자국이 남은
핏빛 저녁을 물어왔을 때
나는 상자 밖에 앉아 있었고
개 짖는 소리가
붕대처럼 풀려 나왔다
누가 이 칼을 가질 자격이 있습니까
벌거벗은 밤은
잠깐 환해질 때마다
갈라진 혓바닥을 상자 밖으로 휘둘렀다
흥건하게 고인 침묵이
더 깊은 칼자국을 남기고
어느 날 내가
상자를 언덕 아래로 굴러 떨어뜨렸을 때
썩은 것을 나눠 먹던 아픈 짐승들이 깨어
푸른 아침을 경작할 수 있을까
밤은 오고 가는 것
아직도 나의 자갈밭에서 의심은 자라고
실을 꿰지 않은 바늘이
투명한 옷감을 흔들고 있다
—반연희, 「제국의 밤」 전문, 《시와편견》 2023년 겨울호
일찍이 레닌이 처음 사용하면서 ‘제국주의’를 19세기 말부터 시작된 자본주의의 최종 단계로 본 것은 정확히 신자유주의 도래에 관한 예언이기도 했다. ‘독점 기업과 금융 자본의 지배가 이루어지고 자본의 수출이 특히 중요성을 갖는다’는 사전적 풀이처럼 제국주의는 후진 민족에 대한 패권주의 정책을 일컫는다. 우리로서는 IMF 체제 때 자본주의 열강에 의한 정치ㆍ경제적 지배가 일테면 노동계에서 근로조건이나 해고 등에 얼마나 치밀하고 폭력적으로 영향력을 행사하는지를 학습한 바 있다. 그것은 노동에 대한 우리의 패러다임이 바뀔 정도의 전방위적 규모였으며, 저항할 수 없는 절대 강령이었다. 금융 위기를 극복하고 난 이후에도 국내외 기업들이 이 체제를 기술적으로 유지하고 재활용하면서 노동은 이제 ‘한식에 죽으나 청명에 죽으나’ 매한가지의 처지가 되고 말았다. “누가 이 칼을 가질 자격이 있습니까”라는 절규를 한 입에 삼켜버린 「제국의 밤」이 드러내는 엄혹한 풍경이다.
밤중에 달빛이나 불빛이 없다면 우리는 세계를 제대로 인식할 수 없다. 개봉되지 않은 상자 속에 무엇이 들었는지도 알 수 없다. “밤”과 “상자”가 “제국”의 다른 이름인 것은 자신의 실체는 드러내지 않으면서 지배력은 극대화하기 위한 “제국”의 전략 때문이다. “밤[제국]”이 살육하다 “이빨 자국이 남은/ 핏빛 저녁을 물어”와 “상자[제국]” 속으로 가져갔을 때 겁에 질린 “개 짖는 소리가/ 붕대처럼 풀려 나”오는 장면을 그려보라. 그러나 세계는 어떤 연유로 “잠깐 환해질 때”도 있는 법. “벌거벗은 밤”의 실체가 드러나고, 그가 “상자 밖으로 휘”두르는 “갈라진 혓바닥”도 들킨다. “흥건하게 고인 침묵이/ 더 깊은 칼자국을 남”긴다는 사실을 사람들이 알게 되는 때가 오는 것이다.
“제국”에 편입되지 않고 이 모든 장면을 지켜보고 있던 “나”는 “상자 밖에 앉아 있었”던 그 누구, 혹은 그 무엇이다. “상자[제국]”를 언덕 아래로 굴러 떨어뜨”릴 수도, “굴러 떨어뜨”리는 것을 상상할 수도 있는 존재이기도 하다. 그러나 “나”는 적어도 세 가지의 “의심”에 휩싸인다. 과연 “제국”이 무너진다면(“상자를 언덕 아래로 굴러 떨어뜨렸을 때”) 고통받고 있던 속국의 인민들이 본래의 삶으로 돌아갈 수 있을까(“썩은 것을 나눠 먹던 아픈 짐승들이 깨어/ 푸른 아침을 경작할 수 있을까”), 과연 “제국”의 흥망성쇠는 가능한가(“밤은 오고 가는 것”), 그리고 이 시의 주제이기도 한, “나”는 과연 그럴 만한 능력이 있는가에 대한 회의가 그것이다. “제국”의 추악함이 드러나고, 인민이 “썩은 것을 나눠 먹”는 나날이 지속되고, 그것을 명징한 눈으로 보고 있는 “나”가 있음에도 결코 ‘제국의 밤’은 끝나지 않을 것임을 시의 마지막 두 행이 비극적으로 암시하고 있다. “실을 꿰지 않은 바늘”이니 옷을 꿰맬 수 없을 테고, 실을 준비하더라도 “투명한 웃감”에는 사용할 수 없기 때문이다.
달걀껍데기에 찍힌
숫자 열 개
그중 열 번째 숫자는
닭을 사육하는 케이지 크기이다
A4 용지만 한
닭장에 사는 닭이 낳은 달걀
빵공장 다니는
내 고등학교 친한 친구
컨베이어벨트에서 숨 가쁘게 흘러나오는
빵을 포장하고
야근 마치고 보내준 생일선물
택배 상자에 빵이 종류별로 들어있다
한 입 베어 먹으면
달콤하다 계란 냄새가 난다
해병대 출신 근육질 젊은 녀석들도
하루 일하고서 도망간다는 회사에서
친구는 날개를 접어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고
둥글고 따스한 빵을 낳는다
양치를 하다 보았다
내 혀에 찍힌 4
아름답고 상냥한 사회 판별법
물에 담갔을 때 둥둥 뜨는 노동자의 발
껍질을 깼을 때 흰자와 노른자가 퍼지거나 노른자 형태가 사라진 정부
흔들었을 때 소리가 들리는 CEO
유황 냄새나는 은행
―서안나, 「난각 코드」 전문, 《열린시학》 2023년 겨울호
이 시는 “달걀껍데기에 찍힌” ‘난각 코드’를 전면화했지만, 실은 “친구”로 표상되는 육체노동자의 ‘난각 코드’에 집중한다. “택배 상자에” “종류별로 들어있”는 “빵”의 향기와 “달콤”하고 “계란 냄새”가 나는 맛은 “A4 용지만 한/ 닭장에 사는 닭이 낳은 달걀”의 사육환경을 은폐하는 한편, “해병대 출신 근육질 젊은 녀석들도/ 하루 일하고서 도망간다는 회사”의 “A4 용지만 한” 근로환경도 은폐한다. 우리가 아는 바와 같이 자본의 논리는 유장하고 유구하다. 아래 인용문의 내레이터인 은강 그룹 회장의 셋째 아들 ‘경훈’은 회사가 “공장을 지어 일을 주고 돈을 주었”다면서 “제일 많은 혜택을 입은 게 바로” “그들”, 곧 노동자들이라는 생각에 한 치의 의혹도 없는 인물이다.
그들은 우리가 남다른 노력과 자본ㆍ경영ㆍ경쟁ㆍ독점을 통해 누리는 생존을 공박하고, 저희들은 무서운 독물에 중독되어 서서히 죽어간다고 단정했다. 그 중독 독물이 설혹 가난이라 하고 그들 모두가 아버지의 공장에서 일했다고 해도 아버지에게 그 책임을 물어서는 안 되었다. 그들은 저희 자유의사에 따라 은강 공장에 들어가 일할 기회를 잡았던 것과 마찬가지로 언제나 마음대로 공장 일을 놓고 떠날 수도 있었다. 공장 일을 하면서 생활도 나아졌다. 그런데도 찡그린 얼굴을 펴 본 적이 없다.
―조세희, 「내 그물로 오는 가시고기」 부분
젊은 나이에도 뼛속까지 자본가인 그의 논리는 “우리가 남다른 노력과 자본ㆍ경영ㆍ경쟁ㆍ독점”이라는 기업활동을 통해 노동자들을 먹여 살리고 있으니, 그들은 “의미 있는 세계, 모든 사람이 함께 웃는 불가능한 이상 사회”를 꿈꾸지 말고 그날그날의 삶을 영위해 나가는 것에 만족해야 한다는 것이다. “우리가 필요로 하는 것은 노동자의 근육 활동뿐”이므로, ‘A4 용지를 벗어나지 마라. 그 안에서 결혼도 하고 아이를 낳는 자유도 누려라. 무엇을 더 바라는가’라고 일관되게 주장한다. ‘달걀 진단키트’로 알아보는 “아름답고 상냥한 사회 판별법”에 의하면, “물에 담갔을 때 둥둥 뜨는 노동자의 발”은 “흔들었을 때 소리가 들리는 CEO”뿐 아니라, 재벌의 악행을 묵인하거나 오히려 부추기는 “정부”와 그 돈줄인 “은행”의 합작품이다. 노동자[약자]에 대한 사회적 태도는 그 사회의 수준과 정비례한다. 소설 속 시공간으로부터 50년이 지난 현재까지도 노동자의 삶과 노동의 질이 개선되지 않는 이유이며, 산재 사고가 그렇게 잦은 이유이며, 빵을 “한 입 베어 먹”고 “혀에 찍힌 4”에 소스라친 시인이 「난각 코드」란 시를 쓸 수밖에 없는 이유다.
돌담에 떨어진 동백꽃은 살아있네
무서운 기색도 없이 등을 곧추 세우고
을밀대 지붕 위의 체공녀처럼*
다른 이야기를 시작하네
생활은 겨울이고
왜 동백나무는 서서
생활의 복판에 떨어진 꽃 하나
저녁의 둘레를 도네
소리도 향기도 섞지 않고 붉은 색은
눈에 가슴에 스며서 번지지만
꺼내기가 어렵네
무엇이 꽃이 되는지
지면서 여기서
순간은 어떻게 영원에 닿는지
눈보라 속의 통로를 여는지
큰 수술을 앞두고 현관을 나서기 전
미등을 끄고 수도꼭지를 잠그고
한 번 더 돌아보는 심정으로
자꾸 나는 더듬거리네
꽃을 버린 꽃을
어긋나면서 피는 꽃을
여기 꽃이 있다,
꽃보다 큰 꽃을
고립되면서
독립하는 꽃을
눈은 숨차게 쌓이고
눈 속은 붉은 꽃 소용돌이
나는 갇혔네
*체공녀 강주룡 ; 평양 고무공장의 여공. 1931년 최초로 고공농성을 벌인 노동운동가.
―한영수, 「을밀대 지붕 위의 체공녀처럼」 전문, 《서정시학》 2023년 여름호
동백꽃에 대한 시들이 주로 죽음의 이미지를 담고 있는 것은 시들기 전에 송이째 뚝 떨어지는 낙화 방식 때문이리라. 흰 눈 속 붉은 꽃이라는 색상 대비도 강렬해서 젊은 여인이나 피의 은유로 쓰인 시도 여러 편이 있다. 그런데 이 시는 발화 지점과 전개 방식이 좀 독특하다. “돌담에 떨어진 동백꽃”이 발화 지점이라면, 그것이 “동백꽃” 자체에 대한 미적 인식과 “을밀대 지붕 위의 체공녀”라는 사회적 인식으로 갈래지어 흐르면서도 “동백꽃”을 공유하는 방식이다.
(1) 돌담에 떨어진 동백꽃은 살아있네 ― 무서운 기색도 없이 등을 곧추 세우고 ― 을밀대 지붕 위의 체공녀처럼 ― 왜 동백나무는 서서 ― 소리도 향기도 섞지 않고 붉은 색은 ― 눈에 가슴에 스며서 번지지만 ― 꺼내기가 어렵네 ― 무엇이 꽃이 되는지 ― 지면서 여기서 ― 순간은 어떻게 영원에 닿는지 ― 눈보라 속의 통로를 여는지 ― 눈은 숨차게 쌓이고 ― 눈 속은 붉은 꽃 소용들이 ― 나는 갇혔네
(2) 돌담에 떨어진 동백꽃은 살아있네 ― 무서운 기색도 없이 등을 곧추 세우고 ― 을밀대 지붕 위의 체공녀처럼 ― 다른 이야기를 시작하네 ― 생활은 겨울이고 ― 생활의 복판에 떨어진 꽃 하나 ― 저녁의 둘레를 도네 ― 큰 수술을 앞두고 현관을 나서기 전 ― 미등을 끄고 수도꼭지를 잠그고 ― 한 번 더 돌아보는 심정으로 ― 자꾸 나는 더듬거리네 ― 꽃을 버린 꽃을 ― 어긋나면서 피는 꽃을 ― 여기 꽃이 있다 ― 꽃보다 큰 꽃을 ― 고립되면서 ― 독립하는 꽃을
시에 대한 무례를 무릅쓰고「을밀대 지붕 위의 체공녀처럼」을 둘로 나누어 보았다. (1)은 “돌담에 떨어진 동백꽃”을 “나”가 내면화하는 과정을 담고 있다. “소리도 향기도 섞지 않고 붉은 색” 그대로 “눈에 가슴에 스며서 번지”는 “동백꽃”은 이제 더는 사물이 아니다. 그것은 꽃이 지는 “순간”을 “영원”에 잇대고, “눈보라 속의 통로”를 열며, “붉은 꽃 소용돌이” 속으로 “나”를 데리고 간다. 미적으로 온전히 포로가 되듯 “동백꽃”에 “나는 갇”힌다.
(1)의 “돌담에 떨어진 동백꽃”은 사실적 장면이면서 “체공녀”를 비유로 사용하였다. 하지만, (2)에서는 “체공녀”가 사실적 장면이면서 “돌담에 떨어진 동백꽃”이 비유로 사용되었다. 또한 “무서운 기색도 없이 등을 곧추 세우고”라는 다음 대목은 반대로 (1)에서 “동백꽃”에 대한 비유로 쓰이고, (2)에서는 “체공녀”가 처한 사실적 정황을 나타낸다. (2)에서 “다른 이야기를 시작”할 수밖에 없는 구조가 만들어진 것이다.
각주에서 보듯, “체공녀 강주룡”은 실존 인물이다. ‘한국 여성 최초의 노동운동가’라는 수식이 붙는 그녀의 짧은 생은 ‘공중에 있는 여자’, 곧 ‘고공농성하는 여자’라는 의미의 “체공녀”로 대변된다. 당시 신문에 ‘을밀대 상의 체공녀’라는 제목 아래 ‘여류투사 강주룡 회견기’와 함께 을밀대 지붕에 앉아 농성하는 그녀의 대범한 사진이 게재되었는데, 이는 “돌담에 떨어진 동백꽃”의 강렬한 모티프와 유사하다. “평양 고무공장의 여공”이었던 그녀는 여성노동자들과 함께 참여한 파업에서 앞장섰다. “생활은 겨울이고”, 그녀는 “생활의 복판에 떨어진 꽃 하나”였다. 시적 화자인 “나”는 “동백꽃”으로 인해 소환된 “강주룡”을 다시 “동백꽃”으로 변주한다. “여기 꽃이 있다”, 꽃을 버린 꽃, 어긋나면서 피는 꽃, 꽃보다 큰 꽃, 고립되면서 독립하는 꽃. 그 때로부터 90여 년이 지난 현재에도 노동자들에게 “생활은 겨울”이고, “생활의 복판에 떨어진 꽃”들은 “고공농성”과 가두시위를 멈추지 못한다.
명량 노량도 눈물겹지만
아아,
판옥선 흘수선 아래 묶여
죽자 사자 노를 젓다 죽어간
장정들
그 숱한 장정들의
처
자식
어미
아비들.
—김사인, 「성웅聖雄」 전문, 《現代文學》 2024년 1월호
이 시를 읽고 영화 <명량>과 <노량>을 다시 보았다. 예전에는 ‘이순신 장군’의 일거수일투족이 중심에 있었다면, 이번에는 “노를 젓”는 ‘격군’들의 일거수일투족이 중심에 있었다. 예전에는 ‘배를 더 밀어붙여라’라고 명령하는 장군이 중요했는데, 이번에는 장군의 명령이 두 번 더 복창되면서 격군실에 전달되면 ‘배를 더 밀어붙’이는 격군들이 중요해졌다. 화면은 “판옥선”의 ‘판옥’에 우뚝 선 장군의 고뇌에 찬 표정은 자주 클로즈업했지만, 전투의 양상이 어떻게 펼쳐지고 있는지 알지 못한 채 전진, 후진, 회전, 멈춤 등의 명령을 수행하는 격군들은 그저 노를 젓는 뒷모습이나 옆모습을 단체로 잠시 비칠 뿐이었다. 그나마 <명량>에서는 이순신과함께 6년간 전투에 참가했다 전사한 장수의 아들(박보검 扮)이 격군으로 참전한 터여선지 이순신의 인간적인 면모를 보여주려는 영화의 심리적 공간으로서 격군실을 꽤 여러 번 보여줬지만 <노량>에서는 전투신만 100분이 넘는 가운데 격군실은 단 한 차례, 그것도 3~4초 정도 보여주는 데 그쳤다. 격군들이 모두 “판옥선 흘수선 아래 묶여/ 죽자 사자 노를” 저었던 것은 아니고, 이는 <명량>에서 일본군이 출정하면서 이전 전투에서 생포한 조선군 포로들을 쇠사슬에 묶어 격군실에 배치한 단 한 장면뿐이었다. 그러나 정확한 정보전달이 시의 본분은 아니라는 사실을 이 시는 잘 보여준다. “명량”과 “노량”이 “눈물”겨운 것은 위정자들의 몰이해, 전투 장비의 부족, 장병들의 두려움 등을 홀로 걸머진 채 고군분투하는 이순신 장군에 관한 때문이겠지만, 이 시는 군인이라기보다는 노동자에 가까웠던 “죽자 사자 노를 젓다 죽어간/ 장정들”을 톺아본다. 그리고 역사적으로 격군들보다 더 미미한 존재들이었던 “그 숱한 장정들의/ 처/ 자식/ 어미/ 아비들”에 대해 “아아,” 가슴 저미는 탄식을 한다.
강자 중심의 역사에서 약자들은 지속적으로 소거되어왔다. 오히려 약자들은 자신에게서 세금을 뜯어 강자의 경쟁력을 강화시켜 주는 각종 사회적 논리의 자발적ㆍ비자발적 희생양이 된 측면도 없지 않다. 우리는 영화를 보며 장군에 집중하듯 현실적으로 재벌에 집중하였고, 결과적으로는 이긴 전쟁이었지만 장군의 구국 신념으로 인해 죽어간 양민이 주체가 되는 일에 상상력을 발휘하지 않았듯 현실의 약자에 대해 호의를 갖지 않는다. 부분적인 민주주의가 실현되었을 뿐 사회는, 국가는, 세계는 신자유주의 체제 속에서 여전히 개인의 희생을 강요하고 있다. 임진왜란 당시의 양민들과, “체공녀 강주룡”들과, 산업화 시대의 노동자들이 자신에게 찍힌 ‘난각 코드’를 가지고 지금 이곳으로 끊임없이 오고 있는 이유다.난각 코드 끝자리는 닭의 사육환경에 대한 표기다. 1은 방목장에 풀어놓는 방사, 2는 축사 안에서 자유롭게 다닐 수 있는 평사, 3은 사육 밀도가 다소 개선된 케이지, 4는 우리가 흔히 닭장이라고 부르는 기존 케이지에서 사육되는 형태를 의미한다. 당신의 난각 코드 끝자리는 무엇인가. (끝)
―《시와세계》 2024년 봄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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