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9년 발레계는 국립발레단의 스타시스템 확립과 유니버설발레단의 풍부한 작품구성에서 각각 특기할 만한 성장을 보였다. 국립 발레단의 스타시스템이 이루어낸 결실은 1998년 파리콩쿨 2인무에서 1등을 수상한 김지영·김용걸은 커플이었다. 올해 김용걸이 파리오페라 발레단과 6개월 계약을 맺었고 2000년에 입단할 예정이다. 이로써 1998년에 아메리칸 발레시어터에 입단한 강예나에 이어 한국발레의 해외진출이 새로운 국면을 맞았다. 유니버설발레단은, 1999년도의 가장 큰 성과로 헝가리·이탈리아·스페인을 순회한 제17차 해외공연을 꼽았다. “발레의 본고장인 유럽에 한국발레의 우수성을 전파했고 특히 헝가리에서는 세계 정상급 예술단체에 대관해주는 120년 전통의 부다페스트 오페라극장에서 전 공연 매진사례를 기록함으로써 현지 평론가 및 유럽인들을 놀라게 만들었다”는 설명이다. 아울러 공연실황을 비디오로 제작해서 증빙자료로 삼았다. 한국발레의 눈부신 성장을 목도할 수 있었다.
고전의 높은 수준을 추구함과 더불어 1999년도의 또다른 특징은 현대발레의 수용을 시도했다는 점이다. 현대발레는 유니버설의 『레퀴엠』, 국립 발레단의 『위험한 균형』, 서울발레시어터의 『현존』 등 모든 단체에서 공연되었고, 외국 단체 내한도 현대발레를 추구하는 네덜란드 댄스시어티와 프랑스 청소년발레단이 초청되는 등 다방면에서 이러한 특징을 발견할 수 있었다. 이는 발레 연기와 감상 양쪽에서 그만한 여유를 얻었다는 신호다. 1999년은 고전과 현대가 융화되면서 보다 질높고 다양한 공연이 시작된 해로 기억해도 좋을 것 같다.
Ⅱ. 국립발레단
국립발레단은 3월에 『지젤』로, 10월에 『돈키호테』로 스타시스템의 경쟁이 초래하는 특유의 흥분을 충분히 즐기도록 했다. 이원국·김주원과 김용걸·김지영 커플이 개인기와 2인무에서 두드러진 기량을 과시한 때문이었다. 『지젤』에서 김주원의 청순한 이미지는 연기로 보이지 않을 만큼 자연스러웠다. ‘죽음보다 강한 사랑’의 감동을 전달한 동시에 지젤이라는 비현실적인 인물에 대한 환상과 동경, 그리고 그리움까지도 남겨 주었다.
김지영은 극적 친화력이 장기인 발레리나답게 마지막 실성 장면을 구체적으로 묘사하면서 명연기를 보였고 야무진 몸추스리기 과정도 좋았다. 이원국은 파트너를 치장해주면서도 자신의 몫에서는 철저하게 독립적이었다. 극중 인물로서 최대한의 기량발휘를 위해 전력투구하는 모습이 춤의 명인으로 손색이 없었다.
『돈키호테』는 열정적인 춤의 세계에 빠져드는 중독성 관람을 유도했다. 그 이유 역시 불꽃 튀는 스타들의 경쟁에 있었다. 김주원과 이원국 커플을 보고나면 김지영과 김용걸 커플이 궁금한 관객층을 확보할 만한 수준이었다. 보물처럼 귀한 이 팽팽한 긴장감이 국립발레단의 힘이었다. 봄시즌 이후로 가장 향상된 기량을 보인 키트리 역의 김주원은 요염하고 발랄하면서도 품위를 갖춘 발레리나였다. 선천적인 라인의 아름다움은 물론, 작품이 요구하는 극적 제스추어에 이르기까지 전문가다운 노력이 보여 믿음직 했다. 공중에서 나는 듯이 도약하는 그랑즈떼의 자세가 가장 명확했고, 마지막 푸에테 투르에서는 왼쪽으로 32회전을 하면서 4박에 한 번씩 두 바퀴를 섞어낸 한국 최초의 발레리나였다. 김지영도 32회전에서 김주원을 능가하는 탄성을 유도했다. 정확한 자세로 돌면서 두 바퀴 회전 때면 다리를 뒤로 굽히거나 팔의 위치를 바꾸는 등 최고의 테크니시언이 아니면 보일 수 없는 기량을 미소와 함께 선사했다. 이 또한 한국 최초이자 최고의 화려한 푸에테 투르로 기록할 만 했다. 바질 역의 김용걸은 전성기에 들어선 느낌이었다. 남성미를 대표하는 발레리노임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게 외모와 기교에서 빼어났다.
연말행사인 『호두까기 인형』은 올해 처음으로 클라라 역 전부를 발레리나가 맡도록 개작되었다. 지난 해까지는 1막은 어린이가 클라라 역을 했고 2막의 사탕요정은 발레리나가 맡았었다. 어떤 경우이건 전개과정에서 보다 명확한 줄기가 필요했다.
년간 10회에 걸친 『해설이 있는 발레』 공연도 여전히 성황을 이루었다. 올해는 안무가별로 작품을 감상해 포킨, 니진스키, 쥘 페로, 부르농빌, 발란신 이바노프, 프티파, 고르스키, 바이노넨 그리고 남정호와 제임스 전을 초청한 국내 현대안무가의 밤까지 연결시켰다. 외부에서 활동하는 현대안무가를 수용한 것은 우리 시대의 춤을 남기는 작업이 시작된 신호로 의미가 컸다.
창작발레의 대표자인 제임스 전의 신작 『위험한 균형』은 존 애덤스의 음악과 동일한 제목으로 뉴욕시티발레단의 피터 마틴스도 내한공연 때 소개한 바 있다. 음악을 새롭게 해석한다는 말을 듣는 순간 제임스 전의 감각이 믿음직했던 반면, 마틴스가 휘둘려버린 그 음악의 난해함에 대한 걱정이 앞섰다. 또한 고전발레에 익숙한 국립단원들이 빠르고 분절적인 움직임을 소화할 것인가도 의문이었다. 하지만 우려에 비해 결과는 성공적이었다. 화려한 변신은 제임스 전과 국립발레단의 만남이 서로에게 아주 유익했음을 증명했다. 국립발레단은 년말에 재단법인체제를 갖추었고 2000년에 예술의 전당으로 이주할 예정이다. 국고지원을 그대로 받지만 대관과 제작비 부담 등의 경영을 독자적으로 해결해야 한다. 과연 그것이 가능할 것인지, 기대와 우려를 반반으로 새천년을 맞이했다.
Ⅲ. 유니버설발레단
유니버설발레단은 년중 7회의 정기공연을 가졌다. 1월의 『레퀴엠』과 3월의 『백조의 호수』가 전반의 대표작이었고 11월의 『라 바야데어』가 후반의 대표작이었다. 특히 창단 15주년 기념으로 세종문화회관에서 막을 올린 『라 바야데어』는 ‘한국발레 사상 최고의 제작비와 최대의 무용수가 출연’했다. 이 밖에 『지젤』과 『심청』, 『호두까기 인형』을 공연했다.
안무가 장 폼 콤린이 모차르트의 레퀴엠을 해석한 『레퀴엠』은 98년에 한국 초연된 것으로 몇몇 다른 『레퀴엠』과 비교할 때 섬세한 표현력에서 탁월했다. 초연 때보다 숙련된 모습을 보인 박선희와 권혁구의 2인무는 풀어내고 압축하는 동작의 액센트가 묘미였다. 특히 권혁구의 부드럽고 탄력있는 움직임은 남성의 연약함을 요구하는 현대발레의 한 특징을 새삼 깨닫게 했는데, 그것은 그의 독보적인 능력이었다.
올레그 비노그라도프가 안무한 『백조의 호수』는 일반적으로 알려진 4막의 작품과는 달랐다. 1막을 대폭 정리해서 2막과 연결시켰고 기존의 3막이 2막으로, 그리고 지루한 느낌을 주었던 4막을 내용과 춤을 수정해서 3막으로 만들었다. 광대를 1막과 3막에 등장시켜 연회의 진행자로 부각시켰고, 의상이나 배경의 분위기를 독일이 아닌 러시아로 설정한 점이 특별했다. 3막의 결말부분도 러시아 특유의 해피엔딩이었다. 지그프리드가 로트바르트의 날개를 자르자 성이 무너지는 광경, 그리고 흑조였던 군무진의 반이 다시 백조로 변해 두 사람의 결합을 축하하는 과정에 박진감이 넘쳐 대단원의 마무리로 잘 어울렸다. 키로프발레단이 마린스키라는 원래의 이름을 되찾았고, 『백조의 호수』도 그 이전처럼 비극으로 그러나 내세에서 다시 결합한다는 환상적인 본래의 줄거리를 되찾았다는 점에서는 구 소련의 감각이 담긴 이번 버전도 지속될 가치는 충분했다.
『라 바야데어』를 한마디로 묘사한다면 ‘어려운 발레’다. 보다 악의적으로 접근해 보면 작품 자체에 허점이 많아 고생해도 성과를 얻을 수 없는 대표작이 아닌가 싶을 정도다. 1막에서 모든 인물의 성격과 줄거리를 완전히 설명하고 2막에서 결혼식 파티 중에 니키아가 죽는 것으로 내용상의 결말을 맺는다. 3막은 단지 ‘발레 블랑’을 보여주는 형식적인 장면이라 작품의 내용을 따라잡을 시간이 부족하다는 근본적인 결함이 있다. 유니버설발레단의 경우, 연출적인 면에서 가장 어려운 1막에서 마임의 전달력이 강해 우선 안정감을 느꼈다. 브라민이 사랑을 고백하고 탁발승이 솔라와 니키아의 만남을 주선하는 장면 등이 그것이다. 2막에서는 화려한 무대장치와 인도풍의 소품들로 시선을 끌었고 가마를 타고 등장하는 감자티와 코끼리를 타고 등장하는 솔라의 모습으로 스펙터클의 효과를 과시했다. 3막의 군무진은 한국 최고의 발레단임을 과시하는 조화와 아름다움을 연출했다. 물론 다리를 옆으로 들어올리는 에카르테에서는 떨기도 했지만 처음에 등장하는 아라베스크 펑쉐 라인이나 32명의 일사불란함이 주는 기쁨은 컸다.
12월의 『호두까기 인형』은 키로프 버전으로 전격 교체되었다. 하지만 국립발레단이 러시아 안무자 바이노넨의 원형을 모델로 해왔기 때문에 두 발레단이 변별력을 상실한 형국이 되었다. 기존의 무대와 비교해 좋았던 장면은, 1막의 눈의 나라로 로맨틱 튜튜의 소수인원으로 추어지던 것이 클래식 튜튜의 대규모 군무로 변화됨으로써 화려함을 극대화할 수 있었다. 또 다른 하이라이트는 2막 「꽃의 왈츠」였다. 기존 공연에서는 역시 약했던 부분으로 이번에는 14쌍의 군무가 가발과 의상을 통일시켜 더욱 화려한 피날레를 장식했다. 물론 장면 연출에서도 예술감독의 세심한 숨결이 느껴졌고 격조가 있었다. 클라라는 포인트 슈즈를 신고 등장하는 12세 정도의 소녀였는데 키로프 버전의 확실한 장점 중 하나는 소녀가 발레리나로 변화하는 1막 3장에 있었다. 드로셀마이어가 두 사람을 두고 마치 결혼식을 거행하는 듯한 포즈를 취하면 소녀가 사라지는 대신 왕자의 파트너로 분장한 성숙한 여인이 나타난다. 순간적이지만 상황의 연결에 필수적인 연출이었다.
반면 지난 공연에 대한 향수도 있었다. 그 동안 2막의 디베르티스망은 매년 장단점이 변화했지만 수 년 전 이슬방울 춤으로 알려진 대목에 들어있던 ‘늑대와 양치는 소녀’장면은 유니버설의 특징으로 매력 있었다. 아랍 춤도 넓고 가벼운 천을 중심으로 한 여자가 부각되었던 지금까지의 것이 더 좋았고, 마더 진저 장면을 없앤 것도 아쉬웠다. 물론 어린이용 발레가 아닌, 작품으로서의 발레를 추구하다 보면 동화적이고 아동 취향적인 대목이 삭제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하지만 2막 시작 부분에 천사들이 서 있던 동화같은 장면은 어느 발레에서도 연출할 수 없는 최고의 환상이 아닐 수 없었다. 좋은 옛 것들을 되살려 유니버설만의 독특한 작품을 만든다면 세계에서 가장 재미있고 환상적인 『호두까기 인형』이 나올법도 하다.
유니버설발레단은 현 예술감독 올레그 비노그라도프 재임기간 동안 이 단체를 ‘세계적인 발레단의 반열에 올려 놓겠다’는 목표를 세워놓고 있다.
Ⅳ. 서울발레시어터
서울발레시어터는 1월에 예술의 전당 초청으로 『현존』을 공연했다. 3월에 제2회 코리아 발레 페스티벌에 참가했고, 4월에는 교육문화회관에서 제4회 정기공연을 가졌다. 10월에는 한일문화교류공연으로 제임스 전 안무의 『세레나데』와 일본 벨-아므발레단의 『주홍글씨A』가 동경에서 있었다. 2000년 서울에서 같은 공연이 이뤄질 예정이다.
정기공연에서의 『백조의 호수』는 1996년 로이 토비아스가 안무한 것으로 여러 가지 면에서 변형을 시도한 것이다. 배경을 골프장으로, 장막발레를 단막의 한 시간짜리 공연물로, 차이코프스키 음악을 조지 거쉰과 제롬 컨의 음악으로, 전체적인 분위기를 희극적으로 바꿨다. 결국은 마술사가 지그프리드의 엄마와 맺어지고 흑조는 골프장에서 만난 남성과, 또 백조와 지그프리드는 줄줄이 아이를 낳고 살았다는 부담없는 결말로 막을 내렸다. 낭만적인 희극의 묘미를 느끼게 했고 아주 편하게 즐길 수 있는, 과거의 무용 스타일을 되짚어 확인한 무대였다.
발레스타 페스티벌의 유일한 창작품이었던 『1x1=?』에서는 윤미애·황정실·나인호가 『현존 II』에서 미처 다하지 못 했던 속풀이를 했다. 빠른 리듬에 골반을 주로 움직이는 관능적인 춤이 독무와 2인무와 3인무로 펼쳐지면서 속도감을 더해 열정적인 분위기를 지속해 갔다. 야한 춤을 천박하지 않게 유도하는 능력은 안무가의 감각과 함께 서울발레시어터만의 고유한 매력일 것이다. 발레단의 소재지 문제로 연말을 어렵게 보낸 이 단체는, 2000년 예술의 전당으로 이주하게 된다.
광주시립무용단은 3월의 발레스타 페스티벌에 참가했고, 6월에 『지젤』 전막을 공연했다. 10월에는 『백조의 호수』 전막공연을, 12월에는 『호두까기 인형』을 연례행사로 정착시켰다. 이 밖에 애육원 유아들과 상무대 장병을 위한 위문공연을 수 차례 가졌고 일본 후쿠오카 발레단을 초청해 『돈키호테』를 공연했다.
직업발레단을 표방한 조승미발레단은 “어려운 사람을 위한 공연을 통해 예술과 대중과의 교감을 유도하는 것이 예술의 진정한 가치” 라며 많은 회수의 공연을 기록했다. 이들은 특히 교도소나 장애인시설을 많이 찾아 무용단의 사회적 역할에 대해 생각할 기회를 주었다. 최근에는 중국과의 합동공연과 상호 초청공연이 많았고 중국 발레리나 센스쟈도 이러한 교류 프로그램 덕분에 만나게 됐다.
Ⅴ. 서울무용제 등 기획공연 및 개인공연
11월의 서울무용제에는 김복선과 박경숙이 참가했다. 김복선의 『마지막 여명』은 발레의 틀 안에서 동작언어가 다양했다. 기교의 흐름이 원만했고 고난도의 기교를 소화하는 무용가들의 기량도 좋았다. 타악기 음악에 맞춘 팔의 움직임에서는 동작의 미적감각에 탁월한 안무가라는 것을 느꼈다. 그러나 구성에서는 2인무가 군무와의 균형을 잃을 정도로 자주 등장해 역효과를 낸 일면이 있었다. 다양한 동작언어를 지녔음에도 불구하고 작품에 대한 찬사로까지는 이끌어가지 못한 원인이 아닌가 싶다. 박경숙의 『아침의 노래』는 94년 무용제 참가작이었던 『새벽을 여는 사람들』과 연결된 것으로 구성면에서 큰 진전은 없었다.
기획공연으로는 「월간 객석」지에서 주최한 『제2회 한국 발레스타 페스티벌』이 큰 호응을 얻었다. 특히 직업발레단 단장들이 모두 무대에 설 만한 기량을 지녔다는 사실에 착안한 「빠드 까트르」는 희귀하고 즐거운 상황이었다. 그리지 역을 맡은 문훈숙은 정교함에서, 탈리오니를 맡은 최태지는 황홀한 표정에서, 그란을 맡은 김인희는 여유 있는 우아함에서, 체리토를 맡은 박경숙은 경쾌함으로 각기 자신의 이미지를 살려냈다.
9월에는 『한국을 빛낸 발레스타』 공연이 예술의 전당 오페라극장에서 있었다. 강수진, 유지연, 배주윤이 각기 독일과 러시아에서 내한했다. 발레 스타들이 일 년에 두 번씩이나 모이니 발레의 르네상스가 한국에서 이루어지는 느낌이 들 정도였다. 김세연·권혁구가 「잠자는 미녀」를, 유지연·일리야 쿠즈네쵸프가 「카르멘」을, 김주원·이원국이 「돈키호테」를, 강수진·로버트 튜슬리가 「동백꽃 여인」(까멜리아 레이디)를 열연했다. 드라마 발레의 원산지인 슈튜트가르트 발레단에서 초연된 「동백꽃 여인」을 그 발레단의 주역인 강수진이 추었으니 세계 최고가 아닐 수 없었다. 두 사람이 등장하는 걸음걸이의 속도에서 세련미를 풍기더니 공중에서의 회전과 그 흐름을 연결시키는 동작의 액센트에서는 안무자 존 노이마이어의 명성까지 떠올랐다. 대작의 일부분임에도 불구하고 완성도에서 가장 뛰어난 무대였다. 키로프발레단에서 활동하는 유지연은 일차적으로 기량을 기대했던 관객들을 위해 「카르멘」 보다는 고전발레를 선택하는 편이 좋지 않았나 싶었다. 안무자 로랑 쁘띠는 같은 표현이라도 동작보다는 표정연기에 의존하는 편이라서 「카르멘」은 나이 어린 무용가에게는 함정이 많기 때문이다. 국립발레단의 김주원은 지금까지는 보지 못 했던 강하고 요염한 면모를 성공적으로 연기했다. 「돈키호테」를 통해 확실한 변신에 성공함으로써 모든 작품을 소화해낼 수 있는 탁월한 발레리나로 부각되었다. 이 밖에 솔로로 참가한 무용가들도 많았지만 스타보다는 스타지망생 이라는 표현이 아직은 어울렸다.
4월의 『춤작가 12인전』에는 문영철·김선희·조윤라가 참가했고, 7월의 『세계음악과 만나는 우리춤』 공연에는 김명회가 유일한 발레전공자로 참가했다. 11월에는 문화관광부 특별지원금으로 발레블랑의 『펠레아스와 멜리장드』가, 같은 지원사업 수혜로 8월에 서울발레시어터의 댄스뮤지컬 『현존』이 공연되었다. 기존 작품인 『현존』 시리즈에 가수와 연주자를 투입한 연출로 무용 쪽에서 주도하는 뮤지컬의 실험무대였다.
한국발레협회 공연에서는 네 명의 안무자가 창작발레만을 공연하는 등 새로운 면모를 보였고, 한국발레연구회도 지속적인 공연을 갖고 있다. 동문단체공연으로는 9월에 발레블랑 정기공연이 있었고 12월에 다시 창작공연이 있었다. 애지회 정기공연, 발레노바 정기공연, 발레사라방드 창작발레공연, 한양발레아카데미 정기공연 등이 있었고, 부산의 브이쉬무용단, 대구의 발레그룹 아다지오도 동문끼리 공연을 가졌다.
개인공연으로는 2월에 이고은 창작발레 『다프네는 어디에』가 있었다. 3월에 한칠 발레 『침향무』, 『만다라』 등이 공연됐고, 문영이 『발푸르기스의 밤』을 안무했다. 4월에 최소빈 발레공연이 있었고, 7월에 장선희 창작발레 『파우스트 2000』이 있었다. 9월에 신은경과 이화앙상블이 『실락원』을 초연했다. 11월에 정미란이 1회 개인공연을 가졌고 12월에는 이상만이 이끄는 리발레단이 『무녀도』를 공연했다. 이들 중 장선희의 『파우스트』는 발레공연의 현대화 작업을 진전시킨 경우였다. 아직까지 우리 무대에는 없었던 것, 새롭지만 좋아 보이는 것, 무용을 주도하는 외국 무대를 보면서 부러워했던 것들이 담겨진 발레를 현대화된 발레라고 한다면, 장선희가 그 문을 또 다른 방법으로 열었다. 전체적인 균형감을 과제로 남겼지만 『파우스트』에서 본 안무자 장선희는 파격미를 추구하는 자세가 진지했다.
Ⅵ. 외국 단체 공연
외국 발레단 내한공연에서는 지리 킬리안이 이끄는 네덜란드 댄스 씨어터를 발레로 다룰 것인가 현대무용으로 다룰 것인가 하는 혼란이 있다. 안무자의 경력으로 볼 때 킬리안의 작품은 창작발레로 보는 편이 좋을 것이지만, 토슈즈 같은 외관상의 기준이 아직도 존재하는 우리의 시각으로 본다면 현대무용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네덜란드 댄스 씨어터는 네덜란드 발레단에서 이탈한 무용가들을 중심으로 1959년에 창단된 단체다. 당시의 혁신적인 안무가들인 한스 반 마넨, 글렌 테틀리, 안나 소콜로우 같은 안무가들의 작품을 주로 공연했고, 1975년에 지금의 예술감독 지리 킬리안이 임명되면서 국제적인 명성의 단체로 급부상하게 되었다. 킬리안의 작품을 평가하는 단어들은 대개 비슷하다. 역동성, 속도, 미끄러짐, 가벼움, 유모어, 우아함 같은 것들인데 이번 한국공연에서는 유모어 부분은 그리 강조되지 않았다. 아울러 그의 태생이 체코임을 부각시켜 슬라브기질의 열기와 잠재된 향수가 작품마다 배어 있다는 말을 듣기도 한다.
「행방불명」의 여성군무를 보면서 원시적이면서 동양적이라는 느낌에 충격을 받았다. 누구나 할 수 있어 보이는 움직임들로 보였기 때문이기도 하고 우리 무용가들도 어쩌면 이미 한복을 입고 이런 동작들을 했을 법하다는 반신반의의 느낌도 있었다. 원시종교적인, 아울러 서정적인 분위기의 군무진은 찾지 못 할 것을 알면서도 계속 찾아보는, 가녀리고 섬세한 마음을 전달했다. 하지만 이미지만으로 무용을 만들 수는 없는 일이다. 이러한 느낌을 확고히 바닥에 깔고 펼쳐지는 기교는 그야말로 눈부신 것이었다. 사람의 호흡보다 세 배 정도 빠른 동작들이 끝없이 계속되는 것도 놀라웠지만 그 동작의 다양함이 더욱 놀라웠다. 사람이 이보다 더 빠르고 활력 있고 율동적으로 움직일 수는 없을 것이라는 느낌이 곧 지리 킬리안에 대한 경의로 변했다.
11월에는 볼쇼이발레단이 내한해 갈라 형태의 공연무대를 꾸몄다. 『지젤』 2막에서 지젤 역의 스베트라나 룬키나는 공기처럼 떠다녀야 하는 낭만발레의 주역으로 적격이었다. 고전발레 명작을 모은 2부에서는 「백조의 호수」 아다지오와 「돈키호테」 그랑 파드되가 시선을 모았다. 한국 출신 발레리나 배주윤도 「베니스의 축제」에서 탁월한 균형감과 뛰어난 연기력을 보였다.
서울무용제 초청단체였던 프랑스 청소년 국제발레단은 몇 개의 소품을 선보였다. ‘발레’라는 단어가 지닌 어감을 우리 식으로 해석하고 공연장을 찾은 것이 실수였다. 예상했던 고전발레의 영상을 지우는 시간이 꽤 길었기 때문이다. 뭔가 극적인 내용의 무용공연이면 서슴 없이 발레라는 단어를 사용하는 그들의 문화를 잊고 있었던 것이다. 이 단체에서 얻은 성과라면 미국에서 활동하는 라 루보비치의 최근작과 프랑스에서 활동하는 앙쥬렝 프렐조카주의 첫작품인 「하얀 눈물」을 감상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하지만 유우머를 중시하는 작품들이 주류였음에도 불구하고 객석과의 교감이 크지는 않았다. 출연자들이 대부분 20세 정도로 보였는데, 소품일수록 무대를 압도하는 연륜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이 밖에 1999년의 발레계에서 특기할 몇몇 사건이 있다. 룩셈부르크 국제발레콩쿨에 김혜식 무용원장이 심사위원으로 위촉됐고, 조민영이 은상, 전은선과 드라고스 미할차가 동상, 김창기와 김은정이 역시 동상을 수상했다. 창무예술원에서 7년째 수여하는 <올해의 무용가상>에는 국립발레단 이원국이 선정됐고 외국에서의 소식으로는 강수진이 브노아 드라 당스에서 최우수 여성무용수상을 수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