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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nfirming Ilwolgonryundo and Pinetree in the palaces are none other than a pilgrimage to the archetype of Kore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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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연동망SNS에 올리려면 기준이 있어야 할 만한...참 사진 찍을 게 많은 궁궐이었다. 추리고 보니 필름 시대의 우악한 사진들이 남았다. 아무나 꾹꾹 눌러 꼭같은 사진이야 어디 눈길이나 줄만하랴 마는 그 사연이야 창덕궁과 비원만큼이나 격세지감隔世之感이 들 만했다.
비원祕苑은 한국궁궐의 백미白眉라 할 만하다. 감춰서 신비했고 하여 수군수군 귓속말이 오가곤 했다. 온통 궁궐 아래를 파내고 정부기밀문서 대피용 수장고를 만드느라 출입이 통제되고 인솔자를 따라 다녀야 한다는 둥 말이 무성했다. 그래서 비秘대신 비祕 자를 썼나 보았다.
*일월곤륜도日月崑崙圖와 *소나무를 확인하러 고궁을 더트는-줄밑걷는 행각行脚이렷다. 어떻게 조선의 왕이 만리 저 먼 곳의 곤륜에 뜬 해와 달 앞에서 위엄을 차리고 중원의 하夏나라가 토지신-사社를 했다는 소나무를 거느릴 수 있을까...그 자명한 답을 확인하는 길이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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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ngdeokgung Palace was built in 1405 by King Taejong, the third ruler of Joseon. All palaces in Seoul were burnt down during the Japanese invasion in 1592 and Changdeokgung Palace became the first palace to be rebuilt in 1610. Since then, it became the primary palace for about 270 years where 13 kings including the last monarch dealt with state affairs.
창덕궁은 태종이 1405년 축조.. 1592년 임진왜란에 소실...1610년에 재건...
While the main buildings of Gyeongbokgung Palace, built on flat land, were strictly laid out on a north-south axis, the buildings and pavilions of Changdeokgung, located at the foot of a mountain, were positioned more naturally, following the contours of the land. This created a more relaxed atmosphere while maintaining the dignity of a royal palace. The whole Changdeokgung compound covers an area of about 462,000 square meters(110 acres), and the Rear Garden also known as the Secret Garden accounts for two-thirds of the total grounds.
경복궁 본관은 남향 배치...산기슭에 위치한 창덕궁의 건물과 정자는 지세에 따라 자연스럽게 배치...비원은 전체 부지의 3분의 2를 차지...
Changdeokgung Palace was designated as a UNESCO World Heritage Site in 1997 and is regarded as a masterpiece of Korean palace architecture where the buildings are in perfect harmony with the natural setting.
1997년에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자연 환경과 완벽한 조화를 이루는 한국 궁궐 건축의 걸작...
http://www.cdg.go.kr/eng/cms_for_cdg/contents/c1_1.jsp
-이하 김영재 민화의 뿌리 자유문고 2005 및 민화의 고향 2021년 현재 출간 지연 중에서 발췌
일월곤륜도
한국인은 자신이 살고 있는 이 땅을 금수강산錦繡江山이라 하면서 일월곤륜도日月崑崙圖 앞에서 정사를 보고, 지도를 그릴 때는 곤륜산崑崙山에서 비롯하는 조선천하도朝鮮天下圖를 그렸다.마포 복개당 세조世祖 어진御眞이 걸린 자리란다. 뒤에는 일월곤륜도가 그려져 있고...세조는 천하제일산 곤륜의 해보다 높고 달보다 높다는 뜻이겠지.
한국인은 자신이 살고 있는 이 땅을 금수강산錦繡江山이라 하면서 일월곤륜도日月崑崙圖 앞에서 정사를 보고, 지도를 그릴 때는 곤륜산崑崙山에서 비롯하는 조선천하도朝鮮天下圖를 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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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중환은『택리지擇里誌』「팔도총론八道總論」에서 백두산을 논하면서 그 뿌리를 곤륜산으로 잡는다.
곤륜산崑崙山 한 가닥이 대사막大砂漠 남쪽으로 나아가 동쪽으로 의무려산醫巫閭山이 되었고, 여기에서 크게 끊어졌으니 이것이 요동遼東의 땅이다. 들을 지나서 솟아나 백두산이 되었는데 산해경에 나오는 불함산不咸山이 이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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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사공太史公 사마천司馬遷이『사기史記』에서 말하기를
우본기禹本紀에 황하의 물은 곤륜산에서 발원하고, 곤륜산은 2.500리에 달하는 높이이며 해와 달이 밝은 빛을 비치도록 서로 곤륜산을 피하여 숨을 정도이다. 그 위에는 예천醴泉과 요지瑤池가 있다.
요지연회는 여기서 열렸다. 한무내전漢武內傳과 목천자전穆天子傳에 실려 있다. 한무내전漢武內傳은 한무제내전漢武帝內傳이라고도 표기되었다.
『한무제내전漢武帝內傳』에 이르기를
또 시녀에게 명하여 다시 복숭아를 찾아보라 하니 잠시 후에 옥반에 선도 일곱 과가 가득 찼다. 크기는 오리알 만하고 둥글며 푸른색이었다. 왕모에게 드리니 왕모가 네 과를 무제에게 주고 세 과는 제가 먹었다. 복숭아 맛은 감미로웠으며 입안에 그 맛이 가득 찼다. 무제가 그 씨앗을 문득 거두었다.
왕모가 무제에게 물으니 무제가 심으려 한다고 말했다. 왕모가 말하길, 이 복숭아는 삼천년마다 열리는 데 중하中夏지대는 땅이 깊지 아니하여 심어도 자라지 않습니다. 황제가 이에 그쳤다.
『목천자전穆天子傳』은 곤륜산崑崙山 요지瑤池에서 서왕모가 서주의 5대 왕인 목왕穆王 희만姬滿을 맞아 벌인 연회를 다룬다. 작가미상의 위魏나라 작품으로 위나라 국왕의 무덤에서 발굴된 죽간竹簡 급총주서汲塚周書의 하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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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지연회는 곤륜산 요지에서 벌이는 잔치이다. 서왕모가 주周 목왕穆王을 맞아 장생을 상징하는 천도天桃를 대접하는 모습이 그려진 그림이 요지연회도瑤池宴會圖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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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마천의 곤륜산에 대한 묘사가 있다. 태사공=사마천이 말하기를,
우본기禹本紀에 황하의 물은 곤륜산에서 발원하고, 곤륜산은 2.500리에 달하는 높이이며 해와 달이 밝은 빛을 비치도록 서로 곤륜산을 피하여 숨을 정도이다. 그 위에는 예천醴泉과 요지瑤池가 있다. 太史公曰 禹本紀言河出崑崙 崑崙其高二千五百餘里, 日月所相避隱爲光明也. 其上有醴泉瑤池
요지瑤池가 곤륜산에 있으니 곤륜산 요지이다. 줄이면 어떻게 될까? 곤요崑瑤보다는 곤지崑池가 가깝게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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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해경에는 곤륜산과 곤륜산에 산다는 서왕모西王母가 소개된다. 이르되,
서해의 남쪽, 유사의 끝, 적수의 뒤, 흑수의 앞에 큰산이 있으니 이름이 곤륜의 언덕이다. 신이 있어-사람 얼굴에 호랑이 몸이며 무늬가 있고 꼬리가 있으며 모두 하얗다-머물러 있다. 그 아래는 약수의 연못이 고리처럼 둘러 있고, 그 밖으로는 염화-화염산이 있으며 물건을 던지면 번번히 타버린다. 사람이 있어 머리에 옥승玉勝을 꽂고 있으며 호랑이 이빨 표범 꼬리인데 동굴에서 살며 이름을 서왕모라 한다. 이 산에는 모든 것이 다 있다. 山海經第十六大荒西經36: 西海之南, 流沙之濱, 赤水之後, 黑水之前, 有大山, 名曰昆侖之丘. 有神──人面虎身, 有文有尾, 皆白──處之. 其下有弱水之淵環之, 其外有炎火之山, 投物輒然. 有人, 戴勝, 虎齒, 有豹尾, 穴處, 名曰西王母. 此山萬物盡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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곤륜산崑崙山의 요지瑤池에서 서왕모가 주 목왕穆王을 맞아 벌인 연회가 요지연瑤池宴 혹은 요지연회이다.
열자列子 周穆王第三에 소개된 내용에 따르자면,
목왕穆王은 거수씨巨蒐氏의 나라에 닿았다. 거수씨는 흰 고니=백곡百鵠의 피를 올렸고 왕은 이를 마셨다. 고니 곡鵠은 고니 외에 희게 하다, 희다, 흰 빛의 뜻이 있다. 일본어에서 곡鵠의 아어雅語-우아한 취향의 말이 백조白鳥라고 소개된다.
우마牛馬의 젖으로 왕의 발을 씻기고 마차에 탄 사람의 발 까지 씻어 주었다. 고니의 피를 마시고 나서 돌아다니다가 마침내 적수의 양陽=남쪽, 곤륜의 언덕에서 잤다. 다른 날은 곤륜의 언덕에 올라 황제의 땅呂을 보고 제사를 모셨으며 후세에 그 이름을 남겼다. 마침내 서왕모의 손님이 되어 요지에서 잔을 돌렸다. 서왕모는 왕을 위해 노래했고 왕은 화답을 했는데 그 노랫말은 슬픈 것이었다. 列子周穆王第三 馳驅千里, 至於巨蒐氏之國. 巨蒐氏乃獻白鵠之血以飮王, 具牛馬之湩以洗王之足, 及二乘之人. 已飮而行, 遂宿於昆侖之阿, 赤水之陽. 別日升昆侖之丘, 以觀黃帝之呂, 而封之, 以詒後世. 遂賓於西王母觴於瑤池之上. 西王母爲王謠, 王和之, 其辭哀焉.
요지연회도瑤池宴會圖는 중앙에 서왕모가 앉고 비스듬히 왼쪽에 주 목왕이 자리하며 시종들이 옹위하는 가운데 앞쪽으로는 봉황과 난새가 노니는 장면을 그린다. 또한 왼쪽과 오른 쪽으로는 축하를 위해 모여드는 신선들이 그려진다. 팔선은 서왕모의 생일을 축하하러 반도가 익을 때마다 들른다는 이야기도 있다. 대접으로 서왕모는 곰 발바닥ㆍ원숭이 입술ㆍ용의 간ㆍ그리고 마지막으로 반도를 내놓았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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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魏나라 무렵 소설이며 작가는 알려져 있지 않다. 진晋나라 대강大康 2년 281년 부준不準이 위魏 양왕襄王의 무덤에서 도굴盜掘한 죽간竹簡에 실려 있다. 급총주서汲塚周書또는 급총서汲冢書라고도 한다. 주周 목왕穆王이 황하黃河의 수원水源을 찾는 여행길에 곤륜산 서왕모와 만나 벌이는 요지연瑤池宴이 서술된다.
목천자전 1권穆天子傳卷之一에는 서왕모西王母가 서왕무西王毋로 표기된다.
목천자는 서왕모와 선물을 주고 받았으며 서왕모는 목천자가 불사의 존재가 되었으니 다시 오시라는 노래를 부른다. 목천자는 나라가 평안해지면 다시 오겠다고 화답한다.
목천자전 3권의 이야기이다. 길일 갑자에 천자가 서왕모의 손님이 되었다. 백규白圭-규 홀 모 모서리 용량단위- 와 현벽玄璧을 짚고 서왕모를 알현하면서 비단 백순百純 등을 드리니 서왕모는 두 번 절하고 받았다. 을축에 요지에서 서왕모의 술잔을 돌리자 서왕모는 천자를 위해 노래를 불렀다.
백운이 하늘에 있고 산*이 저절로 나온다 도리道里가 산천 간에 유원悠遠하고 장차 불사의 존재가 되었으니 다시 오실 수 있으리 천자가 화답했다. 나는 동토東土인 중화中華로 돌아가 여러 제후의 나라를 다스릴 것이다. 모든 백성이 두루 평안해지면 내가 돌아보아 너를 만날 것이다. 너를 좇아 삼 년에 이르면 장차 초야로 돌아올 것이다. 천자는 말을 몰아 엄산弇山의 돌에 서왕모산이라고 새겼다. 穆天子傳卷之三 吉日甲子, 天子賓于西王毋. 乃執白圭玄璧以見西王毋, 好獻錦組百純, ※組三百純, 西王毋再拜受之※. 乙丑, 天子觴西王毋于瑤池之上, 西王毋爲天子謠曰:白雲在天, 山※-丘自出. 道里悠遠, 山川間之. 將子無死, 尙能復來. 天子答之曰:予歸東土, 和治-理諸夏. 萬民平均, 吾顧見汝. 比及三年, 將復而野-爾.※=脫落字
-화살표와 굵은 글씨는 先秦兩漢古籍逐字索引叢刊, 山海經逐字索引, 穆天子傳逐字索引, 燕丹子逐字索引, 商務印書館, 1994,p.4.의 수정자획이다.
山※-丘自出: 산 언덕에서 절로 나온다.
和治-理諸夏: 여러 제후의 나라를 다스릴 것이다.
將復而野-爾: 장차 너에게로 돌아올 것이다.
治-理는 홍이훤洪頤煊의 소견을 따랐다. 洪頤煊云, 是唐時避諱所改홍이훤 이르되, 이는 당나라 때 휘諱를 피避하기 위해 고쳤다, 즉 왕의 이름 자가 같은 글자일 때 글자의 뜻이나 음이 같은 다른 자로 고쳤다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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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래 글은 중국 진나라의 학자. 곽박[郭璞, 276~324]이 산해경을 주석하면서 쓴 서문山海經敍錄내용의 일부이다.
급군죽서汲郡竹書, 목천자전穆天子傳을 보면 목왕은 서쪽으로 정벌을 가서 서왕모를 만나서 가지고 간 아름다운 비단을 짝을 맞춰 바쳤다. 목왕은 요지瑤池의 못 가에서 서왕모와 즐겁게 시를 주고받았는데 그 표현과 뜻이 볼만하였다. 마침내는 곤륜언덕에 올라 헌원궁軒轅之宮에서 노닐며 종산鍾山의 봉우리를 보고 천제의 보물을 갖고 놀며 왕모산의 돌에 글을 새기고 현포玄圃의 꼭대기에 발자취를 남겼다. 또한 그곳의 아름다운 나무와 고운 풀과 기이한 새, 괴상한 짐승, 옥돌과 보석, 기물, 금고 촉은燭銀의 보물을 얻어 돌아와 그 것을 나라 가운데 심고 가꾸었다. 山海經敍錄 嘉慶九年甲子二月卄八日棲霞郝懿行撰 案汲郡竹書及穆天子傳 : 穆王西征見西王母, 執璧帛之好, 獻錦組之屬. 穆王享王母於瑤池之上, 賦詩往來, 辭義可觀. 遂襲昆侖之丘, 遊軒轅之宮, 眺鍾山之嶺, 玩帝者之寶, 勒石王母之山, 紀跡玄圃之上. 乃取其嘉木豔草奇鳥怪獸玉石珍瑰之器, 金膏燭銀之寶, 歸而殖養之於中國.
목왕은 팔준마가 끄는 수레를 탔는데 오른 쪽에는 도려, 왼쪽에는 녹이綠耳가 끌고 조보造父가 어거馭車하는 수레에 분융奔戎이 오른 쪽이 되어 만리 먼길을 달려 사황四荒을 두루 다녔으며 명산대천에 오르지 않은 곳이 없었다. 山海經敍錄 嘉慶九年甲子二月卄八日棲霞郝懿行撰 穆王駕八駿之乘, 右服盜驪, 左驂騄耳, 造父爲御, 奔戎爲右, 萬里長騖, 以周歷四荒, 名山大川, 靡不登濟.
*소나무
-이하 민화의 뿌리 자유문고 2005에서 발췌
한국인의 소나무 예찬과 소나무 사랑은 뿌리가 깊다. 그러나 그 내력이 확실하게 밝혀진 바가 없다. 다만 상고시대와 공자의 행적 중에 소나무에 관한 기사를 참조할 수는 있을 것이다.
춘추전국시대 학자들은 하상주夏商周 삼대三代를 아울러 칭하기도 하고, 혹은 우하상주虞夏商周 사대四代를 서로 연결하기도 한다.
예를 들자면, 『논어論語』「팔일八佾」편에
애공哀公이 토지신에게 지내는 제사인 사社를 재아宰我에게 묻자 재아가 대답하여 말하되, 하후씨夏后氏는 소나무松로, 은나라 사람殷人은 잣나무柏로, 주나라 사람周人은 밤粟으로 사社를 했습니다.
고 했다.
또, 『논어論語』「위정편爲政篇」에 공자孔子가 답하고 자장子張이 묻는 대목이 있다.
자장이 십세十世를 알 수 있다고 하는데 어떤 말입니까 하고 묻자 공자는 말하기를, 은殷나라는 하나라의 예夏禮에서 비롯하여 손익損益이 있다 하니 알 수 있고, 주周나라는 은나라의 예殷禮에서 비롯하되 손익이 있으니 가이 알만하다.
했다.
은나라 사람들이 잣나무로 사社를 하는 것은 하나라 사람들이 소나무로 하는 예에서 비롯한다는 말이 될 것이다. 한국인의 소나무 사랑은 하나라 사社와 같은 의미로 해석될 수도 있을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