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마다 날씨 운운하는 나지만,
여행이란, 특히 이렇게 걸어서 다니는 일이란 날씨가 보통 중요한 게 아니어서다. 어쩌면 날씨 때문에 가고 안 가고가 판가름나기 때문이기도 하다.
오늘은, 예보로는 비가 온다고 했는데,(그래서 오늘은 그냥 아파트에 머물려고 했는데,
비는 고사하고 청명해도 이보다 더 청명할 수가 없었다.
어제 비오고 안개 꼈던 것이 너무 깨끗하게 개었던 것이다.
그리고 여행도 '진화한다'는 사실 역시 흥미롭다.
이번(오늘)이 세 번째다 보니, 날마다 조금씩 좋은 쪽으로 변하는 것을 느끼면서,
이것도 진화하는 건가? 하는 생각이 들어, 스스로도 웃었다.
버스를 이용하는 시간 개념, 사전 지도 연구에 대한 효율적인 대응 등이 많이 개선된 것을 스스로 느끼면서,
이러다 정말 '여행 전문가' 되겠네...... 하면서.
오늘은 어제 돌아오느라 버스를 탔던 '궁촌'까지 버스를 타고 갔고,
너무도 깨끗하게 갠 세상에 감탄을 하면서 걷기가 시작됐다.

위래) '태백산맥'이 뚜렷이 보여... 그런데, 웬놈의 공사가 그리 많은지...(아래)

어제 내가 길 막바지에 감탄했던 해안 절경이었던 바닷가(아래).
산 위에 군 부대가 있고, 그 너머의 절벽이 아름다웠다.



위) '궁촌' 해변 . 그 아래쪽(초곡 해변). 아래) 뒤돌아 보니...


여기는 '삼척 레일바이크'라는 관광상품이 있는 곳으로, 이런 방품림 사이로 관광열차를 운행하기도 한다.


정말, 모처럼 깨끗한 날씨의 바닷길을 만끽한 기분이었다.
나그네가 '날씨 탓'을 할 수는 없는 거지만(늘 그 말을 하면서도 나는 날씨 탓을 많이 하는 사람이다.),
이런 날씨에 바다를 즐길 수 있는 거지...... 하며 나는 설렘까지를 느끼고 있었다.





자꾸만 뒤를 돌아보게 되었는데,
이 풍경(아래) 제일 끝 부분이 '남애 포구'로,
아래로 내려갈수록 해안이 더 길게 보이는 것도 신기했다.



더 이상 가다간, 여기도 빠져나갈 길이 없을 것 같아, 중간에서 도로로 나와야만 했다.
그래서 나와 보니,

거기가 바로 '레이크 바이크' 역이었다.

지나가는 기차도 없어서 철길을 따라 가니,
2006 년 자전거 여행 때, 친구 Y의 처갓집과 연결 돼, 하룻밤 민박을 했던 '문암' 마을이 보였다.
저기 어떤 집인가에서 하룻밤을 잤는데, 이젠 어떤 집인지 기억에도 없다.
그만큼 내 기억력도 쇠퇴해 간다는 것이지......

그 앞에 보이는 '터널'로는 갈 수 없어,
빙 돌아 '초곡항'을 지나야 했다.
그 정도는 이미 지도를 보고 연구해두었기 때문에, 그렇게 했는데,
날이 좋은 건 또 그만큼의 햇볕과 함께 해야 하기 때문에, 난 더위도 더위지만 뜨거워서, 벌써부터 지쳐가고 있었다.

'초곡항'도 마찬가지였다.
그 아름다웠을 해변이 항구 개발로 인해, 기암절벽이 많이 상한 모습으로,
그러면서도 그 안에 들어가 보면, 난개발과 졸속행정으로 눈쌀을 찌뿌릴 일이 한두 가지가 아니라서,
나는 역시 실망하고 말았다.
전에 자전거 여행할 때는 이런 마을까지는 들어와보지 못했기 때문에 초행길이기도 했지만,
차라리 안 들어왔던 게 나았을 거라는 생각으로 마을을 빠져나왔다.





위) 터널 반대편
그런데 길은 '황영조 기념관'으로 연결됐다.
기념관으로 오르며 보니, 황영조 발바닥 브론즈를 보면서는,
참, 발(바닥)이 건강하게도 생겼다! 이 발바닥으로 세계를 제패했단 말이지?
허긴, 황 영조하고 나하고도 인연이라면 인연일 수 있다. 내가 바르셀로나에 살 때, 올림픽 당시에 전혀 몰랐던 한 한국인 젊은이가 현지 올림픽에서(그것도 마라톤에서) 금메달을 땄던 일.
나는 저녁 밥을 먹다가(현지에선 저녁 때였다.) 그 흥분으로 저녁을 먹는 것도 잊은 채, 내가 살던 도시에서 벌어지던 경기를 흑백 TV로 보면서 어쩔 줄을 몰라 했었지!
그 당시 나는 36-7세였고......
그런데 이제 예순 다섯이 되어, 그 건강한 발로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땄던 젊은이의 발을 기리며,
신경통을 앓는 늙고 병든 다리로 이 고개를 오르고 있다니......


전망이 좋았다. 그 아래 '초곡항'과 저 멀리 동해안이 다 보이는......


그런데 너무 지치고 뜨거워,
이쯤에서 정비를 해야 할 것 같았다.

위) 신발에도 모래가 써걱댔고, 아래) 너무 뜨거워 준비를 해야 하는데(모자도 안 가지고 와서...)




그리고 이제, 내가 어쩌면 이번 나들이에서 제일 와보고 싶었던 곳일 수도 있는 한 절벽으로 향했다. '장호'가 환히 내려다 보이는 언덕.

아래) 한 두더지 녀석이 길을 잃었는지(흙이 아닌 콘크리트) 헤매고 있었다.

경사 급한 오르막엔 아키시가 피어, 향기가 좋았고, 그 아래는 꽃잎이 떨어져 있었다.


그렇게 거의 고개마루에 닿았는데, 하필이면 왼쪽 다리의 신경통이 도져,
한참을 쉬고 앉아 있었다.
그 때였다.
한 '도보 여행가'가 고개를 오르고 있었는데,
그와 인사를 하게 되었다.
여행 중인가 보네요?
예!
근데, 내가 아까 젊은이를 봤는데......
예? 어디서요?
내가 아침에 '궁촌'으로 버스를 타고 오는데, 길에 웬 옷차림이 독특한 나그네가 걸어가는 걸 보았는데, 그 사람을 여기서 보게 되네요.
그러셨어요?
내가 바닷가에서 이런저런 일도 하느라 시간을 지체하다 보니, 젊은이가 도로로 계속 걸어와 나와 마주치게 된 거지요.
그러신 거에요?
그렇게 동행이 되어,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며 걷게 되었는데......

이 모퉁인가? 돌으면, 참 아름다운 풍경이 펼쳐진답니다.
내가 군대 입대하기 바로 직전에, 그러니까 40 년도 전에 처음으로 이곳에 와봤는데, 어찌나 아름답던지,
'그림 엽서' 같구나! 하고 감탄을 했던 곳이거든요......
아, 그렇게나 아름다운 곳인가요?
가 보면 알아요......
바로 그 자리에 닿으니, 그도 감탄을 하며,
사진 찍어야겠네요! 하며 핸드폰을 꺼냈다.


거기에 정자 하나가 있어서,
정자에 올라 잠깐 휴식을 취하는데,
어차피 여행하는 친구라서 먹을 건 없을 터라, 내가 가져갔던 '건빵'을 나눠먹으면서......
나에게 e-mail 주소 좀 줘요. 내가 사진 보낼 테니...... 했더니,
반가운듯 내 핸드폰에 자신의 메일주소를 적어줘, 길을 걷는 그의 사진 등 6-7장을 보내주었다.(지금 이 시각)
그는 22살의 강릉에 사는 '굴삭기'를 하는 젊은이로, 한 일주일 정도 계산으로 강릉에서 출발해서 부산쪽으로 걸어가고 있는데, 잠은 텐트을 치고 잔다고 했다.

그도, 자신의 핸드폰에 '셀카'로 나와 함께 사진 한 장을 찍었고(그의 요청으로),
나는 그를 먼저 보냈다. (어차피 그는 서둘러야 하는 사람이라)
하루에 5-60km를 걸어야 한다니, 나로썬 도무지 이해가 안 갔지만.
그도 황 영조 같은 발을 가졌나 보다! 했을 뿐.

그런 뒤에 나는 혼자 남아, 내 젊은 날을 회상해 보기도 했다.
저 아래 '장호'마을의 바닷가 끝집에서 3박 4일을 머물었던 군대 입대 직전의 나.
그 뒤로 이 곳을 늘 그리다, 나중에 와 보니,
너무 변해버린 그 곳에 실망한 나머지,(자전거 여행 때도 마찬가지로)
여기에 오면 늘, 이 언덕에서 내려다 볼 뿐(큰 지형은 변함이 없으니), 그 마을로는 들어가지 않는(더이상 실망하지 않기 위해) 여정을 반복하는......
오늘도 여기서 내려다 보는 걸로 만족하고, 마을 안으로는 들어가지 않을 것이다.


그 바로 아랫마을 '용화'도 마찬가지다.
나는 그냥 길을 갈 뿐, 거기에 관심을 주지 않으려 애썼다.
'산토리니' '따봉' 등등... 펜션 이름도 참 웃기는(나에겐) 곳을 지나쳐,


내가 몇 년 안 온 사이에 용화에서 '장호'까지 '케이블카'가 생긴 듯,
올 때마다 이상하게 바뀌고 있는 그 아름다웠던 이 곳......

아래) 장호리 산 위에도 뭔가 이상한 건물이 섰던데, 알고 보니 케이블카 역이었다.



그 바닷가를 지나며 눈에 띈 게(아래 사진), 우리나라의 현실인 것 같기도 했다.
구 시대의 '민박'집과, 신식인 '펜션'이 한 곳에 자리잡고 있었다.

미련없이 장호를 지났다.
그런데 내 눈에 띈 건, 한 너른 밭(여기선 넓다고 봐야 한다.).
참, 농사도 잘 짓네!
그런데 그 안엔 그 농사를 짓는 주민인 듯한 한 사람이 있었다.
저 사람이 주인인가 보구나......

그런 뒤 그 다음 마을인 '갈남리'로 접어드는데,
저건 또 뭐야?
역시 펜션촌이 새로 들어와 있었다.
자전거 여행할 때만 해도 없었는데...... 허긴 그 때도 어느새 14년 전......
아, 세상은 이렇게 변한다......



여기도 아름다운 해안인데......

내 그림에도('무인도'라는 제목) 등장하는 저 섬.... (95년인가?)

시간이 이제 오후 1시를 달려가고 있었는데,
어느새 하늘은 구름으로 덮여가고 있었고(아까 그 여행하는 젊은이를 만날 때부터),
나는 이쯤에서 오늘의 나들이를 접기로 했다.
비가 오면 걱정스러우니까.




거기서 버스를 탔고 한참 버스가 달리는데 보니, 버스 정면 창엔 물방울이 많아졌고, 블러쉬도 움직이고 있었다.
그런 뒤 삼척에 내리니, 굵은 빗방울이 점점 많아지던데, 기온도 상당히 내려간 듯 춥기까지 했다.
서둘러(불편한 다리로) 돌아와, 그제야 점심을 챙겨 먹었다.
밖엔 비가 내리고 있었다.
첫댓글 글이 중복되었네요.
멋진 동해안의 풍광을 상상해봅니다.
저도 몰랐는데,
그걸 바로 잡는 것도 상당히 애를 먹었답니다.
문서 편집이 생각 같이 되질 않아, 어떤 때는 짜증이 많이 난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