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곡 선을 향한 의지, 죽음 후에 영혼은 어디로 가는 것일까
두 가지 의심에 이끌려
나는 침묵하였어도 내가 바라는 바는 얼굴에
쓰여 있었다. 내 모든 의문들은 말로
표현한 것보다 더 생생하게 드러났다.
베아트리체는 순례자를 혼란스럽게 하는 두 개의 의문을 분별하고 설명을 합니다.
하나는
선을 향한 나의 의지가
변함이 없다면 어떻게 다른 자의 폭력이
나의 정당한 공적의 가치를 깎아내릴 수 있는가?
피카르다가 영원히 서원을 지키고자 했다면 그녀를 결혼시키려는 오빠의 강요에도 불구하고 그녀의 공덕이 깎이지 않아야 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것과
또 하나는 ‘플라톤이 주장하듯이 죽음 이후에 모든 영혼은 제각기 자기 별로 돌아가는 것일까? 하는 것입니다.
두 번째 물음부터 대답합니다.
두 번째 물음은 플라톤의 생각에 대한 의문을 포함합니다.
플라톤은 영혼들은 별에서 나와 육체에 깃들다가 사후에 별로 돌아간다고 하는 영혼선재설을 말합니다.
(역주에서: 플라톤의 <티마이오스>에 나오는, 영혼이 죽으면 그 영혼이 왔던 별로 돌아간다는 생각에 대한 혼란이다. 플라톤의 생각은 창조주의 역할을 자유의지의 부여로 보는 그리스도교 교리와 대치되었다. 6세기에 콘스탄티노플 공의회는 플라톤 학설과 유사한 수많은 이론들을 이단으로 규정하고 모든 영혼은 육신의 탄생과 함께 하느님이 창조하셨다고 선언했다. 이 두 번째 의문은 이런 중대한 신학적 오류를 지니기 때문에 더 해롭다고 베아트리체는 말한다. 베아트리체는 복자의 영혼들이 죽음 이후에 거하는 천국은 오직 하나라고 설명한다. 이 단일한 천국 안에서 영혼들은 서로 다른 단계 혹은 상태에 처한다. 그것은 별이나 하늘이 자의적으로 영혼들에 배정되었기 때문에 혹은 영혼들이 어떤 구체적인 별에서 왔기 때문이 아니라, 다양한 하늘들이라는 개념이 영혼들에 깃든 다양한 정도의 축복됨을 상징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즉 (천국편 1곡 1행에서 3행)형상에 따라 축복됨의 빛의 양(밝음, 어떤 부분에서는 더하고 어떤 부분에서는 덜하다)이 다르다는 것이다.
하느님께서 가장 좋아하시는 천사 세라핌, 모세와 사무엘, 그리고 마리아마저도, 그대가 여기서
방금 보았던 영혼들이 위치한 천국과
다른 천국에 가 있는 것이 아니고,
각자의 축복도 똑같이 영원하지요.
천국의 여러 권(9개의 층)의 개념은 축복의 정도를 상징적으로 나타낸 것입니다.
이 영혼들이 우리가 지금 서 있는 달의 하늘에 있는 것은
그 하늘이 그들에게 할당되어서가 아니라
그들의 축복됨의 정도가 낮음을 보이기 위해서입니다.
천국의 여러 권의 개념은 축복의 정도를 상징적으(형상에 따라 축복됨의 빛의 양)로 나타낸 것입니다. (천국편 1곡 1행에서 3행)
베아트리체는 그대에게 맞는 정도로 말하고 있다고 하며
이런 이유 때문에 성서도 그대들의 지력에 맞추어
손과 발을 지닌 하느님을 묘사하지만,
사실은 다른 의미가 들어 있지요.
감각에 기초하여 판단하는 이성은 한계가 있습니다. 하느님은 인간이 지성으로 영적인 사물을 깨닫기 어려우므로 감성에 호소하여 얻은 인상을 지성에 전하는 방식을 취합니다. 그래서 성서는 하느님을 의인화하여 하느님께 손과 발을 부여했고 교회가 천사들을 의인화했습니다.
음악 천사, 로소 피오렌티노, 우피치 미술관, 이탈리아
성모자보다 더 인기있는 아기 천사들인 푸토(아기라는 뜻을 가진 이탈리아어)입니다.
라파엘로 시스티나 성모 부분, 드레스텐의츠빙거 궁전, 알테마이스터 회화관, 독일
우리가 갔을 때는 알테마이스토 회화관으로 알고 갔는데 드레스덴 국립 미술관이라고도 합니다.
시스티나 성모, 라파엘로, 드레스덴의 츠빙거 궁전, 알테마이스터 회화관, 독일
성 모자상 가운데 최고의 걸작이라는 이 작품은 원래 교황 율리우스 2세의 시체 고별식을 위해 주문했는데 그때 이 작품이 관 위에 세워졌답니다. 성모가 구름을 타고 오는 모습처럼 보였겠지요.
그림 아래 쪽 두 푸토(아기 천사)는 정말 귀엽습니다. 교황의 관위에 턱을 괴고 위쪽을 쳐다 보고 있는 눈이 골똘히 생각하는 모습이기도 하고 성모를 기다리는 모습이기도 합니다. 누군가 혹은 무엇인기를 기다리다 지쳐 새로운 장난거리가 없나 하는 어린 아이들의 천진한 모습입니다.
악기를 연주하는 두 천사와 책을 읽는 천사 목각 인형
손녀에게 줄 선물로 독일 오버아머가우 목공에품 선물가게에서 산 목각 인형 천사
인간의 이해 수준을 알기 때문에 하느님도 천사도 인간의 언어로 표현한 것입니다. 이것을 글자 그대로 이해하면 오류를 법합니다. 이 경우 의인화를 상징적으로 해석해야 합니다.
그는(플라톤) 영혼이 세상에 태어나면서 자연에서
형상을 받을 때 영혼 자신의 별에서 찢어져 나간 것이며,
나중에 죽으면 자신의 별로 돌아간다고 말합니다.
그(플라톤)의 주장은 소리 나는 대로만 들리지 않고 전혀 다른 양상도 담고 있다고 합니다. 영혼은 늘 그 하늘로 돌아간다는 것이 그의 주장이라면 진실을 꿰뚫은 거라 합니다.
즉 플라톤의 영혼선재설을 말 그대로 해석하면 오류에 빠지나 상징적으로 해석하면 긍정적인 면이 보인다고 합니다.
이제 첫 번째 질문입니다.
첫 번째 물음은 '피카르다가 수녀원으로 피신할 수 있었으면서도 폭력에 굴복했던 것에 대해 공덕이 감해지는가?' 에 대한 대답입니다.
이 부분은 아리스토텔레스의 <니코마스 윤리학>을 근거로 하고 토마스 아퀴나스의 이론에 따른 것입니다. 토마스 아퀴나스는 기독교 교리와 아리스토텔레스의 철학을 종합하여 스콜라 철학의 중세 기독교 신학자로 신앙과 이성 사이를 조화시켰습니다. 베아트리체의 대답입니다.
폭력에 고통받는 사람은
폭력 행위에 관여하지 않았다고 해도
비난에서 벗어날 수 없어요.
의지는 원하기만 하면 굴복하지 않을 수 있으니까요.
따라서 크든 작든 의지를 굽히면 폭력이 뒤따르는 법입니다. 이들은 수녀원으로 피신할 수 있었으면서도 폭력에 굴복했던 겁니다.
스스로 굴복함은 스스로 폭력을 돕는 것과 같습니다.
그분들이 의지를 온전히 유지했더라면 그들이 풀려나자마자 다시 끌려 들어간 그 길을 다시 물리쳤을 거예요. 그러나 굳은 의지란 쉽게 만날 수 없어요.
제 말을 알아들었다면 그대의 마음을 괴롭힌 논쟁이 이제는 무의미해졌을 겁니다.
이제 베아트리체는 의지의 본성을 이야기 합니다.
코스탄차가 너울에 대한 맹세(천국편 3곡 112~117)를 잃지 않았다고 피카르다로부터 들었는데 바로 그 점에서 그녀는 나와 다르다고 합니다.
형제여! 더 큰 위험을 피하기 위해서는,
마음을 거스르면서 해서는 안 될 일을
하게 되는 경우도 많았지요.
이를테면 아버지의 기도에 마음이 움직여 어머니를 죽인 알크마이온은 효성을 버리지 않기 위해 불효를 한 것입니다.
일이 이렇듯이, 의지와 폭력이 뒤섞일 때 그 잘못을 변명할 수 없습니다.
그렇다고 절대 의지가 불의에 동의하는 것은 아니에요.
다만 불의를 뿌리쳐도 더 그릇된 고통에 떨어질까
두려워하는 한에서만 동의하는 겁니다.
절대 의지가 불의에 동의하는 것이 아니라 절대 의지가 불의를 뿌리쳐도 더 그릇된 고통에 떨어 질 때만 조건 의지를 말하는 것입니다.
피카르다는 절대 의지(나쁜 일을 결코 허용하지 않는 의지)를 들어 설명하는 것이고 나는 조건 의지(상황에 따라 형용될 수 있는 의지)를 들어 설명하는 것이니 둘 다 진리를 말한 것입니다.
우리의 의심은 진리의 발치에서 솟아오릅니다. 그것은 어떤 진리에 대해서 아주 공손하게 물을 용기를 줍니다.
그리고
또 묻습니다.
서원을 여긴 사람들이 그러한 선한 행위로 당신의 저울에 합당하도록 보완할 수 있는지요?
그러자 베아트리체가 나를 바라보았는데 그녀의 눈에 사랑이 타오르고 성스러운 물결이 일었습니다. 나의 시력을 그 힘에 굴복해 눈이 감기면서 나는 어찔한 느낌이 들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