술은 건강을 파먹는다 / 최종호
몇 해 전까지만 해도 연초가 되면 빼놓지 않고 세우는 신년 계획이 있다. 바로 술을 적게 마시는 것이다. 경계선을 넘으면 이런저런 실수를 하고 여러 날 고생하기 때문이다. 스스로 경각심을 가지려고 ‘담배는 건강을 좀먹고, 술은 파먹는다.’라는 말까지 적어 둔다. 자신도 모르게 조금씩 건강을 해치는 흡연과 달리, 과음은 하룻밤 사이에 눈에 띄게 몸을 망가뜨리는 것 같아서다.
알코올을 분해하는 능력은 개인차가 있겠지만 술을 잘 못 마시는 나로서는 과음하게 되면 숙취가 심하여 고통스럽다. 속도 쓰리고 머리도 아픈 데다 칼슘이 빠져나가는지 종아리뼈까지 아리다. 이도 아프다. 어디 그뿐이랴! 화장실을 들락거리는가 하면, 며칠 동안 컨디션도 엉망이 된다. 머리도 멍하다. 지능 지수가 확 낮아진 느낌이다. 당연히 일의 능률이 떨어진다. 목구멍도 아프고 목소리도 변한다. 젊을 때는 일주일이면 정상으로 되돌아오는데 50대 이후에는 더 걸린다. 그래서 되도록 술을 멀리하려고 노력한다.
그러고 나면 한동안은 술병을 쳐다보기도 싫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 언제 그랬냐는 듯이 또 찾는다. 주량이라고 할 것도 없지만 소주 서너 잔이 정량이다. 그래서 회식 자리에서는 다른 사람에게 잘 권하지 않는다. 다시 돌아온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하지만 거절하는 것도 한계가 있다. 인정을 뿌리치지 못하고 몇 잔을 받다 보면 어느새 취기가 돈다. 경각심을 늦추면 금세 무장해제가 된다. 그때부터는 술이 술을 부른다. 말수도 많아지고 목소리도 커진다. 평소와 영 다른 사람이 된다.
과음하면 몸만 고생하는 게 아니다. 블랙아웃까지 벌어지면 마음고생까지 한다. 필름이 끊긴 것처럼 어느 시간대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전혀 기억을 되살릴 수 없으니 불안하다. 혹시 큰 실수라도 하지 않았을까 걱정이 꼬리를 문다. 그렇다고 술자리를 함께한 사람에게 물어볼 수도 없다. 창피하기도 하고 실수했다는 말을 들을까 봐 두려워서다. 블랙아웃은 단기 기억을 관장하는 해마가 일시적으로 마비되면 나타난다고 한다. 뇌 건강에 빨간불이 켜진 것이라는 기사를 본 후로는 더 조심하나 뜻대로 잘 되지 않는다.
술 때문에 아찔한 사고로 이어질 뻔한 적도 있다. 관내 교감단 회장을 맡은 시절의 일이다. 교육청 장학사를 비롯한 간부급 직원과 회식이 있었다. 새 학년도의 인사이동으로 얼굴도 익히고 친목도 다질 겸 마련한 자리이다. 한데 교육청 직원들은 6시에 퇴근이라 우리들끼리 한 시간이나 기다려야 했다. 조금 일찍 만나 배구 시합하고 회식 장소로 갔다. 운동을 좋아하는 교육장, 교육과장도 초대하여 함께하니 더 활기가 넘쳤다.
운동을 마치자마자 서둘러 식당에 갔다. 어떻게 마중하고 자리를 배치할 것인지 신경이 쓰였다. 시간이 되자 모두 모였다. 미리 생각해 두었던 대로 인사말을 했다. 뒤이어 교육청 직원을 대표하여 교육장의 인사와 소개가 이어졌다. 교감단 총무가 집에서 가져온 술을 한 잔씩 따랐다. 내가 건배를 제의하자 조용했던 분위기가 한순간에 달아올랐다. 명색이 회장인데 한자리만 고수하고 있을 수도 없어 여기저기 권했다. 되돌아오는 술잔도 물리치기 어려운 자리였다. 체면을 차리고, 건강을 걱정할 처지가 아니었던 것이다. 분위기는 한껏 끌어올렸으나 정작 나는 과음하고 말았다.
목포에 사는 여선생님이 태워 주어 관사로 올 수 있었다. 새벽녘이었다. 매캐한 냄새에 눈이 떠졌다. 아뿔싸! 방안이 연기로 가득했다. 보리차를 끓이려고 가스레인지를 켜놓고 잠이 들어 버린 것이다. 제법 큰 스테인레스 주전자였는데 보리는 새카맣게 타서 흔적도 없었고, 찌꺼기는 바닥에 붙어 버렸다. 머리도 아프고 몸을 가누기도 힘들어서 방문을 열고 연기만 겨우 빼낸 다음 다시 드러누웠다.
다음 날 일어나 보니 주전자 색깔마저 짙은 회색으로 변해 있었다. 싱크대 일부분도 새까맣다. 다행히 불연재라 불이 붙지는 않았다. 십년감수했다. 불이라도 났으면 이 무슨 낭패인가. 주전자는 아무리 철 수세미와 모래흙으로 문질러도 제 색깔로 돌아오지 않았다. 한동안 방안의 매캐한 냄새를 없애려고 날마다 방문을 열어 두었으나 쉽게 가시지 않았다. 이제야 털어놓는 부끄러운 기억이다.
아내는 내가 3년 주기로 과음 행사를 치른다고 한다. 돌이켜보면 큰 사건 없이 운 좋게 여기까지 왔다. 이제는 사회적인 체면도 있고, 건강도 예전 같지 않아서 조심하는 편이지만 방심은 금물이다. 젊어서부터 잘 마시던 친구들도 이런저런 이유로 술을 끊거나 양을 줄이는 사람이 많다. 과음하면 꼭 후회가 뒤따른다. 기분 좋을 정도로만 마시는 지혜가 필요하다는 걸 알면서도, 나도 모르게 호기를 부릴 때가 있다.
다산 정약용은 두 아들에게 ‘술맛이란 입술을 적시는 데 있다. 술을 마시는 정취는 살짝 취하는 데 있는 것이지 얼굴빛이 홍당무처럼 붉어지고 구토하며 잠에 곯아떨어져 버리는 것은 술 마시는 의미가 없다. 술 마시기 좋아하는 사람들은 병에 걸리기만 하면 폭사(暴死)하기 쉽다.’라며 술 마시는 법을 편지에 써서 보냈다고 한다. 꼭 내게 한 말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