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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효사
 
 
 
카페 게시글
무진당 조정육의 그림과 인생 스크랩 당신의 문제는 곧 나의 문제입니다-이철수 판화
무진당 추천 0 조회 311 11.10.31 13:36 댓글 6
게시글 본문내용

 

13. “당신의 문제는 곧 나의 문제입니다”-이철수 판화

 

 

 

 

<백장법문>, 42×50cm, 2011년

 

 

“땀 없이 먹고 사는 삶은 빌어 먹는 것만도 못하다. 호미 끝에 화두를 싣고 밭에서 살아라. 일은 존재의 숙명이지. 거기서 생명의 들고 나는 문을 발견하지 못하면 헛사는 일이다. 호미 놓지 말아라.”

 

<백장법문>은 ‘하루 일하지 않으면 하루 먹지 않는다(一日不作 一日不食)’는 청규(淸規)를 철저히 실행했던 당나라 백장회해(百丈懷海: 749~814)선사의 가르침을 판각한 작품입니다.

 

어떤 경우라도 호미 끝에 화두를 싣고 살라는 백장선사의 가르침이 1천2백 년의 세월을 뚫고 사람들 가슴 속으로 쩌렁쩌렁 울려 퍼집니다. 게을러지고 나태해져 땀 없이 먹고 살고 싶을 때가 있습니다. 그럴 때마다 이 작품을 보면 심하게 부끄러워 벌떡 일어나 호미를 들어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게으름 끝에 밀린 일에 떠밀려 정신없이 호미질만 할 때가 있습니다. 그럴 때마다 이 작품을 보면 화두를 놓친 삶이 헛사는 일이란 걸 깨닫게 되어 호흡을 멈추고 자신을 보게 됩니다.

 

이철수 작가는 <백장법문>에서 단순한 색과 절제된 선으로 백장선사의 육성을 생생하게 전해줍니다. 붉은색과 검은색의 단순한 색과 간략한 형태는‘머리 속에는 생각이 적어야 하고, 입 속에는 말이 적어야 하며, 배 속에는 음식이 적어야 한다’던 법정 스님의 말씀처럼 분명하면서도 강렬하게 감상자의 정신을 파고 듭니다.

 

 

#일과 수행은 하나

지난 6월 달에 서울에 있는 한 전시장에서 이철수 작가 목판화 활동 30년을 기념한 전시회가 열렸습니다. 작가는, 농부가 호미 들고 밭에서 살듯 날마다 작품 밭에서 수확한 작품 113여점을 선보였습니다. 그 중 58점은 1981~2005년 사이에 제작한 작품이고, 55점은 2005년 전시회 이후 제작한 신작들이었습니다. 전시장 3층을 꽉 채우고도 넘쳐 별관까지 전시된 풍성한 그림 잔치였습니다. 지금까지의 작품 활동을 총결산한 전시회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1980년대 민중 판화가로 시작해서 현재에 이르기까지의 작품의 변화과정을 시간순으로 확인해 볼 수 있었습니다.

 

이번 전시회의 주제는 "새는 좌우의 날개가 아니라 온 몸으로 난다."였습니다. 하늘을 나는 새를 볼 때 우리는 종종 새가 온 몸으로 난다는 것을 잊고 좌우의 날개로 난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새는 ‘온 몸으로 살고 온 몸으로 죽습니다’. 새가 그러하고 사람이 그러하고 세상 모든 생명이 그러합니다. 30년 만에 전시된 작품 속에는 온 몸으로 사는 세상 모든 생명체의 모습이 정갈하게 담겨 있었습니다. 전시장을 찾지 못한 사람들에게도 『나무에 새긴 마음』이라는 두툼한 작품집을 만들어 두고두고 작품을 감상할 수 있는 기회를 주었습니다.

 

<백장 이후>, 41×118cm, 2011년

 

 

그는 지난 30년 동안 2천여 점이 넘는 판화작품을 제작했을 정도로 다작의 작가입니다. 그 외 벽화와 엽서그림 등을 합하면 족히 5천여 점은 넘을 것입니다. 거의 이틀에 한 점씩의 작품을 만들어 온 셈이니 그 작업량만으로도 작가의 부지런함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하루 일하지 않으면 하루 먹지 않는다’는 정신으로 작품밭에 호미질을 한 것 같습니다. <백장 이후>는 지문처럼 골이 패인 밭에서 부지런히 운력(運力)을 하고 있는 스님의 모습을 보여줍니다. 좌복 위에 앉아있는 것만이 수행이 아니라 괭이와 호미로 밭을 매고 돌밭을 가꾸는 것도 수행입니다. 수행과 일이 따로 떨어져 있지 않음을 보여주는 것이 운력입니다. 작가가 작품 활동을 하는 틈틈이 농사를 짓는 것도 수행과 일이 하나임을 아는 이치입니다.

 

 

 

<개소리>, 42×50cm, 1998년

 

 

#깊은데 마음을 열고 들으면 개가 짖어도 법문

그가 작품 속에 담는 내용은 특별하지 않습니다. 사람이 살아가는 과정 속에서 누구나 느낄 수 있는 평범한 일상이 담겨 있습니다. 너무나 평범하고 평범해서 평소에는 의식조차하지 못하고 사는 삶이 담겨 있습니다. 그런 일상이 작가의 손을 거쳐 판화에 새겨지는 순간 삶에 대한 성찰을 묻는 화두가 됩니다. 다른 생명을 헤치지 않고 세상과 조화롭게 살아가는 방법에 대해 고민하게 만듭니다.

 

 그의 작품 앞에 서면 ‘잡초라 부르는 것조차 모두 아름답다. 세상에, 시시한 인생은 없다. 어디에도’(<잡초 인생>)라는 숭고한 생명 존중 사상을 만나게 됩니다. ‘깊은데 마음을 열고 들으면 개가 짖어도 법문’을 듣게 됩니다. 아무리 좋은 얘기라도 들으려는 사람의 간절한 마음이 없으면 그냥 개소리에 불과합니다. 아무리 평범한 말이라도 진리를 얻기 위해 노력하는 사람에게는 훌륭한 법문으로 들립니다.

 

성인은 거창하고 화려한 말에 의해서가 아니라 투명하고 고요한 마음 때문에 깨달음을 얻습니다. 위대한 선사들이 부처가 무엇이냐고 묻는 나그네의 말에 ‘뜰 앞의 잣나무’니 ‘마른 똥막대기’라고 대답했던 것도 같은 이치일 것입니다. 부처는 특별한 곳이 아니라 평범하기 그지없는 바로 지금 이곳에서 가장 평범한 언어로 법문을 펼친다는 듯입니다. <개소리>는 세상 모든 만물을 유심히 들여다보고 세상 모든 소리에 귀 기울이려는 작가의 삶의 철학이 담겨 있는 작품입니다.

 

그래서 그의 작품은 ‘일상의 고백이자 반성문’입니다. ‘산하대지(山下大地)가 일권경(一券經)’이라는 말처럼 ‘눈에 보이는 이 모든 세계가 한 권의 경전’입니다. ‘종이나 활자로 된 것이 아니라 펼쳐보아도 한 글자 없지만 항상 환한 빛을 발하고 있는 한 권의 경전’입니다.

 

그는 충북 제천에 내려가 25년째 농사를 지으면서 산하대지에게 들은 법문을 판화작품을 통해 세상에 전해주고 있습니다. 그가 들려주는 법문은 비단 자연의 소리만이 아닙니다. 농사를 지으며 몸으로 체득한 사계와 일상에서부터 우리 사회가 고민하는 문제와 국제적인 사건까지 세상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들이 선화(禪畵)속에 무르녹아 있습니다. 그의 판화법문을 듣다보면 <불구경>에서처럼 ‘불타는 집’같은 우리네 현실을 조용히 응시하고 관조하는 힘이 생깁니다. 작가가 작품을 만드는 과정 속에서 도달한 선(禪)의 경지를 우리는 감상하면서 가 닿을 수 있게 됩니다. 

 

 

<동학 연작 중 기민행렬2>, 90×154cm, 고무판, 1984년

 

#바로 우리 모두의 문제

 

작가가 전해주는 판화세계는 간결하면서도 단순합니다. 따뜻하면서도 긍정적입니다. ‘판화로 시를 쓴다’는 평가를 받고 있는 것처럼 그의 작품은 선가(禪家)의 언어 방식을 차용해 짤막하면서도 단아한 형식을 취하고 있습니다. 시와 글씨와 그림이 조화를 이루었던 전통적인 회화방식이 그의 손끝에서 현대적인 판화로 되살아났습니다.

 

그렇다면 작가가 작품을 통해 이웃들에게 하고 싶은 이야기는 무엇일까요? 그것은 세상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들이 결코 ‘이웃의 문제거나, 남의 나라 문제가 아니고’ 바로 ‘우리 문제’라는 사실을 기억하자는 것입니다. 함께 살아가는 사람들에 대한 관심과 배려는 이철수 작가가 30여년 동안의 작품 활동 중 한번도 놓쳐본 적이 없는 화두입니다.

 

1984년에 제작한 <동학 연작 중 기민행렬(飢民行列)2>이 좋은 예입니다. 작가는 <동학 연작>을 통해 평생을 손에 호미와 곡갱이만 잡고 살아온 순박한 농투성이들이 왜 죽창을 들고 목숨을 바쳐야 했는 지를 보여주면서 오늘 우리가 직면한 현실을 바로 보게 합니다. 내가 아무렇지도 않은 일상을 살고 있는 동안 누군가 곁에서 아프고 병들어 죽어간다면 그것은 나와 상관 없는 누군가의 문제가 아니라 바로 나의 문제라는 것입니다. 세상 모든 생명과 존재는 인드라망처럼 얽혀 있기 때문입니다. 각자 모두가 서로 상관없는 존재가 아니라 서로가 서로의 삶에 절대적인 영향을 미치는 그물코같은 관계입니다. 다른 사람의 문제가 곧 나의 문제이고 우리 문제라는 것을 깨닫게 될 때, 우리 모두는 세상의 머슴살이에서 벗어나 스스로가 주인이 되어 사는 주체적인 존재가 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 모든 시작은 바로 내가 내 마음의 주인이 되는 일에서부터 출발한다고 말합니다.

 

하루 일하지 않으면 먹지 않는다는 결의가 존재의 숙명이라면, 살아가는 사람의 문제를 나의 문제로 받아들이는 것은 공동체의 숙명입니다. 그 과정에서 끊임없이 옆 사람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고 심지어는 개소리도 귀담아 들어야 합니다. 그런 법문을 들으며 가는 인생. 그런 인생은 심하게 바람이 불고 길이 멀어도 결코 힘들지 않을 것입니다.

 ‘길이 멀지요?’라고 염려하는 사람이 곁에 있는 한 아무리 힘들어도 이렇게 대답할 수 있을 것입니다.

 ‘괜찮은데요 뭐......’ (조정육)

<길이 멀지요? 괜찮은데요, 뭐......>, 58×70cm, 2002년

 

 

*이 글은 『art in culture』8월호에 실린 글을 수정 보완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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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 11.10.31 14:18

    첫댓글 덕분입니다 아미타불 ㅎㅎ

  • 작성자 11.10.31 21:36

    오히려 빚은 제가 더 많은 걸요. 감사합니다.

  • 무진당님과 함께 가는 길은 참 아름답고 멋집니다 ^0^샤방

  • 작성자 11.10.31 21:36

    ㅎㅎㅎ.저는 그냥 배달부일 뿐입니다.
    멋진 소식이 담긴 편지를 전해주는 배달부요.

  • 11.10.31 23:47

    *^^* "새는 좌우의 날개가 아니라 온몸으로 난다" ~ 온 몸으로(^-^) 날고 계신 무진당님의
    비상(^^)을 ~우리 원효사 카페에서 지켜볼 수 있는 청복을 누리며, 오늘도 깊은 이해와 성찰이
    담긴 무진당님의 글 덕분에 이철수 판화 작품이 더욱 새롭고 감동적인 메세지로 다가옵니다.
    지금 이 곳에서 가장 평범한 언어로 그림과 삶의 이야기 법문을 펼쳐 주시면, 저는 깊이 귀기울여
    감동으로 충만해지고... 아름다운 동행의 기쁨을 누립니다.~ 고맙습니다! 나무아미타불()()()

  • 작성자 11.11.01 07:04

    새가 나는 작품을 넣을까, 고민했는데
    전체적으로 다른 그림과 어울리지 않을 것 같아서 뺏습니다.
    다음 기회에 올리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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