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끝마을, '피'가 냇물을 따라 흐르다 멈춰 '끝'난 곳, 충절의 고장 순흥(Blood End Village, Tragedy History) , 단종애사
경상북도 영주시 안정면 동촌1리의 다른 이름이 피끝마을이다. 조선 시대의 슬픈 역사 중 하나인 단종 복위 운동과 관련이 있다. 마을 이름은 "피"가 냇물을 따라 흐르다 멈춰 "끝"난 곳이라는 데서 유래했으며, 단종애사를 통해 유명해졌다.
이곳 피끝마을의 유래는 단종애사로부터 출발한다. 세조의 아우이자 세종대왕님의 여섯 번째 아들인 금성대군은 애초부터 세조와 뜻이 달랐다. 거사를 꾸미는 형 세조의 눈 밖에 나서 식령, 광주 등으로 유배되었다가 사육신 사건이 터지자 다시 순흥으로 유배되는 처지가 되었다.
금성대군과 이곳 순흥부 부사 이보흠이 뜻을 맞춰 단종복위의 거사를 꾸미고 있는데 시녀 김련과 관노가 격분을 빼내 밀고하는 바람에 들틍이 나 버렸다. 풍기 현감 김효급이 이 사실을 세조에게 알렸고 한명회의 6촌인 안동부사 한명진이 포졸을 풀어 순흥도호부에 불을 지르고 닥치는 대로 백성들을 무참하게 죽였다. 이 당시 순흥도호부에 살고 있던 백성들은 역모의 땅에서 살고 있다는 이유 하나로 순흥 30리 안에는 사람의 모습을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순흥 청다리 아래로 끌려가 죽음을 당했는데 이때 흐르는 피가 죽계천을 따라 십여 리 흘러 이곳 동촌 1리에서 끊어졌다하여 지금도 이 마을을 ‘피끝마을’이라 부르고 있다.
순흥은 역모의 땅이라 하여 온갖 차별을 받게 되었다. 당시 도호부였을 만큼 컸던 순흥은 단종 복위 운동이라는 사건을 계기로 폐부가 되었으며, 넓은 땅덩어리는 각각 영천(榮川), 풍기, 봉화로 갈갈이 찢겨져 통합됐다. 영주는 메밀묵 음식이 유명한데 서민들이 살기 위해 먹었던 메밀묵으로 태평초 음식을 만든건 백성들이 태평스럽게 살 수있는 세상을 기원하는 음식이었던 것이다. 금성대군이 순흥도호부사와 함께 단종 복위를 꾀하는 거사가 발각됨에 따라 순흥도호부가 폐지되고 먹을거리가 부족해지자 구황작물인 메밀에 의존하기 시작하였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