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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1013주일 [입에 올리지도 말아야 할 성적 부도덕] 김성현감독(강석준 집사님 정리)
(엡5:3-4) 음행과 온갖 더러운 것과 탐욕은 너희 중에서 그 이름이라도 부르지 말라 이는 성도의 마땅한 바니라 누추함과 어리석은 말이나 희롱의 말이 마땅치 아니하니 돌이켜 감사하는 말을 하라
하나님은 그의 영원한 사랑의 팔로 우리를 안으시고, 이 세상 사망의 골짜기를 무사히 지날 때까지 신실한 사랑으로 인도하신다.
만약 우리가 그의 보호하심과 인도하심 아래 있다면, 마땅히 그가 원하는 것을 순종하여 해야 할 것이다.
그가 원하시는 것은 우리가 해야 할 것도 있지만, 하지 말아야 할 것도 있다.
하나님의 사랑안에 거하는 우리가 하지 말아야 할 것 중 하나는 성적 부도덕이다.
[세상의 사랑은 얼마나 가치가 있을까?]
세상에서 사랑이라는 이름 아래 많은 일들이 벌어진다.
그런데, 성질이 완전히 다른 사랑도 있다.
가장 소중한 사랑, 하나님의 사랑은 아주 자주 뒷전으로 밀리기도 한다.
이 세상에서는 일반적으로 하나님의 사랑이 가장 앞에 있지 않다.
이 세상에서 사랑의 가치는 얼마나 될까.
이 세상의 사랑을 아름답다고 표현하지만, 정작 그 사랑처럼 안정되지 않고, 위험하고 파괴적인 것도 없다.
이 세상의 사랑은 처음에는 기분이 좋고, 행복한 것 같지만, 항상 위태롭다.
위기에 대단히 약하고, 불행으로 쉽게 마무리된다.
많은 사랑이 실패로 돌아간다.
실패하고, 큰 아픔을 겪었음에도, 또 여전히 새로운 사랑을 찾아서 헤매는 것이 인간의 본성이다.
또, 그것이 세상이 돌아가는 모습이다.
이 세상에 널린 사랑에 마음이 빼앗기고, 모든 정열을 투자하고 있다면, 과연 그것이 옳은 것인지 의문이다.
왜냐하면, 그리 큰 유익이 없기 때문이다.
또, 이와 성격이 다른 하나님의 사랑이 있다.
[우리를 보호하고 인도하는 절대 능력 : 하나님의 사랑]
하나님의 사랑만이 우리를 영원한 행복으로 인도하고, 보람을 가져다 준다.
우리는 자기 홀로 가지 않고, 하나님의 사랑 안에서 인생의 여정을 가고 있다. 그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
하나님의 사랑을 잊는 순간, 세상이 제공하는 사랑에 빠지게 된다.
또 반대로, 세상의 사랑에 빠지게 되면, 하나님을 자연히 잊게 된다.
이 때, 하나님은 잊혀지게 되고, 그로 인해, 우리의 영속적인 근본은 우리 안에서 위치를 잃어버리게 된다.
우리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우리안에서 의미를 잃게 되고, 우리 인생의 목표는 행방을 잃게 된다. 거짓소망에 우리 자신을 잃게 되고, 약속이 없는 길을 향해 가게 된다.
그러면, 표류하게 되고, 행복을 전혀 점칠 수 없는 길을 무작정 떠내려가게 된다.
[잃지 말아야 할 영감 : 세상을 이기는 힘]
그러면, 우리 안에서 하나님을 느낄 수 있는 감각을 잃게 된다.
세상을 향한 사랑, 부도덕한 우리 행실은 영감의 상실을 쉽게 가져온다.
하나님의 사랑안에 거하지 않는 자.
참 사랑을 하지 않는 자.
하나님이 요구하시는 사랑의 가치를 모르는 자.
이런 자들은 영감을 잃을 수 밖에 없다.
또, 하나님의 손에서 떠나있고, 하나님의 날개 아래 있어야 할 자가 벗어나면, 하나님과의 교통이 끊어진다.
우리가 신앙생활 할 때, 어쨌든 하나님의 날개 아래 있어야 한다.
그와의 연결이 끊기면, 내가 그를 뿌리치는 것이다.
자연히 영감의 상실이 오고, 이것은 연쇄적으로 자기에게 유리하지 않은 결과를 가져온다.
(고전2:12-13) 우리가 세상의 영을 받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께로 온 영을 받았으니 이는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은혜로 주신 것들을 알게 하려 하심이라 우리가 이것을 말하거니와 사람의 지혜의 가르친 말로 아니하고 오직 성령의 가르치신 것으로 하니 신령한 일은 신령한 것으로 분별하느니라
우리는 하나님이 주신 영을 통해 보아야 한다.
이 세상에 사랑이 아름답게 보인다고 해서, 거기에 마음을 두지 말아야 한다.
이 세상의 것은 하나님이 제공하신 것이 아니라, 오히려 피하도록 명하신 것이 많다.
우리가 하나님의 사랑안에 있다면, 그를 신뢰하고, 그를 따라가게 된다.
그에게 자기를 의탁하고, 우리 마음에 모셔서, 그가 우리를 견인하는 방향으로 옳게 가야 할 것이다.
하나님의 사랑으로 인도받고, 사랑안에 거하는 자들 되자.
[본문]
본문 앞에는 '그러나'로 시작된다. 하나님의 희생적 사랑에 대비하여, 반대적인 말씀이 나온다는 의미다.
지난주에는 하나님의 사랑을 받은 자 같이 하나님을 본받는 자가 되라고 했다.
하나님의 희생의 사랑에 대한 말씀이었다가, '그러나'로 시작된다.
그러나는 원문에만 있다. 우리나라 번역에는 없다.
(엡5:3) 음행과 온갖 더러운 것과 탐욕은 너희 중에서 그 이름이라도 부르지 말라 이는 성도의 마땅한 바니라
음행, 온갖 더러운 것, 탐욕을 부리지 말라.
심지어 이름도 부르지 말라.
[음행]
음행은 원래 간음이나, 성매매를 가르키는 말로 쓴다.
일반적으로 성적인 부도덕을 포괄적으로 가르킨다.
본문은 성적인 부도덕을 말한다.
음행은 결혼관계 이외에 모든 불법적인 성적 관계를 가르킨다.
성적인 죄는 하나님을 거스른다.
성적 부도덕은 하나님께서 일부러 우리에게 베푸시고, 나타내신 경건한 사랑과 반대다.
성적 부도덕은 예나 지금이나 계속 경고하고 있는 사항이다.
(고전7:2) 음행의 연고로 남자마다 자기 아내를 두고 여자마다 자기 남편을 두라
(고전 10:8) 저희 중에 어떤 이들이 간음하다가 하루에 이만 삼천 명이 죽었나니 우리는 저희와 같이 간음하지 말자
[더러운 것]
본문은 그냥 더러운 것이 아니라, 온갖 더러운 것이라고 표현했다.
금하는 행동의 내용이 상당히 확대되어 있다.
첫번째 요소인 음행보다 일반적인 단어이지만, 여전히 같은 속성을 말한다.
깨끗하지 않고, 더러운 것.
신약성경에서 더러운 것은 거의 성적인 부도덕을 말하고 있다.
성적 부도덕한 행위 뿐 아니라, 생각을 다 포함한 말이다.
(살전 4:3,7) 하나님의 뜻은 이것이니 너희의 거룩함이라 곧 음란을 버리고 하나님이 우리를 부르심은 부정케 하심이 아니요 거룩케 하심이니
(갈5:19) 육체의 일은 현저하니 곧 음행과 더러운 것과 호색과
당시 에베소 교회의 상황은 비슷한 아시아의 교회처럼 성적 타락이 교회 안까지 침범해 들어왔다.
에베소 사회는 성적인 타락이 쉽게 발생할 수 있는 환경이었다.
문란함이 만연되어 있어서, 교회는 언제든 그 위기를 눈앞에 두고 살아왔다.
당시 일부 기독교인들은 모든 종류의 성적 범죄도 하나님의 은혜를 받으면, 다 커버된다고 믿고 싶어했다.
일부 신자들은 성경의 내용을 조금 변형시켜서, 자기들의 성적 비행을 정당화 시키려고 했다.
그러나, 음행과 더러운 것은 어떤 경우라도 무시할 수 없다.
그것은 그리스도의 사랑을 배반하는 것이다.
(고전6:13,19-20) 식물은 배를 위하고 배는 식물을 위하나 하나님이 이것 저것 다 폐하시리라 몸은 음란을 위하지 않고 오직 주를 위하며 주는 몸을 위하시느니라 너희 몸은 너희가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바 너희 가운데 계신 성령의 전인 줄을 알지 못하느냐 너희는 너희의 것이 아니라 값으로 산 것이 되었으니 그런즉 너희 몸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라
몸이 내것이라고 생각하며, 내가 마음대로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주신 기회이다.
그러므로, 오늘 내가 축복의 삶을 누리고 있다.
[탐욕]
탐욕은 자신의 이익만을 추구하는 욕망이다.
문법적으로 이 단어앞에 부정관사가 있어서, 앞에 있는 단어들과 관계를 같이 하고 있다.
탐욕도 성적인 타락과 같은 맥락으로 언급하고 있다.
모든 성적 부도덕은 탐욕의 한 형태이다.
자기에게 마땅히 주어진 것을 넘어서, 더 얻으려고 하는 것도 성적 부도덕의 방아쇠 역활을 한다.
음행은 성격상 자기 중심적이다.
모든 성적 부도덕은 상당 부분에서 자기 만족을 이루려는 욕심에서 시작된다.
자기 중심적이고, 이기적인 탐욕이 표현된 것이다.
이것은 본질적으로 참 사랑, 오직 하나님 안에서 하나님을 통해 발견되는 사랑과 완전히 반대되는 성격이다.
하나님은 자기 희생의 사랑을 하신다.
하나님은 우리를 보고, 어떻하든 살려주려고 다가가는 인자한 모습이다.
이 세상에 둘러싸인 사랑은 어떻하든 우리를 이용하려는 이기적인 성질의 사랑이다.
성적 부도덕에 빠진 사람들은 다른 사람들을 자기 만족을 위해 존재하는 것으로 보고 있다.
자기도 모르게 그렇게 본다.
사실 자기 희생양을 찾고 있다.
이것은 참 사랑이 아니다.
사랑이라는 주제를 갖고 나타나니까, 아름다운 사랑으로 가면을 쓰고 있다.
겉으로는 매력적이고, 장래가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 안에 본질적인 이기심을 만족시키려고 한다.
인간의 성적 본능 때문에, 성적 죄는 더 깊은 곳으로 끌고간다.
성적 죄는 외부에서 막지 않으면, 한없이 빠져들어가고, 나중에는 무감각하게 완전한 타락으로 갈 수 있다.
그런 중에는 다른 사람의 행복이나 감정은 전혀 고려하지 않게 된다.
자기 만족을 위해 가기 때문이다.
[위조된 사랑]
이런 것을 일컬어 위조된 사랑이라고 말할 수 있다. 진짜 사랑은 아닌 것이다.
하나님이 무엇을 세우든, 사단은 비슷한 것을 세우되, 성질은 반대인 것을 세운다.
하나님은 참 사랑을 세우려고 하는데, 사단은 위조된 사랑을 세우고, 사람의 마음을 얻으려고 한다.
우리는 이 세상의 많은 사랑을 보고 있다.
사랑을 하기는 하는데, 사랑하는 대상이 매력적이고, 좋기 때문에 하는 것이다.
그것은 댓가를 가지고 사랑하는 것이고, 그로 인해 욕망이 일어난다.
이것은 내가 욕망하는 것을 남을 통해 채우려는 것을 기반으로 하고 있다.
세상의 사랑은 상호적이다.
조건이 없으면, 절대 되지 않는다.
그러면서도, 결국은 나는 조금 주고, 더 많이 받을 것을 기대한다.
직접적으로 성적 부도덕에 대해서 말하는 것은 아니지만, 세상의 것에 대해서 예수께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마5:46) 너희가 너희를 사랑하는 자를 사랑하면 무슨 상이 있으리요 세리도 이같이 아니하느냐
세상은 사랑을 원한다고 주장한다. 대단히 건전하게 보인다.
또, 사랑을 찬미하는 것은 너무나 흔한 일이다.
소위 우리가 보는 낭만적 사랑이다.
TV에서도 사랑을 소재로 많이 만든다.
사랑에 대한 욕망이 있는 자들을 찾아다니면서, 접착되어, 그를 착취한다.
그것에 대해, 나쁘다고 할 수 없다. 세상은 그냥 그렇기 때문이다.
그러면서, 사람들은 완전한 사랑을 찾아다닌다.
정말 사랑하는 사람을 만났으면...
사랑을 인생의 최고의 체험으로 여긴다.
자기 앞에 인생이 한참 남았는데도, 다 버리고, 궁극적인 목표, 사랑하는 사람을 찾아간다.
이것은 근본이 잘못된 사랑이다.
이것은 불가피하게 많은 성적 부도덕을 거쳐야 하고, 머지 않아, 허상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그래서, 그 헛됨을 인해 좌절하게 되고, 삶 자체가 파탄으로 갈 수 있다.
그래서, 또 다른 것을 찾아다닐 수 있지만, 반복적으로 부질없는 것에 다가가는 미련한 일이다.
여기서 우리가 고려할 것은 세상에서 제공하는 그런 사랑에 마음을 다 주고나면, 자기 속에서 하나님이 떠나 있다는 것을 발견하게 된다는 것이다.
그러면, 자기 중심에서 하나님은 자리를 빼앗기고, 밀려나서, 더 이상 하나님이 없는 공허한 상태임을 알면서, 그대로 가게 될 수 밖에 없다.
그런 사랑은 본질이 이기적인 성질에 있다.
어떤 보호장치나 책임이 있는 것이 아니라, 사랑의 대상에게 모든 에너지를 빼앗겨서 위험하다
아름다운 것 같지만, 속이는 것이다.
자기에게 걸맞지 않은 이름으로 다가가 연약한 희생자를 찾는다.
그런 것에 빠지면, 너무 위험하다.
세상의 그런 사랑, 낭만적 사랑은 사랑이라기 보다, 미움이라고 할 수 있다.
이 사랑은 나의 욕심을 채우기 위해, 사람의 순수함을 이용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런 세상의 사랑은 근본이 이기적이기 때문에, 접근하는 동기 자체가 희생적인 것과는 관계가 없다.
언제나 자기 중심적이고, 조건적이다.
이런 사랑은 내가 어떻게 정열을 바치는 것에 관심이 없다.
내가 무엇을 얻을까를 생각하고 있다.
주는 것에는 관심이 없고, 있을지라도 아주 적다.
그 주는 것도 받기 위해 주는 것이다.
결국 받는 것에 많은 관심이 있다.
또한 세상의 사랑은 영구적이지 않다.
세상의 사랑의 목적은 겉으로 아름답게 포장하여, 그 사랑을 원하는 사람에게 너무 아름다운 모습이기 때문에, 그 목적을 추궁하지 않는다.
그러나, 그런 세상의 사랑은 이기적인 근본이 있기 때문에, 베풀고, 돕기보다, 이용하고, 착취하는 모습밖에 포착이 되지 않는다.
그런 사랑은 사랑받던 대상이 자기를 만족시킬 때까지만 진행된다.
더 이상 매력이 없다면, 그 대상은 나를 버리고, 다른 상대를 찾아 떠날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마술의 힘에 이끌려, 계속 끌려간다.
이미 착취되고 있는데도, 또 다른 것을 찾아 다닌다.
사단은 이런 사람의 약점을 잘 다루어, 세상을 지배한다.
[그 이름이라도 부르지 말라]
그러나, 성경은 분명히 행위는 물론, 이름도 부르지 말라고 했다.
(엡5:3) 음행과 온갖 더러운 것과 탐욕은 너희 중에서 그 이름이라도 부르지 말라 이는 성도의 마땅한 바니라
세상의 사랑의 부산물은 음행, 온갖 더러운 것, 탐욕이다.
성도라면, 이런 것을 이름도 부르지 말라.
그리스도인은 이런 행위를 하지 말 뿐 아니라, 말로도 하지 말라.
이것은 에베소 교회에서만 나오는 것이 아니라, 구약 때부터 계속 해 온 말이다.
(출23:13) 내가 네게 이른 모든 일을 삼가 지키고 다른 신들의 이름은 부르지도 말며 네 입에서 들리게도 말지니라
이름이라도 부르지 말라는 것은 이미 구약에서 나온 말씀이다.
바울의 명령은 에베소 교회에게는 굉장히 강력하면서, 충격적인 말씀이다.
에베소는 아데미를 믿는 신앙의 중심지였다.
로마식으로는 다이애나라는 여신인데, 성적으로 굉장히 타락했다.
그 종교는 의식 자체가 성적 문란을 포함하고 있다.
외부인이 보기에 거룩하고, 의로워야 하는데, 더러운 모습을 승화시켜서, 그 사회의 타락을 더 부추긴다.
그래서, 에베소 교회의 성도들도 자꾸 보다보니, 익숙해졌다.
완전히 왜곡된 사랑이 지배하는 사회에서, 바울은 그 일들을 금하고 있고, 심지어, 그 이름도 부르지 말라고 하고 있다.
우리가 추측할 수 있는 것은 당시 그런 성적인 죄가 대화에서 농담거리가 되고 있었던 것 같다.
만약 그것이 제재받지 않는다면, 말하다가 실제로 할 수도 있는 분위기다.
성도라면, 당연히 그래서는 안된다.
[확대된 죄의 목록 : 빠진 것이 없이 촘촘하게...]
(엡5:4) 누추함과 어리석은 말이나 희롱의 말이 마땅치 아니하니 돌이켜 감사하는 말을 하라
이제 앞의 세개의 요소에 세개의 요소를 더해 확대된다.
앞에는 행위의 요소로 구성되었는데, 이제는 누추함, 어리석은 말, 희롱하는 말을 금하고 있다.
누구도 피할 수 없는 부분이다.
[누추함]
누추함은 우리나라에서 집이 초라하다는 의미로 쓰는데, 그런 의미보다, 부끄럽고, 수치스러움, 비열하고, 천한 것을 말한다.
문맥을 보면, 저급하고, 속된 말을 하는 것을 표현한다.
외설, 음란한 말, 듣기에 부끄러운 말이다.
[어리석은 말]
어리석은 말은 수준낮은 말, 저질스러운 말이다.
[희롱의 말]
희롱의 말은 원래 좋은 뜻에서 쓰는 단어인데, 여기는 도저히 좋게 볼 수 없는 말이다.
희롱의 말은 어떤 말이 나올 때, 동기를 바꾸어 웃기는 말로 바꾸는 것이다.
주로 머리 좋은 사람들이 빗대어 다른 식으로 한다.
여기서 가르키는 것은 그런 경우이기는 한데, 성적인 것을 연상하도록 말을 잽싸게 바꾸어 사람들에게 웃음거리를 주는 것을 말한다.
오늘날 성희롱도 여기에 해당된다.
하지 말아야 한다.
성적인 문제가 오락거리가 되어서는 안된다.
오락거리가 된다면, 성적인 타락을 피할 수 없다. 주변을 오염시키고, 많은 사람을 타락시킨다.
그리스도인에게는 영감을 잃기 때문에, 대단히 심각한 문제다.
성적 희롱, 타락, 도착, 벌을 받지 않는다고 괜찮다고 생각하면서, 대화의 소재로 삼으면 안된다.
이런 말씀이 우리에게 아주 큰 중대사는 아닐 수 있지만, 하나님의 말씀이 분명히 명시하고 있기 때문에, 선포하고 있다.
[감사하는 말을 하라]
이제 더러운 것이 가득한 사막에서 시원한 오아시스같은 말이 나온다.
감사하는 말을 하라.
행위는 말할 것도 없고, 더럽고, 추하고, 죄악된 말을 삼가고, 감사하는 말을 하라.
너희 입술을 통해, 하나님의 충만한 사랑, 은혜에 대해서 말하는 것이 마땅한 도리다.
(골2:7) 그 안에 뿌리를 박으며 세움을 입어 교훈을 받은 대로 믿음에 굳게 서서 감사함을 넘치게 하라
하나님은 이렇게 교회를 세우고, 우리 믿음을 키워주시는데, 감사가 가득해야 하는 것을 당연히 요구하고 있다.
(골3:15) 그리스도의 평강이 너희 마음을 주장하게 하라 평강을 위하여 너희가 한 몸으로 부르심을 받았나니 또한 너희는 감사하는 자가 되라
이상한 일이 아니다. 신자는 감사하는 자들이다.
[하나님의 사랑을 아는 자의 겸손]
하나님의 사랑이 당연한 것이 아니라, 은혜임을 알고, 감동하는 심령이 감사한다.
더우기 하나님의 자녀까지 되었으니, 감사하는 것이 마땅하다.
신자의 참 모습은 감사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기적인 자, 사랑이 없는 자는 감사하지 않는다.
감사하지 않는 자는 자기가 받을 자격이 있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마음이 너무 타락한 자는 여간해서 감사하지 않는다.
자기가 받은 은혜를 모른다.
남을 속이고, 얻을 것만 생각한다.
이런 사람은 하나님을 진실하게 섬길 마음의 공간이 없다.
이런 면에서 나는 사람들이 일찍 예수 믿는 것이 대단히 중요하다고 본다.
일찍 믿어서, 하나님을 믿는 공간이 커야 한다.
세상에서 너무 거칠게 살다가, 늦게 예수 믿으면, 하나님을 모실 수 있는 공간이 없다.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께 받은 큰 사랑으로 인해, 내가 마땅히 받을 사랑을 받았다고 계산할 수 없다.
하나님께 받은 것은 내가 받기에는 과분하다고 본다.
정확하게 잘 보는 것이다.
받은 것에 대해 은혜롭게 여기니까, 감사할 수 밖에 없다.
이런 사람은 다른 사람을 존중한다.
나 같은 사람에게도 은혜가 베풀어 졌는데, 다른 사람에게 안베풀 수 없다.
너그러워진다.
하나님은 무리한 것을 요구하는 것이 아니라, 자연스러운 것을 요구하신다.
네가 받은 것을 생각하라. 너도 다른 사람을 받으라.
이런 사람은 다른 사람을 이용하는 자가 아니라, 존중하는 자가 된다.
이런 사람은 깨진 것을 치료하고, 악한 것이라도 아름답게 만들려고 한다.
항상 감사하는 사람. 이 사람이 가진 삶은 거룩한 삶이다.
이 사람은 그 삶을 좋게 생각한다. 감사한다.
내가 사는 삶은 거룩한 삶이다.
사람들은 감사하는 그리스도인을 통해 하나님을 발견한다.
감사하는 사람은 하나님에 대한 태도도 다른 사람에게 나타낼 수 있다.
(살전5:18) 범사에 감사하라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
어떤 자세일까. 인생 전체가 하나님께 감사하는, 감사로 만들어 나가는 매걸음이다.
이것이 너희 본성이다.
[만물의 근원이신 하나님을 인정하는 마음]
세상의 욕심에 대한 독소는 어디든 있다.
굉장히 아프게 하고, 사람을 일어서지 못하게 만드는 독이다.
세상에서 살다보니, 독소를 제거할 곳이 필요하다.
하나님께 감사하라. 치료될 것이다.
본문에서 물어보는 진정한 질문이 있다.
너의 마음에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이냐?
네 마음에 가장 중요한 것은 하나님이냐? 아니면, 네 육신의 욕심을 채우는 것이냐?
세상을 통해 만족을 얻기 원하는가, 하나님을 얻기 원하는가.
내게 무엇이 중요한가.
이것은 분명히 결단해야 한다.
내게 가장 중요한 것, 궁극적인 것이 무엇인가.
창조주 하나님.
이 세상을 계속 운영하고, 유지하는 그분.
만물의 근원이신 분을 중심에 두는 것이 너무 마땅하다.
하나님은 군림하시기보다, 이기심 없는 사랑으로 다가와서, 모든 복을 아낌없이 주시고, 자녀로 삼아주셨다.
시대가 흐르더라도, 변함없이, 처음부터 알려주셨던 거룩한 예배는 인생 자체다.
인생자체가 예배를 드리는 것이다.
(롬12:1) 그러므로 형제들아 내가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사로 드리라 이는 너희의 드릴 영적 예배니라
시간을 드리고, 내 몸을 드리는 것이다.
나의 삶, 나의 중심이 하나님께 바쳐져야 한다.
[신앙은 마음으로부터의 감사]
제일 중요한 것은 내가 영감이 있는가 없는가이다.
온갖 성적 부도덕에 빠지면, 영감이 떨어진다.
빠졌기 때문에, 헤어나올 수 없으면서, 자기가 영감이 없는 것도 안다.
알면서도, 여전히 세상의 사랑을 따라간다.
이 사람은 하나님의 인도를 받기 벅찬 것을 자기 스스로 알고 있다.
우리 영감을 지키는 것은 대단히 중요하다.
에베소서는 그리스도인의 삶의 원칙을 나열한 헌법과 같다.
하나님의 은혜를 받은 자에게 감사는 그리스도인의 삶이나 마찬가지다.
(살전5:18) 범사에 감사하라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
(고후4:15) 모든 것을 너희를 위하여 하는 것은 은혜가 많은 사람의 감사함으로 말미암아 더하여 넘쳐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하려 함이라
헌신을 왜 하는가.
오늘도 사랑해주시는 하나님께 감사해서.
(고후9:11-12) 너희가 모든 일에 부요하여 너그럽게 연보를 함은 저희로 우리로 말미암아 하나님께 감사하게 하는 것이라 이 봉사의 직무가 성도들의 부족한 것만 보충할 뿐 아니라 사람들의 하나님께 드리는 많은 감사를 인하여 넘쳤느니라
감사하지 않는 자는 영감이 없다.
미련한 마음이 덮어졌다.
(롬1:21) 하나님을 알되 하나님으로 영화롭게도 아니하며 감사치도 아니하고 오히려 그 생각이 허망하여지며 미련한 마음이 어두워졌나니
(롬14:6) 날을 중히 여기는 자도 주를 위하여 중히 여기고 먹는 자도 주를 위하여 먹으니 이는 하나님께 감사함이요 먹지 않는 자도 주를 위하여 먹지 아니하며 하나님께 감사하느니라
감사는 우리 신앙을 잘 이끌고 가는 중요한 길잡이다.
(골1:12) 우리로 하여금 빛 가운데서 성도의 기업의 부분을 얻기에 합당하게 하신 아버지께 감사하게 하시기를 원하노라
우리가 입을 벌릴 때, 감사하고, 하나님께 인도받고, 보호받는 자들 되자.
우리를 받아주시되, 우리를 거룩하게 하시고, 영감을 허락하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