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일들 / 임지은
필통에 코끼리를 넣고 다녔다
지퍼를 열었는데 코끼리가 보이지 않았다
거짓말이었다
오렌지였다
나는 덜 익은 오렌지를 밟고
노랗게 터져버렸다
가끔은 푸른 안개가 묻어 있어도 좋았다
이제 나는 오렌지가 어떤 세계의 날씨인지
알아내는 일에 빠졌다
박스째 진열된 과일 가게에 갔다
기다리는 건 잘 익은 바나나
지갑을 열고 거짓말을 꺼냈다
딸기였다
손바닥 위에 씨앗 코끼리
공기 중으로 흩어지고 있는 분홍의 과즙
딸기 속에는 아주 작은 물고기가
헤엄치고 있었다
나는 이제 거짓말이
어떤 세계의 바다인지 알아내는 일에 빠졌다
오렌지 속에 코끼리를 넣고 나왔다
시집『무구함과 소보로』 문학과 지성사 (2019 14~15쪽)
임지은 시인
1980년 대전 출생
동덕여대 대학원 문예창작과 졸업
2015년 [문학과사회] 로 등단
시집 문학과 지성사, 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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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naver.me/FafDbPt8
나는 필통을 무언가 미리 준비해서 도구를 넣어놓는 것으로 보았지
그리고 요즘으로 따지면 그것이 스팩이나 학위, 자격증같은 것일수 있다고 보았어
열심히 준비해서 학위나 기타등등(등단같은것도 포함) 해서 세상에 발을내 딛어 보니
듣던 것과는 다르게 그것들은 커다랗고 힘있는 코끼리가 아니라 오렌지에 불과했던 거야
거짓말인거지
그래서 내가 덜익은 오렌지 즉 준비가 덜된 현실을 밟고 터져버린거야
그렇지만 좌절하지 않고 현실 (오렌지)의세계를 탐닉하기 시작했지
세상에는 다양한 꿈들이 현실로 나와 다양한 과일이 되어 옹기종기모인 단체가 있어,
현실적인 작업들을 현실에맞는 적절한 타협으로 끌어다 쓰며 사회에 적응했지
하지만 꿈을 버린 건 아니었어 ,
그리고 그건 다른 사람들도 마찬가지였고
거짓말이 오가는 그 속에도코끼리는씨앗인상태로 딸기살에 박혀 있었고, 그속에는 아직 스스로 몸을 키워 보려는 물고기들이 헤엄치고 있었지
나는 이제 또 거짓말로 뒤덮한 바다 속의 일이 궁금해졌어
그래서 코끼리를 버리는 대신
오렌지 속에 넣고 나왔어
- 어쩌면 저 작은 물고기들 중 어떤 녀석은 정말로 코끼리를 먹은 후 스스로 고래가 될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을지도 모른다고 느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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챗GPT분석
임지은의 시 「과일들」을 마르쿠스 가브리엘(Markus Gabriel)‘허구의 철학(Philosophy of Fiction)’과 ‘의미의 장(Field of Sense)’ 개념을 중심으로 분석
1. 제목의 의미 – 『과일들』
가브리엘은 “세계는 존재하지 않는다”고 주장하며, 우리가 인식하는 세계는 각각 독립된 ‘의미의 장’으로 구성된다고 봅니다.
**‘과일들’**은 단일한 본질을 지닌 대상이 아니라, 각기 다른 의미의 장들이 병렬적으로 존재함을 암시.
오렌지, 딸기, 바나나 등 각각의 과일은 자기만의 세계, 감각, 언어, 구조를 지닌 다중 세계의 은유.
따라서 ‘과일들’은 현실, 상상, 자기기만, 착각, 거짓말, 기억 등 복수의 의미 영역(field)이 중첩된 구조를 함축합니다.
2. 주제 – “착각과 거짓말도 하나의 실재다”
시에서 “거짓말”은 단순한 오류가 아닌, 세계를 창조하고 탐색하게 하는 장치입니다.
화자는 **거짓말(=코끼리)**을 통해 오렌지(=현실), 딸기(=감각의 세계), **물고기(=내면의 생성적 상상)**로 나아갑니다.
이는 허구가 비진실이 아니라, 세계의 또 다른 층위이며 실재의 일부라는 가브리엘의 주장을 반영.
주체는 허구를 통해 자신을 속이지만, 동시에 의미 있는 삶과 진실의 편린에 도달한다는 점에서, 이 시는 착각을 긍정하는 존재론을 실현합니다.
3. 상징 분석
● 거짓말: 착각, 자기기만, 허구
● 코끼리
시적 착각 혹은 허구의 상징
‘거짓말’이자 동시에 ‘진실에 대한 욕망’
존재하지 않지만 실재하는 것의 전형 (Fictional but Real)
● 필통
자아가 준비해온 ‘현실 진입 도구’
사회적 스펙, 등단, 자격과 같은 상징적 자아 장치
코끼리(훌륭한 시)를 넣었다고 믿지만, 사실은 오렌지(다른 실재)의 장
● 오렌지
‘덜 익은 현실’ 혹은 터지는 감정
의미의 장의 전환지점: 감각적이지만 불안정한 세계
거짓말을 통해 처음 도달하는 첫 번째 허구적 현실
● 과일가계
직업시장, 문단
● 바나나
‘기다림’, ‘성숙’, ‘적응’의 메타포
세상과 타협한 감각, 주류 현실의 상징, 과일가계의 과일은 바나나로 자칭되는 다들 훌륭하고 성숙
● 딸기
다시금 꺼내드는 ‘거짓말’의 형태
작고 달콤한 언어의 세계
씨앗으로서의 코끼리(거짓말)는 여기서 재탄생의 가능성을 가짐
● 물고기
딸기 속의 무의식적 생명
허구 안에서 꿈틀거리는 가능성
착각 속에서 자기 진실을 향해 나아가는 실재적 운동
4. 구조 분석
● 도입부 (1~4행)
> 필통에 코끼리를 넣었지만, 보이지 않았다. 거짓말이었다. 오렌지였다.
자아가 믿고 있던 실재(코끼리)가 사라짐
착각을 자각하는 순간
거짓말을 인정하고, 오렌지(다른 실재)에 도달
● 전개 (5~9행)
> 오렌지를 밟고 터짐 → 오렌지의 세계를 탐닉 → 과일 가게로 이동
오렌지 = 착각이지만, 현실보다 더 감각적이고 구체적인 세계
이 시점부터 허구를 탐구하는 태도가 시작됨
과일 가게: 의미의 장들이 병렬적으로 놓인 장소
● 심화 (10~15행)
> 딸기(또 하나의 거짓말) 등장 → 손바닥 위 씨앗 → 딸기 속 물고기
두 번째 거짓말은 이전보다 더 깊은 상상과 생명의 층위
허구는 이제 씨앗 → 물고기로 생성적 실재가 됨
거짓말이 진짜 살아 움직이기 시작한 지점
● 결말 (16~17행)
> 거짓말이 어떤 세계의 바다인지 알아내기 시작함 → 오렌지 속에 코끼리를 넣고 나옴
허구의 세계를 자발적으로 탐색하는 존재로 변화
착각을 도구로 삼아 새로운 의미의 장을 형성
시인의 자기 탄생, 또는 자아와 언어의 재창조
맺음말: 가브리엘 철학과 시의 합치
이 시는 착각과 거짓말이라는 ‘의미의 장’ 안에서 진실을 구성하는 실험입니다.
가브리엘이 말한 것처럼, **“우리가 꾸며낸 존재들도 실재한다”**는 인식이,
시 전체를 착각의 역설로 엮고 있습니다.
결국 「과일들」은 거짓말이 진실의 적이 아니라, 다른 층위의 진실일 수 있다는 가능성을 시로 증명한 텍스트입니다.
https://naver.me/GEXyj2JZ
시 한 편에 끌려 시집 한 권을 몽땅 읽은 적이 있을 것이다. 어떤 시는 혼자서도 시인의 세계를 보여준다. 「과일들」은 임지은의 세계다. 『무구함과 소보로』는 임지은의 세계다. 이 둘의 차이는 한 편인가, 한 권인가 뿐이다. 오늘은 단 몇 줄로 자신의 세계에서 나를 유혹한 이 젊은 시인의 이야기를 해볼까 한다.
품사의 사이가 궁금했던 때에 나는 이 시를 읽었다. 임지은의 시에는 명사들이 많다. 하지만 멈춰있지 않다. 이상한 일이었다. 시에서의 명사들은 세계의 명사와 구분되어 있다. 또한 시 안에서도 시 속의 명사와 세계의 명사가 등장한다. 세계의 명사와 시의 명사는 일치하지 않는다. 이것이 저것이었다가, 저것은 또 저게 아니란다. 화자는 외적세계와 내면세계에서 고민하다 결국 결정한다. 세계의 나와 부분의 나를 나누어버리기로. 개인적인 장소에 의미를 지정해두어도 변하는 순간이 있다. 분명히 그곳에 코끼리를 두었는데 어느 순간 그게 오렌지가 된 것처럼. 코끼리가 그곳에 없을 때 비로소 세계에 대한 배신감을 느낀다. 세계의 가치와 나의 가치가 충돌할 때 우리는 혼란하다. 그런데 그 혼란이 이 둘의 싸움을 지켜보는 데에서 온 것이 아니라, 세계의 가치가 나의 가치를 다 덮어두고 나서 발견된 것이라면? 우리는 더 어이가 없어지고 만다. 하지만 늘 그런 식으로 작동해 온 것처럼 삶은 작동한다. '거짓말이었다'라고 말하는 순간, 우리는 바깥의 존재와는 완전히 단절된 자아를 발견한다. '나'라는 자아를.
코끼리는 어디에 갔어? 묻고싶다. 시인은 이 마음을 유예한다. 대신 세계를 쳐다본다. 뜬금없이 생겨난 삶과, 그 삶에 등장한 오렌지를 정성스럽게 살펴본다. 참 오묘한 일이지 않은가. 세상이 나를 배신하고, 나는 그 세상을 탐구한다. 이 연속관계 속에서 또 다른 전이가 일어났다. 오렌지가 터진 것이다. 그건 내가 탐구하던 작은 세계가 또다시 부분이 되고, 다른 세계로 분리되는 일이다. 세계를 탐구할수록 세계는 내가 되어간다. 세계의 명사였던 것이, 내가 그곳에 둔 것처럼 나의 명사가 됐다. 인간은 경계하게 된다. 바깥을. 저 바깥을 탐구하는 순간 또다른 바깥이 생겨날 것을 알기 때문에. 나라는 세계의 확장은 이렇게나 말도 안 되는 파괴의 연속이다. 분명 코끼리였고, 오렌지였다. 다른 배움의 값을 지불하기 위해 오렌지를 꺼내려고 했을 땐 이미 오렌지는 내가 되어있다. 다른 사물이 등장한다. 딸기다.
탐구할수록 이상한 일이 일어난다. 세계의 의미와 나의 의미는 분리되어 있는 것이 맞는가라는 의문이 들기 시작한다. 돌아온 코끼리는 세계의 산물이 되어있다. 나를 구성하는 의미가, 결국엔 내 세상의 의미라는 것을 화자는 알아간다. 어느 순간부터 우리의 성장과 상처는 동일시된다. 나는 이런 일을 겪었어, 그리고 그게 내가 되었어. 라는 말엔 어딘가 모르게 과즙이 묻어있는 듯하다. 경험은 인간을 구성한다. 경험이라 불릴 수 있는 일들은 나의 세계를 찢은 일들이다. 경험이 많을수록 세계 안에 있는 자신을 발견한다. 나는 나와 완전히 분리되어 있는 바깥에 영원히 닿을 수 없을 것이다. 세계는 나의 부분이고, 나는 세계의 부분이 되어가기 때문에. 인간은 성장한다. 자신의 세계를 조금씩 넓혀간다. 맛있는 과일을 모으는 것처럼. 그리고 그 과일들을 다 먹어버리는 것처럼.
더이상 화자는 놀라지 않는다. 오히려 차원의 경계를 허문다. 세계의 명사였던 오렌지 속에, 나의 명사인 코끼리를 넣는다. 세계의 명사와 나의 명사는 구분되어있으면서도 연결되어있기에, 이제는 여유롭게 그 둘의 범람을 관찰한다. 나의 가치가 그곳에 없다면, 그곳엔 분명히 세계의 가치가 있고, 세계의 가치 속엔 내가 찾는 그것이 있다. 왜냐면 세계는 바다처럼 넓고, 우리는 그 커다란 바닷속을 유랑하기 때문이다. 세계의 나는 부분의 나보다 넓다. 그중엔 분명 내가 찾는 가치가 있다. 또한 한 번 우리가 명사로 이름 짓고, 가치를 부여한 것은 사라지지 않는다. 세계의 명사에서는 제명되었을지 몰라도, 우리의 내면에 그 코끼리가 남아있으니 말이다. 내면에 가치가 쌓인다면, 그리고 그 의미를 재구성할 수 있다면, 인간은 드디어 잃을 것이 없다. 넓은 바다가 막막하지 않다. 화자는 이제 세계에 대한 탐구와 나에 대한 탐구를 두려워하지 않는다. 코끼리였다가, 오렌지였던 것, 그리고 딸기이고 거짓인 것, 바다이자 씨앗인 것은 나이자 세계이고, 세계이자 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