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은 남자와 여자, 두 사람이 함께 만드는 새로운 경험이다. 반드시 두 사람이 합작으로 만들어내는 작품이다. 그래서 사랑은 공동체의 산물이며, 동일한 경험의 공유라고 정의된다. 혼자 피아노를 치거나, 나체화를 그리는 작업과는 전혀 다르다. 반드시 살아 있는 대상과 함께 몸과 마음이 움직여야 사랑이라는 작품이 만들어진다.
그 사랑이 완전하든, 불완전하든, 사랑은 두 사람이 함께 힘들어하고, 눈물을 흘리며, 고통스러워하면서 만들어내는 것이다. 사랑은 두 사람이 같이 만들어가면서도 열정에 있어서는 차이가 있다. 그 사랑에 대한 의미와 동기 또한 차이가 있다. 사랑을 느끼고 받아들이는 감정 역시 다르다. 주는 사랑과 받는 사랑이 구별되기도 한다. 그래서 불가사의하다. 사랑에 이르는 과정도 그렇지만, 일단 어느 정점에 이른 사랑의 변화도 마찬가지다.
‘슬픈 카페의 노래’는 카슨 매컬러스가 쓴 소설이다. 우리나라에는 장영희 교수가 번역해서 소개한 바 있다. 이 소설은 사랑의 본질은 받는 것이 아니라 주는 것에 있다는 사실을 극명하게 보여준다.
“선한 사람이 폭력적이면서도 천한 사랑을 자극할 수도 있고, 의미 없는 말만 지껄이는 미치광이도 누군가의 영혼 속에 부드럽고 순수한 목가를 깨울지도 모른다. 그래서 어떤 사랑이든지 그 가치나 질은 오로지 사랑하는 사람 자신만이 결정할 수 있다.”
“인간이 왜 나쁜 사랑에 그렇게 매혹되는 줄 알아? 절정에서 시작되기 때문이지.” 카슨 매컬러스의 말이다.
"행복한 가정은 모두 모습이 비슷하고, 불행한 가정은 모두 제각각의 불행한 모습을 가지고 있다" 톨스토이가 소설 안나 카레니나에서 한 말이다.
사랑은 언제나 감성이 절정에 이른 상태에서 시작된다. 그래서 사랑은 아름답게 받아들여진다. 그러므로 평범한 마음의 상태에서는 사랑은 절대 싹트지 않는다. 그것은 사랑이 아닌 성적 유희에 불과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