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편의정책의 강화』
손병흥
장애는 개인의 불편이 아니라, 사회가 함께 풀어야 할 구조의 문제다. 그래서 편의는 배려가 아니라 권리이고, 접근성은 시혜가 아니라 기본 질서다. 「장애인·노인·임산부 등의, 편의증진 보장에 관한 법률 시행령」의 최근 개정 흐름은, 바로 이 점을 다시 확인시켜 준다.
이번 개정은 단순히 시설 몇 곳에 경사로를 더 놓고, 표지판 몇 개를 바꾸는 행정적 조치에 그치지 않는다. 그것은 우리 사회가 누구를 ‘정상’으로 상정해 도시를 설계해 왔는지, 그리고 그 기준이 얼마나 오래 배제와 불편을 낳아 왔는지를 되묻는, 일종의 제도적인 성찰에 가깝다.
오랫동안 우리 사회의 공간은, 건강한 성인 비장애인을 기준으로 설계되어 왔다. 계단은 당연했고, 턱은 사소했으며, 좁은 출입문과 급한 경사는, “조금 불편할 뿐”인 문제로 치부되곤 했다.
그러나 휠체어 이용자에게 계단은 벽이고, 시각장애인에게 무표지 공간은 위험이며, 고령자에게 작은 턱 하나는 낙상의 원인이 된다. 임산부에게는 짧은 동선조차도 큰 부담이 될 수 있다. 결국 편의시설은 특정 집단만을 위한 특별한 장치가 아니라, 누구나 안전하고 존엄하게 이동하고 이용할 수 있도록 만드는, 우리 사회의 최소한의 문법이다.
이번 시행령 개정의 핵심은, ‘시설 설치 의무’의 확대보다 ‘접근권의 실질화’에 있다. 법은 더 이상 편의시설을 형식적으로 설치하는 데 머물지 않고, 실제 이용 가능한 수준의 접근성을 요구하고 있다. 이는 매우 중요한 변화다. 과거에는 법 기준을 충족했다는 이유만으로, 현실의 불편이 외면되는 경우가 많았다. 경사로는 있지만 지나치게 가파르고, 장애인 화장실은 있지만 창고처럼 쓰이며, 비록 장애인전용주차구역이 지정되어 있지만, 비장애인 차량이 버젓이 점유하는 일이 비일비재했다. ‘있다’와 ‘쓸 수 있다’는 전혀 다른 문제인데, 이제 법은 그 간극을 줄이려는 방향으로 움직이고 있다.
특히 장애인전용주차구역의 부정 사용과, 방해 행위에 대한 규정 강화는 상징성이 크다. 이는 단순한 주차 질서의 문제가 아니라, 사회적 인식의 민낯을 드러내는 장면이기 때문이다. 장애인전용주차구역을 비워 두는 일은 양보가 아니다. 그것은 그 자리가 원래 그 사람의 권리임을 인정하는 일이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여전히 많은 사람들은, 장애인 주차구역을 그저 ‘잠깐이면 괜찮은 공간’ 정도로 여긴다. 이 왜곡된 인식은 장애를 권리의 문제로 보지 않고, 여전히 동정과 배려의 대상으로만 보기 때문에 생긴다. 법은 이를 과태료와 회수 조치로 통제할 수 있지만, 궁극적으로 바뀌어야 할 것은 시민의 인식이다.
이처럼 장애인 편의정책은, 결코 장애인만을 위한 정책이 아니라는 점도, 분명히 인식할 필요가 있다. 고령화 사회로 접어든 한국에서, 노인 접근성은 곧 모두의 미래다. 임산부와 유아차 이용자를 위한 공간은, 돌봄 친화 사회의 기본 인프라다. 수어 통역, 점자 안내, 음성 유도, 무장애 동선은, 소수의 특혜가 아니라 다수의 안전망이다. 누구나 점차 나이가 들고, 누구나 일시적 약자가 될 수 있으며, 누구나 이동약자가 될 가능성을 가진다. 결국 편의시설은 소수 보호가 아니라, 모두를 위한 사회적 보험에 가깝다.
제도의 진전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제아무리 법이 앞서가도 인식이 따라오지 못하면, 그 현실은 쉽사리 바뀌지가 않는다. 장애인 화장실을 창고로 쓰고, 점자블록 위에 물건을 쌓거나, 경사로 앞에 오토바이를 세우는 사회에서, 법 조문은 너무 쉽게 무력화가 된다.
그래서 필요한 것은 단속 강화만이 아니라, 시민교육의 일상화다. 학교에서부터 접근성과 공존의 감각을 배우고, 공공기관과 민간사업장은 편의시설을, 비용이 아닌 기본 책임으로 받아들여야 한다. 언론 역시 장애를 ‘안타까운 사연’으로 소비하는 관성에서 벗어나, 권리와 환경의 문제로 다루어야 한다.
이와같이 진정한 선진사회는 약자를 얼마나 동정하느냐가 아니라, 약자가 도움을 구하지 않고도 살아갈 수 있도록, 과연 어떻게 사회를 설계하느냐로 그 평가를 받는다. 장애인·노인·임산부를 위한 편의시설은, 복지의 부속물이 아니라 문명 수준의 지표다. 이번 시행령 개정은 우리 사회가 그 기준을, 조금 더 높이겠다는 선언이다.
이제 남은 과제는 법의 문장을, 현실의 문화로 바꾸는 일이다. 편의는 시혜가 아니라 권리이며, 접근성은 선택이 아니라 상식이라는 인식이, 사회 전반에 뿌리내릴 때, 비로소 우리는 모두에게 열린 사회로, 한 걸음 더 나아갈 수 있다.
돌이켜보면, 선진국들이 접근성과 편의정책을 강화해 온 과정들은, 우리에게 분명한 시사점을 준다. 미국은 1990년 「장애인법(ADA)」을 통해, 장애를 개인의 불편이 아니라, 차별과 권리의 문제로 규정했고, 공공시설과 교통, 고용, 정보 접근 전반에 걸쳐, 접근권을 법적 권리로 명문화했다. 최근에는 웹사이트와 모바일 서비스까지 접근성 기준을 강화하며, 디지털 환경 역시 공공 접근권의 연장선으로 보고 있다. 이는 접근성이 더 이상 건물의 문턱만이 아니라, 정보와 서비스의 문턱까지 포함하는 개념임을 보여준다.
일본은 고령화 사회에 대응하며, ‘배리어 프리(Barrier-Free)’를 넘어, ‘유니버설 디자인(Universal Design)’의 관점으로 도시를 재구성해 왔다. 도쿄의 지하철과 철도, 공항과 공공청사는 장애인만이 아니라 노인, 임산부, 유아차 이용자까지 고려한 설계를 기본 원칙으로 삼고 있다. 계단 옆 경사로를 덧붙이는 수준이 아니라, 처음부터 누구나 불편 없이 이용할 수 있도록 설계하는 방식이다. 접근성을 사후 보완이 아니라, 사전 설계의 원칙으로 받아들인 것이다.
영국 역시 접근성을 복지의 문제가 아닌, 어엿한 사회 구조의 문제로 바라본다. 영국 정부와 장애인 단체들은, 접근성이 단지 장애인의 이동권 보장에 그치지 않고, 고령자와 아동, 보호자까지 포함한 사회 전체의, 삶의 질과 경제적 활력을 높인다고 본다. 즉, 접근성은 비용이 아니라 투자이며, 배려가 아니라 사회 전체의 효율을 높이는 공공 자산이라는 인식이, 이미 제도와 정책 속에 자리 잡고 있다.
이들 선진 국가의 공통점은 분명하다. 접근성을 ‘약자를 위한 추가 비용’이 아니라, ‘모두를 위한 사회적 기준’으로 받아들였다고 하는 점이다. 장애인을 위한 낮은 턱은 유아차를 위한 길이 되고, 노인을 위한 손잡이는 임산부의 안전이 되며, 시각장애인을 위한 음성 안내는, 낯선 이방인에게도 친절한 길잡이가 된다. 결국 접근성은 특정인을 위한 특별한 장치가 아니라, 사회 전체를 더 안전하고 품위 있게 만드는 문명의 기준인 셈이다.
우리 사회도 이제는 편의시설을 ‘설치했는가’에 머물 것이 아니라, ‘누구나 불편 없이 이용할 수 있는가’로 그 질문을 바꾸어야 한다. 법은 이미 그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다. 이제 남은 것은 시민의식과 사회문화의 변화다. 장애인·노인·임산부를 위한 편의는 시혜가 아니라 권리이며, 공공의 접근성은 복지가 아니라 상식이다. 외국의 사례가 보여주듯이, 진정한 선진사회는 약자를 특별히 배려하는 사회가 아니라, 누구도 배제되지 않도록 처음부터 함께 설계하는 사회다. 그리고 그 사회는 결국 소수를 위한 나라가 아니라, 모두를 위한 나라가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