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선
<연중 제6주일>(2023. 2. 12.)
(마태 5,17-37)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너희의 의로움이
율법학자들과 바리사이들의 의로움을 능가하지 않으면,
결코 하늘나라에 들어가지 못할 것이다(마태 5,20).”
이 말씀은, “율법학자들과 바리사이들처럼 살지 마라.”
라는 가르침입니다.
여기서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율법학자들과 바리사이들’이라는 말은
‘위선자들’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당시의 ‘모든’ 율법학자들과 바리사이들이 위선자였던 것은 아닌데,
그래도 그들 대부분은 위선자들이었습니다.)
위선자들의 의로움은 ‘거짓 의로움’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뒤의 23장에서 위선자들을 이렇게 꾸짖으셨습니다.
“불행하여라, 너희 위선자 율법학자들과 바리사이들아! 너희가 겉은
아름답게 보이지만 속은 죽은 이들의 뼈와 온갖 더러운 것으로
가득 차 있는 회칠한 무덤 같기 때문이다.
이처럼 너희도 겉은 다른 사람들에게 의인으로 보이지만,
속은 위선과 불법으로 가득하다(마태 23,27-28).”
이 말씀에서 ‘무덤’을 ‘생명력 없음’으로 해석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면 “겉은 아름답게 보이지만 속은 무덤이다.” 라는 말씀은,
“겉으로는 살아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죽은 상태다.”
라는 뜻이 됩니다.
위선자들은 그 자신들의 위선 때문에 하느님의 생명력을 받지 못하는
사람들, 그래서 영적으로 죽어 있는 사람들입니다.
하늘나라는 영적으로 살아 있는 사람만이 들어갈 수 있는 나라입니다.
영적으로 죽어 있는 사람은 들어가지 못합니다.
위선자들은 ‘하느님을 섬기려고’가 아니라, ‘사람들에게 보이려고’
신심 행위를 하는 사람들입니다(마태 6,2.5.16).
그래서 그들의 신심 행위는 ‘거짓 신심 행위’입니다.
사람의 눈으로 보면, 기도도 잘하고 단식도 잘하고 자선도 잘 베푸는
것으로 보이지만, 그 일들은 모두 가짜라는 것입니다.
위선자들은 ‘말만 하고 실행하지는 않는’ 사람들입니다(마태 23,3).
<세속에서 정말로 강의나 강연이나 토론을 잘하는 사람에게
처음에는 열광하다가 그 사람의 실제 삶이 말과 다르다는 것이
알려지면 금방 비난을 퍼붓는 일이 흔히 있습니다.
그렇게 세속에서도 위선을 싫어합니다.
교회는 더 말할 것도 없습니다.
복음서의 내용 전체를 보면,
예수님께서는 ‘위선’을 몹시 싫어하셨습니다.>
위선자들은 눈에 보이는 일은 잘하는데,
정말로 중요하면서도 눈에 보이지 않는 일은 무시합니다(마태 23,23).
<보이지 않는 일이니, 열심히 해도 표시가 나지 않기 때문입니다.>
위선자들은 겉과 속이 다른 사람들입니다(마태 23,25-26).
겉으로는 깨끗한 사람으로 보이지만 속은 그렇지 않습니다.
사람의 눈에는 위선자의 마음속이 보이지 않으니
겉모습만 보고 깨끗한 사람이라고 생각하지만,
하느님께서는 위선자의 마음속을 보십니다(마태 6,4.6.18).
그런데 중요한 문제가 하나 있습니다.
‘나 자신’의 마음속을 나도 모른다는 점입니다.
위선자들은 자기가 위선자라는 것을 모릅니다.
자기는 겉과 속이 같다고,
즉 겉으로도 속으로도 거룩한 사람이라고 생각합니다.
위선자들은 자기는 잘하고 있다고 생각하면서
죄의식, 죄책감, 또는 양심의 가책 같은 것은 전혀 없이
자기 혼자만의 ‘마음의 평화’를 누리면서 살아갑니다.
그래서 누군가가 “너는 위선자다.” 라고 지적하고 비난하면,
받아들이지 못하고 반발하면서 화를 냅니다.
사실 다른 사람이 위선자인지 아닌지를 아는 것은 중요하지 않습니다.
<남을 판단하지 말라는 것이 예수님의 가르침입니다(마태 7,1).>
정말로 중요한 일은 ‘나 자신’을 아는 것입니다.
“과연 나는 위선자인가, 아닌가, 내가 하는 일은 진짜인가, 가짜인가?”
신앙생활은 겉으로 보이는 행동보다 ‘마음’이 더 중요하다는 말을
흔히 하는데, 또 마음이 깨끗하면 된다는 말도 흔히 하는데,
나 자신의 마음을 나도 모르는 상황에서 그런 말은
별로 의미 없는 ‘상투적인’ 말이 될 뿐입니다.
그래서 ‘양심 성찰’을 잘해야 한다고 말하기도 합니다.
양심 성찰만 잘하면 자기가 위선자라는 것을 깨달을 수 있을까?
사실 ‘양심 성찰’도 ‘내가 나 자신을 속이는’ 일이 될 때가 많습니다.
양심의 가책 없이 살면서, 혼자만의 ‘마음의 평화’를 누리고 있는
위선자가 양심 성찰을 한다고 해서 무슨 효과가 있는 것은 아닙니다.
사도들은 판단 기준으로 ‘사랑’을 말합니다.
바오로 사도는 이렇게 말합니다.
“내가 예언하는 능력이 있고, 모든 신비와 모든 지식을 깨닫고,
산을 옮길 수 있는 큰 믿음이 있다 하여도, 나에게 사랑이 없으면
나는 아무것도 아닙니다. 내가 모든 재산을 나누어 주고, 내 몸까지
자랑스레 넘겨준다 하여도, 나에게 사랑이 없으면,
나에게는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1코린 13,2-3).”
이 말은, “사랑이 없으면 모든 일이 다 위선이다.” 라는 뜻입니다.
‘산을 옮길 수 있는 큰 믿음’과 ‘모든 재산과 몸까지
다 넘겨주는 일’이 위선이라는 것이 납득하기 어려울 수도 있습니다.
납득하기 어렵다는 것은 인간의 기준으로 하는 말입니다.
‘사랑이신 하느님’의 기준으로는 사랑 없이 하는 일은 다 위선입니다.
위선이라면, 그 믿음은 가짜 믿음이고, 그 희생은 가짜 희생입니다.
실제로 기적을 일으키고, 실제로 희생하더라도 그렇습니다.
요한 사도는 이렇게 말합니다.
“누가 ‘나는 하느님을 사랑한다.’ 하면서 자기 형제를 미워하면, 그는
거짓말쟁이입니다. 눈에 보이는 자기 형제를 사랑하지 않는 사람이
보이지 않는 하느님을 사랑할 수는 없습니다(1요한 4,20).”
그렇다면 양심 성찰을 할 때, 가장 먼저 살펴보아야 할 것은
“내 마음속은 얼마나 사랑으로 가득 차 있는가?”입니다.
물론 “내 마음속은 사랑으로 가득 차 있다.” 라고 자기 혼자 착각하고,
자기 마음대로 큰소리치는 위선에 빠질 가능성도 있습니다.
우리는 항상, “나도 위선자일 수 있다.” 라고 겸손하게 인정해야 하고,
위선에서 벗어나려는 노력을 날마다 끊임없이 해야 합니다.
- 송영진 신부님 -
첫댓글 정말로 중요한 일은 ‘나 자신’을 아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