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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호지(水湖誌) - 172
수호지 제74회-2
전문(殿門) 밖의 월대에는 본주 태수가 앉아 있었는데, 7,80명의 검은 옷을 입은
관리들이 앞뒤로 둘러싸고 있었다.
태수는 사람을 보내 연청을 자기 앞으로 불러오게 하였다.태수는 연청의 몸에 새겨진
꽃 문신과 옥기둥처럼 매끈한 몸매를 보고 아주 기뻐하면서 물었다.
“이보게! 자네는 어디 사람이며, 여기는 어떻게 왔는가?”연청이 말했다.
“소인은 장가이며 항렬은 첫째입니다. 산동의 내주가 고향인데, 임원이 천하의 사람들을
씨름판에 초청했다고 들었기 때문에 그와 겨루어 보려고 왔습니다.”
“저 앞에 있는 말 네 필은 내가 상으로 내놓은 것이다. 저건 임원에게 주고, 시렁 위에 있는
물건의 절반은 자네에게 줄 테니 두 사람이 나누어 가지고 씨름을 그만두는 것이 어떤가?
내가 자네를 뽑아 내 곁에 두고 싶은데.”“상공! 저런 물건은 중요하지 않습니다.
저는 단지 임원을 넘어뜨려 사람들이 웃게 만들고 갈채를 받고 싶을 뿐입니다.”
“그는 금강역사처럼 덩치가 큰 사람인데, 자네가 감히 상대할 수 있겠는가!”
“죽어도 원망하지 않겠습니다.”연청은 다시 씨름판으로 올라가 임원과 겨루고자 하였다.
제관이 먼저 문서에 서명을 받은 다음 품속에서 씨름 규칙이 써진 종이를 꺼내
한번 읽고서 연청에 말했다.“알아들었는가? 암수를 써서는 안 되네.”
연청이 냉소하며 말했다.“저 사람은 단단히 준비했지만 저는 이 몸뚱아리 하나밖에 없는데,
무슨 암수를 쓰겠습니까?”태수가 제관을 불러 분부했다.
“저 사내는 준수한 젊은인데, 애석하구나. 당신이 두 사람의 시합을 말려 보시게.”
제관이 다시 씨름판으로 올라가 연청에게 말했다.
“이보게! 자네는 목숨을 건져 고향으로 돌아가는 것이 어떻겠나? 나는 자네를 말리고 싶네.”
연청이 말했다.“어르신은 뭘 모르시네요. 제가 이길지 질지 어떻게 아십니까?”
그때 사람들이 모두 떠들어댔다.수만 명의 분향객들이 마치 고기비늘처럼 양편을
갈라서 있고 복도 처마 밑과 지붕 위에까지 사람들로 가득 찼는데, 혹시 시합이 무산될까 봐
걱정하고 있었다.임원도 이때에는 씨름을 하기로 마음먹었는데, 연청을 저 하늘 끝까지
날려 버리지 못하는 것이 한이었다. 제관이 말했다.“자, 이제 두 사람이 겨루는데,
올해는 성제의 은혜에 감사하는 뜻으로 하는 것이니 두 사람 다 조심하시오.”
씨름판 위에는 세 사람만 남았고, 밤새 내린 이슬도 해가 떠오르면서 다 말랐다.
제관이 죽비를 들고 두 사람에게 주의를 준 다음 소리쳤다.“시작!”
두 사람은 서로를 노려보면서 이리저리 왔다 갔다 하는데, 동작이 번개처럼 재빨랐다.
그러다가 연청은 오른쪽에 웅크리고 앉았고, 임원은 왼쪽에 버티고 섰다.
연청이 꼼짝 않고 있으니 임원이 점점 다가갔다.연청은 임원의 아랫도리만 노려보고 있었다.
임원은 속으로 생각했다.“저놈이 내 아랫도리를 어떻게 해볼 심산이구나.
그러면 나는 손을 쓰지 않고 네놈을 발로 걷어차서 씨름판 아래로 날려버리겠다.”
임원은 점점 다가가다가 일부러 왼쪽 발로 헛발질을 했다.그러자 연청이 소리쳤다.
“오지 마라!”연청은 임원의 왼쪽 겨드랑이 아래로 살짝 빠져나갔다.
성질이 난 임원은 급히 몸을 돌려 연청을 잡으려 했는데, 연청은 뛰어오르는 척하다가
또 오른쪽 겨드랑이 아래로 빠져나갔다.덩치가 큰 사람은 몸을 돌리기가 불편한 법이라
임원이 세 번이나 몸을 돌리면서 발걸음이 어지러워졌다.
그 순간 연청은 임원에게 달려들어 오른손으로는 임원을 붙잡으면서 왼손을 가랑이 사이로
집어넣어, 어깨로 임원의 가슴을 떠받쳐 들었다.임원의 다리가 허공으로 붕 떠올랐다.
연청은 임원을 서너 바퀴 돌리면서 씨름판 가장자리로 가서 소리쳤다.“가라!”
임원은 씨름판 아래로 그대로 곤두박질쳤다.
연청이 사용한 기술은 ‘발합선(鵓鴿旋)’ 즉 ‘비둘기 돌리기’라는 것이었다.
수만 명의 관중이 그걸 보고 일제히 갈채를 보냈다.그때 임원의 제자들은 사부가
내던져지는 것을 보고 시렁을 넘어뜨려 거기에 있던 상품들을 마구 훔쳐 달아났다.
사람들이 막으라고 소리쳤지만 2,30명의 제자들이 달려드는 바람에 태수도 어떻게
할 바를 모르고 있었다.하지만 누가 알았으랴! 그 곁에 흉악한 귀신이 하나 있었다는 것을!
흑선풍 이규가 보고 있다가 눈을 부릅뜨고 호랑이수염을 곤두세웠다.
눈앞에 무기가 보이지 않자 삼나무를 파뿌리 뽑듯 뽑아 버렸다.
그리고는 두 동강을 내서 양손에 하나씩을 들고, 임원의 제자들을 마구 두들겨 팼다.
그때 이규를 알아본 사람이 외쳤다.“흑선풍 이규다!”
그러자 바깥에 있던 공인들이 일제히 사당 안으로 달려 들어오며 소리쳤다.
“양산박 흑선풍을 달아나지 못하게 하라!”그 외침을 들은 태수는 혼(魂)은
정수리로 빠져나가고 백(魄)은 아랫도리로 빠져나간 듯했다.
태수는 정신없이 전각 뒤쪽으로 달아났다.
사방에 빽빽이 있던 사람들과 사당 안에서 향을 사르던 사람들도 각자 달아나기 바빴다.
이규가 씨름판 밑에 쓰러져 있는 임원을 보니 정신을 잃었는데 숨만 겨우 쉬고 있었다.
이규는 큰 돌을 하나 들어서 임원의 머리를 부숴 버렸다.
이규와 연청이 사당 밖으로 나가려 하자, 바깥에서 화살이 어지럽게 날아들었다.
두 사람은 할 수 없이 지붕 위로 올라가 기와를 마구 집어던졌다.
얼마 후 사당 문 앞에서 함성이 크게 일어나면서 사람들이 달려 들어왔다.
앞장선 사람은 머리에 흰 전립을 쓰고 흰 비단옷을 입었으며, 허리에는 요도를 차고
손에는 박도를 들고 있었다.그는 바로 북경의 옥기린 노준의였다.
뒤에는 사진·목홍·노지심·무송·해진·해보가 천여 명을 이끌고 와서 접응했다.
연청과 이규는 그들을 보고 지붕에서 내려와 함께 달아났다. 이규는 객점으로 가서
쌍도끼를 찾아 뒤쫓아 갔다. 관군이 당도했을 때는 이미 양산박 호걸들이 멀리
사라진 뒤였고, 관군들은 대적하기가 두려워 감히 추격하지 않았다.
한편, 노준의는 이규까지 수습해서 돌아갔는데, 반나절 정도 걷다 보니 또 이규가
보이지 않았다.노준의가 웃으며 말했다.“또 일내게 생겼구나.
사람을 보내 찾아오게 해야겠다.”목홍이 말했다.“제가 찾아서 산채로 돌아가겠습니다.”
“그렇게 하게.”한편, 이규는 쌍도끼를 들고 곧장 수장현으로 갔다.
그때는 오전 근무를 마치고 현령과 아전들이 퇴청한 후였다.이규는 관아 문 앞에서
소리쳤다.“양산박 흑선풍 이규 어르신이 오셨다!”
관아에 있던 사람들은 깜짝 놀라 손발이 마비되어 움직이지도 못했다.
원래 수장현은 양산박에서 가장 가까운 지역이라 ‘흑선풍 이규’ 다섯 글자만 들어도 밤중에
울던 아이가 울음을 그칠 정도였는데, 오늘 그가 친히 나타났으니 어찌 두렵지 않겠는가!
이규는 관아로 들어가 현령의 의자에 앉아 소리쳤다.
“두 놈만 나와서 얘기 좀 하자. 나오지 않으면 불을 싸질러 버릴 거다!”
곁방에 숨어 있던 관원들이 상의했다.“몇 사람이라도 나가서 응답해야겠다.
그렇지 않으면 돌아가지 않을 거야.”
두 관원이 나가서 대청 아래에서 절을 네 번 한 뒤 무릎을 꿇고 말했다.
“두령님께서는 무슨 일로 오셨습니까?”이규가 말했다.
“내가 당신네들을 괴롭히려고 온 것이 아니라 지나는 길에 심심해서 한번 들렀소.
현령 나오라고 하시오. 내가 할 얘기가 있소.”두 사람이 갔다 와서 말했다.
“현령께서는 방금 두령님께서 오시는 걸 보고 뒷문으로 나갔는데, 어디로 갔는지
모르겠습니다.”이규는 그 말을 믿지 않고 후당으로 가서 방안을 수색했다.
관원이 말했다.“두령님! 이걸 보십시오. 관복을 넣어두는 상자가 여기 그대로 있지 않습니까?”
이규는 자물쇠를 비틀어 열고 관복을 꺼내 입었다.그리고는 대청으로 나가 소리쳤다.
“관원들은 모두 나와 배알하도록 하라!”관원들은 할 수 없이 나와서 응답했다. 이규가 말했다.
“내가 이렇게 꾸미니까 어떠냐?”“잘 어울립니다.”
“너희 관원들은 모두 내 앞으로 나오라고 해라. 만약 내 말을 따르지 않으면,
이 현청을 폐허로 만들어 버릴 것이다.”관원들은 이규가 두려워 아전들을 모두
불러 모은 다음 북을 세 번 울리고 앞으로 나와 인사했다.이규가 ‘껄껄껄’ 웃으며 말했다.
“너희들 가운데 두 사람이 나와서 송사를 해봐라.”“두령님께서 여기 계신데,
누가 감히 송사를 하겠습니까?”“송사하러 온 사람이 없다는 건 알고 있다.
너희들이 송사인 척 꾸며서 해보란 말이다. 내가 누굴 다치게 하려는 것이 아니라
한번 웃어 보려고 하는 것이다.”관원들은 상의하여 두 사람이 송사하는 흉내를 내기로 하였다.
현청 밖에서는 백성들이 모여 구경하고 있었다.두 사람이 무릎을 꿇고, 한 사람이 아뢰었다.
“상공께서는 저를 가련히 여겨 주십시오, 저놈이 소인을 때렸습니다.”
다른 사람이 아뢰었다.“저놈이 소인을 욕하길래, 제가 저놈을 때린 것입니다.”
이규가 말했다.“맞은 놈이 누구냐?”원고가 말했다.“소인이 맞았습니다.”이규가 또 물었다.
“때린 놈은 누구냐?”피고가 말했다.
“저놈이 먼저 욕을 했기 때문에 소인이 저놈을 때린 것입니다.”이규가 말했다.
“때린 놈은 호걸이니 먼저 석방하라. 그리고 저놈은 변변찮아서 얻어맞은 것이니
목에 칼을 씌워 사람들이 모두 볼 수 있게 관아 앞에 세워 두도록 하라.”
이규는 일어나서 녹포를 떨치고 도끼를 꺼내 들었다.
그리고 원고에게 칼을 씌워 관아 앞에 세워 두게 하였다.
이규는 관복을 입은 채로 관아를 나서 성큼성큼 걸어갔다.
구경하고 있던 백성들은 웃음을 참을 수 없어 킥킥거렸다.
이규는 수장현 관아 앞에서 이리저리 거닐고 있었는데, 문득 서당에서 글 읽는 소리가
들렸다.이규가 서당으로 가서 발을 걷고 들어가자 깜짝 놀란 선생은 창을 넘어 달아났다.
학생들은 우는 놈, 소리치는 놈, 달아나는 놈, 숨는 놈 등등 난장판이 되었다.
이규는 크게 웃으면서 서당을 나오다가 목홍과 마주쳤다.목홍이 말했다.
“모두들 형님을 걱정하고 있는데, 형님은 여기서 뭐하고 있소! 얼른 산채로 갑시다!”
이규는 목홍에게 끌려서 별 수 없이 수장현을 떠나 양산박으로 돌아갔다.
두 사람이 금사탄으로 건너가 산채에 올라가자 사람들이 이규의 차림새를 보고
모두 웃음을 터뜨렸다.그때 충의당에서는 송강이 자리를 마련하여 연청을 축하하고 있었다.
이규는 쌍도끼를 내던지고 관복을 입은 채 의기양양하게 충의당 앞으로 걸어가 홀을
손에 쥐고 송강에게 절을 했다.두 번째 절을 하다가 관복 자락을 발로 밟는 바람에
관복은 찢어지고 이규는 벌러덩 뒤로 자빠졌다.사람들이 모두 웃었다. 송강이 꾸짖었다.
“네놈은 참 간도 크다! 나한테 알리지도 않고 네 멋대로 산을 내려가는 것은 죽을죄에
해당한다! 가는 곳마다 사단을 일으키니 오늘 내가 여러 형제들 앞에서 단언컨대
다시는 너를 용서하지 않을 것이다!”이규는 ‘예’, ‘예’ 하면서 물러났다.
양산박은 그 후로 평안하여 아무 일도 없었다.
매일 산채에서 무예를 연마하고 인마를 조련하였으며, 물에 익숙한 사람들은 배 위에서의
싸움을 연습하였다.
각 영채에서는 무기·전포·갑옷·창칼·활·화살·방패·쇠뇌·깃발 등을 만들어 보충하였다.
한편, 태안주에서는 씨름판에서 일어났던 일을 자세히 적어 동경에 보고하였다.
진주원(進奏院)에서는 각처에서 올라온 표문들을 수합하였는데, 모두 송강 등이 반란을
일으켜 지방을 소란하게 하고 있다는 내용이었다.
그때 도군황제는 한 달 만에 처음 조회에 나왔다.
문무대신들이 두 줄로 늘어서 있는데, 전두관(殿頭官)이 소리쳤다.
“일이 있으면 출반하여 아뢰고, 일이 없으면 퇴청하시오.”
진주원경(進奏院卿)이 출반하여 아뢰었다.
“진주원에서는 각처에서 여러 차례 올라온 표문들을 수합하였는데, 모두 송강 등의
도적에 관한 것입니다. 저들은 공공연하게 고을의 관아로 쳐들어가서 창고를 약탈하고
군인과 백성들을 살해하고 있습니다.그러고도 탐욕을 만족시키지 못하고 있는데,
가는 곳마다 대적할 사람이 없다고 합니다. 만약 빨리 체포하지 않으면
나중에는 반드시 큰 근심거리가 될 것입니다.”천자가 말했다.
“상원절 밤에도 그 도적들이 경성을 시끄럽게 만들었는데, 이제 또 각처로 가서
소란을 피우고 있구나. 그들 가까이에 있는 고을들은 오죽하겠는가?
짐이 이미 여러 번 추밀원에 명하여 군대를 파견하라고 했는데,
지금까지 상주하지 않고 있구나.”어사대부 최정이 출반하여 아뢰었다.
“신이 듣건대, 양산박에 세워진 큰 깃발에는 ‘체천행도(替天行道)’라고 쓰여 있다고 합니다.
이는 백성을 현혹시키려는 술책이긴 하지만, 민심이 이미 따르고 있기 때문에 군대로
진압해서는 안 됩니다.지금 요(遼)나라 군대가 국경을 침범하여 각처의 군마들이
그걸 막기에도 부족한 지경이니 만약 군대를 일으켜 도적을 정벌하려 한다면
참으로 어려운 일이 될 것입니다.신의 어리석은 생각으로는 산간으로 도망친 그 무리들은
모두 죄를 짓고 피할 데가 없어 산속에 모여 나쁜 짓을 저지르고 있을 뿐입니다.
조서를 내리시어 한 대신으로 하여금 어주(御酒)와 진귀한 음식 등을 가지고
양산박으로 가서 좋은 말로 위로하고 깨우쳐서 초안(招安)하여 귀순하도록
하는 것이 좋을 듯합니다.그리하여 그들의 힘을 빌려 요나라 군대를 물리치게 되면
공사(公私)가 모두 편리할 것입니다. 폐하께서 밝게 살펴주시옵기를 바랍니다.”
천자가 말했다.“경의 말이 참으로 옳소. 짐의 뜻에 합치하노라.”
천자는 전전태위(殿前太尉) 진종선을 사자로 삼아 조서와 어주를 가지고 양산박의
인원들을 초안하러 가게 하였다.
- 173회에 계속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