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향기부금 어디 쓰이는지 알 수 있게”… 깜깜이 구조 바꾼다
[고향사랑기부제 1년]
작년 시행 첫해 650억 모금… “활용처 몰라 답례품 보고 선택”
지역별 품질 차이 커 일부에 쏠려… 홍보-민간플랫폼 활용못해 한계
전문가 “법인도 기부 참여 허용을… 한도 등 풀면 조 단위 모금 가능”
“연말에 기부하려고 웹사이트에 들어갔습니다. 하지만 대기 번호만 뜨고 접속이 안 되길래 결국 기부를 포기했어요.”
지난해 12월 고향사랑기부제를 참여하려 했던 직장인 유모 씨(42)는 22일 행정안전부가 운영하는 고향사랑e음 웹사이트에 대해 “접속자 규모를 고려해 개편이 필요한 것 같다”며 이렇게 말했다. 고향사랑기부제는 자신이 거주하지 않는 지방자치단체에 기부하면 10만 원까지 전액 세액공제를 해주는 제도다. 열악한 지방 재정을 확충하고 지방 소멸에 대응하기 위해 행안부가 지난해 1월 처음 선보인 제도다.
● 이용자 “기부하려고 해도 불편함 많아”
시행 첫해 총 650억 원을 모금했지만 이용자들은 개선해야 할 부분이 많다고 지적한다.이용하기 불편할 뿐만 아니라, 자신이 낸 기부금이 어디에 어떻게 쓰이는지 알 수 없는 ‘깜깜이 기부’를 바꿔야 한다는 목소리가 적지 않다.
지난해 고향사랑기부에 참여한 직장인 김모 씨(28)는 “웹사이트에 접속하니 ‘대기 중입니다’라는 문구와 함께 수백 번대의 대기 번호가 떴다”며 “겨우 접속은 했는데 막상 지역 현안을 보고 기부할 수 있는 게 아니라 답례품만 보고 기부하는 방식이라 씁쓸했다”고 했다.
실제로 온라인 커뮤니티에서는 ‘고향사랑기부제 전국 답례품 목록’ ‘답례품 추천 목록’ 등을 공유하며 지자체가 내건 답례품 위주로 기부 지역을 고르는 이들이 많았다. 서울에 거주하는 직장인 이모 씨(24)는 “고향인 경남 창원에 기부하려고 했는데, 기부금이 어떻게 쓰이는지 나와 있지 않아 의아했다”며 “결국 답례품이 더 마음에 드는 다른 지자체에 기부했다”고 말했다.
지역별 답례품의 품질 차이가 크다 보니 기부금이 일부 지역에 쏠린다는 지적도 나왔다. 한 기부자는 지난해 12월 말 한 온라인 커뮤니티에 “비계가 대부분인 삼겹살을 답례품으로 받았다”는 글과 사진을 올렸다.
● 지자체 “제약 많아 기부금 모금 어려워”
이용자뿐만 아니라 기부금을 모으는 지자체들도 고충을 토로했다. 고향사랑기부제를 직접 홍보할 수 없다 보니 지자체의 인지도나 답례품에 따라 모금액이 천차만별이라는 것이다.
현행 고향사랑기부금에 관한 법률에 따르면 지자체는 대통령령으로 정한 광고매체를 통해서만 기부제를 홍보할 수 있다.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이 지정한 신문, 잡지 등에서만 홍보가 가능하다는 것. 개별적으로 전화나 우편물, 문자메시지, 방문 등을 통해 기부금을 모금하는 건 금지된다. 이에 고향 향우회나 동호회 등을 통해 홍보할 수 있도록 해달라는 요청이 쇄도하자 관련 개정안이 국회에서 논의되고 있다.
지자체들은 직접 민간 플랫폼 등을 활용해 기부금을 모금할 수 없는 것도 규제라고 지적했다. 한 지자체 관계자는 “모바일 플랫폼 등과 연계해 기부제를 홍보하고 모금할 수 있도록 하면 지역별 격차를 줄일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다른 지자체 관계자도 “관내에 살고 있는 주민이 아니라 다른 지역 주민으로부터 기부를 받아야 하다 보니 홍보 수단이 마땅치 않은 게 사실”이라고 했다.
● 전문가 “법인 참여 등 규제 풀어줘야”
이에 지자체별 개별 홍보를 허용하고 연간 기부 한도를 500만 원에서 2000만 원으로 확대하는 방안 등을 담은 개정안이 지난해 9월 발의됐다. 하지만 21대 국회에서 통과될 수 있을지 불투명한 상태다. 권선필 한국지방자치학회 고향사랑기부제특별위원장은 “현행법상 모금 주체는 전국 지자체이지만 중앙정부가 홍보 방식과 민간 플랫폼 홍보 등을 과하게 규제하고 있다. 이를 어길 경우 처벌하는 조항(3년 이하 징역 등)까지 있다”고 지적했다. 지자체 의견이 사실상 반영될 수 없는 구조라는 의미다. 염명배 충남대 경제학과 명예교수는 “지방 자생력을 키우는 데 걸림돌이 되는 홍보 규제 등은 없애야 한다”고 조언했다.
전문가들은 아직까지 개정안에 포함되지 않은 법인의 기부 참여나 민간 플랫폼 활용 등에 대해서도 적극적으로 규제를 완화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권 위원장은 “기부 한도 제한을 없애고 법인도 기부에 참여할 수 있게 한다면, 기부금 모금액이 수조 원에 달해 실질적으로 지역에 도움을 줄 수 있을 것”이라며 “지난해 모금된 650억 원은 애초 예측했던 성과에 비해 적은 액수”라고 말했다.
● 행안부 “지자체 기부금 활용처 볼 수 있게 개편”
행안부는 올 상반기(1∼6월)부터 지자체별로 기부금을 어디에 어떻게 쓸지 활용 계획을 살펴본 뒤 기부할 수 있도록 웹사이트를 개편할 예정이라고 22일 밝혔다. 행안부 관계자는 “기부자가 고향사랑e음 웹사이트에서 기부할 지자체를 선택했을 때 지역의 현안과 기부금 활용처, 답례품 등을 한꺼번에 볼 수 있도록 웹사이트 개편을 준비하고 있다”고 밝혔다.
행안부는 이르면 올 1분기(1∼3월), 늦어도 상반기 중에 개편된 웹사이트를 오픈할 예정이다. 이를 위해 지자체별로 기부금 활용처 계획안을 취합하고 있다. 홍보 채널을 다양화하는 방안에 대해선 “향후 민간 플랫폼 등을 활용할 수 있도록 법 개정을 검토하고 있다”고 행안부는 밝혔다.
이채완 기자, 전혜진 기자
日선 민간플랫폼 등 활용… 법인도 ‘고향기부’ 가능
[고향사랑기부제 1년]
2008년 도입 日 ‘고향납세’ 살펴보니
한도 없고 2000엔 넘으면 세액공제… 동창회 등 개별 접촉해 기부 홍보
韓, 활용범위 ‘주민복지’ 제한하지만… 日은 재난 방재-환경 등 폭넓어
지난해 첫선을 보인 고향사랑기부제는 2008년 일본에 도입된 ‘고향납세’ 제도와 비슷한 성격을 띠고 있다. 일본의 고향납세 모금액은 2022년 9654억 엔(약 8조6000억 원)에 달할 정도로 규모가 커졌다. 전문가들은 우리나라와 달리 기부금 한도와 방식 등에서 뚜렷한 차이점을 보이고 있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대표적으로 일본 고향납세는 기부금 모금 한도가 없다. 기부자에 대한 세제 혜택도 크다. 지난해 충북연구원이 발간한 ‘일본 고향납세 운영 사례를 통한 고향사랑기부제 개선방안’에 따르면 일본 고향납세는 최소 2000엔(약 1만8000원) 이상 기부할 수 있고 상한액은 없다. 특히 2000엔 초과 기부금에 대해선 대부분 지자체에서 전액 세액공제 혜택을 제공한다. 기부금이 많을수록 세액공제 한도액이 늘어나 기부를 장려하는 구조다. 우리나라는 10만 원까지 전액 세액공제를 하고 10만 원 초과액은 16.5%에 한해 세액공제를 해준다.
기부 방식 역시 다양하다. 일반형은 개인이 기부하면 기부금의 30%에 해당하는 답례품을 받을 수 있다. 법인도 2016년부터 고향납세에 참여할 수 있게 돼 최소 10만 엔(약 90만 원) 이상 기부금을 내거나 기업의 인재를 지역에 파견하는 방식으로 참여할 수도 있다. 세제 혜택은 개인과 같이 10만 엔 초과 기부금은 전액 세액공제를 받을 수 있다.
지자체는 민간 플랫폼을 활용하거나 단체 등을 개별적으로 접촉해 홍보할 수 있다. 주만수 한양대 경제학부 교수는 논문을 통해 “2016년 기준 일본 지자체 1788곳 중 43.4%에 달하는 776곳이 지역 동창회 등에 기부를 요청한 것으로 나타났다”고 분석했다.
기부금을 다양한 곳에 활용할 수 있는 것도 우리나라와 다른 점이다. 현행법상 우리나라 고향사랑기부금은 활용 범위를 주민 복지 분야로 제한하고 있다. 구체적으로 사회적 취약계층의 지원 및 청소년의 육성 보호, 지역 주민의 문화 예술 보건 등의 증진, 시민 참여 등 지역공동체 활성화 지원, 그 밖에 주민의 복리 증진에 필요한 사업 추진 등이다.
반면 일본은 고향납세 기부금을 10개 이상 분야에 폭넓게 활용할 수 있다. 주민 복지뿐만 아니라 재난 방재, 환경 등 다양한 지자체 사업에 쓸 수 있는 것이다. 염명배 충남대 경제학과 명예교수는 “우리나라 고향사랑기부제는 일본에 비해 기부금 활용처 제한이 큰 편”이라며 “활용처를 주민 복지 영역에 한정할 경우 기부하려는 기부자가 줄어들 수밖에 없어 이런 규제는 폐지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행정안전부는 이 같은 지적에 대해 일본이 시행 중인 내용 중 고향사랑기부제 활성화에 도움이 되는 내용은 검토를 거쳐 국내에도 도입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행안부 관계자는 22일 동아일보와의 통화에서 “일본에서 기부제를 활성화하는 데 효과가 있었던 내용은 향후 법 개정에 포함시키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며 “여기에 더해 우리나라의 강력한 디지털 기반을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방안도 준비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채완 기자, 전혜진 기자